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중박 분장놀이부터 뮷즈까지, 요즘 젊은 세대가 박물관 유물에 빠진 이유 🏛️🖼️
뉴니커는 요즘 SNS에서 바닥에 누워 팔딱거리는 ‘잉어’를 본 적 있나요? 지난 9월 19일 열린 ‘2026 국중박 분장놀이’ 결선에서 대상을 받은 장면인데요. 취업 준비생 전은슬 씨가 머리와 팔다리는 파랗게, 몸통은 하얗게 칠한 뒤 조선 19세기 연적 ‘백자 잉어 모양 연적’으로 변신했어요. 바닥에 누워 발끝으로 잉어 꼬리처럼 팔딱거리자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고요. 찾아보니 이 연적은 2021년 박물관에 기증된 뒤 한 번도 전시된 적이 없다가, 이번 대상을 계기로 처음 상설전시관에 나왔더라고요. 시험 공부할 때는 외우기에 바빴던 유물이 언제부터 이렇게 젊은 세대가 갖고 노는 콘텐츠가 된 걸까요? 그리고 그 이유는 뭘까요?

박물관이 진짜로 살아있다, 진열장 밖으로 나온 유물들

사실 박물관과 전통 유물이 젊은 세대에게 이 정도로 사랑받게 된 건 최근의 일이에요. 그전까지 박물관은 오랫동안 거리감이 느껴지는, 왠지 공부하는 마음으로 가야 할 것만 같은 곳이었죠. 유리창 너머 유물을 관람하는 것 이외에 특별한 경험 포인트가 없었던 점도 걸림돌이 됐고요. 박물관에서 판매하는 기념품도 구색 맞추기용이라는 인식이 강했어요.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실용성도 떨어지고, 디자인도 촌스러워서 ‘박물관 온 김에 산다’ 이상의 매력을 보여주지 못했거든요.

여기에 크게 힘을 실어준 게 지난해 6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였어요. 작중 호랑이와 갓 쓴 까치를 닮은 ‘까치 호랑이 배지’, 사자보이스의 갓을 닮은 ‘흑립 갓끈 볼펜’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끌면서 온라인숍 하루 방문자가 7천여 명에서 26만 명으로 늘었거든요. 매출도 2021년 66억 원에서 지난해 413억 원으로 6배 넘게 늘었고, 구매자의 57.7%가 30대 이하였어요. 올해 10월 RM이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과 함께 개최한 특별전에도 뮷즈 39종이 포함됐고요.
이처럼 박물관과 유물이 인기를 끄는 현상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분석이 있는데요. 국가유산진흥원 측은 ‘평범하지 않은 것’을 찾는 젊은이들이 문화유산에 관심과 자부심을 갖고 SNS에 공유하면서 더 퍼진다고 관측했어요. ‘케이팝 데몬 헌터스’ 같은 인기 콘텐츠 덕분에 전통문화 상품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는 이야기도 있죠. 뮷즈가 상품 자체의 매력을 꾸준히 발전시키면서 ‘필요한 물건인데 박물관에 와 보니 더 잘 만든 버전이 있더라’는 경험과 입소문으로 사람들을 모았다는 해석도 있어요. 모두 맞는 말이지만, 자기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 유물로 분장하고 무대에 서는 열정까지는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사람들이 이토록 유물 분장이나 뮷즈처럼 역사적 전통을 소재로 한 경험과 콘텐츠에 열광하는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뮷즈와 분장놀이에서 만난 건 ‘모르고 봐도 재밌는 문화유산’이다
우리에게 유물은 오랫동안 ‘알아야만 하는 것’이었어요. 교과서에 실린 유물의 이름과 시대, 특징을 외워야 시험 문제를 풀 수 있었으니까요. 박물관에 가서도 설명판부터 꼼꼼히 읽어야 한다는 느낌이 은연중에 들었죠. 그렇게 해야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박물관이라는 공간과 그 안에 담긴 유물들을 제대로 감상했다는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맥락이 숨어 있어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로 유명한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은 1993년 펴낸 답사기 1권 머리말에 이렇게 적었거든요.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어떤 계기로든 유물, 나아가 문화에 관심과 사랑을 갖게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는 뜻이에요. 이런 맥락에서 보면, 뮷즈와 분장놀이는 사람들이 우리 전통 유물과 문화를 부담 없이 좋아할 수 있게 해 준 계기가 된 거죠. 유홍준 관장도 올해 분장놀이를 두고 “전시장 안에 갇힌 유물이 현재에 살아나온 것”이라고 평가했고요.
뮷즈를 만드는 사람들도 처음부터 유물을 먼저 좋아하게 만들 방법을 고민했어요.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상품기획팀은 폴인 인터뷰에서 “젊은 사람들이 의무감이 아니라 사고 싶다는 마음으로 사야 유물도 잊히지 않는다”고 설명했는데요. 실제로 상품을 만들 때도 유물에 담긴 이야기와, 당시 사람들의 삶을 중점적으로 살폈다고 해요. 술을 따르며 복을 빌던 토기는 익살스러운 표정을 살려 키링으로 만들었고, 반가사유상을 본뜬 흙인형 시리즈에는 차분히 생각하는 ‘곰곰반가’, 편하게 누운 ‘눕눕반가’ 같은 귀여운 이름도 붙였죠. 이름만 외우던 유물에서 표정이 보이기 시작하면, 낯설고 멀게만 느껴지던 유물도 한결 가깝게 느껴지거든요.

뮷즈와 분장놀이의 이런 의도에 호응하듯, 젊은 세대는 굿즈와 코스프레로 유물을 즐기면서 그 유물의 원래 모습과 역사를 스스로 찾아보고 있어요. 취객선비 변색잔이 인기를 끌자 잔 속 선비가 그려진 김홍도의 ‘평안감사향연도’를 찾아보는 사람이 많아졌고, 반가사유상 미니어처가 많이 팔리자 진짜 반가사유상 두 점을 모신 전시실 ‘사유의 방’도 덩달아 주목받았어요. 분장놀이 참가자들은 유물을 공부하며 분장을 준비했는데요. 지난해 고려 금동관음보살좌상으로 분장한 참가자는 보살상의 손 모양(수인)을 정확히 따라 하려고 같은 시대 불상 사진까지 찾아보며 연습했어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분장을 제대로 해내고 싶어서 스스로 공부한 거였죠. 유홍준 관장이 머리말에 쓴 것처럼, 놀이와 굿즈 같은 계기로 유물을 좋아하게 되니 거기에 담긴 역사와 가치도 더 알고 싶은 소재로 느껴진 거예요.
뉴니커는 학교 다닐 때 외웠던 유물 중에 지금 기억나는 게 몇 개나 있나요? 다음에 박물관에 간다면 설명판을 읽기 전에, 마음이 가는 유물 하나를 골라 오래 들여다보면 어떨까요? 그 유물이 왜 좋은지 궁금해질 때쯤 설명판을 읽어 보면, 시험 범위로 외우던 때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눈에 들어올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