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빈클라인의 부활? 청바지·언더웨어로 유명했던 CK의 새로운 미래 👖👗

캘빈클라인의 부활? 청바지·언더웨어로 유명했던 CK의 새로운 미래 👖👗

작성자 고슴이의비트

비욘드 트렌드

캘빈클라인의 부활? 청바지·언더웨어로 유명했던 CK의 새로운 미래 👖👗

고슴이의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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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um_b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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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빈클라인은 우리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는 브랜드입니다. 청바지와 속옷, 향수는 한 시대를 풍미했고 예전만큼은 아닐지라도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 브랜드는 최근 들어 최고급 라인을 재런칭 하는 등 변화의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오늘은 캘빈클라인이라는 브랜드에 대해 살펴보면서 변화의 이유와 방향,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패션 브랜드에 정체성이란 무엇이고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봅니다. 


캘빈클라인이라는 브랜드에 대하여

배우 브룩 실즈가 모델로 등장했던 캘빈클라인 청바지 광고.

캘빈클라인의 중심은 청바지와 속옷, 그리고 향수입니다. 미니멀리즘에 기반해 제품을 만들고 노출에 기반해 홍보했죠. 서브 브랜드인 ‘캘빈클라인 진’과 ‘CK’ 등의 브랜드가 대중적 인기를 끌었지만 그 상위에는 캘빈클라인이 선보이는 디자이너 컬렉션이 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구성되는 브랜드들이 꽤 있습니다. 예를 들어 랄프 로렌의 경우도 ‘퍼플 라벨’이라고 하는 최상위 라벨이 있고 ‘랄프 로렌’, ‘폴로’, ‘폴로 진’ 등등 이런 식으로 구성되어 있죠. 

이런 구성에서 디자이너 라벨과 캐주얼 라벨의 관계는 상호보완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최상위 라벨은 브랜드 이미지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하죠. 그리고 브랜드 이름에 ‘고급’의 분위기를 씌울 수 있습니다. 또한 고급스럽고 긍정적인 고급 라벨의 이미지는 캐주얼한 라인의 가격을 조금 더 올려 받을 수 있는 요소가 됩니다. 상대적으로 캐주얼한 라인은 소위 ‘매스(mass) 시장’을 담당합니다. 브랜드의 덩치를 만들고 키우는 데는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매스 시장에서 형성된 큰 덩치와 수익은 디자이너 라벨의 컬렉션에 약간은 여유를 줄 수도 있죠. 

일단 캘빈클라인이라는 브랜드의 중요한 순간들을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처음 런칭은 1968년 컬렉션으로 시작했습니다. 젊고 절제된 코트와 드레스로 구성된 초창기의 컬렉션은 평도 좋아서 1973년에는 최연소로 코티 미국 패션 비평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인기를 바탕으로 브랜드는 영역을 확장해 갔고 1970년대 중반에는 드디어 청바지를 출시합니다. 발매 첫 주에 20만 벌이 판매되었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굉장한 인기를 누렸죠. 몸의 곡선을 살리는 핏과 미니멀한 디자인, 당시 15세였던 배우 브룩 실즈(Brooke Shields)가 나오는 광고, 그리고 뒷주머니에 붙어 있는 ‘CALVIN KLEIN’ 로고 등이 합쳐지면서 섹시하고 도발적인 청바지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서 브랜드는 판매 부진에 빠졌는데, 파산 위기까지 몰린 캘빈클라인을 살려낸 건 디자이너 존 바바토스(John Varvatos)였습니다. 그는 1990년부터 1995년까지 캘빈클라인 남성복 디자인 부문 책임자로 일하면서 복서 반바지와 브리프를 혼합한 ‘복서 브리프(boxer briefs)’라는 남성 속옷을 개척하며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사실 1980년에 개봉한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에서 주인공 리처드 기어(Richard Gere)가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디자인한 복서 브리프를 입은 모습이 나왔을 만큼 이미 비슷한 제품들이 시장에 있긴 했습니다. 바바토스 쪽에서는 미국의 남성 속옷인 ‘롱 존스’를 잘라내면 더 멋지겠다는 생각에 만들었다고 말했지만요. 

아무튼 캘빈클라인에는 대신 1992년 공개된 배우 마크 월버그(Mark Wahlberg)의 인쇄 광고가 있었습니다. 이 광고로 아주 큰 인기를 누렸고 어머니나 아내, 여자친구가 ‘3개들이 팩’으로 사다 주는 흰색으로 거의 고정되어 있던 미국의 남성 속옷 시장은 크게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20세기 가장 위대한 의류 혁명으로 불리기도 했죠.


캘빈클라인이 패션쇼에서 사라진 이유

라프 시몬스의 ‘Calvin Klein 205W39NYC’ 광고 캠페인.

앞에서 말했듯 다양한 라인업을 갖추고 있는 캘빈클라인의 최상위 라벨은 캘빈클라인 컬렉션입니다. 이 컬렉션은 캘빈클라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다른 모든 브랜드에 우아함과 현대적인 세련미를 불어넣는 모체라 할 수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여성복은 뉴욕 패션위크에서, 남성복은 밀라노 패션위크에서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2002년 말 브랜드가 타미힐피거 등을 소유한 PVH에 매각되고 디자이너 캘빈클라인은 은퇴하게 됩니다. 이후 몇 명의 디자이너들이 임명되며 컬렉션을 유지했지만 예전만큼 주목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던 2016년, 질 샌더와 크리스챤 디올 등에서 활동했던 라프 시몬스(Raf Simons)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됩니다. 컬렉션뿐만 아니라 기성복, 브리지, 스포츠웨어, 청바지, 속옷 및 홈 라인 등 분야의 디자인, 글로벌 시장 및 커뮤니케이션, 비주얼 크리에이티브 서비스의 모든 측면의 감독으로 임명되었죠. 이렇게 캘빈클라인에 큰 변화가 만들어집니다. 사실 이 미국을 대표하는 브랜드의 디렉터로 당시 디올을 맡고 있던 벨기에 출신 디자이너가 들어온다는 건 꽤 흥미로운 결정입니다. 패션은 하나의 문화이고, 다양한 문화의 충돌이 흥미진진한 파편을 만들어 내는 법이죠.

라프 시몬스는 2017년 최상위 라인의 이름을 ‘Calvin Klein 205W39NYC’로 바꾸고 남녀 패션쇼를 통합해 뉴욕 패션위크에서 선보이기 시작합니다. 미국의 웨스턴웨어와 워크웨어를 유럽 디자이너가 재해석한 컬렉션은 어두운 미국과 구조적 미니멀리즘의 조합으로 꽤나 훌륭했습니다. 독특한 색감, 구조적인 레이어, 섬세한 라인 등으로 호평을 받았어요. 하지만 아쉽게도 잘 팔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모회사인 PVH는 컬렉션 제작뿐만 아니라 매장 리뉴얼 등으로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걸 견디지 못했습니다.

결국 2년간 컬렉션을 선보인 후 2019년 초 PVH는 라프 시몬스와의 계약 종료를 결정하고 여기에 더해 런웨이 컬렉션 자체를 중단하고 대중적이고 저렴한 캘빈클라인 브랜드에 집중할 거라고 발표합니다. 이 결정은 상당히 의외입니다. 대중적인 브랜드는 상위 라벨을 만들어 내기 위해 큰 노력을 합니다. 고급 브랜드의 아우라가 덮이는 건 다른 라이벌 브랜드와 비교할 때 큰 장점이고 더 많은 매출도 이끌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고급 브랜드의 네임 밸류를 없애버린다는 건 단기적 대차대조표에는 긍정적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근시안적 결정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캘빈클라인 컬렉션’의 부활과 브랜드 정체성

캘빈클라인이 한동안 패션쇼 무대에서 자취를 감추기 전, 라프 시몬스 재직 시절.

캘빈클라인 컬렉션은 2018년을 마지막으로 런웨이를 떠났지만, 캘빈클라인 브랜드에는 이후에도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윌리 차바리아(Willy Chavarria)의 영입입니다. 차바리아는 캘리포니아 출신의 멕시코계 미국인입니다. 랄프 로렌이나 아메리칸 이글 등에서 경험을 쌓고 2015년 자신의 이름으로 브랜드를 런칭한 그는 스트리트 패션과 워크웨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윌리 차바리아는 매우 정치적인 성향의 패션이 특징입니다. 이는 라틴 아메리칸이자 혼혈이라는 인종 정체성, 오픈리(openly) 게이인 자신의 성적지향, 어린 시절의 지역 공동체와 가난했던 삶에 대한 생각을 우아하고 세련된 패션에 반영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는 뉴욕 패션위크에서 유색 인종만 모델로 세운 최초의 디자이너이기도 합니다. 

캘빈클라인은 2021년 윌리 차바리아를 남성복 디자인 부문 수석 부사장으로 임명했습니다. 이걸 보고 캘빈클라인 컬렉션의 부활로 나아가는 게 아닐까 예상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캘빈클라인이라는 큰 회사에서 빠르게 극적인 효과를 내기는 어렵다고 판단하고 2024년에 회사를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캘빈클라인 쪽에서는 다른 변화 포인트를 마련합니다. 바로 베로니카 레오니(Veronica Leoni)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하고 2018년 이후 중단한 최상급 라인 캘빈클라인 컬렉션을 부활시키는 겁니다. 

베로니카 레오니에 대해 살펴보면 우선 그는 이탈리아 로마 출신입니다. 문학과 철학을 배웠고 패션을 전공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패션 디자이너를 지망했기 때문에 패션 브랜드 인턴십으로 업계에 진입한 후 질 샌더, 셀린느, 몽클레르, 더 로에서 경험을 쌓고 자신의 브랜드 QUIRA를 런칭하게 됩니다. 특히 질 샌더와 셀린느 재직 시절에 디자인과 디자이너의 역할에 대해 배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동성 부부입니다. 영화 캐스팅 디렉터인 사라 카사니와 12년째 함께 했고 2023년 결혼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캘빈클라인 최초의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등장합니다.

캘빈클라인 패션의 핵심은 아마도 섹시함과 미니멀리즘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겁니다. 미니멀리즘도 물론 가만히 있지 않고 발전하고 변화합니다. 질 샌더, 셀린느, 더 로로 이어지는 경험은 현대 패션의 고급스러운 미니멀리즘을 선보이기에 적합합니다. 하지만 1990년대 캘빈클라인이 보여준 소위 ‘섹시함’은 미성년자 모델 기용을 포함해 노출, 외설 등의 측면에서 오랜 기간 논쟁과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시대와 상황의 문제도 있습니다. 당시 여성의 적극적인 ‘섹스어필’은 진보적인 측면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후 성적 대상화, 성적 관념의 왜곡 등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이건 캘빈클라인이라는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이도 합니다. 그러므로 베로니카 레오니는 이 두 가지를 지금에 맞게 재구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미니멀리즘입니다. 레오니는 캔버스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 무게를 비우는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룩은 세련되고 간결합니다. 몸이 테일러링을 결정짓도록 하고 레이어는 최소화합니다. 옷은 몸에 딱 달라붙지 않고 스치듯 유연하게 움직입니다. 이런 룩이 새로운 관능미를 만들어 냅니다.

캘빈클라인 최초의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베로니카 레오니.

자, 이제 섹시함입니다. 베로니카 레오니는 ‘섹시튜드(Sexitude)’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각자가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편안하게 느끼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욕망의 대상이었던 여성을 욕망의 주체로 바꾸고자 합니다. 패션쇼에는 남성과 여성이 함께 나오지만 스트리트 패션의 오버사이즈나 유니섹스풍은 아닙니다. 남성과 여성의 몸의 생김새가 다르다는 데서 출발합니다. 노동자나 택시 운전사 등 다양한 미국인에서 영감을 얻고 펜들턴 체크무늬 벌목꾼 셔츠, 두꺼운 밑창의 러그 부츠, 편안한 데님 오버스커트, 이브닝드레스, 세련된 테일러드와 휘날리는 케이프 스카프 등을 입힙니다. 패션은 결국 태도고 자신감이라는 사실을 이렇게 표현해냅니다.

캘빈클라인이라는 브랜드는 현재 이를 기반으로 미래를 탐색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를 보면서 패션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란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 브랜드는 창립자의 패션관인 섹시함과 미니멀리즘을 여전히 끌고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흐르는 시간과 변화하는 세상을 따라가기 위해 동시에 다양성을 흡수하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벨기에 출신의 백인 남성 디자이너, 라틴 아메리칸 계열의 디자이너에 이어 이번에는 이탈리아 출신의 성소수자 여성 디자이너, 그리고 이들 각자의 인종 정체성, 성정체성이 캘빈클라인이라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확장시키고 현재화시킵니다. 

패션계에는 오래된 이름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자신의 영광스러웠던 과거를 미화하며 더 파고드는 방법을 택하기도 하고, 예전의 모습을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지점을 향해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더 젊어지거나 더 진중해지기도 하죠. 새로운 인물을 데려다 오래된 아카이브를 해석하는 캘빈클라인의 선택은 어느 정도 교과서적입니다. 하지만 모든 게 혼란스러운 현시점에서 검증된 방식이 안정적일 수 있고, 패션에 대한 태도와 브랜드의 운영 양쪽 측면에서 여성이 이끄는 희망찬 미래를 보여주려 한다는 점에서는 전향적인 선택이기도 합니다. 과연 이 변화가 성공할 수 있을지 기대를 갖게 만듭니다.


[비욘드 트렌드] 에디터의 관점을 담아 지금 우리의 심장을 뛰게하는 트렌드를 소개해요. 나와 가까운 트렌드부터 낯선 분야의 흥미로운 이야기까지. 비욘드 트렌드에서 트렌드 너머의 세상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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