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퀴어 크리에이터 김똘똘 인터뷰  🏳️‍🌈: "슬픈 퀴어보다는 유쾌한 퀴어가 되자!"

[인터뷰] 퀴어 크리에이터 김똘똘 인터뷰 🏳️‍🌈: "슬픈 퀴어보다는 유쾌한 퀴어가 되자!"

작성자 고슴이의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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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퀴어 크리에이터 김똘똘 인터뷰 🏳️‍🌈: "슬픈 퀴어보다는 유쾌한 퀴어가 되자!"

고슴이의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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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um_b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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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홍석천’, ‘게이 유튜버’, 그리고 ‘리얼가이즈 막내’까지. 이 사람을 가리키는 수식어는 끝이 없어요. 바로 유튜브 ‘김똘똘 DDOLDDOL’ 채널을 운영하면서 ‘홍석천의 보석함’·‘가비걸’ 등 다른 채널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유튜버, 김똘똘 님인데요. 똘똘 님은 특유의 유쾌하고 발랄한 애티튜드와 끼, 아이돌도 움찔할 만한 춤 실력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크리에이터예요. 최근에는 ‘디바마을 퀸가비’ 세계관 속 ‘리얼가이즈’로 활동하면서 더 유명해졌고요. (🥋: “금강막기! 얍!!”)

똘똘 님은 단언컨대 올해 가장 핫한 크리에이터 중 하나지만 🔥, 오랜 기간 오픈리 게이로 활동하면서 다양성에 대한 메시지를 꾸준히 던져온 분이기도 해요. 우리 사회가 다양한 정체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곳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를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더 필요한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전해 왔거든요.

프라이드 먼스를 맞아 진행한 이번 인터뷰에서 뉴닉은 ‘콘텐츠 기획자 김똘똘’의 이야기에 집중했어요 ✍️. 개인 김똘똘, 인플루언서 김똘똘의 이야기를 넘어서,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30대 중반의 게이이자 퀴어 콘텐츠를 만드는 기획·제작자로서 김똘똘 님의 목소리를 담아 봤는데요. 다양한 퀴어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콘텐츠가 지금보다 더 많이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이를 위해 자신 같은 제작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어요. 뉴닉이 준비한 김똘똘 님과의 속 깊은 인터뷰, 지금 바로 확인해봐요!


Q. 안녕하세요, 똘똘 님! 뉴니커들에게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커밍아웃한 한국의 게이 유튜버, 크리에이터 김똘똘입니다 😉.

Q. 이 인터뷰를 통해 똘똘 님을 처음 만나는 구독자도 많을 것 같아요. 운영하고 계시는 ‘김똘똘’ 채널과, 평소 만들고 계신 콘텐츠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대한민국의 30대 중반 게이로서의 삶을 보여주는 게 주된 콘텐츠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웃음) 제 영상을 보는 사람들이 유쾌함과 재미를 느꼈으면 좋겠고, 저라는 사람이 최대한 러블리하게 비쳤으면 좋겠고, 성소수자나 LGBTQ+에 대해 거부감이 있던 사람들도 ‘저 사람이랑 친해지고 싶다’, ‘저런 친구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만큼 잘 먹고 잘사는 멋진 게이의 삶을 보여주는 게 제 채널의 방향성인 것 같습니다. ​

* LGBTQ+?: 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퀴어의 앞글자와, 거기 무수히 다양한 정체성을 긍정한다는 의미의 ‘+’를 더한 표현이에요. 성소수자와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주로 쓰여요.


대학생 김반석이 유튜브 크리에이터 ‘김똘똘’이 되기까지 🏃

Q. 유튜브에 ‘김똘똘’ 채널을 처음 만들게 되신 과정이 궁금해요. 원래 꿈이 방송인이 아니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채널을 만들게 되셨나요?

사실 처음부터 유튜브를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진로가 계속 바뀌었거든요. 어렸을 때 사실 저는 외교관이 되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문과로 진학하면 취업이 힘드니까 그냥 공대를 가서 취직을 잘해서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하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그 바람에 부응해 공대 전자전기공학과에 들어갔는데, 세상에 너무 재미가 없는 거예요. (웃음) ‘이거 그냥 때려치울 수도 없고, 어떡하지?’ 고민하다가 변리사라는 직업을 알게 됐어요. 제가 원래 법 공부에도 관심이 있어서, 변리사를 하면 내 전공도 살릴 수 있고 법조계로 갈 수 있겠다 싶었죠. 

그런데 제가 19살일 때부터 우리 집이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저는 20살 때부터 부모님이 한 번도 학자금을 내준 적 없었어요. 항상 대출을 받거나 장학금을 받으면서 다녔는데, 법 공부 하면서 학교 공부도 하면서 돈도 벌어야 하니까 너무 바쁜 거예요. 특히 군대 전역하고 나서는 학교 수업을 아침으로 다 몰아서 9시부터 수업을 듣고, 이후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또 짬 내서 법 공부도 하면서 정말 부지런하게 살았어요. 

그래도 이렇게 짬 내서 공부하는 걸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돈 버는 데 들어가는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블로그로 물건 파는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제가 외국어고등학교를 나왔으니까 영어랑 일본어가 되잖아요. 그래서 일본 야후 옥션에서 우리나라에 없는 희귀한 물건이나 한정판 수집품을 판매하다 보니 블로그가 굉장히 잘 됐어요. 연 사업 수익이 4800만 원이 넘으면 사업자 등록을 해야 하는데, 사업자 등록이 필요한 수준까지 성장한 거죠.

그렇게 법 공부를 하면서 블로그를 하는데, 블로그가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맛집 블로그, 패션 블로그 같은 걸 올리다 보니 파워 블로그도 되고, 2016년 기준 네이버 파워 블로그 국내 패션 분야 3위까지 올라가고 막 그랬어요. (웃음) 그때 다이아TV에서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보지 않겠냐고 처음 연락이 왔죠. 그땐 거절했다가 다음 해인 2017년에 다시 연락을 해서 유튜브 채널을 열게 됐어요. 

Q. 채널 초기에는 여행이나 댄스 커버 영상 같은 것도 많이 올리셨던 걸로 알고 있어요.

맞아요. 패션 관련 영상도 올렸고, 제가 워낙 춤추는 걸 좋아해서 댄스 커버 같은 것도 올렸죠. 그렇게 구독자 1만 명을 모으는 데 한 2년 정도가 걸렸어요.

Q. 채널에서 처음 공개적으로 커밍아웃을 하게 되신 계기는 뭐였나요?

어느 날 구독자 1만 명을 자축하는 라이브 방송을 켰는데, 제가 게이란 사실을 알고 있거나 의심하고 있던 구독자들이 계속 짓궂게 떠보는 질문을 던지는 거예요. ‘공격수예요, 수비수예요?’ 하는 식으로요. 그때 딱 ‘내가 구독자 만 명이 돼서 축하받는 자리인데, 여기서 내가 게이인지 아닌지가 왜 중요하지?’ 생각했어요. 이건 저의 가장 사적인 부분이고, 남한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맞아요, 저 게이고 골키퍼예요’ 하는 식으로 유쾌하게 받아 넘겼죠. 그렇게 우발적으로 커밍아웃을 했는데, 문제는 그 영상이 일파만파 퍼지면서 그걸 저희 엄마 아빠가 본 거예요. 그전에는 제가 집에 커밍아웃을 한 적이 없어서, 가족들이 난리가 났죠.

Q. 독실한 기독교 집안 출신이신 걸로 알고 있어요.

맞아요. 그래서 친척들도 난리가 나고, 엄마 아빠도 ‘내가 알아봤는데 누구누구 집사님이 동성애 치료를 받아서 성공했다더라, 너도 병원 한번 가봐라’하는 식으로 말씀하셨는데, 그때 제가 부모님에게 많이 실망했던 것 같아요. 나는 한 번도 엄마 아빠 속을 썩인 적이 없고 평생을 엄마 아빠가 설계한 대로 살아온 효자였는데, 원래 내 모습을 보여줬다고 나를 이런 취급한다는 것에 배신감이 들었죠. 그래서 한동안 엄마 아빠와 연을 끊고 지내기도 했어요.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엄마 아빠는 커밍아웃이라는 제 선택이 제 미래에 너무 큰 걸림돌이 될까 봐, 제가 너무 피폐한 삶을 살게 될까 봐 무서워서 연락을 못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 제가 ‘라디오스타’에 나가고 나서 생각이 많이 바뀌신 것 같아요. 아빠가 먼저 연락을 해서 ‘네가 행복해 보여서 다행이다’고 하셨거든요. 이후에 시간이 더 지나서 결국 관계가 해결이 됐고, 지금은 이전보다 훨씬 더 좋은 관계가 됐어요. 지금은 엄마 아빠가 제가 나오는 ‘홍석천의 보석함’ 영상 뜨면 제일 먼저 보고 ‘야, 이 사람 실물은 어때?’ 물어보기도 해요. (웃음)

Q. 커밍아웃 이후 콘텐츠를 만들 때 달라진 지점이 있나요? 

너무 많이 달라졌죠. 그전에는 저 자신을 숨겨야 하니까 제 모든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잖아요. 커밍아웃 전에 저라는 사람을 한 50% 미만으로 보여줬다고 한다면, 이후에는 훨씬 더 많이 보여줄 수 있게 됐어요. 그전에는 엄마 아빠한테 내가 게이란 사실을 들키는 게 가장 걱정이었는데, 더 이상 그런 걱정을 할 필요도 없고요. 유튜브에서 노락 딱지 붙는 것만 제외하면요. (웃음) 그전에는 유튜브를 나의 돈벌이 수단, 혹은 블로그라는 직업의 부업 정도로 생각했다면, 지금은 제 유튜브 콘텐츠가 제 삶의 일부분이 된 것 같아요. 내가 여행을 하면서 누구랑 어떤 수다를 떨었고, 어떤 감동적인 장면과 웃긴 장면이 있었는지 모두 담겨 있는 제 추억이 된 거죠.

그래서 요즘에는 ‘나는 되게 복 받은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사실 일하면서 잠도 잘 못 자고 너무 피곤하거든요.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스케줄이 몰릴 때도 많고요. 제가 작년까지는 영상 편집을 직접 다 하다가 올해부터 담당 PD님한테 맡기고 있는데, 그래도 제 성격이 PD님에게 다 맡기지는 못해요. 제 영상을 제가 오랫동안 만들어왔기 때문에 확실한 저만의 색깔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만큼 콘텐츠 제작에 대해서도 애정이 너무 깊어졌고, 제가 할 수 있을 때까지 이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아직 만들고 싶은 콘텐츠 아이디어도 너무 많고요. 커밍아웃을 한 이후에 직업 만족도와 자부심, 애정도도 굉장히 높아졌어요.

Q. 콘텐츠 아이디어가 많다고 하셨는데, 혹시 ‘위험부담은 조금 있지만 이런 콘텐츠에 도전해보고 싶다’ 하는 게 있으신가요?

위험 부담이 크지만 진짜 너무 해보고 싶은 콘텐츠가 있어요. 제가 전 남자친구랑 잠깐 공개 연애를 하면서 유튜브 콘텐츠를 올린 적이 있는데, 그때 서울부터 부산까지 15박 16일 국토 대장정을 했거든요. 그 친구랑 헤어지고 나서 영상은 다 내렸지만, 그때 그 기억이 아직까지 너무 강렬하게 남아있어요. 그 친구는 가방에 태극기를 달고 저는 무지개 깃발을 달고 다녔는데, 가는 곳마다 주민들이 다 저희를 너무 반겨주시고, ‘우리 청년들 국토종주하나 보다, 물 한 잔 마시고 가’ 하면서 환영해 주셨거든요. 가는 식당마다 서비스도 주시고, 공짜로 커피도 주시고, ‘내일 아침에 와서 밥 먹고 가라’ 하면서 챙겨주시기도 하고요. 

그때 우리나라가 정말 아름다운 나라구나, 내가 서울에서만 치열하게 살아서 그 아름다움을 몰랐구나, 깨달았어요. 그래서 그걸 확장한 버전으로 스페인 산티아고 성지순례를 가고 싶어요. 서울과 부산 사이는 300km 정도 되는데, 산티아고는 800km 정도 되거든요. 그럼 한 35일 정도를 내내 걸어야 하는데, 제가 35일 내내 거기 있으면 아마 경제적으로 많이 마이너스가 되겠죠? (웃음) 그래서 현실적으로 지금 당장 찍기는 힘들겠지만,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은 콘텐츠예요. 그 외에 약간의 연기 요소 같은 게 가미된 BL 콘텐츠도 염두에 두고 있고요.


슬픈 퀴어보다는 미치도록 유쾌한 퀴어가 되자!: 오픈리 퀴어 크리에이터로 살아간다는 것 🤸

Q. 똘똘 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유쾌함’과 ‘발랄함’인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똘똘 님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할 거고요. 평소 이런 애티튜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시는 부분이 있나요?

제 성격 중 유쾌함이 차지하는 비율은 한 70% 정도인 것 같아요. 그냥 제 기본적인 애티튜드 자체가 긍정적이고 유쾌한 건 맞거든요. 그런데 30% 정도의 다크함과 우울함은 저한테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많은 사람들한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고, 제 콘텐츠를 보는 사람들에게 제 감정도 전파가 되잖아요. 감정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여주면 다른 사람들도 불안해할 걸 아니까, 최대한 유쾌하고 즐겁고 행복한 모습 위주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이게 일종의 사명감으로도 이어지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그냥 ‘아 몰라, 재미있는 거 하자!’ 하면서 흥청망청 술 취해서 수다 떨고 노는 모습을 자주 올렸는데, 어느 순간 내가 생각보다 많은 사람한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 때문에 사람들의 게이에 대한 이미지가 고착화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말도 최대한 순화하려고 하고, 사람들이 유튜브에서 저를 볼 때 어떤 기분을 느낄지 신경 써서 행동하려고 해요.

Q. 그런 부분이 좀 힘들게 느껴지실 때는 없나요?

애티튜드가 좀 극과 극으로 나누어진 것 같기는 해요. 카메라에 비칠 때는 최대한 유쾌한 모습, 내가 비쳤으면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카메라 돌지 않을 때는 반대로 굉장히 차분해지고요. 예전에는 잔잔바리로 유쾌한 기분을 24시간 유지했다고 하면, 지금은 카메라가 없을 때는 최대한 에너지를 아끼려고 해요. 저에게도 에너지를 비축해야 할 때는 있으니까요. (웃음)

Q. 김똘똘 님의 그런 딥하고 침착한 면을 영상에 담아보려고 하신 적도 있나요?

평소에는 너무 진지한가 싶은 장면들은 빼고, 유쾌한 모습 위주로 편집하려고 해요. 그런데 그것도 결국은 방향성의 차이 같아요. 이 영상을 통해 뭘 보여주고자 하는가의 문제인 거죠. 

제가 최근에 만든 것 중에 가장 진지한 콘텐츠는 아마 미국 여행 시리즈였던 것 같아요. 미국 대사관이랑 같이 소수자 인권 관련 콘텐츠를 만들러 10팀이 같이 미국에 갔는데, 박막례 할머니·위라클 박위 형·시각장애인 유튜버 한솔·탈북 여성 유튜버·워킹맘 유튜버처럼 우리나라의 소수자라고 할 수 있는 분들과 함께 미국에 가서 미국에서는 소수자 문화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 배우는 콘텐츠를 만들었어요. 그때 제가 보고 느낀 걸 고스란히 구독자들에게 전달해주고 싶어서 열심히 영상을 만들었는데, 반응이 정말 좋았어요. 

그 영상을 보면 물론 중간중간 유쾌한 부분도 있고 끼 떠는 부분도 있는데, 사실 제 채널에서 보기 드물게 진지한 콘텐츠였거든요. 중간에 제가 울컥하는 모습, 다른 사람들이 눈물 흘리는 모습도 그대로 나오고요. 그걸 보면서 많은 구독자분들이 저도 진지할 땐 진지하고, 삶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주신 것 같아요. ‘이번 콘텐츠 너무 좋다’, ‘너무 많은 힘을 얻었다’는 피드백도 많이 받아서, 제가 가장 애정하는 콘텐츠 중 하나예요.

Q. 이번 퀴어퍼레이드(‘서울퀴어문화축제’)에도 참여하셨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공개적으로 참여를  결정하셨나요?

사실 제가 퀴어퍼레이드를 이번에 처음 가봤어요. 그동안 퀴퍼에 갈 기회도 많았고 가자고 하는 친구도 많았는데, 저의 존재 자체를 누군가가 부정하는 상황에 맞닥뜨리는 게 감당이 안 될 것 같은 거예요. 길을 걸어가는데 누가 갑자기 십자가를 들이대면서 ‘사탄아 물러가라’ 막 이러면서 나를 부정하는 상황을 직면할 준비가 안 됐던 거죠. 유튜브랑 인스타그램을 하면서 많은 악플도 겪어봤지만, 누가 내 면전에 대고 저주를 퍼붓는 상황을 견뎌낼 수 있을까 겁도 났고요.

* 퀴어퍼레이드?: 매년 여름 전국에서 열리는 성소수자들의 축제예요. 다양한 성 정체성과 지향성을 가진 이들이 모여 우리 사회에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알리고, 모두가 평등하게 어울리며 함께 즐기는 장이라고. (퀴어퍼레이드, 왜 매년 논쟁의 대상이 되는 거야? 👉 퀴어퍼레이드 2025의 모든 것)

그런데 이번에 정말 운이 좋게도 제가 평소 자주 사용하는 데이팅 앱에서 광고가 들어온 거예요. 그 앱 관계자분이 퀴어퍼레이드 때 차량 메인 퍼포먼스를 맡아주실 수 있냐고 물어보셨는데, 정말 고민을 많이 했어요. ‘잠깐만, 내가 이번이 퀴퍼 첫 데뷔인데 그게 트럭 퍼포먼스라고? 좀 빡센데? 보법이 너무 남다른데?’ 하면서요. (웃음) 다행히도 친한 드랙퀸 친구들을 섭외해서 3명이 같이 퍼포먼스를 하기로 했어요. 그 데이팅 앱의 6월 프라이드 먼스 캠페인 문구가 ‘어떤 사랑도 나답게’였는데, 그게 너무 마음에 들더라고요. 

이미지 출처: @g._van/Instagram

Q. 첫 퀴어퍼레이드 데뷔 경험은 어떠셨어요?

사실 제가 전날 일정이 늦게 끝나서 굉장히 피곤한 상태였거든요. 토요일 낮 3시에 집결해서 4시에 트럭 탑승을 했는데, 솔직히 처음에는 ‘2시간 동안 열심히 춤추고 빨리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 뿐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퍼레이드가 시작되니 좀 뭉클하더라고요. 트럭에 올라가서 보니 유모차 끌고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님들도 있고, 나이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분들도 있는 거예요. 이전에는 퀴어퍼레이드를 그냥 퀴어들의 축제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걸 보고 이거 굉장히 의미 있는 행진이구나, ‘우리도 똑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라는 존재를 알아주세요’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곳이구나 깨달았어요. 

제가 2호 차량에 있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그 뒤로 한 100m 정도의 줄이 있었대요. 제가 트럭 위에 올라가서 춤을 추는데 사람들이 뒤에서 계속 응원해 주고 박수도 쳐주고, 노래 나오면 따라 불러주고 하는데 그게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또 트럭이 지나갈 때 차도 옆에 있는 인도에서 퍼레이드에 참가하지 않은 일반인 분들도 많이 구경을 하시잖아요. 그분들에게 최대한 ‘우리 굉장히 행복합니다’ 보여주고 싶어서 손하트도 많이 하고, 선거운동 하듯이 계속 웃었어요. (웃음) 

중간에 퀴어에 반대하는 보수 기독교 세력이 나타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런 분들은 극히 드물어서 오히려 ‘우리가 이렇게 순조롭게 계속 행진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희를 반대하는 사람이 1명이면 응원하는 사람이 99명이었어요. 그래서 세상이 정말 많이 바뀌었구나,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정말 즐겁고 행복했어요. 원래는 퍼레이드 끝나고 집 가서 쉬려고 했는데, 행사가 끝나고 나서도 홍석천 님이랑 얼마 전에 커밍아웃한 아이돌 배인 님이랑 만나서 늦게까지 수다도 많이 떨었어요. 퀴어퍼레이드에 참석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더 다양한 퀴어들의 이야기를 위하여 👥

Q. 최근 예전보다 상대적으로 다양한 퀴어 콘텐츠들이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대도시의 사랑법’ 같은 드라마가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기도 하고요. 똘똘 님이 보시기엔 어떤가요? 

인터넷 댓글 창 같은 데 보면 ‘요즘 퀴어들 왜 이렇게 많아졌냐’는 댓글이 많거든요. 근데 저는 정확하게 딱 이렇게 얘기하고 싶어요. ‘우리는 많아진 게 아니고 원래 많았다’고. 물론 성소수자니까 성다수자에 비해 적을 수는 있겠지만, 그게 실제로 적은 수는 아니잖아요. 저는 주말에 이태원 클럽 자주 가는데, 가끔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우리가 정말 성소수자가 맞나?’ 싶기도 해요. (웃음) 어쨌든 스스로를 드러내는 사람들이 많아진 거지, 수 자체가 많아진 건 아니거든요. 

콘텐츠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남녀의 사랑을 다루는 게 지극히 당연한 것처럼, 다른 종류의 사랑을 다루는 것도 저에게는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거든요. 예를 들어 드라마에서 20살 연상 연하 이성애자 커플 간의 사랑을 다루는 건 자연스럽게 여겨지는데, 왜 남자와 남자가 사랑하는 건 자연스럽지 않게 여겨지는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퀴어적인 요소를 다루는 콘텐츠들이 많아지는 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우리 사회가 점점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세상에는 굉장히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또 그 안에는 다양한 사랑과 가족의 형태가 있잖아요. 그래서 우리 사회가 그런 것들을 인정하는 열린 세상으로 바뀌고 있고, 점점 좋은 쪽으로 발전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노예 제도도 있었고 남녀 차별도 지금보다 훨씬 심했지만, 사람들이 그게 옳지 않다는 걸 깨달은 뒤에 많은 변화가 있었잖아요. 우리 다 똑같은 사람인데 누가 더 우월하고 열등하고 그런 게 어디 있겠어요. 헌법에 있는 행복추구권에 따르면 누구나 다 행복해질 권리가 있잖아요. 그렇다면 저의 사랑도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하는 거고요. 그렇게 모두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갈 거라고 생각해요.

Q. 똘똘 님처럼 일상에서 퀴어의 삶을 계속 보여주는 분들이 그런 변화에 굉장히 큰 기여를 하고 계신 것 같아요.

요즘 새삼 그런 걸 느끼기는 해요. 저에게도 책임감이라는 게 생긴 거죠. 제 주위에는 인권센터 같은 곳에서 공익적인 인권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친구도 있지만, 제 활동은 사실 공익적이지는 않잖아요. 그냥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고, 어떻게 보면 굉장히 영리적이죠. 그래도 제 영리를 추구하면서도 어떻게 해야 이걸 좋은 방향으로 풀어나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요. 어쨌든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제 영상을 보고 영향을 받을 테니까요. 

그래서 많은 분들에게 제 삶이 최대한 유쾌하게 비쳤으면 좋겠어요. 동성애 반대하는 분들 보면 항상 10년 전, 20년 전 근거 자료를 들고 와서 ‘동성애를 하면 에이즈에 걸린다’, ‘괄약근 다 풀어지고 변실금 걸리고 인생 망한다’ 하면서 최악의 상황에 닥쳐 있는 사람들의 예시만 보여주잖아요. ‘앞으로 너희의 삶은 이렇게 될 거야’ 하면서요. 그런데 저는 1년 2년 시간이 지날수록 제 삶이 과거에 비해 너무 행복하다고 느끼거든요. 제가 얼마나 행복하고 제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지, 영상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봐줬으면 좋겠어요. 

Q. 영상에서 섹슈얼한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다루시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까요?

맞아요. 어떻게 보면 도전이기도 해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남자와 남자가 만나서 손 잡고 커피 마시고 사랑하고, 그런 아름다운 장면은 많이 나오잖아요. 그런데 저는 굉장히 사실적이고, 어떻게 보면 수위가 굉장히 높은 이야기들도 다루거든요. 어쨌든 ‘게이’라는 단어 자체가 굉장히 섹슈얼한 거잖아요. 호모 섹슈얼이라는 단어 자체가 내가 남자에게 성적으로 끌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콘텐츠에서도 그런 성적인 부분을 많이 다뤄보려고 해요. 유튜브의 정책과 밀당을 하면서 극히 사실적인 부분이나 TMI까지도 보여주는 거죠. (웃음)

한편으로는 사람들한테 ‘그냥 나도 똑같은 사람이다’ 보여주고 싶기도 해요. 예를 들어 1년 전에 중국 클럽에서 만났던 썸남이랑 재회했다, 나 숙소 이동한다고 했더니 얘가 자기 집 와서 자라고 했다, 이런 것처럼 극사실적인 얘기도 다루면서. 사실 퀴어가 아닌 사람들도 일상에서 그런 식으로 만나잖아요. 내 만남도 당신들의 만남만큼이나 아름답고 고결하다, 그런 걸 부딪히다시피 해서라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는 것 같아요.

Q. 다른 콘텐츠에서는 잘 다뤄지지 않는 똘똘 님만의 영역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그렇죠. 나만 할 수 있는 거니까. 집단마다 존재하는 문화 차이를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가끔가다 저를 불편해하시는 분들은 ‘게이들은 왜 항상 그렇게 문란하게 살아요?’라는 질문을 하기도 해요. 클럽이나 술집, 앱 같은 걸 통해서 상대를 많이 만나니까요. 그런데 저희는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가 불가능하잖아요. 이성애자 분들은 카페 옆자리에 있는 사람이 맘에 들면 번호 물어볼 수 있겠지만, 저희는 말을 걸 수도 없어요. ‘괜히 호감 표시했다가 불쾌해하면 어떡하지?’하는 걱정부터 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지향성이 보장된 사람을 만나야 하다 보니 앱을 이용할 수밖에 없고, 번개 같은 걸로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어요. 오프라인에서는 게이 클럽이나 종로 게이 술집 같은 곳에 자주 갈 수밖에 없고요.

게이들이 처음 만났을 때 ‘나는 탑(top)이다’, ‘나는 바텀(bottom)이다’ 하면서 자기소개를 하잖아요. 그걸 보면서도 ‘왜 초면에 성관계 취향을 물어봐? 정말 문란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저희한테는 이게 아주 중요한 문제거든요. 내 성향이 뭐냐에 따라 성관계에서의 포지션도 달라지지만, 일상적인 관계 속의 역할도 달라지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요즘 많이 얘기 나오는 테토남, 에겐남 같은 구분이랑도 비슷한 거죠. (웃음) 이미 데이트를 여러 번 했는데 둘이 포지션이 안 맞으면 상황이 곤란해질 수도 있고요. 그래서 이건 일종의 교통정리 같은 거다, 생각하면서 영상에도 탑 바텀 얘기 많이 해요. 저런 이유로 탑 바텀을 물어보는 거구나, 게이들의 문화는 저렇구나 하고 보시는 분들이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요.

Q. 콘텐츠 제작을 계속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똘똘 님의 원동력은 뭔가요?

그냥 행복감인 것 같아요. 추상적이고 좀 오그라드는 것 같긴 한데, 저는 뭔가를 할 때 최대한 행복한 거 위주로 하려고 하거든요. 이거 너무 하기 싫고 내가 불행할 것 같다, 하면 안 하려고 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런데 콘텐츠를 만들 때는 이걸 하면 너무 재미있고 행복할 것 같고, 또 누가 이걸 보고 재미를 느끼면 더 뿌듯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지금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지 7년 정도 됐는데, 중간에 슬럼프가 올 때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슬럼프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콘텐츠 만드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사실 예전에는 ‘유튜브 젊고 예쁠 때나 하는 거지. 나중에 나이 먹으면 채널 닫고 어디서 요양이나 하면서 살아야겠다’ 생각도 했거든요. 그런데 홍석천 선배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홍석천 선배가 저랑 딱 20살 차이가 나는데, 지금도 클럽에서 리즈 시절처럼 노시거든요. (웃음) 그거 보면서 ‘내가 마음먹기 나름이겠다’ 생각하게 됐죠.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일 하면서 살면 은퇴할 필요가 뭐가 있나,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성공한 삶 아닌가 생각해요. 그래서 앞으로도 최대한 많은 친구들을 새로 사귀고, 즐거운 추억 쌓고, 다양한 장소를 방문해서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계속 살아갈 것 같아요. 그게 저에게 가장 큰 행복감을 주니까요.

Q. 앞으로 ‘이런 퀴어 콘텐츠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게 있나요?

저 같은 친구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연예인이 아닌데 커밍아웃을 하고 활동하는 사람들. 물론 연예인 중에서도 커밍아웃을 하는 분들이 점점 많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 태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됐는데, 여기 크게 이바지한 게 셀러브리티 분들이었어요. 그분들이 대동단결을 해서 커밍아웃 물결이 부니까 이슈가 되면서 법제화까지 이어진 거죠.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굉장히 보수적인 분위기지만, 용기를 내서 커밍아웃을 하고 스스로를 드러내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퀴어들의 존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날도 올 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다양한 퀴어들이 등장하는 콘텐츠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저처럼 유쾌한 게이들도 나오고, 좀 진지한 게이들도 나왔으면 좋겠고요. 지금보다 더 다양한 모습의 게이 친구들이 많아 나와주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끼도 많고 ‘여성스럽다’고도 표현할 수 있는 타입이지만, 실제로는 운동선수처럼 정말 남성적이고 티 안 나는 게이들도 많거든요. 그렇게 다양한 친구들이 커밍아웃을 하고, 자연스러운 본인의 모습 그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콘텐츠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제가 ‘대도시의 사랑법’이라는 작품을 정말 좋아하는데요. 소설 저자인 박상영 작가님이 제 대학교 선배기도 하고, 드라마 개봉 전에 자문 요청도 받기도 해서 저와 연이 좀 깊어요. 그런데 제가 ‘대도시의 사랑법’ 영화가 개봉했을 때 작가님 초대를 받고 VIP 시사회에 가서 엄청 많이 웃고, 또 웃었어요. 영화 내용이 굉장히 유쾌했는데 또 너무 현실적이어서, 감추고 싶었던 저의 어두운 면을 끄집어내서 까발려진 것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드라마도 보면 대한민국에서 게이로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상황 4개를 모아 놨잖아요. (웃음) 남자친구가 죽기도 하고, 만나던 사람이 알고보니 동성애혐오적인 논문을 쓰는 사람인 이야기도 있었고, 에이즈에 걸리기도 하고, 유부남한테 속기도 하고. 그걸 보면서 ‘게이 인생 정말 박복하다’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사실적이고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서 저에게는 정말 애정이 가는 작품이에요. 그렇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다양하고 현실적인 퀴어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면 좋을 것 같아요.


by. 에디터 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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