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 보면서 쓴웃음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 보면서 쓴웃음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

작성자 고슴이의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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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 보면서 쓴웃음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

고슴이의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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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2일, tvN 드라마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이하 언슬전)’이 방영을 시작했습니다. 2023년 말 촬영 시작후 2024년 연내 방영 예정이었으나,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 속에서 거듭 편성이 연기되었죠. 편성이 확정되고도 이 드라마를 향한 일부의 시선에는 조금 날이 서 있는 듯합니다. 과연 ‘언슬전’은 국내 의료계의 현실을 지나치게 미화한 작품일까요? 오늘은 ‘언슬전’과 2025년 연초에 방영되어 호평을 받았던 넷플릭스 시리즈 ‘중증외상센터’를 중심으로 한국 메디컬 드라마의 현주소를 살펴봅니다.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 의학 드라마가 아니고 ‘청춘 성장물’이라고?

‘언슬전’은 2020년 시즌 1과 이듬해 시즌 2까지 양 시즌 모두 최고 시청률 14%대에 달했던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슬의생)’의 스핀오프입니다. 흉부외과, 소아외과, 간담췌외과, 신경외과 등 종합병원의 다양한 분과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 전작과 달리, ‘언슬전’은 종합병원이라는 세계관을 공유하면서도 산부인과로 그 무대를 좁혔습니다. 여기에 디즈니+ 시리즈 ‘무빙’의 주역인 고윤정 배우와 현재 글로벌 시청자층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의 강유석 배우 등 라이징 스타들이 캐스팅됐다는 점도 기대를 모았죠. 

제작발표회에서 신원호 크리에이터는 ‘언슬전’이 ‘의학 드라마’이긴 하지만 동시에 ‘청춘 성장물’이라는 점을 강조했는데요. 종로 율제병원 산부인과 레지던트 1년 차 오이영(고윤정)은 “누구나 (의사)가운 속에 사표 한 장은 품고 살아” 라며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이 할 법한 말을 합니다. 더군다나 오이영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5천만 원의 빚을 떠안은 상황인데요. 돈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병원에 취업을 했다는 설정이지만, 아침을 먹던 중 언니에게 “(빚 때문에) 돈이 없으면 아껴 쓰고 적게 쓰고 덜 써야지!” 라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그러니 오이영은 고된 병원 일로부터 도망치는 대신 자신의 심경을 대변한 선우정아의 ‘도망가자’를 감상할 뿐이고요.

그동안 tvN이 주기적으로 그랬듯, ‘언슬전’ 역시 ‘사회초년생’을 타깃으로 한 신작 드라마를 편성한 것으로도 볼 수도 있겠습니다. ‘미생’(2014)에서 대기업 종합상사에 인턴으로 입사한 장그래(임시완)와, ‘블랙독’(2019)에서 학교에 갓 부임한 신입 기간제 교사 고하늘(서현진)이 경험하게 되는 일의 기쁨과 슬픔을 실감 나게 보여준 것처럼요. 그런데 그들 곁에는 늘 조금이나마 더 슬기로운 어른들이 있었습니다.

‘언슬전’의 산부인과 환자와 보호자들은 레지던트 1년 차 4인방과 부딪히다가도 이내 그들에게 너그러운 시선을 보냅니다. 지식이 많지만 공감 능력은 부족한 레지던트 김사비(한예지)는 자신에게 기분이 상했다는 환자에게 “의학적인 팩트에 의하면 틀리거나 잘못한 게 없는 것 같아서” 사과하기를 주저하는데, 오히려 환자에게 먼저 사과를 받게 돼요. 또, 자궁암 수술을 앞둔 젊은 여성 환자의 어머니는 오이영을 보면 자기 딸이 생각난다며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다 실수하면서 배우는 거지”라며 위로를 건네죠. 

새로운 환경에서 주눅 든 마음과 직장을 그만 때려치우고 싶은 심경을 묘사하는 ‘언슬전’에는 어느정도 하이퍼 리얼리즘적인 구석이 있습니다. 조력자 캐릭터들이 곳곳에서 등장해 사회 초년생들의 중심을 잡아준다는 점에서 ‘청춘 성장물’의 요건을 어느정도 충족하는 것처럼도 보이고요. 개구리가 올챙이었을 시절을 떠올리며 주변의 다른 올챙이를 격려하는 일 또한, 사랑받은 전작의 캐릭터를 스핀오프에 깜짝 등장시키면서 가능해집니다. ‘슬의생’에서 송도 율제병원의 산부인과 레지던트였던 추민하(안은진)가 ‘언슬전’에 까메오로 등장해, 성장하고 싶어서 방황했던 자신의 과거를 겹쳐보며 현재 그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오이영을 응원해주는 에피소드처럼요.


현실에서는 전공의가 부족한데, 드라마에는 너무 많을 때

무엇보다 ‘언슬전’의 전공의들은 극악의 노동 환경에 속해있습니다. 그들은 늘 잠이 부족해 보이죠. 현실은 어떨까요? 2017년 ‘전공의법(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이 시행된 이후 국내 전공의들의 수련시간이 단축되었으나, 여전히 해외에 비해 높은 수준인 것으로 분석됩니다. 국내 인턴 및 레지던트는 주당 최대 88시간 근무하며, 응급 상황 발생시에는 최대 40시간까지 연속 근무를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드라마 속 레지던트 4인방은 거듭된 실수나 주변에서 받는 부정적인 피드백으로 자신감을 잃을 때 종종 자조적인 대화를 주고받습니다. 그런데, ‘언슬전’ 4화에서 엄재일(강유석)이 자신은 무능하기 때문에 더 이상 의사를 못할 것 같다고 말하자 그 말을 듣고 있던 김사비(한예지)가 이렇게 답하는 장면이 있어요. “전공의 부족해서 웬만하면 너 안 잘려.”

실제로 대한민국 의료계에서 전공의는 부족합니다. 이 드라마를 향한 시청자 반응 중 하나는 “전국에 산부인과 레지던트는 1명밖에 없는데 저기 4명이나 있다니, 이것이 진정한 판타지다” 라는 것인데요. 이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2024년 상반기부터 시작된 의대 정원 증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과 이에 따른 전공의들의 집단 파업 및 사직 사태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2024년 2월 정부가 의대 정원을 2025년부터 매년 2000명씩 늘리겠다고 발표했을 때, 증원 이유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이후 전국의 전공의 1만 3000명 중 1만 명 이상이 사임했고, 그 여파를 고스란히 환자와 보호자가 짊어지게 됐어요.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들의 집단 사직 사태로 수술이 지연됐고 이 과정에서 환자들이 초과 사망하기도 했죠. 2025년 상반기 전공의 수련에 복귀하는 사직 전공의 중 산부인과에 지원한 전공의는 전국에 단 1명뿐이었고요

'언슬전'이 커리어를 시작한 청춘들을 보여주는 드라마라는 점에서 극 중 ‘율제 병원’을 세상의 수많은 일터 중 하나라고 볼 수도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현실과 지나치게 괴리된 판타지 작품이라는 오명을 벗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정부와 의료계 간의 긴장 관계가 1년 넘도록 지속되는 동안, 시청자들이 더는 드라마 속 의료인 캐릭터에 몰입할 이유를 찾지 못하게 됐으니까요. 결국, 지난 4월 17일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해 발표한 증원 계획을 일부 철회하고 2026학년도 의과대학 모집 인원을 3058명으로 줄이겠다고 알렸는데요. 여전히 상호 간의 깨진 신뢰 회복을 위해 가야 할 길은 멀게만 느껴집니다.


내가 속한 사회를 개선하는 드라마의 파워

그렇다면 넷플릭스 비영어권 TV 프로그램 부문에서 1위에 오르기도 했던 드라마 ‘중증외상센터’는 무엇이 달랐을까요? 이 드라마는 내전 지역에서 생사를 오가는 환자를 돌보던 천재 외과 전문의 백강혁(주지훈)이 어느 날 한국대학교병원 중증외상팀 교수가 되면서 시작합니다. 병원장과 경영진의 입장에서 중증외상팀은 사람을 살리면 살릴수록 매번 적자를 내는 팀으로, “‘병원 수익률 1위 부서는 장례식장, 2위는 주차장, 3위는 식당”이라는 대사는 사명감보다 수익성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의 시선을 잘 드러냅니다.

그런데 백강혁은 오히려 현재의 중증외상팀을 중증외상센터로 키우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렇게 자신이 원하는 인물들로 팀원을 구성하는 백강혁은 가장 먼저 항문외과 펠로우 양재원(추영우)을 간택하는데요. 고소공포증이 있음에도 백강혁에게 떠밀려 얼결에 ‘닥터헬기(응급의료 전용헬기)’에 오르는 등 ‘이 길이 자신의 길이 맞는지’ 의심하던 양재원은 백강혁과 함께 일하며 점점 의사다운 의사가 되어갑니다. 

양재원의 롤모델인 백강혁은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만들어졌습니다. 바로 2011년 ‘아덴만 여명 작전’ 당시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을 치료한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당시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이에요. 드라마 공개와 동시에 이국종 교수의 지난 주장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는데요. 이 관심들 중 일부는 실제 현실 제도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습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중증 외상 전문의를 육성했던 고려대구로병원 수련센터가 정부 예산 삭감으로 운영 중단 위기에 처했다가, 드라마 인기에 힘입어 서울시의 지원으로 올해 수련 과정을 예정대로 운영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수천 페이지의 논문을 발표하거나, 전문가들을 모아 놓고 수백 번의 강의를 하지 않아도 (...) 한 편의 영화가 대중의 인식을 바꾼다.” 지금까지 4천여 구의 시신을 부검해 온 이호 법의학자가 tvN 예능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인간 잡학사전(이하 알쓸인잡)’에 출연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이호 법의학자는 국내 최초 범죄 의학 드라마이자 부검에 미친 천재 법의학자가 주인공인 SBS ‘싸인’(2011) 방영 후, 매해 지원자 수가 2~3명 선에 그치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관이 10명가량 충원되는 걸 보며 이와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삼풍백화점 참사, 대구지하철 참사, 세월호 참사 등 대형 참사 현장에 투입되어 현장 수습에 발 벗고 나서왔던 이호 법의학자는 법의학에 대한 대중의 더 큰 관심을 원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의 바람처럼, 잘 만들어진 콘텐츠는 때로 흩어져 있던 모두의 마음을 모으고 새로운 가능성을 낳기도 합니다. 마치 중증외상센터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그곳에 속한 사람들의 고충은 무엇인지, 동명의 드라마를 통해 알게 된 이들이 결국 중증외상센터를 지켜내는 것처럼요.

오늘은 사회 초년생 캐릭터가 등장하는 메디컬 드라마, ‘언슬전’·‘중증외상센터’과 그 안팎의 이야기를 살펴봤는데요. 드라마를 다큐로 보지 말아라, 드라마는 그저 드라마로만 즐겨라 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런데, 의료 현장을 다룬 드라마를 보는 일과 우리 사회의 의료 시스템을 고민하는 일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는 걸까요? 이야기의 ‘배경’이 병원이라는 점에 크게 비중을 두지 않고, 그보다는 성장통을 겪고 있는 ‘캐릭터’의 말과 행동에만 집중하는 편이 더 좋은 걸까요? ‘언슬전’에 대한 뉴니커 여러분의 감상을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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