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가비’는 웃긴데 ‘도치맘’은 안 웃긴 이유, 코미디 유튜브의 현재와 미래 🎤

‘퀸가비’는 웃긴데 ‘도치맘’은 안 웃긴 이유, 코미디 유튜브의 현재와 미래 🎤

작성자 고슴이의비트

비욘드 트렌드

‘퀸가비’는 웃긴데 ‘도치맘’은 안 웃긴 이유, 코미디 유튜브의 현재와 미래 🎤

고슴이의비트
고슴이의비트
@gosum_beat
읽음 13,317

개강과 개학의 달인 3월을 앞둔 어느 날, 유튜브에 ‘도치맘 이소담 씨’가 나타났습니다. 코미디언 이수지의 유튜브 채널 ‘핫이슈지’에 올라온 페이크 다큐 시리즈 ‘휴먼다큐 자식이 좋다’는 다양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는데요. “대치동 학원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인물에 대한 극사실주의적 묘사가 매우 그럴듯 해서 놀랍다”는 의견이 있었던 반면, “이걸 보고 ‘긁’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영상에 달린 1만개 이상의 댓글에서 일관된 의견보다는 여러 관점이 제기된 것인데요.

우리는 어떤 유머 콘텐츠를 볼 때 한바탕 웃게 되는 것일까요? 혹은 무엇을 유머가 아니라 다큐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일까요? 개인을 조롱하는 댓글 반응,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더라도 선을 넘길 선택하는 유머 콘텐츠 제작자, 모두의 웃음을 책임지고 싶어하는 유머 콘텐츠 제작자의 사례를 중심으로, 오늘은 코미디 유튜브가 쏘아 올린 질문들을 살펴봅니다. 


유머가 개인을 겨눌 때 벌어지는 일

‘김제득(4세)’은 엄마에게 ‘제이미(Jaime)’라는 이름으로 더 자주 불리지만, 배변 훈련을 하는 생애주기를 보내고 있는 아이입니다. 대치동의 여러 학원에 다니는 중이지만, 혹시 모를 제기차기 수행평가를 위해 제기 차는 법을 익혀야 하는 상황이에요. 우리는 영상에서 제이미를 볼 수 없지만, 대신 이수지 씨가 고증한 ‘이소담 씨’가 내 아이의 '영재적인 모먼트'에 기뻐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몽클레르 패딩에 에르메스 목걸이를 걸치고 집 밖으로 나선 그는 아이를 기다리는동안 차에서 김밥을 먹고, 다른 날에는 밍크 조끼에 고야드 가방을 들고 브런치를 먹죠. 

이 영상에 대한 가장 즉각적인 반응은 “유행의 시작이 아닌 유행의 종결”이라는 말로 요약됩니다. 이소담 씨가 착용한 브랜드 의류들의 판매량이 높아지기는 커녕, 되려 중고 시장 플랫폼 ‘당근’에 매물로 쏟아졌기 때문이에요. 화제가 된 영상 속 주인공과 같은 아이템을 소장하고 싶지 않다는 이들의 마음은, '어떤 이유로든 이수지 씨와 나는 다른 사람이다'라는 걸 드러내고 싶은 조바심에 가까웠던 게 아니었을까요?

한편, “이 영상은 사실과 다르게 코미디로 각색한 내용입니다”라는 사전 안내에도 불구하고, 페이크 다큐에서 모사되는 인물이 엉뚱하게 특정되기도 했습니다. 배우 한가인이 자녀의 학원 라이딩 하는 모습을 담은 5개월 전 영상에 조롱 댓글이 도배됐고 결국 해당 영상은 비공개 처리됐죠. 영상을 처음 올린 때가 아닌 5개월이 지난 뒤, ‘도치맘’ 영상이 업로드된 이후에야 뒤늦게 그가 비난 받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사교육에 열중하는 개인’이 ‘사교육 열풍’보다 더 비난받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소담 씨처럼 자신의 경제력과 인맥을 동원해 욕망을 해소하는 30대 육아하는 여성, 즉 ‘강남맘’일 뿐이라면 얼마든지 조롱 또는 혐오를 해도 된다는 논리가 만들어진 것인데요. 비슷한 예시는 얼마든지 더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니 TV 드라마 ‘라이딩 인생’의 주인공은 딸 서윤의 ‘7세 고시’를 앞둔 워킹맘 이정은(전혜진)입니다. 베이비시터의 부재로 서윤의 할머니가 학원 라이딩을 맡게 되면서 서윤의 엄마와 갈등을 빚게 되는 이야기인데요. 이처럼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유명 영어학원에 입학하기 위한 시험까지 준비하는 양육자의 ‘라이딩’은 우리 사회를 이루는 엄연한 구성요소가 되었습니다.  

유머가 부조리한 현실과 시스템 대신 개인을 겨누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통계청과 교육부는 매해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다만, 이 통계에는 미취학 아동의 사교육비는 제외되어 있어요. 관련 정책 수립의 근거가 되는 통계가 없다면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한 사교육 열풍이 얼만큼 뜨거운지, 그로 인해 벌어질 수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기가 어렵겠죠. 우리는 유튜브에 '도치맘'으로 대표되는 인물의 등장을 계기 삼아, 그가 속한 구조적 모순에 대해 조금 더 궁금증을 가져볼 수도 있을 거예요. 이소담과 이정은이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며 마음껏 그저 조롱만 하는 행위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으니까요.  


‘개인 맞춤형 웃음’이라는 착시 효과

한 때 한국인들은 웃음이 고플 때 거실에 시트콤 드라마를 틀어두었습니다. SBS ‘순풍 산부인과’, MBC '거침없이 하이킥’ 등 김병욱 PD의 작품 라인업이 연달아 흥행했고, MBC ‘안녕, 프란체스카’ 처럼 블랙 코미디를 선보이는 작품도 있었죠. 이미 지나간 시트콤 전성기를 돌아보며 한 코미디 프로그램 작가는 이런 말을 합니다. “자유로운 소재 선택과 표현이 가능한 유튜브 콘텐츠가 뾰족하게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고 있는 반면, 지상파 방송은 심의와 논란을 의식하다 보니 밍밍해졌다”고요.

자유도가 한층 높아진 코미디 유튜브 콘텐츠의 새로운 장은 세밀하게 현실을 고증한 패러디 영상이 열었습니다. 길에서 도를 믿게 만드는 사람(‘도믿걸’)부터 한국에 놀러온 중국인 인플루언서 관광객(‘저우윈’)까지, 인간군상에 대한 탁월한 관찰력과 표현력으로 ‘인류학자’라 불리는 코미디언 강유미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강유미는 모사하고자 하는 대상의 차림새, 화법, 사소한 습관을 그대로 재현해 ‘좋아서 하는 채널’에 꾸준히 업로드하는 창작자인데요. 그가 빚어낸 생생한 캐릭터를 본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 어제도 이 사람을 본 것 같아요…”

한편 국내 대표 코미디 프로그램 KBS ‘개그 콘서트’는 2020년에 잠정 종영 후 시즌 2로 돌아왔지만 고전중입니다. tvN ‘코미디 빅리그’도 2023년 폐지 수순을 밟았고요. 지난해 넷플릭스가 선보인 코미디 서바이벌 프로그램 ‘코미디 리벤지’는 레거시 미디어 세대와 유튜브 세대의 코미디언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자리로,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 남는 '원초적인 웃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어요.

프로그램의 콘셉트는 더 유머러스한 사람이 43년차 코미디언 이경규의 왕좌를 빼앗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경연 중간에 이경규는 후배 코미디언들(곽범, 이선민, 이재율)의 ‘원숭이 교미’ 무대를 보며 극도의 불쾌함을 드러내게 됩니다. “코미디의 기본은 공감대다. 그런데 이 개그는 선을 넘었다.”라는 이경규의 코멘트에 대해 코미디 레이블 메타코미디의 정영준 대표는 이견을 보이죠.

모든 사람이 원하는 바가 달라진 평균 실종의 시대. 어쩌면 ‘원숭이 교미’ 개그를 보며 웃는 사람들은 더이상 같은 걸 보고 웃지 못하는 사람을 설득할 필요가 없다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각자가 반응하는 유머 코드가 다른 것이라고 말하고 넘어가버리면 그만이니까요. 이후, 코미디언 곽범은 논란이 되었던 원숭이 교미 개그를 자신이 지금껏 보여준 개그 중 최고의 퍼포먼스라 자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모두를 위한 웃음’이라는 목표 세우기 

그렇지만 선을 넘지 않고도 웃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KBS 공채 출신 코미디언들(김원훈, 조진세, 엄지윤)이 운영하는 유튜브 ‘숏박스’의 신조는 “사람들이 불쾌하지 않게 코미디를 하자”입니다. 이들은 개그 콘서트에서 기획 회의를 한 후 대중에게 무대를 선보인 시간들이 유튜브에서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에도 좋은 기준이 되었다고 말해요. 이를 코미디언 엄지윤 식으로 말하면, “수신료 2,500원의 값이자 공영방송의 가치”입니다. 

본업이 댄서인 가비는 유튜브 콘텐츠 ‘디바마을 퀸가비’에서 할리우드의 파파라치에 둘러싸인 피곤한 삶을 떠나 한국에 온 퀸가비’를 연기합니다. “갱스터 아빠와 쌔비지 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퀸가비는 캐릭터 구상 시 디즈니+ 시리즈 ‘카다시안 패밀리’ 속 인물들을 참고해서 만들어졌다고 해요. 혼자서 할 줄 아는 게 거의 없는 그에게는 유명한 부모 덕에 성공을 경험한 ‘네포 베이비’(가족주의라는 의미의 네포티즘(nepotism)+아기(baby)) 라는 설정도 있습니다. 

성과 중심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퀸가비를 바라보며 부모의 후광이 있는데도 자신의 노력과 의지로 모든 걸 이룬 것처럼 행동하고 말하는 사람에게 인내심을 발휘하기 어려웠던 순간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겁니다. 그만큼 이 캐릭터는 존재만으로도 ‘네포 베이비’라는 첨예한 문제를 건드리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도 웃을 수 있는 건, 문학 비평가 테리 이글턴이 ‘유머란 무엇인가’에서 말했듯 ‘위트의 쾌감’이 복합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형식의 예술성, 연기 솜씨, 간명한 언어의 노동 절약형 경제성, 정신의 무제한적 활동, 내용의 역전과 전복, 기습과 전위, 그것을 ‘이해했다’는 지적 만족감”을 동시에 즐기면서 그것이 나를 웃게 만들었다고 말하게 되니까요.

디바마을 퀸가비의 제작사 ‘커들리 스튜디오’의 여진솔 PD(‘슬픔이 PD’)는 “모두가 좋아하는”이라는 의미를 가진 사명 ‘커들리(Cuddly)’처럼 “모두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고 말합니다. 게다가 이건 제작진들이 '이건 터질 것이다'라는 생각으로만 무책임하게 유머를 던지는 대신, 시청자들과의 피드백으로 상호 작용하는 유머 콘텐츠를 만들어나가겠다는 의지로 읽히기도 해요. 

 

코미디는 시대와 상호작용합니다. 어떤 유머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가치 즉, 호와 불호의 눈금을 견주는 게 그만큼 중요한 것이죠. 스탠드업 코미디언 금개가 “결국 코미디도 비판적 시각에서 생성되는 장르이기에, 사회 안의 수많은 맥락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냐에 따라 그 수준도 달라질 것이다.”라고 말한 것처럼요. 우리가 함께 얽혀 사는 존재임을 기억하며, 개인을 지나치게 희화화하는 대신 우리가 속한 시스템을 정조준하는 유머가 더 늘어날 수 있기를 바라며 이번 아티클을 마무리합니다. 


[비욘드 트렌드] 에디터의 관점을 담아 지금 우리의 심장을 뛰게하는 트렌드를 소개해요. 나와 가까운 트렌드부터 낯선 분야의 흥미로운 이야기까지. 비욘드 트렌드에서 트렌드 너머의 세상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 매주 금요일 12시 ‘고슴이의 비트’ 레터 받아보기

방금 읽은 콘텐츠, 유익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