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새로운 주인공, K-응원봉의 30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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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슴이의비트

비욘드 트렌드

광장의 새로운 주인공, K-응원봉의 30년 역사💡

고슴이의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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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uters/Kim Kyung-Hoon

한 해의 마지막을 앞둔 지금. 원래대로라면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다가올 새해를 준비할 때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조금 많이 달라요. 지난 3일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하루하루가 혼란스러웠기 때문이죠. 뉴스도, SNS 피드도 온통 계엄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해요. 탄핵을 촉구하는 시위가 매일같이 이뤄졌고, 지난 14일에는 국회에서 탄핵소추안도 가결됐죠.

그런데 시위 현장에서 전 세계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게 하나 있어요. 바로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응원봉인데요. BBC, 로이터 통신 등 외신과 빌보드까지 ‘무지갯빛 시위’를 심층 보도했어요. 해외에서는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풍경이다’, ‘이런 시위 문화는 처음 본다’라는 반응이 나오는데요. 문득 궁금해졌어요. 응원봉은 언제 처음 등장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변해왔을까요? 2024년 12월 전국 곳곳에서 빛난 응원봉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걸까요?


훑어보기 👀: 풍선부터 ‘응원밤’까지, 응원봉의 간략한 역사

이미지 출처: '아는형님' 유튜브 / 샤이니 X 공식 계정

사실 응원봉은 선배님이 있어요. 1990년대 가요 프로그램 무대를 가득 메운 ‘응원풍선’이죠. 당시는 아이돌 문화가 막 꽃을 피우던 때여서, 지금보다 수가 훨씬 적었어요. 그러다 보니 내가 응원하는 아이돌이 어떤 컬러를 쓰느냐가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졌죠. 풍선은 스위치를 눌러서 색깔을 바꿀 수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1세대 아이돌들은 자신들만의 색이 명확했어요. H.O.T는 흰색, 젝스키스는 노란색으로 유명했죠.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는 서로의 상징색을 입힌 우비와 풍선으로 무장(?)한 팬들이 격렬하게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어느 정도 과장은 있지만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연출이었어요. 당시 밤 9시 뉴스에 보도될 정도로 화제가 됐죠. 누가 빨간색을 쓰냐를 두고 부딪힌 동방신기와 핑클도 유명하고요. 시간이 흐르고 아이돌들도 많아지면서, 고유 컬러를 고르는 것도 점점 어려워졌어요. 나중에는 구별을 위해 반짝이를 넣은 응원풍선까지 등장할 정도였죠. 

그러다 2008년, YG엔터테인먼트에서 가수 세븐의 팬들을 위한 응원봉을 출시했어요. 원래는 세븐의 상징인 라임색 풍선을 쓰려고 했지만, 이미 다른 팀이 쓰고 있어 고민 끝에 야광 스틱을 ‘7’ 모양으로 붙여 만들었죠. LED도 아니었고 특별한 기능도 없었지만, ‘7봉’은 아이돌 응원 문화에 신선한 변화를 불러온 아이템으로 주목받았어요. 이후 주요 기획사들이 아티스트 로고, 세계관 등을 활용한 디자인의 응원봉을 경쟁적으로 출시하면서, 지금의 응원봉 문화가 자리잡게 된 거예요.

응원봉이 처음 광장에 등장한 건 2016년이었어요. 당시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촛불은 촛불일 뿐 바람이 불면 꺼진다, 민심은 언제든 변한다”라고 말한 게 발단이 됐죠. 여기에 크게 반발한 시민들이 촛불 대신 ‘LED 촛불’을 들고 나오며 ‘민주주의는 꺼지지 않는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줬고요. 이번 탄핵 촉구 시위에서는 MZ세대 여성들이 바람이 불어도 꺼지지 않는 응원봉을 들고 나오면서, 응원봉은 콘서트장이 아닌 광장의 한복판에 등장했어요. 

각양각색의 모양과 색깔로 곳곳을 빛내는 응원봉들. 우리나라는 물론 외신에서도 “새로운 세대가 응원봉으로 새로운 시위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진지하면서도 즐겁게 소속감을 드러내는 게 인상적이다”처럼 다양한 관점으로 응원봉을 분석하고 있는데요. 나라가 위태로운 순간 거리로 나온 응원봉, 우리는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요?


자세히 보기 🔎: 응원봉은 ‘함께’ 빛나는 새 시대의 촛불이다

젊은 세대에게 응원봉은 평범한 물건이 아니에요. 아이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돈을 아껴 어렵게 산 물건이죠. 포장 비닐도 벗기지 않고 보관해 두다가, 정말 특별한 순간 꺼내 드는 소중한 물건이고요. 그렇기에 응원봉을 들고 나온 사람들은 정말 큰 결심을 한 거예요. 가진 것 중 가장 소중한 물건을 들고 나온 거니까요. 말하자면, MZ세대는 자신에게 제일 의미 있는 물건을 들고 “소중한 것들을 지키러 나왔다”라고 외친 거예요.

응원봉 덕분에 이전엔 집회 현장에서 보기 어려웠던 모습도 나타났어요. 호기심에 누구 응원봉이냐며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기성세대, 자녀들에게서 응원봉을 빌려 시위에 참여한 부모님들, 4050 세대와 함께 민중가요를 부르는 아이돌 팬덤 등. 집회 현장에서는 응원봉이 낯선 사람들을 위해 아이돌별 응원봉을 소개하는 시간이 따로 마련될 정도였죠. 세대와 차이를 넘어 우리가 하나로 모이게 된 거예요. 

응원봉에서 시작된 연대의 움직임은 다양한 형태로 확장됐어요. 추운 날씨에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위해 카페와 음식점 등에 선결제를 하거나, 여의도 화장실 지도를 만드는 식으로요. 아이유, 소녀시대 유리 등 유명 연예인들도 먹거리와 핫팩을 지원하는 등 목소리를 내고 있죠. 기성세대는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상’을, MZ세대는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서로 알려주고 같이 부르는 등 세대의 벽도 허물어지고 있어요. 이런 모습에 ‘그 어려운 국민 대통합이 이뤄졌다’는 얘기까지 나오죠. 

계엄령이 선포되던 날 밤, 저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라는 절망감을 크게 느꼈어요. 이렇게 우리나라가 갈라지는 건가 생각도 했죠.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한데 모이고, 세대별 유행가를 서로 알려주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세대도, 생각도, 문화도 모두 다르지만 우리는 여전히 함께 힘을 모을 수 있다는 걸 느꼈죠. 그렇게 우리는 함께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변화를 만들어 낼 거고요. 서로 다른 응원봉을 들고 광장에 모인 이번 겨울처럼, 앞으로도 그 변화의 중심에는 응원봉이 있을 것 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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