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불호 갑’ 타비 슈즈는 어떻게 유행템이 됐을까? 타비 슈즈를 통해 보는 패션계의 변화 👢🛍️
올해 들어 여기저기서 타비 슈즈를 신은 분들을 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저걸 신고 다니는구나’ 했었는데 또 마주치고 나니 유행인가 싶어지기도 했습니다. 사실 대유행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긴 하지만 분명 늘어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디자이너의 캣워크와 잡지의 화보, 셀러브리티들이나 신는 특별한 신발이었다면 어느새 우리 가까이에 와 있는 듯합니다. 이 신발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그리고 이 신발이 이렇게 가까이 오기까지 우리에게 알려줄 만한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요.

타비 슈즈는 어디서 시작됐을까? 타비 슈즈의 역사

일단 타비는 일본의 전통 의류입니다. 원래는 신발이 아니고 양말인데 우리로 치면 버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버선은 우리의 전통 신발에 맞게 유연한 곡선에 버선코만 살짝 올라가 있는 게 특징입니다. 고온다습한 환경 때문인지 일본의 전통 신발은 조리의 형태로 엄지발가락과 둘째 발가락 사이에 끈을 끼워서 신는 형태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타비도 이에 맞도록 엄지발가락과 나머지 발가락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놨습니다.
본래 양말인 타비를 바깥에서 신는 신발로 만들려는 시도는 꽤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예컨대 바닥에 두꺼운 목면 같은 걸 대서 야외용으로 신기도 했었죠. 그러다가 20세기 초반 고무가 일본에 들어오면서 급격하게 발전하며 대중화됩니다. 즉 타비 아래에 납작한 고무를 꿰매어 붙여 신발처럼 신기 시작했죠. 특히 1920년대 초 이시바시 토쿠지로, 쇼지로 형제가 미끄럼 방지 바닥과 고무 바닥을 붙이는 방식으로 만든 지카타비를 내놓으면서 일본 각지에 보급됩니다. 농업과 건설업, 광산 등의 야외 노동자들이 많이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던 타비는 벨기에의 패션 디자이너 마틴 마르지엘라에 의해 패션 세상에 진입하게 됩니다. 마르지엘라는 1988년 브랜드를 런칭한 후 첫 번째 컬렉션에서 지카타비에서 영감을 얻은 현대적 신발, 타비 부츠를 선보였습니다. 다큐멘터리 ‘마르지엘라(2019)’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처음 도쿄에 갔을 때 거리에서 노동자들이 납작한 지카타비를 신고 있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서구적 패션 질서에서 꽤 동떨어져 있던 이 낯선 신발을 부드러운 재질로 만들고 굽을 붙여 높은 신발로 다시 만들어냈죠. 이는 새로운 브랜드의 시작을 알릴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신발을 찾던 상황에 잘 맞았습니다. 이렇게 데뷔 컬렉션에 처음 등장한 타비 부츠는 이후 스니커즈, 니하이 부츠, 발레 플랫, 로퍼, 클로그, 하이힐 등 다양한 형태로 재해석됩니다.
타비 슈즈는 어떻게 패션 세상에서 자리잡았을까? ‘이상한 신발’을 원하는 시장의 변화

이렇게 등장한 타비 슈즈는 처음에는 상업적 실패에 가까웠습니다. 말발굽이나 돼지 족발이 떠오르기도 하는 낯설고 기괴한 생김새는 징그럽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고, 구비해 놓으려는 리테일 매장도 많지 않아서 생산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다만 오트 쿠튀르, 아방가르드 등을 추구하는 소수의 패션 인사이더들 사이에서 지지를 얻어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마르지엘라 본인이 은퇴한 후 2014년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게 된 존 갈리아노는 타비의 범주를 극대화하며 넓혀가기 시작했습니다. 여성 전용에 가까웠던 타비 슈즈를 남성용 첼시부츠, 로퍼, 슬립온 등 남성 전용 라인업으로 확장했습니다. 또한 클래식한 가죽 구두 형태를 넘어 캔버스 스니커즈, 메리제인, 에스파드리유를 선보였고 2020년에는 리복과 협업한 러닝화 버전도 출시하게 됩니다. 이렇게 확장된 라인업은 어디까지나 패셔니스타와 트렌드 리더의 아이템이었던 타비 슈즈의 진입 장벽을 낮추어줬고, 스트리트 패션 등의 씬까지 폭넓게 흡수해 갔습니다.
여기에 더해 시대의 흐름이 타비 슈즈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었습니다. 21세기 들어 패션은 해체주의의 재조명, Y2K 패션 등이 인기를 얻는 흐름 속에서 밋밋하고 정형화된 신발 대신에 기이하고 독특한 실루엣을 찾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어글리 슈즈는 그 대표적인 아이템입니다. 이런 흐름에서 타비 슈즈의 갈라진 발가락처럼 호불호가 갈리는 생김새는 남들과 확실히 다른 개성을 표현하려는 미학적 욕구와 맞아떨어졌습니다.
젠더리스 패션 트렌드도 한몫을 했습니다. 남성복과 여성복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남성 패션에서도 타비 슈즈를 섞는 시도가 늘어났죠. 이 독특한 신발은 틱톡이나 SNS에서 밈처럼 소비되는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2023년에는 데이트 앱에서 만난 상대가 타비 슈즈를 훔쳐 달아난 타비 스와이핑 사건이 화제가 되면서 SNS를 통해 바이럴되고 대중적 관심도가 높아지는 일도 생겨납니다.
이런 모든 과정을 곰곰이 바라보다보면 하나의 흐름이 보입니다. 사람들이 기존과 다른 패션을 찾아나서는 시기마다 그동안 패션 세상 어딘가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새로운 스타일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흐름 말이죠. 어글리 슈즈, 크록스, 하이 플랫폼 슈즈, 버켄스탁, 어그 슈즈 등 기존과는 다른 모습의 신발이 트렌드가 되고 대중화가 되면서 신발에 대한 사람들의 눈이 꽤나 바뀌기도 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저게 뭐야?’ 하는 정도의 괴상한 신발도 거리에서 쉽게 마주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눈에 익숙해지고 ‘나도 한 번 신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나아갔죠. 타비 슈즈도 이런 흐름 위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타비 슈즈나 이와 비슷한 패션 미감을 공유하는 신발은 최근으로 올수록 점점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메종 마르지엘라는 2024년 아티저널 컬렉션에서 크리스티앙 루부탱과 협업해 레드 솔의 스틸레토 타비를 선보였습니다. 나이키의 독자 모델인 에어 리프트 시리즈 역시 전형적인 타비의 발가락 구조에 스트랩을 더한 형태의 신발입니다. 얼마전 아식스도 키코와 협업에서 새로운 타비 스니커즈를 출시했습니다. 일본의 샌들 브랜드 수이코크도 타비 형태의 샌들을 내놓고 있죠. 비브람의 파이브 핑거스 같은 베어풋 신발도 발가락의 형태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미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몇몇 작업자들이 만들어낸 커스텀 슈즈도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이키나 살로몬, 뉴발란스 등의 기존 스니커즈를 타비 형태로 다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타비 슈즈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 전통과 해체의 ‘불편한’ 공존

여기서 마르지엘라가 타비 슈즈를 선보였던 1980년대 말 시점보다 약간 더 앞으로 가봅니다. 애초에 마르지엘라는 왜 일본에 갔을까요. 물론 그냥 놀러갔을 수도 있지만 해체주의적, 아방가르드 기반으로 기존 패션과 다른 관점을 가진 브랜드 런칭을 계획하며 그 아이디어를 먼 아시아 나라에서 찾으려는 목적도 있었을 겁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 파리 컬렉션에 진출했던 몇몇 일본 디자이너들의 예시를 돌아보는 게 도움이 됩니다.
이세이 미야케는 1970년대에, 꼼 데 가르송과 요지 야마모토는 1981년에 파리 컬렉션에 진출하면서 패션계에 충격을 주었고 일본 아방가르드 패션 붐을 주도하게 됩니다. 예컨대 이세이 미야케는 1970년대에 일본의 이레즈미에서 영감을 얻은 타투 컬렉션을 선보였고, 기모노처럼 한 장의 천으로 인체를 자유롭게 감싸는 A Piece of Cloth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이 철학이 훗날 A-POC 콘셉트로 이어졌죠. 꼼 데 가르송은 낡음의 미학이나 해체된 기모노의 실루엣, 일본 전통 작업복의 블랙 의류들을 선보였죠.
당시 서구의 많은 이들이 이미 식상해진 기존 패션과는 다른 무언가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어느 정도 타이밍도 잘 맞았고 운도 좋긴 했습니다. 서구의 기존 패션과는 꽤나 다른 세계관 위에 놓여 있는 이들의 새로운 룩은 일본 전통 제품들을 재해석하고 섞어서 고유의 패션 미감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일본의 전통 양식은 아방가르드 패션같은 전향적 패션과 섞이며 함께 미래지향적 이미지를 얻어냈습니다. 마르지엘라는 아마도 그런 이미지를 이어받았을 겁니다.

전통의 고수는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걸 현대의 사람들이 입게 만드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전통 복장을 입는 게 일회적 이벤트나 코스프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현대적인 생명력이 필요합니다. 세계적으로 많은 이들이 K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관심이 늘어난 것도 느껴지는 지금 시점에, 유행을 소비하는 것만큼이나 이런 변화를 유심히 살펴보는 일 역시 중요합니다. 타비 슈즈의 진정한 시사점은 전통을 내부에서 개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방인의 낯선 눈에 다른 나라의 전통 요소가 어떻게 해체의 대상으로 여겨질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는 데에 있을 겁니다.
타비가 마르지엘라라는 이방인을 만나 서구 하이 패션의 전위가 되었듯이, 한국의 전통 복식 요소 역시 한국인만의 전유물이 아닌 세계 디자이너들에게 낯선 소재로 던져질 때 또한 타비 슈즈처럼 문맥을 교란하는 생명력을 얻게 될 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게 나온 제품들이 우리에게도 낯설 수도 있고, 그런 걸 보며 이게 우리 옷이냐, 오해가 생기는 게 아니냐 하는 반발도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이런 긴장감이 다른 측면에서는 원형을 보존하고 더 널리 알리려는 힘을 더 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안전한 박물관 유리관 속을 벗어난 전통 아이템이 실제 세상의 맥락과 충돌할 때 발생하는 그 불편한 낯섦 또한 전통이 새로운 생명력을 얻었다는 역설적인 증거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