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없이 살라고? 폭염·폭우가 덮친 도시에서 뚜벅이로 살아남기

차 없이 살라고? 폭염·폭우가 덮친 도시에서 뚜벅이로 살아남기

그린피스
@greenpeace_kr
읽음 15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탈 수 있어 행복한 요즘… 하지만 기억하나요? 올여름, 집 밖에 나서기 무서웠던 날이 많았어요. 햇볕 아래 몇 분만 걸어도 땀이 줄줄 흐르고,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속수무책으로 젖기도 했죠. 기후위기가 심해질수록 이런 날은 더 많아질 거라고 해요. 폭염과 폭우 같은 극한 기상이 더 잦아지고 심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계속 나오고 있거든요.

기후위기 시대, 이동은 점점 힘든 일이 되어가고 있어요. 특히 차가 없는 사람들에게요.

탄소배출 덜 한 사람이 더 힘들어진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자동차 대신 대중교통을 타고, 걷고, 자전거를 타는 게 중요해요. 온실가스와 대기오염 물질을 줄이고, 교통 혼잡과 에너지 소비도 낮출 수 있으니까요. 정부가 대중교통과 친환경차 이용을 장려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그런데 막상 극한의 더위나 비를 마주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자동차를 타면 적어도 차 안에서는 에어컨을 켤 수 있어요. 비가 와도 젖지 않고, 뜨거운 햇볕도 피할 수 있죠. 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역이나 정류장까지 걸어야 하고, 덥거나 꿉꿉한 곳에 서서 한참 기다려야 해요. 자전거를 타려면 뜨거운 아스팔트나 좁은 도로를 아슬아슬하게 달려야 하고요.

그렇다고 모두가 자동차를 타면 어떨까요? 온실가스 배출이 늘어나 기후위기를 더 심화시키고 대기오염과 교통혼잡 같은 사회적 비용도 커집니다. 그러니까 이상한 역설이 생깁니다. 기후위기를 덜 악화시키는 이동 방식을 택한 사람이 기후위기의 피해에는 더 많이 노출되는 거예요. 

안 타자니 점점 더 힘들어지고, 타자니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지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후위기 시대, 뚜벅이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차 없이도 편하게 다닐 수 있는 도시가 있다고?

이 질문을 던졌을 때 참고할 만한 곳이 있어요. 바로 싱가포르입니다.

싱가포르는 자동차를 줄이는 정책으로 유명해요. 정부가 적정한 수준의 자동차 대수를 정하고, 그에 맞춰 자동차를 사려는 사람들은 경매를 통해 차량 소유권 증서(COE)를 취득해야 하는데 그 가격이 1억 원에 달하죠. 자동차를 얼마나 탈지도 전자식 도로 통행료(ERP) 등을 통해 관리하고요. 혼잡 시간대 상습 정체 구간에서는 한 번 지날 때 5달러까지도 올라갑니다.

자동차를 얼마나 탈지도 전자식 도로 통행료(ERP) 등을 통해 관리합니

그런데 싱가포르 교통정책은 자동차를 비싸게 만드는 데서 끝나지 않아요. 차 없이도 살기 편한 도시를 함께 만드는 게 핵심이에요. 싱가포르의 교통당국은 아예 ‘Car-lite’, 그러니까 자동차 의존도를 낮춘 도시를 목표로 내세우고 있어요. 대중교통을 도시 교통의 중심에 두고, 걷기와 자전거를 연결하는 인프라도 계속 늘리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꽤 현실적인 고민이 들어가 있어요. 싱가포르는 덥고 습한 데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날도 많아요. 우리보다 일찍부터 ‘기후에 적응하면서 걷는 도시’를 고민해온 셈이죠.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지붕이 있는 보행로예요. 싱가포르는 2018년부터 ‘Walk2Ride’ 사업을 통해 대중교통과 주변 지역을 연결하는 그늘진 보행로를 만들어 왔어요. 현재까지 약 200km의 지붕 있는 보행로를 조성했고, 모든 MRT(전철)역에서 400m 이내, 버스 환승센터와 주요 정류장에서 200m, 그리고 대형마트나 시장, 학교, 커뮤니티 시설 등 유동인구가 많은 핵심구역에서 800m 이내의 보행로를 덮을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폭염이 이어지거나 비가 갑자기 왔다 안왔다 하는 날에는 이 몇백 미터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양우산을 따로 챙기지 않아도 걷는 길을 따라 보호막이 설치돼 있으니까요.

싱가포르는 2018년부터 ‘Walk2Ride’ 사업을 통해 대중교통과 주변 지역을 연결하는 그늘진 보행로를 만들어 왔습니다

자전거 도로도 마찬가지예요. 현재 싱가포르에는 자전거 도로와 공원 연결로를 합쳐 730km가 넘는 네트워크가 있고, 2030년까지 약 1,300km로 확대할 계획이에요. 집에서 MRT역이나 버스 환승센터, 학교와 상점까지 자전거로 연결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이어가는 거죠.

그렇다면 이런 자동차 규제와 대중교통 전환에 대해 싱가포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싱가포르에서 직접 만난 한 운전자는 정부의 차량 규제 필요성에 동감한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차량 규제가 운전자에게 큰 부담을 주는 건 맞는데, 정부의 방향과 그 필요성에 동감해요. 인근 동남아시아 국가의 대도시에 가보면 대기오염은 심각하고 교통체증은 어마어마하거든요. 모두가 하루에 몇 시간씩 차 안에서 꼼짝도 못 하는데도 차를 탈 수밖에 없어요. 싱가포르는 대중교통이 잘 돼 있어서 가능한 것 같아요.”

싱가포르 사회과학대학에서 만난 월터 테세이라(Walter Theseira) 교수님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어요. “기본적으로는 자가용 이용에 따른 교통체증이나 환경문제 같은 부정적 외부효과를 당사자가 책임지도록 하는 거예요. 하지만 동시에 반드시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을 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모두가 자동차를 타려고 할 수밖에 없고, 각자가 점점 더 큰 비용을 부담하면서도 모두 점점 더 힘들어지는 구조가 될 거예요.”

자동차 없이도 편하게 살 수 있는 도시. 그래도 자동차를 탄다면 온실가스 배출, 대기오염, 교통혼잡 같은 외부효과를 부담하도록 만들고, 그 재원으로 대중교통이 촘촘하고, 걸어서 환승할 수 있고, 폭염과 폭우에도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것이 싱가포르의 해법입니다.

기후위기 시대의 교통

싱가포르는 자동차 소유와 이용을 관리하는 한편, 걷기·자전거·대중교통을 더 편리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온실가스를 줄이는 동시에, 이미 바뀌고 있는 기후에 사람들이 안전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통정책도 마찬가지예요.

“자동차를 줄이자”에 더해 “폭염과 폭우가 와도 자동차 없이 이동할 수 있게 하자”까지 가야 합니다.

그늘막과 나무를 늘리고, 지붕 있는 보행로를 만들고, 폭우에도 물이 잘 빠지는 보행환경을 만들고, 대중교통 정류장과 환승공간을 더 편안하게 만들고, 자전거 도로를 안전하게 연결하는 것.

이런 것들은 모두 기후위기를 완화하는 동시에 실생활 편의를 높이는 일이 될 수 있어요.

싱가포르가 보여주는 것도 바로 이런 방향입니다. 자동차 소유와 이용을 관리하는 한편, 걷기·자전거·대중교통을 더 편리하게 만들어, 자동차를 줄이는 게 개인의 희생이 되지 않도록 하는 거죠.

차 없는 날이 특별하지 않은 날

9월 22일은 세계 차 없는 날이에요. 자동차 대신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보자는 날이죠.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면 차 없이 이동하는 하루가 꼭 ‘특별한 날’이어야 할까요?

차가 없으면 불편하고, 덥고, 비 맞고, 오래 걸려서 1년에 하루쯤 마음먹고 실천해야 하는 도시라면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건 오히려 그 반대일 겁니다.

차가 없어도 출근할 수 있는 도시, 차가 없어도 학교에 갈 수 있는 도시, 차가 없어도 장을 보고 친구를 만날 수 있는 도시. 폭염이 와도 걸을 수 있고, 갑자기 비가 쏟아져도 대중교통을 타러 갈 수 있는 도시. 자전거를 타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고,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아도 삶의 선택지가 줄어들지 않는 도시.

청년과 미래를 위한 도시는 자가용이 필수인 도시가 아니라, 친환경 교통이 편리한 도시여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만들어야 할 미래는 ‘차 없는 날’이 아닐지도 몰라요. 차 없는 날이 따로 필요 없을 만큼, 차 없이 사는 일이 특별하지 않은 일상. 그런 도시라면 자동차를 덜 타는 일이 누군가의 희생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선택이 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어쩌면 그때, 차 없는 날은 비로소 성공한 셈일지도 모릅니다.

모두를 위한 친환경 교통도시, 여러분의 목소리로 시작됩니다. '차 없는 날'이 따로 필요 없을 만큼, 차 없이 사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 그런 도시를 현실로 만들고 싶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 함께해 주세요.

>> 캠페인 함께하기 <<

관련 태그

🔮오늘의 행운 메시지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