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인생 작품 월드컵'에 열광할까? ‘취향으로 싸우는’ 콘텐츠의 매력 ✨

사람들은 왜 '인생 작품 월드컵'에 열광할까? ‘취향으로 싸우는’ 콘텐츠의 매력 ✨

작성자 고슴이의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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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인생 작품 월드컵'에 열광할까? ‘취향으로 싸우는’ 콘텐츠의 매력 ✨

고슴이의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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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um_b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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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키, 간지, 민경. 1시간 24분짜리 밥친구가 나타났습니다.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드러머 김간지, 2025년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힙합&랩 음반 부문 수상자 허키 시바세키, 민음사 해외 문학 편집자 김민경. 언뜻 보면 접점이 전혀 없을 것 같은 세 사람의 ‘인생 영화 월드컵’ 영상이 100만 뷰를 돌파한 건데요. 이 영상은 유튜브 채널 ‘머니그라피’에서 사회의 주류, 비주류 영역에 있는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는 코너 ‘B주류초대석’의 첫 편으로, 세 사람의 조합이 큰 사랑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인생 영화’, ‘인생 B급 영화’, ‘인생 만화’ 3부작이 공개됐습니다.

이 시리즈는 그동안 인기 있었던 토크 콘텐츠들과는 다른 노선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왜 내내 심통이 나 있고 조금은 서로에게 무례하게 굴기도 하는 이들의 대화에 열광하는 걸까요? 이들은 왜 인생 콘텐츠에 대해 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는 걸까요? 오늘은 ‘인생 작품 월드컵’ 콘텐츠의 인기 요인에 대해 알아봅니다.


사람들이 '취향으로 싸우는' 콘텐츠를 좋아하는 3가지 이유


1️⃣ 서로에게 무례하지만 타격감은 없는 관계성

“긁힐 줄 몰랐던 사람이 긁힌 게 웃기다”, “서로에게 무례하지만 전혀 타격이 없어서 계속 무례함” ‘B주류초대석’에 대한 반응들입니다. 실제로 출연진들은 상대를 향한 예의를 지키는 걸 가장 우선 순위에 두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서로 선을 조금씩 넘나들죠. 가끔은 욕을 하고 눈을 질끈 감기도 합니다.

그동안 여러 토크 콘텐츠에서는 진행자와 초대 손님이 서로의 취향을 꺼내놓을 때 나와 다른 상대의 취향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자세가 미덕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누적되다 보니 대부분의 대화가 한 번 더 질문을 건네는 대신 다음으로 넘어가기를 반복하며 다소 피상적으로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비슷한 취향, 비슷한 언어만을 공유하다 보면 새로운 관점이 들어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기존의 생각이 역시 옳다고 믿는 확증 편향만이 강해지게 되고요.

그러나 서로 다른 커뮤니티에서 활동할 것 같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처음에는 조금 긴장감이 느껴질지 몰라도 오랜 기간 굳어진 생각을 이질적인 대화를 통해 환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각자의 취향을 쌓아 온 사람들의 충돌을 그대로 보여주는 ‘B주류초대석’의 연출은 대담하게 느껴집니다. 평소에 다른 사람과 허물없이 대화를 나누는 경험이 없는 시청자일수록 그들이 나누는 대화에서 일종의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지도 모르고요.

달리 말하면, 제작진이 ‘관계성 연출’을 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김민경 편집자가 “마치 누군가 잘못 꾼 꿈 같은 조합”이라고 자조하기는 했지만, 세 사람이 원래부터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고 일로 만난 관계라는 것도 중요합니다. 서로가 무엇을 좋아하고 또 무엇을 싫어하는지 이미 잘 아는 사람들끼리 웃고 떠드는 게 아니라, 콘텐츠를 매개로 나누는 긴 대화를 통해 서로 충돌하고, 웃고, 설득당하는 과정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죠. 

김민경 편집자는 사실상 초면인 허키 시바세키와 김간지와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기 전부터 상대방을 ‘불량배’라고 부릅니다. 그리고는 ‘불량배 두 사람 앞에서 기 죽지 않는 직장인’이라는 포지션을 구축하죠. 그리고 제작진은 이 과정에서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이 천천히 관계를 구축하는 서사를 보여주고, 이 조합을 응원하는 팬들이 생겨납니다. 콘텐츠의 내용을 떠나서, 출연진들의 조합 자체에서 오는 ‘케미’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거예요.


2️⃣ 즉각적인 리액션과 감정에 충실한 ‘인생 작품 월드컵’

‘B주류초대석’이 처음으로 인생 작품 월드컵을 개최한 건 아닙니다. 유튜브 ‘이종범의 스토리캠프’의 ‘최고의 인생 미드 월드컵’이나 유튜브 ‘룩삼’의 ‘3, 4세대 남자 아이돌 월드컵’ 등의 영상도 꾸준히 반응이 좋습니다. 이렇게 작품 후보를 2의 배수로 모아 대진표를 짜고, 그중 최고의 작품을 선정하는 인생 작품 월드컵 콘텐츠는 왜 인기를 끌게 된 것일까요? 

우선 후보에 오른 작품을 미는 참가자에게 아주 많은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 그러므로 짧은 시간 안에 상대를 효과적으로 설득해 최대한 빨리 탈락과 생존을 가려내야 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바로 월드컵 게임의 속도성이죠. 그리고 이는 20년 이상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해 온 서정민갑 대중음악평론가의 평론에 대한 정의와는 정확히 반대됩니다.

“정답이 없는 답을 내놓고 설득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천천히 맥락을 쌓고, 관점을 구성해야 합니다. 이런 이유에서 평론은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시대에 기다림을 요구하는 글쓰기와 말하기이기도 하죠. 사람들은 점점 충분한 근거보다는 신속한 리액션을, 탄탄한 논증보다는 즉각적인 감정을 중심으로 콘텐츠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빠른 속도감이 필수인 이상형 월드컵 콘텐츠가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고 볼 수 있죠. 


3️⃣ 비전문가 덕후가 말아주는 최애 설명회

최근 ‘취향 토크’ 콘텐츠에 참여하는 참가자들이 본업과는 상관이 없는 영역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문학 편집자가 영화를 말하고, 뮤지션이 만화를 추천합니다. “원래 사람들은 물어보지 않아도 자기가 좋아하는 주제를 끊임없이 말하고는 한다”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유튜브 ‘Pixid’의 ‘최애의 최애’ 시리즈에서 에이티즈 우영이 해리포터 시리즈를 영업하는 ‘스네이프 vs 시리우스 토론 중 찐텐으로 싸우는 아이돌’ 편이나, 유튜브 ‘민음사TV’에서 조아란 마케터의 ‘SF 관심 1도 없는 후배 앉혀 놓고 '듄' 영업하기’ 편이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여기서 ‘말할 자격’, 즉 누가 더 전문성을 가졌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모든 기준은 ‘누가 더 진심인가’입니다. 이들은 오로지 자신의 언어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입니다. 

정제된 언어가 아니라 덕후의 언어로 작품을 해설하는 사람들이 더 주목받게 되는 건, 비평가에 대한 권위가 허물어지고 팬의 영향력이 상당 부분 강해졌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인생 B급 영화를 얘기할 때 김민경 편집자가 ‘홍상수 감독이 싫은 이유에 관한 문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공개되었는데요. 이는 홍상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조롱이라기보다는, 그만큼 연이은 인생 작품 월드컵에 임하면서 자신의 취향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밝히기로 결심한 사람의 노력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화와 설득을 통해 넓어지는 취향의 세계

무엇보다 ‘B주류초대석’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게스트로 출연했던 유튜버 통닭천사가 김간지의 인생 만화 ‘바키’에 대해 보인 반응의 변화입니다.

통닭천사는 언뜻 그림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던 만화지만, 실제로 김간지의 설명을 듣고 난 이후 그 작품에 관심을 보이게 됩니다. 어떤 이유로든 내 취향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던 대상을 달리 바라볼 수 있다는 게 ‘인생 작품’을 테마로 한 콘텐츠의 효용이 아닐까요? 

낯설지만 자꾸만 빠져드는 허키, 간지, 민경 세 사람이 함께하는 다음 ‘B주류초대석’ 에피소드를 기다리며, 마지막으로 영국의 철학자 콰메 앤서니 아피아의 한마디를 나눕니다. "낯선 이가 더 이상 상상 속 존재가 아니라 사회생활을 공유하는 실재하는 존재일 때, 우리는 그를 좋아하기도 싫어하기도 공감하기도 공감하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양쪽이 모두 원한다면 결국에는 서로를 이해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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