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반통신'부터 '아자스'까지, Z세대는 왜 무의미한 밈으로 말할까? 밈 속에 숨겨진 Z세대의 진짜 마음 🗣️
작성자 고슴이의비트
비욘드 트렌드
'골반통신'부터 '아자스'까지, Z세대는 왜 무의미한 밈으로 말할까? 밈 속에 숨겨진 Z세대의 진짜 마음 🗣️
"골반통신이 무슨 뜻이야?" 알 수 없는 밈들이 세대의 언어가 된 이유
뉴니커, 최근 쇼츠 보다가 ‘이게 뭐지?’ 싶은 영상 본 적 있나요? 저는 '골반통신' 밈이 그랬어요. 끊임없이 골반이 움직이는 사람이 클럽에 갔다가 플러팅을 당한다는 내용의 쇼츠였는데요. 저는 이게 뭔가 싶었는데, 댓글 반응은 되게 좋더라고요. “나도 골반통신 된다”, “중독성 대단하다”라는 글들이 많았어요. 사람들은 이 밈(meme)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따지지 않고, 그 자체를 즐기고 있더라고요.

이렇게 아무런 뜻이 없어 보이는 밈들, 지금 미디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예요. 골반통신부터 ‘아자스(‘아리가또 고자이마스’의 줄임말)’, ‘갑차기스러운데’, 인공지능(AI)으로 유명해진 ‘브레인롯(Briainrot)’까지. 맥락을 알 수 없는 수많은 밈들이 우리 일상에 자리 잡고 있어요.
데이터로도 이런 변화를 살펴볼 수 있어요. 인스타그램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매일 100만 개 넘는 밈이 공유된다고 해요. 미국 여론조사 기관 퓨 리서치 센터는 13세~36세 인구의 55%가 1주일에 한 번씩, 30%는 매일 밈 콘텐츠를 올리거나 공유한다고 밝혔죠. 미국 최대 온라인 사전 사이트 딕셔너리닷컴은 올해의 단어로 ‘식스세븐(Six-Seven)’을 선정하기도 했어요. ‘식스세븐’은 미국 래퍼 스크릴라(Skrilla)의 노래 ‘Doot Doot(6 7)’에 등장하는 추임새인데요. 정확한 뜻이 없는 단어이지만, 대화에서 알맞은 타이밍을 노려 ‘식스세븐’을 외치는 게 미국 10대들 사이에선 엄청난 유행을 몰고 왔어요. 이렇게 별 뜻 없이 추임새처럼 외치는 단어가 올해의 단어가 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그렇다면 대체 왜, 젊은 세대는 의미 없어 보이는 밈에 열광하고 즐거워하는 걸까요? 밈이라는 건 정확히 무엇이고, 2025년의 우리에게는 어떤 존재인 걸까요?

의미 없는 게 의미 있는 시대, 그 중심에 밈이 있다
'밈(meme)'이라는 단어는 사실 굉장히 학술적인 용어였어요. 1976년,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자신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처음 제안한 개념인데요. 스스로 복제되고 번식하는 인간의 유전자처럼, 사람들 사이 모방과 재생산을 통해 이어지는 종교, 사상, 이념 등을 의미했어요. 그런 뜻을 담아 ‘모방(mimesis)’과 ‘유전자(gene)’를 합쳐서 밈이라는 단어를 만들었죠.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요소’를 뜻하는 밈은 2001년 처음 등장했어요. MIT 미디어 랩의 대학원생이었던 조나 페레티는 나이키에서 ‘착취공장(sweatshop)’이라는 문구를 넣은 맞춤 운동화를 주문했어요. 나이키가 1970년대 초부터 노동착취가 이뤄지는 곳에서 제품을 공급받았다는 것을 비판하는 메시지였죠. 하지만 나이키 측에서 주문을 일방적으로 취소했고, 페레티는 부당하다는 생각에 이 소식을 지인들에게도 알렸죠. 이 이야기가 퍼지고 퍼져서, 페레티는 NBC 생방송에서 나이키 대변인과 대담까지 하게 됐어요. 인터넷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나이키를 비꼬는 일러스트와 만화 등이 여럿 만들어졌죠. 모방과 재생산을 통해 퍼져나가는 밈의 특성이 고스란히 반영된 거예요.

우리나라 최초의 인터넷 밈으로 볼 수 있는 글은 2001년 7월, 디시인사이드에 올라온 ‘오늘 산 중저가형 모델 싸게 팝니다’예요. 중고 디지털카메라를 거래하던 사이트에 카메라가 아닌 먹다 남은 과자 사진을 넣어, 왠지 모를 웃음을 유발했죠. 사진만 바꿔도 다양한 형태로 패러디할 수 있어, 가지고 놀기도 쉬웠고요. 비슷한 시기 이소룡의 코믹한 표정을 가상의 캐릭터로 만든 ‘싱하형’, 대나무를 안고 있는 귀여운 강아지에서 다양한 패러디를 통해 디시인사이드의 마스코트가 된 ‘개죽이’ 등 우리나라에서도 밈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기 시작했어요. 어설프게 이미지를 잘라내서 원본에 합성하거나, 뚝딱거리는 플래시로 캐릭터에 움직임을 입힌 게시물 등 다양한 변종들도 등장하면서 밈 문화는 빠르게 발전했죠.
그러다가 스마트폰과 SNS가 등장하면서, 밈은 엄청난 속도로 우리 일상에 스며들었어요. 예전엔 특정 커뮤니티에서 아는 사람끼리만 즐겼지만, 이제는 몇 시간 만에 전 세계로 퍼지게 됐거든요. 특히 틱톡, 인스타그램 등 나만의 콘텐츠를 쉽게 만들 수 있는 도구들이 등장하면서, 젊은 세대는 각자 밈을 패러디하거나 재생산하는 데 큰 재미를 느꼈어요. 여기에 인기 있는 콘텐츠를 강조시켜 주는 알고리즘이 더해져, 사람들은 게임처럼 더 웃기고 강렬한 밈을 만드는 데 집중하게 됐죠.

최근 밈들이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어요. 우선 알고리즘이 ‘이상한’ 콘텐츠를 좋아해요. ‘이게 뭐지?’ 싶은 밈들은 사용자에게 궁금증을 유발하고, 더 오래 그 밈을 쳐다보게 유도해요. 알고리즘은 이렇게 시청 시간이 늘어나고, 좋아요나 공유 등이 일어나는 콘텐츠를 ‘좋은 콘텐츠’라고 판단하죠. 이런 과정이 반복돼서 SNS 피드에 무의미해 보이는 밈이 많아지는 거예요.
두 번째 이유는 생성형 AI의 등장이에요. 텍스트 몇 줄만으로 이미지나 영상을 만들 수 있게 됐거든요. 사람들은 여기에 매료돼 다양한 시도를 했고, 그 과정에서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기묘한 캐릭터 등이 만들어졌어요. 세 발 달린 상어, 야구방망이를 든 통나무 등 캐릭터들이 포켓몬처럼 대결하는 ‘이탈리안 브레인롯(Italian Brainrot)’ 시리즈가 유명하죠.
여기에 SNS가 소통의 핵심인 문화가 합쳐져서, 밈은 젊은 세대가 세상을 실시간으로 재해석하고 공유하는 수단이 됐어요.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코드를 알고 있다는 데에서 생기는 유대감도 크고요.
한편, 전문가들은 밈을 살펴보면 그 세대의 고민과 삶의 방향성 등도 살필 수 있다고 말해요. 단순히 ‘요즘 애들이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말’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는 거죠. 그렇다면 지금 유행하는 밈에는 어떤 특징이 있고, 어떤 메시지가 숨겨져 있는 걸까요?
불안이 기본값이 된 지금, 밈은 공감과 연대의 새로운 도구다

최근 유행한 밈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보이는 경향이 하나 있어요. 10년 전에는 자포자기하고 부정적인 톤이 많았지만, 지금은 힘든 현실을 웃어넘기고 극복하려는 밈들이 많아졌다는 거죠. 힘들지만 어떻게든 해낸다는 ‘퀸의 마인드’, 복잡한 세상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자는 ‘투컷적 사고’, 처음에는 웃겼지만 곱씹어볼수록 삶에 도움이 된다며 재조명된 ‘이건 첫 번째 레슨’ 등이 대표적인데요. AI로 인한 취업난과 어지러운 세계정세, 분열과 갈등이 가득한 세상에서, 긍정적인 뉘앙스의 밈들은 ‘우리 다 비슷하게 생각하는구나’라는 동질감과 연대감을 느낄 수 있게 해줘요. 청년 10명 중 6명이 외로움을 호소하는 지금, ‘세상에 나 혼자 떨어져 있다’라는 소외감을 덜어주는 역할도 하죠.
‘골반통신’이나 ‘아자스!’ 같은 밈들도 겉으로는 가벼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진지한 고민을 가볍게 넘기고 싶은 마음이 담겨있어요. 취업난, 주거 문제, 기후 위기 등 무겁고 심각한 문제들 속에서, 생각 없어 보이는 밈들은 순간적인 웃음을 느낄 수 있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계기가 돼요. 주변 사람들에게 ‘이거 알지? 되게 웃겨’라고 말을 걸며 즐거움을 공유하는 시간도 만들어주죠. 치열하게 경쟁하고, 혼자서 살아남는 게 당연한 한국 사회에서 밈은 젊은 세대가 스스로를 다독이고 위로할 존재가 되어주는 거예요.
뉴니커도 다음에 이해 안 되는 밈을 보게 되면, 이 밈이 담고 있는 감정이나 공유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걸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처음에는 무의미해 보이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가 놓치고 있던 세대의 진짜 이야기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