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의 탐조법: MZ세대 사이에서 '탐조'가 새로운 취미로 떠오르고 있는 이유 🦆🔭
작성자 고슴이의비트
비욘드 트렌드
대도시의 탐조법: MZ세대 사이에서 '탐조'가 새로운 취미로 떠오르고 있는 이유 🦆🔭

최근 제 주위에서 자주 들려오는 단어가 있어요. 바로 ‘탐조’, 새 구경인데요. 얼마 전 친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요즘 탐조에 빠졌다며 잔뜩 얘기를 늘어놓더라고요. 새를 보러 다닐 때 쓰는 카메라, 망원경 소개는 물론, 최근에 찍은 새 사진을 자랑하느라 한참 이야기가 이어졌는데요. 놀라운 건 요즘 이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점이에요. 등산복을 차려입은 중장년층 마니아들이 주를 이뤘던 예전과 달리, 최근 탐조는 2030세대가 중심이 되어 조금 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취미로 변화하고 있거든요. 이에 따라 ‘탐조여행’, ‘탐조동호회’, ‘탐조입문’ 등의 키워드도 함께 뜨는 중이고요.
오늘 ‘비욘드 트렌드’는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 알음알음 퍼져나가고 있는 ‘탐조 유행’에 대해 이야기해 볼게요.

훑어보기 👀: MZ세대가 쌍안경을 들고 새 구경을 다닌다고요? 🦆

이 글을 읽는 뉴니커들 중에는 ‘탐조(探鳥)’라는 말 자체가 낯선 뉴니커도 많을 거예요. 탐조는 말 그대로 ‘새를 찾는다’는 뜻인데요. 영어로는 보통 ‘birdwatching’이라고 쓰고, 자연 상태에 있는 새의 모습이나 울음소리, 행동을 관찰하는 일을 말해요. 관광객을 위해 인공적으로 조성된 환경에서 새들이 살아가는 동물원·새 공원 등과 달리,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새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 관찰하는 거예요. 상황에 따라 새들이 사용할 수 있는 집을 만들어주거나, 먹이를 줄 때도 있는데요. 이는 각각 둥지 만들기, ‘버드 피딩(bird feeding)’이라고 한다고.
사실 탐조는 오랜 시간 중장년층이 주로 즐기던 취미였어요. 전신을 꼭꼭 가린 등산복에 햇빛 가리개를 쓰고, 무거운 쌍안경이나 카메라를 들고 전국을 누비며 새를 관찰하는 사람의 모습이 전형적인 이미지로 자리 잡았을 만큼요. 그만큼 상대적으로 자금과 시간이 여유로운 전문가들이 주로 하는 취미라는 이미지도 강했고요.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젊은 2030세대가 탐조라는 세계에 들어오면서 탐조 문화 역시 많이 바뀌고 있어요. 현재 인스타그램에 ‘탐조’, ‘탐조기록’을 검색하면 각각 11.8만 개, 1.4만 개의 게시물이 나오는데요(2025년 6월 2일 기준). 이 중 대부분은 2030세대에 속하는 ‘탐조 뉴비’들이 최근 몇 년 내에 올린 게시물이에요. 집 근처 공원이나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면서 만난 새를 기록하거나, 탐조 관련 밈이나 공감 릴스를 만들어 올리고 있는 것.
‘새덕후’ 등의 유튜브 채널이 주목받고 있는 것 또한 탐조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심을 보여주는 현상 중 하나예요. 새덕후는 20대 젊은 남성이 운영하는 탐조 전문 채널로, 현재 5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갖고 있는데요. 짧으면 몇십 분, 길면 몇 시간 동안 별다른 편집 없이 새가 움직이는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던 이전의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상들과 달리, ‘땅에 떨어진 아기 새를 발견했을 때’, ‘도시공원에 작은 물그릇 하나 갖다 두면 생기는 일’ 등 컨셉이 확실한 영상들로 인기를 얻었어요. 몇 년 사이 탐조를 시작한 사람들 중 “새덕후 영상을 우연히 보고 탐조 입문했어요 🙋!” 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정도라고.
‘탐조 전문 책방’의 등장도 비슷한 흐름 위에 있어요. 2021년 경기도 수원 팔달구에 문을 연 ‘탐조책방’은 우리나라 최초의 ‘탐조’를 메인 테마로 하는 서점인데요. 탐조 관련 책 300여 권과 탐조 관련 굿즈·쌍안경 등을 모아놓은 탐조인들의 천국이라고. 탐조책방에서는 주기적으로 사람들을 모아 오프라인 탐조 활동도 진행하는데요. 도심 속 새들의 삶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꾸린 ‘아파트 탐조단’ 활동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어요. 먼 대자연이 아닌 도시에서도 다양한 새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탐조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요.
자세히 보기 🔎: 도시 탐조를 통해 발견하는 익숙하고도 새로운 세계 ✨
최근 탐조 유행의 가장 큰 특징을 꼽자면 바로 ‘도시 탐조’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거예요. 국가지정공원이나 철새도래지에서 탐조를 하는 게 일반적이었던 과거와 달리, 최근 탐조는 우리가 일상을 보내는 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요. 여기에는 아무래도 코로나19 시기가 큰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팬데믹으로 카페나 음식점 등을 방문할 수 없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실내 활동을 피하면서도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취미를 찾던 사람들이 탐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거라는 것.
하지만 코로나19 이후에도 탐조는 나름의 독특한 매력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어요. 팬데믹이 끝난 이후에도 탐조 인구는 꾸준히 늘고 있는 데다가,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 영미권, 특히 미국에서는 지난해 즈음부터 “젠지 세대가 탐조에 나서고 있다!” 하는 얘기가 나오면서, 우리나라와 비슷한 현상이 주목을 받았는데요. 뉴욕 같은 대도시에 사는 젠지 세대 청년들이 술을 끊고 새벽부터 일어나 탐조에 나서는 등,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는 거예요.
이들은 아웃도어룩에 빈티지 카메라를 든 채 뉴욕 곳곳에 있는 공원에 모여 새를 관찰하고, 커뮤니티를 꾸려 활동하는데요.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의 원인을 젠지 세대가 ‘건강한 즐거움’을 추구하기 시작한 것과 관련되어 있다고 분석해요. 최근 몇 년 동안 책을 읽는 게 힙하게 여겨지면서 ‘텍스트힙’이 주목을 받거나, 도수가 높은 술 대신 저도수의 가벼운 술이 인기를 끌는 ‘소버 트렌드’ 역시 이와 관련되어 있다고. 밤새 이어지는 파티에 취하는 대신 마음 건강을 챙기고, 적당한 수준의 즐거움을 유지하는 삶의 자세가 ‘힙하다’고 여겨지기 시작하면서, 일상에서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취미들도 덩달아 떠오르고 있다는 거예요.

이 글을 쓰면서 얼마 전 탐조 세계에 입문했다는 그 지인을 인터뷰해 봤는데요. 탐조의 매력이 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더라고요.
다른 사람들 역시 탐조를 “인공적인 공간에서 빠져나와 잠시나마 자연 속에서 현재에 집중하는 경험”이라고 하는데요. 이전에는 도시에 이렇게 많은 새가 산다는 걸 몰랐지만, 한 번 새소리를 인식한 후에는 어디를 가도 새소리가 들려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된 느낌이라는 말도 있어요. 새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동물과 인간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고 하고요.
전문가들은 이런 탐조 유행이 더 큰 긍정적인 변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해요. 보통 사람들이 도시를 인간만의 공간으로 여기는 것과 달리, 탐조를 하는 사람들은 도시가 새와 나무, 그 외 동물 등 다종다양한 생명으로 가득 차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요. 탐조를 통해 이 생명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이들이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으며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거기에 도시와 인간이 끼치는 영향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고. “저 새 너무 귀여워! 더 자세히 알고 싶어!” 하는 흥미에서부터 시작된 행동이 결국은 더 깊은 고민, 도시라는 공간에서 인간과 비인간 생물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거예요.
오늘은 최근 2030세대 사이에서 새롭게 퍼지고 있는 탐조 취미에 대한 이야기를 쭉 살펴봤는데, 어땠나요? ‘어르신 취미’ 소리를 듣던 탐조가 도시에서, 그것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유행하고 있다니, 여러모로 흥미로운 현상인데요. 만약 이 글을 읽은 뉴니커가 길을 가다 우연히 들려온 새소리에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두리번거리게 된다면 아주 기쁘겠어요. 그 순간은 아마 탐조라는 세계와, 혹은 도시 안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작은 비인간 동물 친구들과 진정한 첫인사를 나누는 순간이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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