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 다음 트렌드는 산책? 산책이 Z세대의 '힙한 취미'가 된 이유 🚶
작성자 고슴이의비트
비욘드 트렌드
러닝 다음 트렌드는 산책? 산책이 Z세대의 '힙한 취미'가 된 이유 🚶
"운동도 아닌데 왜 걷지?" Z세대가 산책에 빠진 이유 🚶

뉴니커는 산책 자주 하나요? 저는 하루 한 번은 꼭 산책하려 노력해요. 하늘과 자연을 바라보다 보면 머리도 맑아지고, 바쁜 마음도 진정되더라고요. 그런데 최근 들어 저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아요. ‘러닝에 이어 산책이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는 기사와 분석이 잇따라 나오고 있거든요. 올해 들어서는 통계청이 5년마다 발표하는 생활시간조사 보고서에서 ‘가장 기분 좋은 행동’ TOP 5안에 산책이 들었다고 해요. 최근 5년 사이 처음 있는 일이라고.
산책 트렌드는 외국에서도 화제에요. 2023년 영국에서는 가벼운 산책을 즐기는 ‘소프트 하이킹(soft hiking)’ 크리에이터가 누적 조회수 100억 뷰를 기록했어요. 같은 해 미국에서도 ‘사일런트 워킹(silent walking)’이라는 제목으로 산책 루틴, 경험기 등을 올린 크리에이터가 산책 붐을 일으켰죠. 당연한 일상생활의 한 부분으로만 생각했던 산책은 어쩌다가 ‘힙한 취미’가 됐을까요?

할 일 없을 때나 하던 소일거리, 모두의 콘텐츠가 되다

몇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산책을 ‘취미’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좀 걷다 오는 거, 바람 쐬러 나갔다가 오는 거. 그게 산책이라고 봤죠. 이런 인식은 우리나라와 외국 모두 비슷했어요. 많은 사람은 ‘열심히 일하는 게 좋은 삶’이라고 생각하며 살았기에, 특별한 목적 없이 걷는 산책은 비효율적이라고 본 거죠.
산책은 체육 활동으로도 인정받지 못했어요. 사람들이 ‘운동’하면 주로 살을 빼기 위한 달리기 등 유산소 운동, 탄탄한 몸을 만드는 근력 운동을 주로 떠올렸으니까요. 비록 예전부터 아리스토텔레스·루소·니체 등 여러 철학자가 산책의 가치를 강조하기는 했지만,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았어요. 업무나 자기 계발 등에 쓸 수 있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비쳤죠. 그래서 산책은 운동이라고 하기도 힘든, 비효율적인 이동 행위에 가까웠어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의 소일거리라는 인식이 강했고요.
그러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이런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헬스장도 문을 닫고 단체 운동도 금지되면서, 혼자서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체육 활동으로 주목받은 거죠. 정부도 산책을 장려하기 위해 ‘건강한 걷기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기도 했고요. 이런 변화는 수치로도 나타났어요. 캐시워크 운영사 넛지헬스케어가 2021년 자체 데이터를 조사했을 때, 전체 걸음 수가 5조 3000억 보를 기록했거든요. 2020년의 기록인 4조 7000억보 대비 12.5% 늘어났고, 특히 40대 이상 사용자들이 예전보다 훨씬 산책을 많이 한 것으로 나타났어요. 산책에 대한 고정관념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거죠.
이후 2023년, 미국과 영국 크리에이터들의 영향으로 산책은 트렌디한 콘텐츠로 변신했어요. 미국의 틱톡커 매디 마이오는 “평소에 하던 격렬한 유산소 운동 대신, 30분 정도만 음악이나 팟캐스트 없이 걸어보라”는 영양사의 진단을 ‘조용한 걷기(silent walk)’라는 이름의 챌린지로 만들었는데요. 관련 콘텐츠들이 조회수 50만 회를 기록하면서 큰 화제가 됐어요. 거의 같은 시기, 영국에서는 루시 허드와 에밀리 손튼이 ‘소프트 하이킹(soft hiking)’ 콘텐츠 시리즈를 만들어 누적 조회수 100억 회를 넘겼죠. 두 크리에이터는 콘텐츠 흥행 이유를 묻는 질문에 “각자 페이스대로 자연을 걷는 즐거움이 새로운 여유를 준 것 같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산책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산책을 즐기는 방식도 다양해지는 중이에요. 최근에는 맨발 산책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전국 공원, 산책로에 ‘맨발길’이 늘어나고 있어요. 아경과 함께 여유를 즐기는 이벤트 등 관련 행사도 다양해지고, 산책길 추천 콘텐츠도 인기가 좋죠.
미디어와 브랜드들도 이런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 중이에요. 당근은 지난 7월 '베타 서비스로 공개한 ‘당근 동네걷기’ 서비스를 지난 9월 초에 런칭했어요. 베타 기간 2개월 동안 누적 방문 동네 가게가 33만 곳을 넘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고 해요. SNS에서는 ‘산책 핫플’,’ ‘산책감도’ 같은 키워드가 주목받고 있고요.
이런 변화에 대해 사람들은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어요. 숨 가쁜 세상에서 여유를 찾고 싶은 마음, 건강한 삶을 위한 루틴, 낯선 사람들과 친해지며 힐링하는 새로운 방법 등이 주로 언급되는데요. 이런 것들 이외에도 사람들이 더 자주, 많이 산책길을 찾는 이유는 어떤 게 있을까요?
평생 ‘성장’만 하는 건 인생이 아니잖아요

언제부턴가 우리는 모든 걸 ‘쓸모’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했어요. SNS에 일상을 공유할 때조차 ‘사람들이 좋아요 버튼을 많이 눌러줄까? 숏폼으로 만들면 조회수가 더 나오지 않을까?’ 같은 생각을 하게 됐죠. 산책은 이처럼 인생의 모든 순간을 효과적으로 살고, 성장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수단 아닐까요? 최적의 경로도, 심박수나 페이스도 생각하지 않고 ‘비효율적’으로 걸어도 되니까요.
생산성, 효율성을 생각하지 않아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도 있어요. 평소 고민거리에 대한 기발한 해결책, 디스플레이 속 세상을 보느라 잊고 있던 현실의 풍경,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할 수 있는 여유 같은 것들요. 이처럼 산책은 성장이나 발전으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생각하지 못한 반짝임이나 색채를 우리 삶에 가져다줘요. 초고속으로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에서 빠져나와 나를 돌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요.
뉴니커는 언제 마지막으로 별생각 없이 산책을 했나요? 매일 열심히 사는데 왠지 모르게 공허하고,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 같다면 가볍게 근처 공원이나 동네를 걸어보면 어떨까요? 바쁜 일상과 자기관리 콘텐츠에 묻혀 잊고 있던 여유로운 순간, 까맣게 잊고 있던 아이디어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