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온라인 퀴어퍼레이드를 만든 기획자들 🏳️🌈: 조소담, 김헵시바 인터뷰
작성자 고슴이의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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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온라인 퀴어퍼레이드를 만든 기획자들 🏳️🌈: 조소담, 김헵시바 인터뷰


매년 6월마다 전국을 무지갯빛으로 물들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알고 있나요? 도심 한가운데를 무지개색 퀴어 플래그 🏳️🌈로 뒤덮는 축제, 바로 퀴어퍼레이드인데요. 정식 명칭은 ‘퀴어문화축제’지만, 축제 마지막에 참가자들이 거리를 행진하는 퍼레이드가 상징적이라 ‘퀴어퍼레이드’라고 더 많이 불려요. 성소수자 당사자뿐 아니라 다양한 성별·지향성·지역 등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우리 사회에 알리고, 함께 모여 즐기는 축제인 것 🎉.
그리고 여기, 퀴어퍼레이드의 물결을 오프라인을 넘어 온라인으로까지 연결한 사람들이 있어요. 코로나19로 모든 오프라인상의 움직임이 정지됐던 2020년, ‘온라인 퀴어퍼레이드’를 처음으로 기획한 닷페이스 팀의 조소담 님, 김헵시바 님인데요. 이들은 퀴어퍼레이드의 경험을 계속 이어갈 수 없을까 고민한 끝에, 인스타그램을 통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형태의 온라인 캠페인을 기획하게 됐다고. 7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어서 행렬에 참여하는 등 캠페인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는데요 ❤️🔥. 커스텀이 가능한 귀여운 캐릭터 디자인, 다양한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아이템이 화제가 되면서 ‘누가 누가 캐릭터 더 잘 꾸미나’로 참가자들 사이에 경쟁이 붙기도 했어요.
6년째인 올해를 끝으로 온라인 퀴어퍼레이드는 막을 내려요. 6년 동안 이어진 행렬이 마무리되는 지금, 온라인 퀴어퍼레이드의 시작을 함께했던 기획자 두 분을 모셔 이야기를 들어봤는데요.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을 무지갯빛으로 물들인 캠페인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 함께 살펴봐요!


온라인 퀴어퍼레이드가 처음 만들어지기까지 🤝
Q. 반갑습니다, 소담 님과 헵시바 님. 이 인터뷰를 읽는 뉴니커들 중에는 ‘온라인 퀴어퍼레이드’(이하 온라인 퀴퍼)가 뭔지 잘 모르는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요. 온라인 퀴퍼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헵시바: 온라인 퀴퍼는 2020년 코로나19로 오프라인 퀴어퍼레이드(공식 명칭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릴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열린 캠페인이에요. 오프라인 퀴퍼의 맥락을 어떻게 하면 온라인으로 가져올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맨 처음 기획을 하게 되었는데요. 1·2회 온라인 퀴퍼는 닷페이스에서 열었고, 이후 닷페이스가 해산한 뒤에는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측에 저작권이 기증돼서 6년 동안 열린 캠페인이에요.
Q.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20년, 어떻게 처음 온라인 퀴퍼를 기획하게 되셨나요?
소담: 닷페이스 구성원들은 창업 후 2016년부터 매년 오프라인 퀴퍼에 참여했어요. 부스도 차리고, 재미있는 이벤트도 하고 저희 매체에게는 연례행사처럼 참여하는 축제였는데, 2020년에 코로나19가 터진 다음 오프라인 퀴퍼가 열리지 않게 된 거예요. 마침 그때 저희 사무실도 퀴퍼가 주로 열리던 시청 쪽이었는데, ‘우리 원래 이 시즌이면 퀴퍼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데 너무 허전하다’는 얘기를 저랑 헵시바가 나눴어요. 그러다 나이키에서 진행한 에어맥스 줄서기 캠페인을 보고 ‘우리도 이런 걸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가 나온 거예요. 퀴퍼를 온라인 광장으로 옮겨올 수 있지 않을까, 오프라인에서 다 같이 행진을 하는 경험을 온라인에서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래서 신나서 작당 모의를 하는 채널에 이 얘기를 올렸고, 프로젝트가 시작됐어요.
Q. 닷페이스는 원래 영상 중심 작업을 하는 팀이다 보니, 온라인 참여 캠페인을 기획하는 게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소담: 닷페이스가 그동안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험을 연결하는 프로젝트들을 해오긴 했지만(Here I Am 캠페인 등), 그래도 영상을 만드는 걸 중심으로 짜인 팀이다 보니 좋은 파트너를 찾아서 기획을 실현하는 게 현실적이겠다 싶었어요. 그렇게 ‘스투키 스튜디오’라는 파트너를 만나게 됐고요. 함께 캠페인을 만드는 과정에서 정말 기분 좋은 협업의 경험을 했고, 서로 강점이 있는 부분을 보태주면서 기획 자체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었죠.
Q. 2020년 처음 온라인 퀴퍼가 열렸을 때의 슬로건이 ‘우리는 없던 길도 만들지’였잖아요. 이 슬로건의 의미는 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정해진 건지 궁금해요.
헵시바: 다 같이 ‘슬로건 잡자!’ 하면서 메신저에 의견을 쭉쭉 달다가, 퍼레이드의 맥락을 보여줄 수 있는 노래 가사 같은 걸 사용하면 좋겠다는 말이 나왔어요. 그러다 한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찾았는데, ‘이거 진짜 퀴어 퍼레이드를 표현한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서사가 딱 맞아떨어지더라고요. 중간에 ‘(우리는)없는 길도 만들 수가 있지’라는 가사가 있었는데, 거기서 영감을 받아 슬로건을 만들었어요. 퀴퍼의 프라이드 정신도 표현할 수 있으면서, 오프라인 퀴퍼를 대체하는 온라인 퀴퍼의 맥락도 담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소담: ‘길’이라는 테마도 퀴어퍼레이드의 컨셉과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오프라인에서 행진할 때는 광화문이 있는 6차선 도로를 다 열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행진을 하잖아요. 그렇게 길을 열어내는 경험을 온라인에서도 구축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디자인을 할 때도 오프라인 퀴퍼만의 그런 느낌을 담을 수 있도록 노력했고요. ‘온라인 퀴어퍼레이드’ 해시태그를 타고 들어가면 딱 행진 중인 도로처럼 보일 수 있도록 배경이나, 도로 화살표 같은 디자인적 요소를 많이 신경 쓰는 식으로요. 그리고 ‘우리’라는 단어도 꼭 사용하고 싶었어요. ‘퀴어는 없던 길도 만들지’가 아니라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해서, 이 행진에 함께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을 담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요.
Q. 그 뒤로도 매년 슬로건이 계속 바뀐 것으로 알고 있어요.
소담: 매년 그해의 맥락에 맞는 슬로건을 만들고 싶어서 계속 새로운 문구를 만들었어요. 2021년에는 고 변희수 하사 사망 이후에 추모의 의미를 담아 ‘너의 내일을 우리가 지킬게’라는 슬로건을 만들었고, 2021년에는 ‘우리는 어디서든 길을 열지’라는 슬로건을 만들었고요. 여기까지가 닷페이스가 진행했던 캠페인이었고, 2022년부터는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에서 캠페인을 이어받아 오프라인 퀴퍼의 맥락과 잘 맞아떨어지는 슬로건을 주로 만들어 사용하셨던 것 같습니다.

Q. ‘온라인 퀴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겟 레디 윗 미(Get Ready With Me)’ 컨셉과 색색의 알록달록한 캐릭터 비주얼인 것 같아요. 이런 디자인 컨셉은 어떻게 결정하게 되셨나요?
헵시바: 처음에는 겟 레디 윗 미 컨셉 없이 그냥 다양한 정체성 플래그 색을 적용한 몬스터 같은 형태의 캐릭터를 떠올렸어요. 근데 그걸 본 동료들이 ‘여기에서 중요한 건 이 캐릭터에 자신을 이입할 수 있느냐인데, 이 캐릭터는 그게 좀 어려울 것 같다’는 피드백을 줬어요. 온라인 경험과 오프라인 경험을 이어주기도 어려울 것 같다는 의견도 있었고요.
그래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자신을 이입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기로 했는데, 그냥 기본 아바타 만들듯이 평범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퀴퍼에 갈 때의 신나고 특별한 마음을 담고 싶었어요. 저희가 축제나 퍼레이드에 갈 때면 평소보다 나를 더 특별하게 꾸미고, 드러내고 싶어 하잖아요. 그래서 그런 걸 보여줄 수 있는 특이한 아이템들을 많이 추가하게 됐죠. 보통 아바타를 꾸밀 때 여자 아이템과 남자 아이템이 암묵적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런 분류에서 벗어나는 선택지도 많이 넣으려고 했고요. 민머리 스타일이나 분수 머리, 불꽃 머리가 추가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어요.
Q. 공식으로 만들어주신 아이템들 외에, 다른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만든 이미지도 나중에 많이 추가됐잖아요. 기억에 남는 아이템이 있나요?
헵시바: 맞아요. 사실 이미지는 사용자가 마음대로 쉽게 가공할 수 있는 형태잖아요. 간단한 핸드폰 편집 기능으로도 만들 수 있고요. 처음에는 저희가 만든 선택지 안에서 자신을 구현하는 게 어렵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는데, 막상 실제로 캠페인이 시작되니 자기 캐릭터를 창의적으로 커스텀해서 참여하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랐어요.
소담: 자기 반려동물이랑 같이 행진하는 이미지를 만들어서 올린 분도 계셨고, 드랙퀸 나나 님은 캐릭터에 자기 얼굴을 넣기도 하셨어요. 사물놀이패 동아리 분들이 연달아서 이미지를 만들어 올리시기도 하고, 퀴퍼에는 얼음물이 빠질 수 없다며 얼음물을 올리신 분도 계셨고요. (웃음) 제가 기획한 대로 캠페인이 흘러가지 않아서 오히려 더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엄청 고퀄리티로 매년 캐릭터를 커스텀해서 올리는 계정이 따로 생기기도 했고요.

Q. 오프라인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퀴퍼를 온라인으로 옮겨오면서 특별히 신경 쓰신 부분이 있었나요?
소담: ‘온라인에서 하는 기획이니까 뭔가 특별하게 하자!’보다는, 사실 조심스러운 마음이 더 컸어요. 온라인 광장이라는 건 굉장히 통제가 어렵고, 누군가를 위협하는 내용이 올라올 수도 있잖아요. 자기표현을 SNS상에서 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는 분들도 많고요. 그래서 맨 처음 캠페인을 기획할 때는 이런 부분을 주로 걱정했고, 어떻게 하면 문제점을 서포트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많이 했어요.
Q. 실제로 누군가를 위협하는 게시물이 올라온 적도 있었나요?
소담: 시위의 의미를 담은 의도적인 어뷰징도 있었어요. 러시아에서 퀴어가 학대당하고 있는 사진이나, 진짜 문제적인 게시물도 있었고요.
헵시바: 그런 어뷰징에 대응하는 의미로 중간에 ‘우리의 연대는 혐오보다 강하다’는 깃발 아이템을 추가하기도 했어요. 게시물을 신고해서 내리거나 통제할 수도 있지만, 사실 가장 좋은 건 거기에 꺾이지 않고 맞서서 목소리를 내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게 현실 속의 광장과 더 비슷한 모습이기도 하고요. 한편으로는 해가 갈수록 인스타그램에 맞춰져 있는 형식에서 오는 한계가 크게 느껴져서, 나중에는 인스타그램 의존도를 줄이려고 노력하기도 했어요. 그 전엔 인스타그램이 메인 행렬이었다면 이후에는 웹사이트에 아카이빙되는 행렬의 비중을 늘리는 방식으로요. 그러다보니 사람들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침투하기는 점점 어려워진다는 단점도 있었지만요.
소담: 변희수 하사 추모를 위해 만들었던 ‘너의 내일을 우리가 지킬게’ 캠페인은 그래서 SNS가 아닌 웹사이트를 중심으로 진행됐어요. 캐릭터를 만들면 웹사이트에 아카이빙이 돼서 행렬을 볼 수 있는 식으로요. SNS에 자신의 정체성이나 의견을 올리는 데에 부담감을 갖고 계신 분들, 혹시 공격을 받을까 봐 불안하신 분들을 위한 선택이기도 했고요.

‘특이한(Queer)’ 존재를 보편적인 존재로, 비일상을 일상으로 만드는 일 💪
Q. 온라인 퀴퍼가 올해로 벌써 6년째잖아요. 캠페인이 이렇게 오래 이어질 거라고 예상하셨나요?
헵시바: 처음부터 행진 배경을 무지개 색깔로 다 채우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로 시작한 거라, 6년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그런데 진짜로 6년을 하게 될 줄은 생각 못 했죠. (웃음) 지금은 오프라인 퀴퍼랑 온라인 퀴퍼가 함께 열리고 있지만, 맨 처음에는 오프라인 퀴퍼를 대체하는 맥락으로 생각했으니까요. 코로나19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함께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소담: 저도 비슷했어요. 코로나19 시기에 ‘우리는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나누기 위해 만든 기획이었으니까, 코로나19가 끝나고 오프라인에서 다시 퀴퍼가 시작되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온라인 퀴퍼 말고도 연결감을 나눌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이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Q. 오프라인 퀴퍼가 시작된 이후에도 온라인 퀴퍼가 계속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요?
소담: 맨 처음 기획 의도를 짤 때부터 ‘퀴퍼를 일상에 침투시킨다’, ‘즐겁고 귀여운 경험으로 자연스럽게 다가간다’는 목표가 있었어요. 퀴퍼에 가서 직접 자기 사진을 올릴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럴 수 없는 환경에 있는 사람도 많잖아요. 아니면 그냥 더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방식으로 메시지를 나누고 싶은 사람도 있을 수 있고요. 그런 분들에게 온라인 퀴퍼가 굉장히 적합한 수단이었던 것 같아요.
저희가 2번째 온라인 퀴퍼를 할 때 오프라인 광고를 걸었거든요. 오프라인 광고를 걸 때는 원래 심의가 많은데, 저희는 사실 슬로건만 봤을 때는 이게 뭔지 잘 모르잖아요. (웃음) 그냥 캐릭터들이 행진하고 있고, 슬로건도 귀엽고 하니까 정치적인 내용으로 심의하기에 애매한 부분이 있었고, 결국 무사히 통과가 됐어요. 그래서 대로변 전광판이나 홍대입구 근처 버스정류장, 여러 지하철역 등 공개적인 곳에 퀴어에 대한 연대와 지지의 의미를 담은 광고를 걸 수 있었어요. 사회에서 타자화되거나 배제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서는 방식이 사람들에게 어필이 됐던 것 아닌가 생각해요.
Q. 코로나19가 끝난 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험이 서로 이어지는 모습도 굉장히 인상적이었을 것 같아요.
소담: 코로나19가 끝난 뒤인 2022년 오프라인 퀴어퍼레이드의 슬로건이 ‘우리의 길은 계속되지’였는데, 그때 퀴퍼에 온라인 퀴퍼 포토월이 세워졌거든요. 사람들이 그 앞에 엄청 길게 서서 사진을 찍는데, 너무 뿌듯한 거예요. 온라인에서만 하던 캠페인이 오프라인으로 나와서도 즐길 수 있는 축제의 한 요소가 됐구나 싶어서 기뻤고, 온오프라인이 연결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어요.
이전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긴 했어요. 2회차 퍼레이드 때 ‘어디서든 온라인 퀴퍼를 보여주겠다’ 하는 생각에 여기저기 광고도 걸고, 포스터도 붙이고 했었거든요. 그때 동네 서점이나 미용실, 학교, 병원, 카페 등 다양한 곳에서 온라인 퀴퍼 포스터를 보내달라고 하셨어요. 여기저기 퀴퍼 포스터가 붙어있는 사진을 많이 보내주시기도 했고요. 기획을 시작할 때부터 이 포스터가 붙어있는 곳, 이 광고가 보이는 곳 모두가 우리가 열어낼 수 있는 공간들이다,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는데, 실제 결과로도 잘 이어진 것 같아서 재미있었어요.

Q. 맨 처음 온라인 퀴퍼를 기획할 때와 지금, 생각이 달라진 지점이 있는지 궁금해요.
헵시바: 이건 제 개인적인 작업에 대한 고민이기도 한데, ‘무해한 방식으로 말을 거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지나고 보니 많이 남는 것 같아요. 물론 온라인 퀴퍼는 그걸 일종의 효과적인 전략으로 채택한 거지만, 사실 온라인 퀴퍼에서 보이는 무해하고 귀여운 퀴어들의 모습은 제가 일상에서 감각하는 퀴어함과는 많이 다르거든요. 퍼레이드니까 잔뜩 셋업하고 웃으면서 거리로 나가지만, 실제로 퀴어로 산다는 게 발랄한 긍정성만을 가진 일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올해 퀴퍼에는 다양한 감정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이런 아쉬움을 해결해보려고 했어요. 제 주변, 특히 30대 퀴어 친구들이랑 얘기를 하다 보면 ‘퀴퍼 이제 피곤해서 못 나가겠다’ 하는 말을 많이 하거든요. 너무 사람 많고, 덥고, 청소년기 맨 처음 퀴퍼에 갔을 때 느꼈던 고양감이 조금은 익숙해지기도 했고요. 굉장히 많은 퀴어들이 그런 복잡한 생각을 가지고 퀴퍼에 참여하는데, 그런 모습을 캐릭터에도 담아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피곤해요’ 감정을 만들었어요. 화장 잔뜩 하고 신나 보이는데 눈 밑은 퀭한 느낌으로. (웃음) 그렇게 간단한 방식으로 고민을 풀어보려고 하긴 했지만, 그래도 앞으로는 조금 더 뾰족한 이야기를 다뤄보고 싶어요. 모두가 듣기 쉬운 방식으로만 얘기하기보단, 조금 어렵더라도 있는 그대로 얘기해보고 싶은 거죠.

Q. 온라인 퀴퍼의 가장 멋진 지점은 이미 사회 이곳저곳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잘 이야기되지 않는 사람들, 지극히 평범하지만 낯설게 여겨지곤 하는 사람들을 일상에서 드러내 보여준다는 데에 있는 것 같아요. 온라인 퀴퍼를 통해 퀴어퍼레이드, 혹은 퀴어 이슈 자체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온라인 퀴퍼가 어떤 느낌으로 다가갔으면 하나요?
헵시바: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뭐야, 재밌어 보이는데? 나도 끼고 싶다’ 하는 느낌으로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약을 먹기 전에 사탕 먼저 주듯이요. (웃음) 또 지금 제가 학교에 다니면서 만나는 학우들이 거의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중반생들인데요. 그중에 실제로 초등학생 때부터 닷페이스를 보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많아서 놀랐어요.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미디어로 닷페이스를 기억하고 계신 거죠. 그렇게 온라인 퀴퍼도 그때 당시의 우리를 기억하게 해주는 노스탤지어, 공동의 기억 같은 것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지금 노년이 된 레즈비언분들이 1970년대의 ‘샤넬 다방’을 기억하는 것처럼요.
소담: 제 주위에 오프라인 퀴퍼에 5년 동안 참여했지만 그 얘기를 잘 안 하던 친구가 있었거든요. 사진도 오프라인 퀴퍼 관련 사진은 안 올리고, 온라인 퀴퍼 게시물만 올리고요. 그런데 어느 날 그 친구가 SNS에 커밍아웃하는 내용을 올리고, 퀴퍼에 참여한 자기 자신의 사진도 올리더라고요. 최소한 자기 주위에 SNS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만큼은 자신이 퀴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던 거죠.
온라인 퀴퍼를 통해 퀴어라는 세계를 처음 알게 된 분들이 있다면, 최소한 평소 내 생활 반경 안에 퀴어가 한 사람쯤은 있다고 가정하고 얘기를 하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예를 들면 당연한 듯이 옆 사람에게 ‘너 남자친구 있어?’ 하는 질문을 하지 않는 거죠. 내가 있는 이 방 안에 퀴어가 최소한 한 명은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평소의 정치적 감각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온라인 퀴퍼의 경험이 이런 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부분도 있으신가요?
헵시바: 저는 사람들이 다 자기 안의 퀴어함을 발견했으면 좋겠어요. 진정한 앨라이(Ally,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사람)십은 나 자신의 문제와 퀴어 담론이 어떻게 교차하는지 발견할 때 생겨난다고 생각하거든요. 성소수자를 배려하거나 배제적인 말을 하지 않는 걸 1단계라고 한다면, 최종 단계는 좀 거친 표현일 수도 있지만 퀴어가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스스로를 성소수자로 정체화하는 일일 수도 있고, 내가 이성 파트너를 만나고 있지만 그 안에서 이성애의 관습 같은 것을 바꿔보는 일이 될 수도 있겠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삶이 조금씩 퀴어해져갔으면 좋겠어요.

6년 간의 무지갯빛 행진을 마무리하며 🌈
Q. 온라인 퀴퍼가 올해로 여정을 마무리한다고 들었어요. 온라인 퀴퍼의 종료를 결정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헵시바: 딱 하나의 뾰족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처음에는 오프라인 퀴퍼를 대체한다는 맥락이 있었으니 ‘이젠 해야 할 일을 다 완수했다’는 느낌도 있었고, 온라인 퀴퍼가 디자이너랑 개발자 의존적인 프로젝트다 보니 매해 거기 맞는 예산을 찾아서 집행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도 있었어요. 작년에는 인건비를 책정하기 어려워서 공동 주관 형태로 진행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온라인 퀴퍼를 다른 방식으로 이어가볼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그건 새로운 기획으로 따로 연결시키기로 하고, 온라인 퀴퍼는 종료하자는 결정을 내리게 됐어요. 사실 처음에는 종료 공지를 할까 말까도 고민했는데, 종료라고 미리 말을 안 하면 너무 많은 분들이 서운해하실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종료 공지가 나가게 되었습니다.
Q. 말씀을 듣다보니, 온라인 퀴퍼가 끝났다고 해서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온라인 퀴퍼는 끝났지만, 앞으로의 상황에 맞는 새로운 기획이 또 생겨날 테니까요. 두 분은 앞으로 어떤 움직임이 생겨날 거라고 보세요?
헵시바: 뭐가 됐든 제도적인 변화도 함께 따르면서 좀 신나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어요. 지금 몇 년째 차별금지법 제정하자는 얘기가 나오는데 진척이 없다 보니, 온라인 퀴퍼도 발랄한 톤을 띠고 있긴 하지만 그 안에 답답함이나 아쉬움 같은 것들이 계속 쌓여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도적인 변화를 통해 동력을 공급받으면 조금 더 신나게 일을 꾸려볼 수 있지 않을까, 기본적인 수준의 합의를 만들어 놔야 그 위에서 조금 더 다양하고 뾰족한 얘기들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아주 기본적인 수준의 얘기를 호감 가는 방식으로만 전하는 데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Q. 말씀하신 것처럼, 몇 년째 제도적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새로운 움직임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은 사람이 하고 있을 것 같아요. 페미니즘이나 퀴어 담론이 이야기되는 방식이 몇 년 전과는 크게 달라졌기도 하고요.
소담: 저도 맨 처음 온라인 퀴퍼를 만들 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고민의 초점이 많이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우리가 여기 이렇게 많이 있다’ 보여주는 걸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거든요. 퀴어 의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맞서서 싸우고 싶은 마음도 컸고요. 그런데 1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온라인상으로 수를 모아서 보여주는 것이 꼭 좋은 것일까 하는 고민도 들어요. 오히려 우리 안에서 이야기되어야 할 갈등이나 고민 같은 것들, 어쩌면 더 퀴어하고 다양한 이야기의 시작점이 될 수 있는 것들을 가벼운 자기표현 정도로 덮어버린 것 아닐까 하는 아쉬움도 남고요.
우리 안에서 더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게 하고, 토론하게 하고, 결국 끝까지 서로 동의하지 못한다고 해도 계속 함께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나가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여성’이나 ‘퀴어’라는 하나의 확실한 정체성을 갖고 모인 공동체도 더 많이 필요하고, 더해서 정말 일상생활을 함께하는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갖고 있는 관습이나 서로를 대하는 방식 같은 것들을 더 좋은 방향으로 바꿔나갈 수 있을까, 어떻게 퀴어하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사회 변화는 제도적인 변화를 통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그런 문화적이고 관계적인 변화를 통해 만들어지기도 하잖아요.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서로와 관계 맺으면서 일으킬 수 있는 변화들에 주목하는 것도 충분히 혁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뉴니커들에게도 이 인터뷰가 각자가 서 있는 위치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Q. 마지막으로 지난 6년을 함께해온 온라인 퀴퍼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소담: 온퀴야, 고생했다! (웃음)
헵시바: 저도요. 온퀴한테 고생했다고 해 주고 싶어요. 같이 일했던 동료들도 많이 생각나고요. 제가 맨 처음 PM(Project Manager) 일을 시작했을 때,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동료들이 다 자기 일처럼 도와줬거든요. 그래서 온퀴가 동료들과 다 같이 둥기둥기 키운 자식 같기도 해요. (웃음) 온라인 퀴퍼에 참여한 여러 사람들이 남겨준 말들도 생각나고요. 온라인 퀴퍼는 끝나도 동료들, 참여자분들은 여전히 있으니까, 앞으로 제가 뭘 할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떤 멋진 일이든 벌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담: 축제가 벌어지고 행렬이 시작되려면 그걸 만드는 사람들의 수고도 필요하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건 그 행렬을 같이 해주는 사람들이잖아요. 저희가 ‘너의 내일을 우리가 지킬게’ 캠페인을 할 때 홈페이지 버그가 난 적이 있었어요. 사람들의 캐릭터가 맨 처음 행렬에 추가될 때 부드럽게 스윽 나타나야 하는데, 번쩍번쩍거리면서 순간 이동하듯이 계속 나타나는 버그가 생겼거든요. (웃음) 새벽에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그게 너무 감동적인 거예요. 사람들이 계속 끊이지 않고 나타나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가장 밝고 기쁜 축제 같은 날 말고 이렇게 어둡고 힘든 날에도 촛불을 들고 함께해주는 사람들이 있구나, 싶어 고맙기도 했고요. 언제나 그 행렬에 참여해 주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겪어준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그분들에게도 온라인 퀴퍼가 의미 있는 시간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