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렉스보다 카시오 시계가 더 힙하다고? 저가 시계 브랜드가 유행하는 이유 ⌚️
작성자 고슴이의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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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렉스보다 카시오 시계가 더 힙하다고? 저가 시계 브랜드가 유행하는 이유 ⌚️
몇 년 전부터 카시오를 비롯해 타이맥스, 스와치 등 저렴한 시계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소셜미디어나 유튜브에서도 ‘몇만 원 이하 시계 추천’이나 ‘코디 방법’ 같은 콘텐츠를 쉽게 찾을 수 있죠. 이런 현상은 국내에만 한정된 건 아닙니다. 일본이나 미국에서도 저렴한 시계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 유행은 단편적이라기보다는 여러 줄기가 있고 다들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저렴한 시계 유행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 보겠습니다.

롤렉스 아니면 카시오라고? 요즘 손목시계 시장 상황 💰

21세기의 손목시계라는 제품은 꽤 이상하다고도 할 수 있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일단 스마트폰이 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 거의 모두가 지금이 몇 시인지 그 어느 시대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디지털 디톡스 혹은 경제적인 문제로 피처폰을 찾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시간을 알기 위해서라면 손목시계가 필요 없는 시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손목시계를 아예 쓰지 않는 사람과 그래도 계속 쓰는 사람으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계속 쓰는 사람들은 이미 시계에 익숙한 사람이거나 시계라는 아이템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와중에 손목시계를 계속 쓰는 사람 사이에서 시계의 인기는 꾸준히 늘고 있고, 또 유입도 상당합니다.
대신 요즘의 다른 상품들과 비슷하게 손목시계 역시 약간 극단적인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우선 롤렉스, 오데마 피게 등 비싼 건 집이나 자동차 가격에 맞먹는 비싼 시계들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모든 것들이 디지털화되고 열화되는 세상에 사람의 손이 만들어 내는 초정밀 금속 공학은 점점 많은 사람들을 매혹하고 있습니다. 또한 부와 지위를 은근히 드러내고자 하는 사람 역시 여전히 많죠. 게다가 이런 시계들은 많이 만들지 않고 구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가격이 계속 올라 투자로 여기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보다는 낮은 가격, 작은 규모지만 뛰어난 성능과 개성을 가진 인디 시계 브랜드들도 있습니다. 시계에 대한 열정으로 작업실에 앉아 만들어 내는 소규모 인디 브랜드들은 시계에 상당한 관심과 조예를 가진 마니아를 끌어들이고 있죠.
그리고 다른 쪽에 오늘의 주인공 저가 시계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렴하고, 지금 스마트워치에서는 별 특별하지도 않을 기능이 미래의 신기술인양 자리를 차지하거나, 플라스틱의 조악함, 과장된 번쩍거림, 만화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시계들입니다. 인기를 끌고 있는 브랜드로는 카시오를 비롯해 타이맥스나 스와치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보다는 약간 높은 가격대의 빈티지 제품이나, 나이키나 오클리 같은 브랜드가 90년대에 내놨던 미래적 디자인의 스포츠 시계들도 비슷한 계열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왜 저렴한 손목시계에 열광하는 걸까? ❤️🔥

저렴한 시계의 인기 요인으로는 우선 레트로 패션의 유행이 있습니다. 레트로 트렌드는 패션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아이템, 소품, 인테리어까지 전방위적으로 넓어지고 있습니다. 을지로나 신당, 문래동과 남영동 등 서울 도심의 구시가지는 밀레니얼과 Z세대를 넘어서 외국인들의 주요 관광지가 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누군가에게는 기억이 어렴풋해지고 있는 과거가, 또 누군가에게는 지금과는 확실히 다른 미감이 주는 새로움으로 다가가고 있는 겁니다.
전자시계는 90년대에 가장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지금 만날 수 있는 카시오의 저렴한 시계들은 그때도 가장 저렴한 시계였죠. 하지만 빈티지한 감성의 디지털 액정과 밤이면 주황색·하늘색 등 화려한 불을 켤 수 있는 플라스틱 시계와 레진 시계는 이제 레트로 패션의 감성을 완성하기에 훌륭한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이런 레트로 패션 미감은 약간 다른 방향으로도 나아갑니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치프 카시오’ 혹은 ‘치프 카시’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렴한 카시오’라는 뜻으로, 저렴하지만 세련된 괜찮은 성능의 카시오 시계를 의미합니다. 저렴한 카시오 시계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건 2010년경 정도라고 합니다. 패션에 민감하고 앞서 나가는 몇몇 10대, 20대와 일부 연예인들이 저렴한 디지털시계를 차고 SNS에 등장하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이 유행이 서서히 커지면서 2020년 들어 실제적인 매출 성장으로 이어집니다. 카시오는 이런 흐름에 맞춰 리브랜딩을 실시해 스탠다드 라인이나 카시오 클래식 라인 등을 중심으로 브랜드를 정돈합니다. 이 시계들은 처음 나왔을 때 패션으로 소비되는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레트로는 지금의 패셔너블함을 의미하고, 이 말은 패션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세련되고 스타일리시하게 사는 모습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또한 많은 유명 인사, 해외의 CEO들도 저렴한 시계 유행을 이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빌 게이츠는 카시오의 듀로 모델을 착용하고 다녀서 화제를 모았습니다. 스티브 잡스도 세이코의 채리엇 모델을 차고 다녔다고 많이 알려져 있죠. 심지어 프란치스코 교황도 카시오의 가장 저렴한 모델인 MQ-24 모델을 사용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외에도 많은 CEO, 금융계 인사들이 저렴한 시계를 찾습니다. 물론 이들이 차고 다니는 시계 중에는 전자시계 치고는 꽤 비싼 모델들도 있긴 합니다. 대체적으로 많은 이들이 이미 좋은 시계를 몇 개씩 가지고 있지만, 서브 시계로 저렴한 시계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항상 진지하고 경쟁이 넘치는 환경 속에서 재미있는 시계가 주는 반가움과 경쾌함을 즐기고, 정장 같은 제한적인 컬러 속에서 컬러 포인트를 만들고 개성을 보일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거죠.
너드나 키치 문화의 영향도 있습니다. 90년대 디지털 시계에는 여러 실험적인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아날로그 시계를 디지털로 표현하고, 작은 시계에 계산기가 붙어 있고, 리모콘도 붙어 있고, 무전기도 달려 있고, 심지어는 게임이 되는 시계도 있습니다. 온갖 신기한 것들이 들어있는 재미도 있지만 어딘가에서는 쓸모가 있을 거라는 실용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이런 방향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얼마 전 카시오에서는 반지 대용의 시계를 내놓았습니다. 전형적인 생김새의 디지털 시계를 손가락 위에 올려놓으면 불도 들어오고, 스톱워치도 됩니다. 또 사우나 전용 시계도 내놨습니다. 온천 사물함 키처럼 생긴 시계는 내열 배터리에 100도까지 괜찮은 배습, 방수 기능은 물론 12분 타이머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또한 실용성과 편의성의 시대에 저렴한 제품의 새로운 면모 발견도 인기입니다. 세이코의 사각 아날로그 시계는 까르띠에 제품과 비슷하다며 인기를 얻어 ‘세르띠에’라는 별명도 붙었습니다. 배우 김혜수가 드라마에서 차고 나온 사각 카시오 시계도 합리적인 가격과 세련된 생김새로 인기를 모았습니다. 이러한 구모델 발굴도 소셜미디어 시대에 인기가 많은 활동입니다.

이와 함께 고가 브랜드와의 협업도 등장했습니다. 오메가와 스와치가 함께 내놓은 문스와치는 나오자마자 다 팔려버리고 프리미엄 가격이 붙어 리세일이 될 정도로 인기를 모았습니다. 그리고 블랑팡과 스와치 협업 시리즈도 나왔죠. 이건 H&M과 칼 라거펠트, 유니클로와 질 샌더의 협업과 비슷한 양상입니다. 당시의 시도가 패스트 패션 브랜드의 이미지 환기에 큰 역할을 하고 지금 성장의 토대가 되었듯, 어쨌든 돌파구를 찾고 있는 시계 업계 쪽에서도 비슷한 일이 생길 수도 있죠. 가능성은 확인을 했습니다.
실용과 편의를 중심으로 발전하는 패션 🎽

이런 여러 가지 이유를 가진 저렴한 시계 트렌드는 조금씩 영역을 확장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삶을 게시하고 전시하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폭발력을 얻고 확장됩니다. 세련됨과 의외성, 유머 등 각각의 이유는 관심을 받는 요인이 됩니다. 여기에는 지금 세대 특유의 실용적인 선택도 있습니다. 즉 ‘스마트폰이 있으니까 시계를 차고 다니는 게 귀찮다’에서 ‘시간을 확인하는 데 스마트폰을 꺼내는 게 귀찮다, 차라리 시계를 차고 다니자’라는 더 편한 방법을 찾아나선 결과로 보이기도 합니다.
스마트폰과 스마트워치의 시대에 이런 보조재의 역할을 하기에 무겁고 예민하고 비싸고 존재감이 강한 시계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가벼움, 부담 없는 가격이 중요 요소가 되죠. 여기에 저가 시계는 딱 맞습니다. 또한 가격 부담이 덜한 만큼 여러 개 가지고 스타일에 맞게 활용할 수도 있죠. 이런 실용적 태도는 놈코어 패션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놈코어는 평범한 것들을 패셔너블하게 인식하도록 하는 패션 트렌드를 말합니다. 즉 예전의 평범한 제품들에서 패션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저가 시계의 인기는 패션의 확장도 보여줍니다. 패션은 특별한 장소, 특별한 상황을 위한 게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더 다채롭게 만드는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시계의 경우도 부나 지위를 드러내는 심볼이나 무의미한 장식에서 삶의 도구, 편의적 실용품이자 각자 삶의 과정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저렴한 시계 트렌드가 큰 역할을 하고 있죠. 이런 방향이 앞으로 패션과 어떤 영향력을 주고 받게 될 지도 기대해 볼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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