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초록빛, 녹차·말차 트렌드가 주목받는 이유 🍵
작성자 고슴이의비트
비욘드 트렌드
온 세상이 초록빛, 녹차·말차 트렌드가 주목받는 이유 🍵

작년 11월, 코엑스에서 열리는 서울카페쇼에 다녀왔어요. 건물 전체가 행사장으로 쓰였을 정도로 규모가 컸는데요. 방대한 커피의 세계도 인상적이었지만, 제 기억에 선명하게 남았던 건 차(茶)의 존재감이었어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콘셉트로 쇼룸을 꾸민 티 브랜드, 티소믈리에가 안내하는 프로그램에 사람들이 기꺼이 줄을 섰거든요. ‘이 정도로 차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았나?’ 싶을 정도였죠.
시간이 지난 지금, 차에 관한 관심은 그때보다도 더 커진 것 같아요. 부산을 대표하는 모모스커피는 최근 성수동 티룸으로 유명한 맥파이앤타이거와 손잡고 다양한 차를 선보이기 시작했어요. 다가올 5월 23일에는 40여 개 넘는 브랜드들이 참여하는 ‘크래프트 티 페스티벌’이 열릴 예정이죠. 국내 유통업계에서도 차 시장을 제2의 커피로 바라보고 있는데요. 왜 사람들은 커피가 아닌 차를 찾게 된 걸까요? 젊은 세대가 주목한 차 한 잔의 가치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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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차 중에서도 녹차는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트렌디한 음료이자 콘텐츠로 주목받고 있어요. 틱톡에는 #matcha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180만 개가 넘을 정도죠. 이런 Z세대의 녹차 사랑은 시장 규모 변화로도 나타나는데요. 녹차 시장은 팬데믹이 유행하던 2021년부터 지금까지 연평균 성장률 11.9%를 기록하며 빠르게 규모를 불려 왔어요. 2028년에는 약 340억 달러 규모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고요.
이런 녹차 트렌드의 급부상에는 코로나19의 영향이 컸어요. 전 세계적으로 건강과 면역력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녹차의 다양한 효능이 주목받기 시작한 거죠. 녹차는 항산화 성분이 풍부해 노화 방지에 도움이 돼요. 특유의 떫은맛을 내는 카테킨은 식사 후 혈당이 상승하는 걸 잡아주고요. 몸속 해로운 성분을 배출해 면역력을 높여주고, 운동 전 마시면 지방 분해를 촉진해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이에요. 건강한 삶에 관심 많은 젊은 세대가 주목하는 게 자연스럽죠.
마음을 차분하게 다잡아주고, 카페인 등 부작용이 적다는 점도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자연스럽고 건강한 아름다움, 기분 좋은 일상을 추구하는 클린 걸(clean girl) 트렌드와 잘 맞아떨어졌거든요.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 배우 젠데이아, 모델 케이트 모스 등 셀러브리티들도 SNS에 자신만의 녹차 루틴, 말차 레시피 등을 공유하면서 트렌드를 이끌었고요.
기업들도 이런 녹차·말차 트렌드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있어요. 아모레퍼시픽 계열사인 오설록은 작년 10월 성수동에 대규모 티하우스를 열고, 용산 매장도 리뉴얼해 주목받았어요. ‘힙한 말차’로 유명한 슈퍼말차는 올해 2월 영국에 진출했고요. 현지 대표 프리미엄 백화점인 셀프리지앤코(Selfridges & Co.)로부터 먼저 입점 제안을 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고 해요. 이외에도 한솥도시락은 제주녹차를 더한 미니호떡을, 배스킨라빈스는 지난 4월 이달의 맛으로 ‘아이스 그린티 킷캣’을 공개하는 등 녹차와 말차의 영향력은 꾸준히 커지고 있어요. 사람들이 이 정도로 녹차·말차 트렌드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요? 젊은 세대는 건강 말고도 차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끼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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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니커는 ‘커피’하면 어떤 모습이 상상되나요? 저는 사람들이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노트북이나 책을 펼쳐두고 일하는 장면, 여럿이 모여 앉아 회의하는 이미지가 그려졌어요. 물론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카페는 휴식보다는 왠지 생산적인 활동이 더 잘 어울리는 공간으로 느껴졌어요. ‘커피 한 잔의 여유’보다는 ‘하루를 위한 연료’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차를 마실 때, 우리는 오롯이 눈앞의 차 한 잔에 집중하게 돼요. 티백이나 찻잎을 우려내서 찻잔에 따르는 것. 따뜻한 물을 붓고 말차 가루를 풀어 천천히 섞어주는 것. 모두 시간과 여유가 필요하거든요. 그렇게 만든 차 한 잔의 맛과 향을 음미하다 보면, 긴장된 몸이 풀어지고 마음도 편안해지죠. 그래서 차는 단순히 새로운 트렌드로 소비되는 게 아니에요. ‘더 빨리, 더 많이’가 미덕이 된 세상에서 나만의 시간, 나만의 여유를 되찾으려는 사람들의 바람이 담긴 음료죠.
차는 스마트폰 대신 앞에 앉은 사람과 얼굴을 마주 보고 소통하는 계기가 되기도 해요. 각자 좋아하는 차를 마시면서 맛과 향에 관한 느낌을 얘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주제로도 대화가 이어지게 되죠. 엄지손가락과 터치 화면 대신, 눈빛과 목소리로 온전히 다른 사람과 연결될 수 있는 거예요. 소셜 미디어라는 이름으로 24시간 이어져 있지만, 오히려 더 외로움을 느끼는 젊은 세대에게는 인간적으로 연결된다는 ‘낭만’을 되살려주는 거죠.
세상이 변하는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는 것 같아요.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는 것 같은 일상, 차 한 잔의 낭만을 음미해보면 어떨까요? 뉴니커에게도 잊고 있었던 여유와 고요함을 선물해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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