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전시 논란 총정리: 데이미언 허스트·퐁피두센터 한화 논란이 알려주는 것들
지난 6월 폐막한 영국 현대 미술가 데이미언 허스트 개인전(‘데이미언 허스트: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이 총 54만 여명의 관람객을 동원하며 올해 국내 미술계의 최대 화제작으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SNS에는 ‘이런 분들에게는 데이미언 허스트 전시를 추천하지 않습니다’라는 정리글이 연일 올라온 반면, 전시와 연계된 데이미언 허스트 마그넷, 도록, 파우치, 토트백 의 굿즈 판매량은 급격한 증가 추이를 보였습니다.
데이미언 허스트는 1988년 그가 평단에 이름을 알렸을 때부터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라는 오랜 격언에 부합해 온 아티스트입니다. 언제, 어떤 도시에서든 전시를 둘러싼 논란과 흥행이 동시에 이루어졌기 때문인데요. 오늘은 데이미언 허스트 개인전, 그리고 최근 개관한 퐁피두센터 한화를 통해 미술계를 둘러싼 관심과 논란의 이중적 구조를 살펴봅니다.

100개의 두개골 앞에 줄을 서다: 론 뮤익이 만든 전시의 대중화

먼저 지난해로 잠시 돌아가볼까요. 2025년 4월부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호주 조각가 론 뮤익 개인전(‘론 뮤익’)이 개최됐습니다. 론 뮤익의 아시아 최대 규모 회고전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이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의 개관 이래 단일 전시 기준 하루 평균 관람객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는데요. 가로 6m가 넘는 대형 작품 ‘침대에서(In Bed, 2005)’, 100개의 두개골이 쌓여 있는 대형설치작품 ‘매스(Mass, 2016-2017)’ 앞에서의 인증샷이 SNS에 대거 올라왔죠.
이 전시는 별다른 논란 없이 화제성을 만들어내며 순항한 케이스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김성희 관장은 연초 기자간담회에서 “관람 태도, 작품을 보는 시각과 느낀 것을 표현하는 방법 등 한국의 관람 수준이 높아졌고, 관람객들이 그저 블록버스터 전시라 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론 뮤익전은 앞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이 선보일 ‘국제 거장’전의 프로토타입이라고 언급했죠. 또한, 국립현대미술관은 론 뮤익전에 약 30억 원의 국고를 투입했지만, 입장료 수입으로만 약 25억 원을 회수했습니다. 론 뮤익 개인전 개최 전에는 국고 30억 원을 특정 스타 작가에게 투입하는 게 온당한가라는 일부의 시선도 있었는데요. 실제로 투자한 예산의 상당부분을 입장료로 충당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양질의 전시에 관한 관심이 이만큼이나 커졌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기억 됐습니다.
죽음을 팔아도 되는가: 데미언 허스트 전을 둘러싼 ‘윤리성’ 논란

포름알데히드 용액이 담긴 푸른 수조 속 상어 사체, 피가 흐르는 잘린 소머리, 수천 개 다이아몬드가 박힌 해골... 눈 앞에 그림이 그려지시나요? 2026년의 국립현대미술관이 ‘국제 거장’전 시리즈의 첫 주자로 택한 건 바로 영국의 미술가 데이미언 허스트입니다. 2026년 3월부터 6월까지 열린 데이미언 허스트 개인전에는 1988년 허스트가 학생일 때 직접 기획한 그룹전 ‘프리즈(Freeze)’에서 선보인 출품작부터 약 40년에 걸친 작업세계를 총망라하는 50여 점이 전시 됐습니다.
데이미언 허스트의 전시에 대한 논란은 늘 있었습니다. 2012년 테이트 모던 회고전 당시, 비평가들은 허스트의 대표작 대부분이 1990년대 초에 이미 완성되었고 그 이후로 계속 반복되기만 한다는 취지의 혹평을 했습니다. 이후 2017년, 허스트가 신작을 189점이나 발표한 베니스 전시(‘난파선에서 온 보물들’)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렸는데요. 일부 매체(‘가디언’)는 “수년간 상업주의로 낭비되고 망가진 잠재력의 인물처럼 보였던 허스트가 이 전시로 구원받았다”며 별 5점 만점에 5점을 주었고요. 그런가하면, 또 다른 매체(‘W 매거진’)는 “조잡하고 거칠고 심지어 추하다”고 못을 박습니다. 그런데, 이 전시를 통해 약 3억 3천만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작품 판매 수익을 거둔 허스트는 한 인터뷰(‘Vulture’)에서 “예술가로서 바랄 수 있는 최선은 사람들이 논쟁하는 것, 즉 엇갈린 리뷰”라는 말을 하며 오히려 ‘빠’와 ‘까’가 공존하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국내에서는 동물 착취와 죽음의 상업화를 비판하는 대한 목소리도 높아졌습니다. ‘데이미언 허스트에게 살해당한 동물들을 생각하는 모임’이라는 단체가 조직되어 국립현대미술관 앞에서 전시를 앞두고 시위를 벌였고, “예술은 폭력을 면책하는 이름이 될 수 없다”는 내용의 성명서도 발표했습니다. 이들은 허스트의 대표작인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1991)’의 상어처럼 동물 사체를 소재로 한 작품의 비윤리성을 구체적으로 지목했습니다. 또한, 파리가 전기살충기에 이끌려 죽는 유리 진열장 작품인 ‘백 년’(A Hundred Years, 1990)은 2022년 독일에서 “정당한 이유 없이 동물에게 고통이나 해를 가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동물보호법 위반 소지로 전시 도중 철거된 전례도 있었고요.
전시의 핵심 논란은 결국 인간 및 동물의 사체, 죽음을 예술 소재로 다루는 것이 어디까지 정당화되는가입니다. 정작 재미있는 건, 론 뮤익도 죽음과 해골(대형 두개골 100개를 쌓은 ‘매스’)을 핵심 소재로 다뤘는데도 허스트 때와 같은 동물권이나 생명윤리 논란은 전혀 없었다는 점입니다. 이유는 명확합니다. 론 뮤익이 전시장에 들여놓은 두개골은 실제 인골이나 동물 사체가 아니라 조각이기 때문입니다. 허스트가 실제 상어, 소, 나비를 죽여 전시한 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지점이죠. 즉 “죽음을 소재로 삼는다”는 표면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재현이냐 실물이냐의 차이가 두 전시의 윤리 논쟁 여부를 갈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술과 자본은 분리될 수 있는가: 퐁피두센터 한화의 ‘아트워싱’ 논란

지난 6월 4일 여의도 63빌딩에 개관한 퐁피두센터 한화는 한화문화재단이 파리 퐁피두센터와 파트너십을 맺고 선보인 미술관입니다. 프랑스 퐁피두센터의 세 번째 해외 거점이라는 점에서 문화계가 들썩였고요. 향후 4년간 퐁피두 소장품전을 선보이는 라인업 뿐 아니라 루브르 박물관 리노베이션에 참여한 건축가 장-미셸 빌모트의 설계, 250m 전망대와 한강변 정원 등의 관람객 유인 요소도 두루 준비되었습니다. 개관전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은 김환기, 유영국, 박래현, 이수억 등 한국 근현대 작가 11인을 다루는 'KOREA FOCUS' 섹션과 퐁피두 컬렉션 43인을 망라합니다. 전시에 대한 관람객의 만족도 뿐 아니라, 로비 정중앙의 대형 청동 조각 ‘대형 말’을 360도로 돌며 감상하도록 유도하는 동선에 대한 호평도 보이고요.
그런데 개관 2년 전부터 퐁피두센터 한화를 향한 논란 역시 이어져왔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이 미술관이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에 연루된 이스라엘 방산기업과 협력하는 한화그룹(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솔루션 등)의 자금 지원을 바탕으로 세워졌다는 점인데요. “전쟁 산업에 연루된 기업이 예술 후원을 통해 공적 이미지를 재구성하려는 시도”는 전형적인 ‘아트워싱(art-washing)’이라는 규정이죠. 그래서 개관 당일 국내 11개 단체, 한국과 프랑스 및 미국의 활동가 100여 명이 “철회하라, 한화(Abandon Hanwha)” 집회를 열어 이스라엘 방산기업과의 계약 해제를 요구했습니다.
이는 한국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반복돼 온 아트워싱 논란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2024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이스라엘 영화 ‘개와 사람에 관하여’가 초청되었을 때 문화예술인 800여 명의 상영 철회 요구 이후로, 더 이상 이스라엘 영화가 한국 영화제에 초청되지 않고 있어요. 2025년 서울세계무용축제에서는 이스라엘 오를리 포르탈 무용단 참가를 두고, 주최 측이 이스라엘을 협력자로 명기하거나, 이스라엘 공관 차석을 기자회견에 초대한 점이 예술가들로부터 비판받기도 했고요. 노르웨이 및 자메이카 안무가인 하랄 베하리는 이 사실에 대항해 공연을 취소하는 등 강경한 평화 연대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최근 1년간 국내 전시의 대중화와 함께 미술관 안팎에서 벌어진 논란을 마냥 피로하게 볼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건 관객들이 전시를 그저 소비하는 콘텐츠가 아니라 평소에 찜찜했던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계기로 대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일 테니까요. 미술관이 무엇을 보여줘야 되는지, 누구의 돈으로 전시를 열어도 되는지, 이 질문들에 정답은 없을 겁니다. 다만 그 질문을 계속 던지는 건 전시장을 나서는 관객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몫은 아닐까요?
무슨 일이 있었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