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새로움: 전통 다과의 인기는 어디에서 왔을까? 🍡🍵
작성자 고슴이의비트
비욘드 트렌드
오래된 새로움: 전통 다과의 인기는 어디에서 왔을까? 🍡🍵

지난 설 연휴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선물을 주고받을 일이 있었을 거예요. 저도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사러 연휴 첫날 백화점에 들렀는데요. 식품관을 꼼꼼히 둘러보다가 전통 한과를 파는 코너에 저도 모르게 시선을 빼앗겼어요. 내용물은 물론, 패키징도 너무 예뻤거든요 ☺️.
사실 전통 다과는 지난 몇 년 사이 MZ세대를 사로잡은 ‘핫템’ 중 하나예요. 약과나 유과처럼 우리가 익히 아는 다과는 물론, 젊은 감각으로 전통을 재해석한 ‘K-디저트’ 브랜드도 뜨고 있거든요. 전통 다과 체험 프로그램은 사람이 몰려 예약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말이 나오고요. 오늘은 나날이 다채로워지고 있는 전통 다과 트렌드를 살펴봤어요.
훑어보기 👀: 미쳤어 전통 다과 너무 힙해(positive) ✨

작년 봄가을에 SNS에서 화제였던 행사가 하나 있어요. 국가유산청 산하 국가유산진흥원(옛 한국문화재재단)이 개최하는 경복궁 생과방 프로그램인데요. 평소 관람객에게 공개되지 않는 경복궁 소주방 전각에 있는 ‘생과방’은 왕과 왕비의 후식과 별식을 준비했던 곳이에요. 이곳에서 조선왕조실록에 나온 대로 실제 임금이 먹었던 궁중병과와 궁중약차를 즐길 수 있고요.
생과방 프로그램은 2016년 가을 첫선을 보였어요. 코로나19 시기를 제외하고 매년 봄과 가을에 예약을 받아 진행했는데요. 코로나19 이후 SNS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웬만해서는 티켓 예약에 성공하기 어려울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어요. 워낙 경쟁이 치열해지자 작년 봄에는 행사 횟수를 늘렸고, 가을부터는 선착순 대신 추첨제로 예약 방식을 변경했다고. 올해부터는 경복궁에 이어 창덕궁에서도 생과방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하면서 관련 예산도 늘었는데요. 국가유산진흥원 ‘한국의집’이 운영하는 비슷한 컨셉의 프로그램 ‘고호재’도 만만치 않은 인기를 자랑해요.
MZ세대 사이에서 불고 있는 전통 다과의 인기는 ‘약과 열풍’에서 시작됐다는 게 정설이에요. 2022년 유튜브에서 몇몇 크리에이터들이 올린 유명 약과 브랜드의 ‘약과 먹방’이 바이럴을 탄 게 시작이었는데요. 품절 대란이 벌어지고, ‘약켓팅(약과+티켓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야말로 난리가 났어요.
제사상에서나 볼 수 있었던 약과가 갑작스레 인기를 끌자 기업들도 서둘러 트렌드에 올라탔어요. 약과를 소재로 한 도넛과 쿠키, 타르트 등 수많은 약과 디저트 제품을 연달아 내놓은 것. GS25는 직접 연구소를 차려 자체 약과 브랜드를 만들기까지 했고요.
전통 다과의 인기는 거기서 끝이 아니에요. 전통 다과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저트 브랜드들이 등장하며 인기를 끌고 있거든요. 전통 다과 고유의 재료에 초콜릿·라즈베리 등 서양 재료를 접목하고, 계절별로 우리나라에서 나는 채소·과일 등 다양한 식재료를 창의적으로 활용하기도 하는데요. 차분하고 여유롭게 다과를 즐기는 차별화된 경험까지 매장에서 제공하는 경우가 많아요. ‘K-디저트 카페’로 소문난 곳은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를 잡기 어려울 정도고, 색다른 선물을 찾는 이들에게 전통 다과 선물세트도 꽤나 인기라고.
여기까지만 보면 전통 다과의 인기는 갑작스럽게 느껴질지도 몰라요. 유튜브와 SNS에서 바이럴을 타며 우연히 시작된 거라고 생각하기 쉽고요. 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얘기는 좀 달라져요.
자세히 보기 🔎: 전통 다과입니다. 근데 이제 트렌디함을 곁들인 🇰🇷

많은 사람들이 디저트에 진심이잖아요. 비욘드 트렌드도 ‘요아정’, ‘두바이 초콜릿’, 베이글 등 숨 가쁘게 바뀌는 디저트 유행 트렌드를 다뤘는데요. 뜨고 지는 유행을 따라가며 우리의 디저트 취향도 넓고 깊어져 왔다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슈톨렌, 휘낭시에, 크림브륄레, 바움쿠헨, 에클레르 등 처음 접했을 땐 이름조차 낯설었던 수많은 해외 디저트가 이젠 제법 익숙해진 것처럼요.
하지만 전통 다과는 약과나 (흔히 ‘한과’로 퉁쳐서 지칭하는) 유과 정도를 빼면 영 익숙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에요. 명절 차례상이 아니면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데다, 제품도 다양하지 않다 보니 오랜 역사와 전통이 무색할 정도로 생소할 수밖에 없었던 것. 예를 들어 MZ세대 사이에서 인기인 ‘개성주악’은 무려 고려시대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 다과인데, “처음 들어봤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바로 이 지점을 전통 다과의 인기 요인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어요. 새로운 경험을 중시하는 MZ세대에게 전통 다과는 최신 유행하는 해외 디저트만큼이나 새롭게 느껴진다는 것. 약과·유과뿐 아니라 숙실, 과편, 다식, 정과 등 알고 보면 다채로운 전통 다과의 세계를 처음으로 접하며 푹 빠져들게 되는 거예요.
그동안 전통 다과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는 건 거꾸로 새로운 아이디어와 창의성을 자극하는 유인이 되기도 해요. 어떤 계기로든 전통 다과의 매력에 빠진 MZ세대가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메뉴를 직접 개발해 내놓기 시작한 거예요.
입소문이 끊이지 않는 전통 한식 디저트 브랜드 ‘연경당’도 그런 사례 중 하나인데요. 1998년생인 대표는 동년배인 2030세대를 타깃으로 삼고, 전통을 살리면서도 현대화를 시도한 메뉴들을 개발해 내놓고 있어요. 한식 다과 브랜드 ‘에움’도 증편을 구움과자 모양으로 만들어 내놓는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전통 다과를 창의적으로 재해석한 새로운 메뉴를 선보이고 있고요.
서양 디저트와는 다른 제철 식재료와 조리법을 활용해 만든 이런 전통 다과를 마주하면 확실히 ‘새롭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고운 색감과 정갈한 상차림, 익숙한 듯 신선한 비주얼이 인스타그램에 올리기에도 딱이에요. 유행을 타기 좋은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는 거예요.
언제까지 이어질지 궁금한 ‘뉴트로’ 트렌드도 분명 전통 다과 유행에 영향을 미쳤을 거예요. 약과 유행이 불어닥쳤을 때 ‘할매니얼(할머니+밀레니얼)’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는데요. 고궁 투어 유행에서 보듯 오래된 것에서 새로움을 찾고, ‘힙한’ 경험을 추구하는 MZ세대가 전통 다과의 인기를 이끌고 있는 건 그런 면에서 꽤나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뭔가 새로운 걸 처음부터 만들어내야 하는 일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거예요. 세상에 없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에는 엄청난 고민과 고통, 좌절이 따라오기 마련이라는 걸요. 그래서 언젠가부터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건 없지만, 어쩌면 우리에게 새로운 게 꼭 필요한 건 아닐지도 모른다고요.
전통 다과 역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미 있는 것들 중에도 우리가 잘 모르는 게 많고, 그것들을 이리저리 조합하고 변주하다 보면 그 안에서 새로운 게 나오는 법이니까요. 그게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건 아닐 수 있지만 그건 그것대로 충분히 새롭고, 의미도 있는 거 아닐까요? 1000년 넘은 전통 다과가 여전히 우리에게 ‘힙하게’ 느껴지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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