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가을 패션은 드뮤어하게: 드뮤어 트렌드의 모든 것 🍁🧥
작성자 고슴이의비트
비욘드 트렌드
이번 가을 패션은 드뮤어하게: 드뮤어 트렌드의 모든 것 🍁🧥
“Very demure, very mindful.”
또 새로운 패션 트렌드가 등장했습니다. 이번에는 드뮤어라고 합니다. ‘드뮤어(demure)’의 뜻을 찾아보면 “얌전한, 조용한”이라고 합니다. 단어의 뜻처럼 과하지 않으면서 단정한 패션 스타일을 말합니다. 이 트렌드의 시작은 짧은 동영상 플랫폼인 틱톡입니다. 오늘의 ‘비욘드 트렌드’는 틱톡에서 시작된 드뮤어 트렌드가 어디까지 확장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우아한 절제의 패션, 드뮤어
틱톡 크리에이터인 줄스 르브론은 “직장에서 얌전한 태도를 유지하는 방법”이라는 영상을 올렸습니다. 그는 출근을 하면서 “제 출근용 화장이 보이시나요? 드뮤어하죠. 사려깊어요. 저는 출근할 때 초록색 컷 크리즈 눈 화장을 하지 않아요. 저는 직장에 갈 때 광대처럼 보이지 않아요.”라고 말합니다.
이 틱톡은 밈이 되어 퍼져나갑니다. 그리고 공적인 장소에서 요란하고 튀는 모습을 피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뷰티와 패션 트렌드로 확장됩니다. 틱톡에서 시작된 트렌드는 X(예전 트위터)에서 이어받으며 무엇이 드뮤어하고 무엇이 드뮤어하지 않은가 토론이 진행됩니다. 그리고 실현된 모습이 인스타그램에 올라갑니다. 틱톡에도 공공장소에서 모범적인 매너, 예의 바름, 규칙을 엄격히 지키는 태도 등 에티켓을 가다듬는 방법에 대한 영상이 무수히 올라왔습니다. 이렇게 틱톡의 밈은 짧은 시간 동안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일단 여기에서 볼 수 있는 건 틱톡의 역할입니다. 패션은 홀로 빈 바닥에서 튀어나오지 않습니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의미를 가집니다. 현대의 패션 스타일에 큰 영향을 미치는 건 미디어였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가 많이 보는 영상의 영향이 큽니다. 오래 전에는 할리우드 영화였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 속 등장인물의 패션은 서서히 확장되는 상영 극장과 함께 퍼져나갑니다. 간혹 서로 다른 문화권과 만나며 적용되고 흥미롭고 독특한 스타일로 파생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TV의 시대, 뮤직 비디오의 시대를 거쳤습니다.
지금은 인터넷의 시대입니다. 유튜브와 OTT 그리고 SNS, 틱톡과 릴스, 쇼츠 같은 짧은 동영상의 시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시간적, 공간적 범위는 더 넓어지고 간극은 더 짧아지고 있습니다. 트렌드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게 됩니다. 게다가 화면에서 본 모습을 바로 재현할 수도 있습니다. 다들 비슷한 영상을 보고 있으니 상상하는 방식도 비슷해집니다. 중간에 개입되던 여러 문화의 필터는 희미해집니다. 사실 끼어들 틈도 없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하면 더 좋겠는데’ 하는 시간에 이미 트렌드는 몇 번이나 바뀌어 있을 겁니다.
드뮤어 트렌드도 흐름 속에서 등장합니다. 앞에는 ‘콰이엇 럭셔리(Quiet luxury)’가 있었습니다. 클래식 스타일을 중심으로 한 조용하고 섬세한 패션을 말합니다. 여기에는 브랜드나 로고 같은 걸 잘 드러내지 않는데 알고보니 비싸고 좋은 것, 이런 숨은 포인트가 들어가 있기도 합니다. 돈과 지위를 드러내는 교묘하고 세련된 방법은 패션의 코어한 자리에 있고 계속 진화하며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브랫(Brat)’ 트렌드가 있습니다. 드뮤어 트렌드 바로 전인 2024년 여름의 트렌드입니다. 브랫은 영국 가수 찰리 XCX의 새 앨범 ‘BRAT’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형광 그린의 앨범 커버와 파티 걸의 노래는 자유분방하고 즉흥적인 태도의 브랫 트렌드가 됩니다. 완벽한 이미지를 추구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반항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고 즐기자는 게 핵심입니다. 그리고 이 트렌드는 SNS에서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는 세태에 대항하며 호응을 얻게 되었고 사회, 문화, 정치 등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패션으로서 브랫은 불완전하고 혼란스러운 매력을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예컨대 지저분한 머리, 번진 스모키 아이 메이크업, 사각형 선글라스, 노브라에 흰색 상의, 무릎 높이의 레이스업 부츠 등으로 표현됩니다.
드뮤어 트렌드는 이런 요란한 흐름의 반대항입니다. 흐트러진 것들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신중하게 예의를 갖춰 세상을 대하고자 합니다. 원래 너무 방종한 패션을 즐기다 보면 또 제대로 갖춰 입어볼까 싶어지고, 틀에 딱 맞춰 살다보면 흐트러지고 싶고 하는 게 패션입니다. 이런 대립을 하나로 묶을 수가 없기 때문에 패션은 반복을 하는거죠.
아무튼 패션의 시선으로 본다면 드뮤어 트렌드는 잘 만들어진 콰이엇 럭셔리, 세련된 옷차림, 큰소리치지 않으면서도 주목을 끄는 강한 개인적 스타일, 단정한 올백 헤어에 색을 절제한 우아하고 페미닌한 화장, 무늬와 컬러를 최소화하고 블랙과 브라운, 화이트와 그레이 컬러 등 차분한 솔리드 컬러의 니트와 셔츠, 블레이저 등등 요란하지 않고 차분하고 단정한 트렌드입니다. 이런 모습이 정리되어 잡지와 웹사이트에 실립니다. 시끄럽고 요란한 시대에 우아하고 절제된 스타일은 돋보일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드뮤어 트렌드는 브랫 트렌드의 반대항이자 콰이엇 럭셔리를 이어받는 모양새입니다. 중요한 점은 단순히 패션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애초에 시작이 특정한 옷이나 액세서리가 아니라 밈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드뮤어의 차분하고 우아하고 절제된 스타일은 패션과 뷰티, 태도와 세계관까지 포괄합니다.
드뮤어 트렌드 뒤에 놓인 오해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드뮤어 트렌드는 일종의 오해 위에 놓여있습니다. 사실 드뮤어라는 단어의 프렌치 느낌과 고풍스러움에는 빈정거림이 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맨 앞으로 돌아가서 보면, 드뮤어 트렌드를 시작한 줄스 르브론은 트랜스 여성입니다. 그리고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라틴계입니다. 시끄럽고 열정적인 라틴계 여성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과 다르게 자신은 어린 시절부터 예의바르고, 조용하고, 대부분의 상황에서 자신을 억제하도록 요구받아왔다고 말합니다.
아무튼 줄스 르브론의 틱톡은 이어집니다. 사려깊고 단정하게 음식을 주문하고, 매니큐어를 칠하고, 탈취제를 바르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공항에서는 뛰지 않고, 가족과 함께 여행할 때는 공항에 “매우 일찍, 매우 정시에, 매우 배려하고, 매우 정중하게” 나타나고, 게이 바에 신분증을 두고 왔을 때 대처 방법이나, 드뮤어하게 라스베가스 스트립을 가는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이런 식으로 다양한 스트레스 상황은 점점 확대되고 어떻게 하면 품위를 유지하고 존중받을 수 있는지 조언해 줍니다.
줄스 르브론은 이게 농담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숙취로 약국에 갈 때도 “약국에서는 사려깊어야 합니다. 여긴 멧 갈라가 아니니까요”라고 말하고, 여성들에게 과하게 꾸미지 말 것을 당부하면서 “차라리 파운데이션이 묻은 상의나 타코벨 콩을 머리에 꽂은 채로 나타나라”고 말합니다. 처음부터 전형적인 여성의 화장, 옷차림, 행동 방식을 풍자하고 따를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적당히 빈정거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틱톡 농담은 약간 흥미로운 방식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어떤 이들은 같은 맥락 위에서 빈정거림을 더했고, 또 어떤 이들은 이를 정말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글의 맨 앞에서 세상이 실시간 동기화되고 있다는 말을 했지만, 인간의 언어는 오해를 수반합니다. 시간차가 짧고 변이가 다양할수록 가능성은 높아지죠. 맥락의 이해는 사람마다 상황이 다릅니다. 그리고 이 오해는 전세계적입니다. 어떤 대학생의 연구에서는 이 농담의 풍자를 이해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비율을 1:2 정도로 분류하기도 했습니다.
하나의 패션 트렌드라지만 많은 것들이 엉켜 있습니다. 드뮤어 트렌드 이후 이에 대한 여러 평이 나왔습니다. 차분함을 주장의 억제로 받아들이고 여성이 더 소극적인 태도를 가질까봐 염려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애를 구체화한 우아함과 공감으로 자신을 꾸민다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에서 주체적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드라마 ‘브리저튼’이나 ‘다운튼 애비’에 나오는 세심하고 얌전하고 예술적인 여성들을 동경하는 이들, 화려한 메이크업과 로고 프린트 패션에 지친 이들, 흥청망청한 여름 트렌드를 지나 차분하고 단정한 가을 트렌드를 기대하는 이들, 공공장소에서 예의 없는 사람이 지겨운 이들, 계절이 바뀌는 틈에 무엇인가를 팔아보려는 이들 모두 원하는 방식대로 밈 위에 손을 올렸습니다.
일단 드뮤어는 줄스 르브론의 손을 떠났습니다. 이걸 오해라고 하는 것도 살짝 늦었습니다. 서로 다른 의견이 부딪히며 세상을 어딘가로 끌고 가고 각자 챙길 걸 챙길 뿐입니다. 패션은 사진 속에서 존재하는 게 아니니 드뮤어한 태도와 생각을 갖춰 본다면 스타일의 완성도는 더욱 높아질 겁니다. 어차피 트렌드는 결과가 아니니 즐길 만큼 즐기면 됩니다. 물론 이런 자기 억제의 태도가 시대 현상이 되어 강요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저항할 가치가 있겠죠. 원하는 걸 하고 자신을 더 사랑하는 일이 유행 중 하나가 돼버린다는 건 약간 이상한 일입니다.
드뮤어 트렌드는 현재 패션 트렌드가 어떻게 등장하고, 퍼져 나가고, 영향력을 가지게 되는지 잘 보여줍니다. 트렌드는 밈의 재해석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디자이너도 패션 브랜드도 주체가 아닙니다. 기존의 매체들은 부응하며 가속화하는 역할입니다. 그리고 종합적입니다. 옷은 스타일을 완성하는 방법 중 하나죠. 브랫의 흥청망청이나 비계획성과 마찬가지로 말투나 행동 방식, 인격과 세계관까지 포괄합니다. 이런 분위기라면 앞으로의 패션 트렌드는 과연 어떤 형태로 나아가게 되고 어느 영역까지 확장할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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