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막례, 밀라논나, 이구 할아버지... 우리가 '시니어 인플루언서'에 빠져드는 진짜 이유 🧓📱
뉴니커는 요즘 SNS에서 어떤 콘텐츠를 주로 보나요? 저는 영화부터 음악, 게임, 독서까지 관심사가 다양해서 이런저런 콘텐츠들이 피드에 올라오는데요. 언제부턴가 나이 지긋한 어르신과 손자, 손녀가 재밌게 일상을 보여주는 쇼츠들이 하나둘 보이더라고요. 특히 1929년생 할아버지가 손녀와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는 ‘이구 할아버지’, ‘생일에 갤럭시 워치 선물로 받는 법’처럼 유머러스한 주제를 강의처럼 다루는 ‘김종구’ 채널이 기억에 남았어요. 몇 년 전만 해도 시니어 인플루언서라고 하면 박막례 할머니나 밀라논나 채널만 생각났는데, 지금은 훨씬 다양해졌더라고요.
이런 흐름은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나타나고 있어요. 영국 마케팅 에이전시 브랜드네이션(Brandnation)은 2021년부터 2023년 사이, 소셜 미디어에서 55세 이상 유저들이 62% 가까이 급증했다는 분석을 내놨어요. 우리나라에서도 중장년층(40세~69세)의 유튜브, 넷플릭스 등 OTT 이용률이 95%를 넘어섰을 정도죠. 이런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발맞춰 자기 생각과 이야기를 보여주는 시니어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어요.
미디어들은 시니어 인플루언서가 늘어난 이유에 대해 시장의 고령화에 따른 변화, 과거와는 다른 현재 5060의 자기다움을 추구하는 소비 행태, 연륜과 경험 등을 이유로 언급하는데요. 이런 것들 이외에 사람들이 정말로 시니어 크리에이터들의 메시지에 귀 기울이고, 감동을 받는 이유는 어떤 게 있을까요?

박막례 할머니와 밀라논나가 쏘아 올린 ‘그랜플루언서’ 시대

우리나라에서 ‘시니어 인플루언서’라는 개념을 처음 대중적으로 알린 사람은 박막례 할머니일 거예요. 할머니의 손녀인 김유라 씨는 치매 위험 진단을 받은 할머니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호주로 여행을 떠났어요. 그때부터 할머니의 일상을 담은 영상들이 입소문을 타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했죠. 2017년 데뷔 1년 만에 구독자 100만 명을 돌파했고, 2019년에는 구글 본사에 초대받기도 했어요. 비슷한 시기 한국 최초의 밀라노 패션 유학생이자 살바토레 페라가모를 한국에 들여온 패션 컨설턴트 밀라논나도 한 달 만에 구독자 10만 명을 모았어요. 삶에 대해 차분하지만 진심 어린 조언들, ‘국내 1호’의 길을 걸어 온 마음가짐에 2030세대도 매료됐죠.
이렇게 2010년대 후반에 싹을 틔운 시니어 인플루언서 콘텐츠 시장은 코로나19와 그로 인한 디지털 콘텐츠 시장의 급성장, 숏폼의 등장 같은 변화를 따라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어요. 예전에는 디지털 기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가족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혼자서도 짧고 쉽게 만들 수 있는 숏폼이 대세가 되면서 콘텐츠를 만드는 난이도도 낮아졌거든요. 콘텐츠 소비자들이 꾸밈없는 날것의 사진과 영상을 원하게 된 것도 영향을 미쳤어요. 정교하게 기획된 것보다 자기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콘텐츠가 주목받으면서, 시니어들도 일상 속 코믹한 장면이나 대화를 가볍게 보여주기 시작했죠. AI의 발전으로 콘텐츠 제작이 훨씬 쉬워진 것도 도움이 됐고요.
이런 변화 속에서 더 다양한 시니어 크리에이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가족과의 케미를 더 적극적으로 보여주거나, 시니어여서 가능한 정보나 지식을 콘텐츠로 만드는 계정들이 등장한 거예요.

- 김종구: 강의 형식으로 일상 속 꿀팁부터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 피식하게 만드는 개그성 콘텐츠까지 다양한 영상을 업로드해요. 때로는 공감되고, 때로는 기발한 콘텐츠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특히 ‘‘생일에 아들에게 갤럭시 워치 선물로 받는 법’ 영상은 실제 삼성전자 광고로 이어지기도 했어요.
- 롱롱TV: 치매 진단을 받은 할머니와 손녀 김영롱 씨가 함께 만들어 가는 일상 콘텐츠 채널이에요. ‘간병’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일상’에 초점을 맞춘 영상들로 즐거우면서 감동적이라는 반응을 얻고 있어요.
- 성호육묘장: 충남 천안에서 다양한 모종을 키워 판매하는 농부이자 유튜버인데요. 농촌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과 일상부터, 실제 농사에 필요한 노하우 등 실용적인 정보까지 다뤄요. 조용하지만 꾸준하게 40만 구독자를 모았어요.
전문가들은 이처럼 더 많은 시니어들이 콘텐츠의 주인공이 되는 현상의 이유를 인구 구조, 시니어라는 개념에 대한 인식 변화에서 찾아요. 60~70대가 디지털 미디어에 익숙해지면서 콘텐츠 공급자로 등장한 것,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액티브 시니어’들이 많아지면서 시니어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달라졌다는 분석이 많은데요. 설득력 있고 중요한 포인트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게 있어요. 서로 완전히 다른 시대를 살았고, 가치관도 다른 시니어들의 콘텐츠에 젊은 세대가 ‘저렇게 살고 싶다’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게 흔한 일은 아니잖아요. 어쩌면 시니어 본인의 연륜, 시대적 변화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또 다른 감정이 작동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우리가 빠져드는 시니어 인플루언서들은 평가받을 생각이 없다

요즘 인기 있는 시니어 크리에이터들의 콘텐츠를 들여다보면서, 저는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어요. 바로 알고리즘이나 다른 시청자들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날것이나 자연스러움을 강조한 콘텐츠라도 자기 단점이나 서툰 점은 감추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빠져든, 사람들이 유독 댓글을 많이 남긴 시니어 인플루언서들은 그런 자기 모습조차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어요. 촌스러우면 촌스러운 대로, 요즘 걸 모르면 모르는 대로 그냥 본인을 보여주죠. 더 세련되고 스마트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애쓰는 일에 익숙한 지금, 부족한 자기 모습도 드러내는 것 자체가 낯설고 멋있게 보이는 거예요.
이런 시니어들의 모습은 지금 콘텐츠 생태계에도 특별한 의미를 가져요. 우리는 ‘진정성’이라는 단어마저 기획의 소재가 되는 시대를 살고 있거든요. 자연스러운 일상 브이로그를 표방하는 콘텐츠는 사실 어떤 컷을 살릴지 신중하게 고른 결과물일 때가 많아요. 자연스러움이나 나다움을 말하는 콘텐츠도 정교하게 설계된 경우가 많죠. 솔직해 보이기 위한 영상을 찍기 위해 솔직함을 일부러 꾸며내는 모순적인 시대인 거예요. AI가 등장하면서 실제와 가상을 더 구별하기 힘들어진 지금, 사람들이 진짜를 표방하는 콘텐츠를 봐도 어딘가 가공된 느낌을 받게 되는 이유죠.
하지만 시니어 크리에이터들은 솔직함을 기획하지 않아요. 그냥 자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죠. 카메라 앞에서 무언가를 억지로 연출하려고 하지도 않아요. 시청자들도 그런 걸 감지하고, 평가자가 아닌 온전한 감상자가 돼서 콘텐츠에 깊이 몰입하게 되죠. 어느 순간 공감과 위안을 얻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아닐까요? 진정으로 세상의 평가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도 잠깐 평가의 무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니까요. 특히 젊은 세대가 열광한 밀라논나가 한 말처럼요.
알고리즘이 시니어 크리에이터들을 띄워주는 것도, 어쩌면 진짜 꾸미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해방감을 원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일 거예요. 다음에 또 시니어 크리에이터의 영상에서 한 번 멈추게 된다면, 뉴니커는 그분들의 어떤 모습에 가장 마음이 갔는지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그 모습에서 알고리즘과 콘텐츠 가이드라인에 맞추느라 잊어버린 진짜 우리 모습이 비칠지도 몰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