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니진 유행이 돌아온다? 돌고 도는 패션 트렌드의 세계 👖
작성자 고슴이의비트
비욘드 트렌드
스키니진 유행이 돌아온다? 돌고 도는 패션 트렌드의 세계 👖

패션 트렌드는 반복됩니다. 코트는 짧았다가 길어지고, 셔츠는 핏했다가 릴랙스하게 변하죠. 유행하는 걸 입다 보면 질리고 그러다 보면 다른 방향을 향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하지만 이런 흐름 속에서도 스키니진은 약간 특별한 시선을 받고 있는 듯합니다. 한 시절의 강렬했던 유행이 지나간 후 다시 메인 트렌드를 지배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잊혀질 만하면 돌아온다는 소식이 들리고, 그러면 사람들은 패션의 자유로움과 스키니진의 비인간적인 면 사이에서 극단적으로 다른 의견을 내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스키니진의 복귀를 둘러싼 논쟁

최근 몇 년째 반복되고 있는 패션 뉴스 중 하나가 스키니진의 복귀, 부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뜬금없는 건 아닙니다. 바지 통이 넓어진 이후 배기, 카고, 테이퍼드, 와이드 등 비슷비슷한 핏을 오가고 있습니다. 레깅스가 있다지만 이건 운동복 카테고리에 걸쳐 있어서 불편함을 자진하는 스키니진과는 약간 다른 길에 있습니다. 최근에는 웨스턴 트렌드가 부상하면서 부츠컷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부츠컷도 크게 보면 좁은 바지 카테고리에 속하니, 분명 바지 통이 서서히 좁아지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유선 이어폰 같은 지나간 유행도 다시 돌아왔었는데 스키니진만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있으니 순서가 올 법도 하죠.
디자이너 패션 쪽의 움직임은 보다 구체적입니다. 에디 슬리먼이 이끌던 셀린느는 2023년 SS 시즌 컬렉션에서 2000년대 초반이 생각나는 인디록과 그런지, 보헤미안 시크 분위기의 패션을 선보였습니다. 이런 패션에서 마이크로 미니스커트와 바이커 부츠, 발레 플랫과 로라이즈 스키니진이 빠질 수 없겠죠.
2024년 들어서는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발렌시아가의 2024 윈터 컬렉션에서는 가죽 봄버 재킷에 커다란 스카프를 두르고 부츠에 넣은 스키니진이 나왔습니다. 알렉산더 맥퀸의 쇼에서도 무릎 아래를 끈으로 조인 슬림한 데님이 등장했죠. 그리고 미우미우에서는 크롭탑 데님 재킷에 스키니진의 더블 데님 룩을 선보였습니다. 특히 미우미우가 주목을 받았습니다. 미우미우는 최근 몇 년 동안 로라이즈 미니 스커트와 울 케이블 니트, 블루 컬러의 버튼 셔츠와 해링턴 재킷, 그리고 여러가지 가방으로 글로벌 패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미우미우가 가는 길을 수많은 브랜드들이 따라 하고 있기 때문에 “스키니진이 역시 대세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유행한다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면 됩니다. 하지만 서두에 말했듯 스키니진의 복귀는 논쟁과 당혹감을 유발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현 세대, 즉 Z세대가 스키니진을 밀어내면서 패션의 세대 간 갭을 만들어 냈기 때문입니다. Z세대는 밀레니얼 세대의 유행이었던 히든 삭스, 사이드 파트 헤어(포마드 헤어) 등과 함께 스키니진을 구시대의 촌티 나는 패션 미감의 상징으로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스키니진 반대에는 명분도 있습니다. 바로 자기 몸 긍정주의(Body positivity)입니다.
재단하듯이 몸매를 평가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맞선 Z세대는 날씬함에 대한 동경과 욕망의 산물인 스키니진을 공격합니다. 2000년대 초반 칼 라거펠트는 에디 슬리먼의 디올 옴므에서 만든 스키니진을 입고 싶다면서 40kg 정도를 감량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패션은 체중 감량을 위한 가장 건강한 동기”라고 했었죠. 마른 게 더 멋지고 건강하다는 일률적이고 이분법적인 세계관은 스키니진이 단순히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보여줍니다. 누군가에게 어떤 사정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몸의 형태만 놓고 ‘부지런하고 성실해서 마르고 탄탄한 몸을 유지하고 있다’느니, ‘게을러서 살이 쪘다’느니 하는 선입견을 가지는 사회적 시선과 분위기는 이 문제가 계층과 나이, 성별의 문제를 담고 있다는 걸 드러냅니다. 패션은 개성과 다양성을 드러내는 방식이라고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편협하죠.
그런 결과 2021년 즈음 틱톡에는 ‘스키니진 금지(#noskinnyjeans)’ 태그를 단 수많은 영상이 올라옵니다. 이들은 스키니진을 찢고, 태우고, 입어서는 안된다고 독려하고, 밀레니얼 세대에게 젊어 보이겠다고 스키니진을 입는 걸 그만두라고 충고합니다. 패션 때문에 무리하지 말고 나이대로, 자기 몸 생긴 대로 떳떳하고 멋지게 살자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2020년 즈음부터 본격화된 코로나19 팬데믹은 건강과 위생의 중요성을 돌아보게 만들었고, 이는 몸을 답답하게 만드는 불편한 옷에 대한 거부로 이어집니다. 편안하고 실용적인 커다란 바지는 점점 더 커집니다. 스키니진 유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 2024년의 패션 트렌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바지가 너무 커지고 있다는 점이기도 합니다.
소문을 퍼트리는 사람들

그럼에도 스키니진 이야기는 여전히 관심을 끕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소문을 내고, 누가 기다리고 있는 걸까요. 몇 가지 부류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패션 디자이너와 브랜드는 항상 새롭고 신선한 룩을 선보이고자 합니다. 지금 사람들이 많이 입고 있지 않은 옷들 중에 수면 위로 끌어올릴 수 있는 걸 찾아내서 현대화하고 트렌드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한다면 당분간 시장을 주도할 수 있습니다. 셀러브리티의 SNS와 패션쇼에 스키니진이 계속 흘러나오는 건 유행의 전환을 위한 분위기가 완전히 무르익을 때까지 계속 밑밥을 던지고 있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뉴스와 매거진에게 스키니진 복귀 여부는 사람들이 몰려올 만한 좋은 뉴스입니다. 특히 밀레니얼과 그 이전 세대들은 스키니진에 대해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한 시절을 함께 보냈던 아련한 추억과 감정이 있고, 할 말도 있겠죠. 약간 더 들어가 볼 수도 있습니다. 과거에 자신이 몰두했던 옷이 자기 몸 긍정주의라는 모토 아래 부정되는 모습을 보는 건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스키니진이 다시 유행한다면 무리한 다이어트를 하고 다리에 바지를 집어넣기 위해 애쓰던 자신의 과거를 “역시 그건 그저 한때의 패션이었을 뿐이었어”라며 다독일 수도 있겠죠.
그리고 또 여하튼 남들이 하는 건 다 싫고 다들 이러저러해서 안 입는다고 하면 굳이 입어야 즐거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두들 넓은 바지를 입고 다니는 거 같으니 나는 스키니진을 입겠다는 사람들이죠. 사실 이런 비뚤어진 마음은 패션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패션은 남과는 다른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움직임이니까요. 아무래도 패션 분야에 이런 이들이 꽤 있을 테고, 그러니 스키니진이 다시 돌아온다는 작은 움직임만 느껴져도 어디선가 이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스키니진은 어떻게 될까요. 스키니진 유행 뉴스는 아마도 진짜 유행이 돌아올 때까지 계속 나올 거 같습니다. 지금이야 와이드 팬츠, 배기 팬츠가 대세라지만 언젠가 문득 내가 왜 이걸 계속 입고 있지 하며 지긋지긋하게 느껴질 때가 분명 옵니다. 어떤 디자이너나 브랜드, 화보나 광고, 드라마나 뮤직비디오가 스키니진을 예전 이미지의 반복 재생이 아니라 상큼하고 신선하고 패셔너블하게 보이도록 하는 데 성공한다면 사람들은 커다란 팬츠를 문득 구시대의 옷처럼 보게 될 테고, 그러면 다시 좁은 바지를 사러 가게 되겠죠. 패션은 이렇게 입고 있는 옷을 질리게 만들고 새로 나온 옷을 멋지게 만드는 데 특출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산업 분야니까요.
그렇다고 해도 예전의 모습과는 다를 겁니다. 최근 패션쇼에 스키니진이 등장해도 그다지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이전의 전형적인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컬러와 재질, 스키니진을 사용하고 매칭하는 방식을 지금 시대의 옷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수정이 필요합니다. 이런 게 디자이너들이 하는 일이죠. 그리고 이 말은 밀레니얼 세대가 옷장 속에 보관하고 있는 스키니진을 다시 꺼내입는 식은 아닐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레트로 유행이 다 그렇습니다. 90년대 룩이 유행이라고 진짜 90년대에 쓰던 걸 다시 꺼내 쓰는 건 아니었죠. 다시 꺼내 쓸 수 있는 건 시간이 흘러도 고급 제품인 명품 가방 같은 것들밖에 없었죠.
옷은 잘못이 없다. 문제는 그저 인간.
사실 문제는 이게 아닙니다. 패션은 다양성을 표방합니다. 빌리 아일리시가 입었던 배기 팬츠를 만든 프랑스의 Très Rasché라는 비주류 패션 브랜드 인스타그램 소개에는 "Wear Whatever the F*ck You Want."(F* 네가 입고 싶은 걸 입어)라고 적혀 있습니다. ‘네가 입고 싶은’ 게 무조건 배기 팬츠일 수는 없습니다. 각자 입고 싶은 걸 입으면 됩니다.
사람의 취향은 지극히 다양합니다. 누군가는 편안한 옷을 입으면서 즐거워하고 또 누군가는 자신을 ‘억압’하는 옷에서 존재의 의미를 느낄 수도 있습니다. ‘배기 팬츠는 선, 스키니진은 악’ 이런 양자택일이 아닙니다. 잘못이 있다면 “유행 지난 거 왜 입어”, “넌 왜 그거 안 입어” 하면서 떠드는 쪽에 있습니다. 유행 따위 무슨 상관입니까. 자기 몸에도, 마음에도 안 맞는 유행 쫓아다닌다고 인생이 더 즐거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입고 싶은 거 입고 남이 뭘 입든 신경 쓰지 말자고요. 따지면 몸매에 대한 사회적 기준을 재생산하고 자기 몸 긍정주의를 방해하는 스키니진보다 유행이나 옷 입는 방식 같은 걸 강요하고 눈치 주는 오지랖 쪽이 사회적 해악이 더 클 겁니다. 옷은 잘못이 없어요. 문제는 언제나 인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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