정부와 중앙은행의 갈등, 원화 스테이블 코인 🪙
작성자 강준
한국경제 경제에디터 The Brief
정부와 중앙은행의 갈등, 원화 스테이블 코인 🪙

안녕하세요, 강준 입니다.
29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원화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입장에 대해 정치권과 금융업계에서 반발이 있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각 주체가 어떤 주장을 했고, 그 주장에 대한 분석과 어떤 근거로 가지고 그렇게 말했던건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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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가 우선 🛡️
먼저, 원화 스테이블 코인을 민간업계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결국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 자국 통화 대신 미 달러를 사용하는 경제적 현상)이 본격화 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대비해놔야 한다는 것으로 연결 됩니다.
만약 달러라이제이션이 진짜로 본격화 되어 한국의 국민들이 원화보단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하여 결제를 하게 된다면 문제가 매우 커집니다. 달러라이제이션의 진짜 무서움은 원화의 가치를 낮춘다는 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실물 시장에 있어 달러의 주 목적은 해외 거래를 하기 위함에 있습니다. 이에 달러를 주로 사용하는 주체는 수출입 기업들이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수출입 기업들이 자신들이 달러를 이용해 물건을 사고 팔아도 이는 이윤 활동을 하기 위함이지, 자신들이 국내에서 사용하고 싶어서 필요로 하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달러를 필요로 하는 기업에 속해있는 구성원들도 한국 내에서는 원화로 경제 활동을 합니다. 한국에서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원화로 지불하니까요. 이 때문에 원화는 가치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필요로한 서비스나 물건을 사고 싶으면 원화가 필요하다라는 사고가 자연스레 깔려져 있기에, 원화에 대한 가치와 희소성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원화 말고 달러로 한국에서 결제가 상용화 되기 시작하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테슬라나 맥도날드, 애플 등 미국 기업이 생산한 제품을 달러 기반 스테이블 코인만 받는다고 한다면? 아니면 다른 미국과 한국 기업이 협업하여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구매하면 더 싸게 판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원화의 필요성에 대해 점차 의심을 하게 되고, 달러의 필요성을 점차 느끼게 될겁니다.
그러면 결제 = 원화 라는 인식에서 결제 = 달러 라는 인식으로 바뀔거고, 원화의 가치는 말 그대로 폭락하겠죠. 사람들이 더 이상 원화를 필요로 하지 않으니까요. 물론 원화의 가치가 한번에 내려앉진 않겠지만, 달러가 한국에 침투해 있는 정도가 커질수록 퍼져가는 속도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한국의 국민들이 원화 대신 달러를 사용하게 된다면 원화 발행량을 통제했던 중앙은행은 힘을 잃게 됩니다. 다시 말해, 한국의 통화정책을 한국의 중앙은행이 자유롭게 할 수 없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경제 활동에 있어 통화정책은 점차 미국에 의존하게 됩니다.
문제는 미국의 중앙은행은 미국 경제를 위해 존재하지 글로벌 경제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만약 글로벌 경제 위기가 발생한다면 미국은 자국의 상황에 초점을 맞춰 통화 정책을 실시하게 되고, 미국처럼 튼튼한 경제를 갖추지 않은 한국은 크게 흔들릴 수 밖에 없겠죠.

정치권이나 금융업계에서는 이런 상황이 터지고 나서 대응하면 늦으니 선제적으로 대비하자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통제와 규율이 너무 심하면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데에 한계가 있으니, 민간기업에 맡겨 확산 속도를 빠르게 높이자는 것이죠.
지금까지 원화 스테이블 코인을 민간업계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의 주장과 그 배경을 살펴봤습니다. 이번에는 중앙은행이 왜 이를 경계하는지, 반대 입장을 중심으로 들여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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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권이 우선 ⚙️
중앙은행의 주장은 결국 원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통제권을 곧바로 민간업계에 넘어가면 위험하다로 연결됩니다.
이를 이해하려면 현재 달러 스테이블 코인이 어떤 원리로 발행되는지 먼저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달러 스테이블 코인이란 단어가 너무 길어 앞으로 달러 스테이블 코인을 US코인이라고 부르겠습니다).
US 코인의 운용사들은 1 달러 = 1 US코인을 유지하기 위해 실제 1 달러 또는 이에 상응하는 미국채를 담보로 잡습니다. 이들은 무엇보다 가치의 안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 이 코인 하나를 1달러로 산다면 곧 바로 진짜 달러나 미국채를 매입하죠. 그리고 누군가 이 코인을 팔면 운용사가 가지고 있던 1 달러를 팔았던 사람에게 지급합니다. 만약 매도가 폭증해 달러를 지급하지 못하게 되면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채를 대신 주거나 미국채를 팔고 달러를 주면 되는 것이니, 안전하다고 보는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담보가 미국채와 연결된다는 겁니다. 이는 양날의 검으로 작용 됩니다.
US코인이 확산되면 확산될수록 사실상 미국의 입장에서는 미국채의 수요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왜냐하면 US코인을 산다는 것은 곧 그 코인의 운용사가 국채를 사는 것으로 연결되기 때문이죠. 사실상 미국채를 민간에게 넘기는 것입니다.
또한,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게 되면 미국채 금리도 따라서 올라가는게 일반적이지만, US코인의 수요가 커질수록 미국채 매입이 지속되기 때문에, 일반적인 금리 인상에서도 국채 금리 상승폭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운용사 입장에서도 미국채 금리가 올라가면 자신이 보유한 자산의 수익이 증가하게 되는 것이니, 발행하려는 유인이 더욱 강해져 어떻게든 수요를 더욱 끌어올리려고 하겠죠. 다시 말해, 미국이 금리를 인상시켜도 빚에 대한 이자비용은 낮출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좋게만 작용하는건 아닙니다. 만약 전세계에 풀어놨던 US코인이 대규모 환매가 발생하면 발행사는 고객에게 달러를 돌려주기 위해 담보로 보유한 국채를 시장에 매각해야 되는데, 이게 채권 시장에 유동성 충격을 주고, 금리가 급등할 수 있습니다. 즉, 시장 안정성을 통제할 권한이 중앙정부가 아닌 민간 발행사에 있는 셈인 것이죠.
또한 미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해도, US코인 시장에서 별도로 자금이 유통되면 정책 효과가 약화됩니다. 미국 중앙은행은 물가 인상이 우려되어 금리를 인상했지만, 1달러라 생각 되는 US코인의 발행은 미국채를 사면 그만이기 때문에 이론상 미국채 만큼 달러 공급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즉, 중앙정부 혹은 중앙은행의 M2 통화량 조절이 불가능해지는 것이죠.
경영전문대학원 핀테크 & 블록체인 관련 자문을 맡고 있는 김선미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에 따르면, 현재 글로벌 스테이블 코인은 2025년 4월 기준 약 24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미국 정부는 무분별한 확산을 막기 위해 더 이상의 성장을 제제해야 한다는 여러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수백조 단위의 국채 담보 자산이 미국 바깥 민간에 운영되는 건 통화 주권 입장에서 매우 위협적이니까요.
이렇게 스테이블 코인은 득도 있지만 실도 굉장히 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애초에 특정 국가에서 스테이블 코인으로 실익을 보기 위한 전제 조건은 그 국가의 통화 가치를 기반으로 한 탄탄한 신뢰가 형성 되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해당 스테이블 코인을 받아들이는 이유가 그게 곧 그 통화를 대변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되어야 하는 겁니다.
만약 통화기반이 아닌 신뢰 혹은 단순히 인기를 기반으로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게 되면 잠깐 수요가 생길 수 있을지언정, 이런 식의 수요는 기초체력이 없습니다. 외부 신뢰가 깨지거나 인기가 식는 순간 대규모 환매가 일어날 수 있죠. 이러한 상황은 오히려 국가의 통화를 화폐로서의 자격을 박탈시키게 됩니다. 아직까지 비트코인이 급등락하는 가치 때문에 널리 확산되고 있지 않은 상황과 다를게 없게 되는 것이죠.
결국 통화는 본질적으로 그 자체로 믿음을 가져야 하는 자산입니다. 통화가 아닌 다른 주체에 대한 신뢰에 의존하거나 화폐 이외의 요인이 통화의 가치를 좌지우지 하게 되면, 이는 화폐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훼손하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통화는 결코 외부 요인의 인기나 기대심리에 흔들려선 안 되며, 스테이블코인도 마찬가지로 본질적인 통화 신뢰를 기반으로 설계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장은 아마 이러한 상황이 우려되는 부분일 겁니다. 과연 원화의 가치가 탄탄하게 형성되어 있는가? 단순히 K-컬쳐, K팝 열풍을 기반으로 원화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해도 되는가? 현재 기축통화도 아닌 원화를 단순히 인기를 기반으로 무분별하게 원화 스테이블 코인을 확산시켰다간 그 인기가 식었을때 되려 손 쓸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달러 스테이블 코인이 확산되어 버리고 나서 대응하면 늦으니, 일단 상황을 통제할 수 있도록 은행만 발행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일 겁니다.
결국 원화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입장 차이는 달러라이제이션 대비를 위한 확산과 원화의 가치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통제 사이에서 한국이 선택해야 할 균형점을 어디에 둘 것이냐에 있습니다.
빠른 대비가 중요한가, 아니면 탄탄한 기반이 우선인가. 선택하기에 굉장히 어려운 문제이지만 선택해야 되는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이미지 출처 : 한국 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