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의 진화: ‘피크닉’과 ‘그라운드시소’가 핫플이 되기까지 🖼️

전시의 진화: ‘피크닉’과 ‘그라운드시소’가 핫플이 되기까지 🖼️

작성자 고슴이의비트

비욘드 트렌드

전시의 진화: ‘피크닉’과 ‘그라운드시소’가 핫플이 되기까지 🖼️

고슴이의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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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um_b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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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취미라고 말하면 욕먹기 딱 좋은 것들이 있었어요. 특히 독서와 영화는 성의 없는 답변의 표본이었죠. 그런데 시대가 변했어요. 독서는 ‘힙하고’ 섹시한 취미로 올라섰고, 영화관에서 예술영화를 보는 게 특별하고도 일상적인 이벤트가 됐죠. 이와는 반대로, 과거에는 고급 교양처럼 여겼지만 지금은 숨 쉬듯 당연해진 게 있어요. 바로 전시입니다. 

사람들의 취향이 다양해지고, 전시의 범주가 넓어진 덕분에, 정말 별의별 신기한 전시가 열려요. 각자 좋아하는 전시 공간도 있고요. 제 주변만 해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들러서 테라로사에서 커피를 마시고 오거나, 서울 중구 회현동 ‘피크닉(Piknic)’의 새로운 전시를 꼬박꼬박 찾거나, 주말에 서울 성동구 성수동을 돌면서 팝업 휘몰아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답니다. 얼마 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구찌 가옥 건물 지하에서 열린 사진전 인증샷이 인스타그램을 가득 채워서 깜짝 놀라기도 했고요. 전시는 어쩌다가 우리 곁에 이리 자연스레 스며들었을까요.


라떼는 말이야, 전시는 교오양이었다구 🖼️

‘전시’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여러 가지 물품을 한 곳에 벌여 놓고 보임’이라고 나와요. 영어에서 전시를 뜻하는 ‘exhibition’의 어원은 라틴어 ‘exhibitus’와 ‘exhibere’인데요. ‘밖으로 꺼내다, 보여주다, 제시하다, 전달하다’라는 의미예요. 이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우리는 지금 그 어떤 때보다 물리적, 심리적으로 전시와 밀접해요. 여기서 (슬프게도) ‘라떼는 말이야’를 시전해야겠군요. 2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의 전시 문화는 굉장히 척박했거든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시 공간에 리움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이 빠질 일은 없어 보여요. 그런데 리움미술관이 한남동에서 개관한 게 2004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이촌동에서 신축 개관한 게 2005년이랍니다. 당시만 해도 전시는 전공자나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알음알음 찾아간다는 인식이 강했어요. 유일하게 인파가 몰리던 전시가 바로 블록버스터 전시였습니다. 유명한 화가나 미술관, 유파 이름을 걸고 해외에서 여러 작품을 가져온 후 몇 개월에 걸쳐 크게 기획전을 여는 형태였죠.

2000년 덕수궁미술관(지금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으로 불러요!)에서 열린 프랑스 파리 오르세미술관 소장품 전시를 시작으로 샤갈, 달리, 피카소, 루브르박물관, 모네 등을 내세운 각종 블록버스터 전시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등 몇몇 대형 전시 기관에서 집중적으로 열렸어요. 2000년대 블록버스터 전시는 지금과는 다르게 퀄리티가 좋지 않았어요. 외국에 가지 않아도 외국 작품을 실제 볼 수 있다는 데 만족해야 했죠. 그럼에도 당시 전시는 박물관, 미술관, 갤러리에서 ‘고급 교양’을 쌓는 기회였습니다.

그러다 2010년대부터 큰 변화가 생기기 시작해요. 알맹이 없이 티켓만 팔아먹는다고 비판받던 블록버스터 전시 대신 자체 큐레이팅에 방점을 둔 기획 전시를 여는 게 뉴노멀이 됐죠. 대형 공립미술관과 사립미술관의 신축도 이어졌고요. 서울시립미술관만 해도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2011), 서울시립북서울 미술관(2013)이라는 분관 체제를 갖추기 시작했고, 서소문 본관에서는 2014년부터 블록버스터 대관 전시를 피하기 시작했어요.

수많은 갤러리와 문화 공간이 있는 북촌의 핵심부에 자리 잡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개관한 시기가 2013년입니다. 고급 한식당으로 쓰던 흥선대원군의 별장인 석파정을 사들여 옆 부지에 지은 서울미술관(2012)을 비롯해, 영국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한 아모레퍼시픽 사옥에 들어선 아모레퍼시픽미술관(2018), 조민석 건축가의 마곡 스페이스K(2020), 스위스 건축가 헤르조그 앤 드뫼롱의 한국 내 첫 설계작으로 유명한 청담동 송은(2021) 등 사립미술관도 계속 늘어났죠.


먹기 쉽고 보기 쉬운 전시가 맛도 좋더라 📸

이미지 출처: 대림미술관
이미지 출처: 디뮤지엄

무엇보다 극적인 변화는 전시에서 다루는 주제가 확장됐다는 거예요. 그 시발점으로 서촌에 있는 대림미술관을 꼽습니다. 2011년 칼 라거펠트의 사진전을 열고, 이후 가구 디자이너 핀 율, 크리스털 브랜드 스와로브스키, 독일의 아트북 출판사 슈타이들(Steidl), 젊은 사진가 라이언 맥긴리, 디자이너 그룹 트로이카 등을 다루며 매번 10만 명 넘게 모객했어요. 예전에는 전시 대상으로 고려하지 않던 사진, 리빙, 디자인, 브랜드, 대중문화 등을 적극적으로 다루면서 기존 블록버스터 전시만큼 화제를 모았기에 새로운 시장이 열린 거나 마찬가지였죠.

여기에는 대중의 높은 호응뿐 아니라,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언제 어디서나 간단히 사진을 남길 수 있는 점이 주효했어요. 게다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의 급성장으로 사진 업로드가 일상이 됐죠. 이런 흐름을 제대로 탄 곳이 디뮤지엄입니다. 2015년 12월 한남동에 개관한 디뮤지엄은 대림미술관을 운영하는 대림문화재단이 설립 20주년을 맞이해 시작한 전시 공간인데요. 대림미술관이 쌓은 모객 내공을 한층 더 전략적으로 발휘했어요. 전시 공간에서 사진 찍는 걸 아예 대놓고 장려했거든요. 포토존 역할을 하는 스폿 또한 꼼꼼하게 배치했죠. 인스타그램이 꽉 차도록 전시 인증샷이 폭주하면서 전시도 핫해질 수 있다는 걸 증명했어요.

브랜드들이 예전처럼 마케팅 비용을 광고물에 태우지 않고, 문화 마케팅이란 이름 이래 전시로 풀어내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 수혜를 입으며 성장한 곳이 2014년 개관한 서울 동대문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입니다. 처음에는 공간 활용을 제대로 못 하는 적자 덩어리라고 온갖 욕을 먹었는데요. 샤넬(2014), 디올(2015), 장 폴 고티에(2016), 루이 비통(2017), 반클리프 아펠(2018), 구찌(2022) 등 유명 패션 브랜드 전시를 유치하고, 다른 대관 전시도 활발하게 열면서 핫플레이스로 거듭났어요.

그리고 누구도 거스를 수 없던 시대적 흐름이 있었으니, 2015년부터 서서히 등장한 ‘팝업스토어(Pop-up Store)’입니다. 많은 브랜드가 팝업 스토어에 뛰어들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팝업스토어는 홍보 및 판매 기능을 넘어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의 핵심 공간으로 떠올랐어요. 팝업 스토어를 기획하고 공간을 디자인하는 일이 중요해지자, 기존 전시에서 쓰이는 형식과 문법을 적극적으로 팝업스토어에 접목하기 시작했죠. 팝업 스토어가 작은 전시장으로 변모한 거예요. 

팝업스토어의 발전은 기존 전시 공간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전시의 기본적인 고민거리는 ‘무엇을 다루고, 이를 어떻게 보여줄까?’인데요. 좋은 작품을 모아서 정보를 잘 전달하는 것을 넘어, 콘텐츠를 통해 경험을 극대화하는 게 절실해졌어요. 아니면 사람들이 찾지 않거든요. 매력적인 이미지를 선보이는 문화 놀이터의 면모가 강조되면서, 대중에게 먹힐 만한 아이템과 눈에 띄는 공간 디자인은 필수가 됐죠. 이는 인스타그램이 낳은 결과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인스타그래머블한 장소를 찾아 헤매면서 카페, 레스토랑, 행사, 전시 등 모든 곳이 동일 선상에서 비교되기 시작했거든요. 전시 또한 취향을 소비하는 대상이 된 거죠.


지금은 전시 대부흥의 시대 🎨

이미지 출처: 푸투라 서울
이미지 출처: 라인문화재단

근래 서울은 전시 천국입니다. 작년에 서울시립미술관과 뉴욕 휘트니 뮤지엄이 공동 기획한 에드워드 호퍼의 전시는 누적 관람객 33만 명을 기록했고, 리움미술관이 기획한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개인전에는 25만 명이 몰렸어요. 올해에는 프리즈 서울을 겨냥한 다양한 전시가 화려하게 열리고 있고, 바로크 미술을 개척했다고 평가받는 카라바조와 그의 추종자들을 다룬 전시 ‘빛의 거장 카라바조 & 바로크의 얼굴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1월 9일~)과 에곤 실레를 비롯해 동시대에 활동한 빈 분리파 예술가를 다룬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 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에곤 실레까지’ (국립중앙박물관, 11월 30일~) 등의 블록버스터 대관 전시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매우 기대가 되는 라인업입니다. 반클리프 아펠(디뮤지엄), 까르띠에(DDP), 불가리(뮤지엄한미 삼청) 등 럭셔리 브랜드 전시도 크게 쓸고 지나갔죠. 지난가을 북촌에는 미디어 아티스트 레픽 아나돌의 아시아 첫 개인전을 개관전 삼아 ‘푸투라 서울’이 문을 열었고, 며칠 전에는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사거리 지척에 전시 공간 ‘프로젝트 스페이스 라인’이 개관하는 등 신규 공간도 계속 생기고 있어요.

이미지 출처: 피크닉, 그라운드시소

이런 전시의 홍수 속에서도 특히 눈길이 가는 곳은 피크닉과 그라운드시소입니다. 2018년 레스토랑, 카페, 전시 공간, 스토어가 공존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개관한 피크닉은 류이치 사카모토 특별전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명상, 정원 만들기, 회사 만들기, 달리기 등 독특한 주제로 전시를 기획하고 디자이너 재스퍼 모리슨, 무대 디자이너 페터 팝스트, 사진가 사울 레이터, 사진가 프랑수아 알라르 등의 개인전으로 마니아층을 형성했어요. 10월부터는 일본의 전설적인 사진가 우에다 쇼지의 회고전을 열고 있습니다. 콘텐츠, 공간 경험을 설계하는 능력이 탁월해서 늘 주목하는 곳인데요. 서울에서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대중 전시를 풀어낸다고 생각해요.

그라운드시소는 2020년 서촌의 독특한 건축물에서 시작한 전시 플랫폼입니다. 초대박 웹툰 ‘유미의 세포들’ 특별전을 개관전으로 선택해 신선한 충격을 줬죠. 현재 서촌, 명동, 성수, 서울역 등 서울 중심부 네 곳에 전시장을 운영 중인데요. 서촌에서 열리고 있는 ‘슈타이들 북 컬처ㅣ매직 온 페이퍼’는 아트북 출판사 슈타이들에서 출판한 장서 1000여 권을 책장에서 직접 꺼내 읽거나, 책 만드는 기초 재료를 만질 수 있게 하는 등 관람 경험의 극대화에 초점을 맞춰서 무척 흥미로워요. 지난 7월 운영사인 미디어앤아트가 110억 규모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하며 전시가 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도 했죠. 

이제 전시에 대한 심리적인 진입 장벽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1주일 동안 작은 공간에서 진행하는 이벤트에도 전시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어색하지 않아요. 기존 전시 공간에서도 예술뿐 아니라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 각양각색의 주제를 아주 매력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설계하고 있죠. 이 시대에 부상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취향에 자본이 본격적으로 동조하면서, 전시 공간은 영화관 못지않은 스펙터클한 콘텐츠 소비의 장이자 문화적인 놀이터로 진화 중입니다. 지금 펼쳐지는 전시 대부흥의 시대를 마음껏 탐험해 보세요. 재미는 물론, 취향과 안목까지 키울 수 있는 멋진 기회가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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