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애니메이션 ‘하츄핑’의 돌풍이 말해주는 것 👾
작성자 고슴이의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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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애니메이션 ‘하츄핑’의 돌풍이 말해주는 것 👾
올여름 극장가에서 가장 뜨거운 작품을 하나 꼽으라면 그건 바로 ‘사랑의 하츄핑’일 거예요. 전도연을 비롯해 화려한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았던 ‘리볼버’나 조정석 주연의 ‘파일럿’을 제치고 8월 7일 개봉과 동시에 예매율 1위를 찍은 것.
“하츄핑? 그게 뭐야?” 생소해하거나 “그거 아이들만 보는 애니메이션 아냐?”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요. 자녀나 조카와 같이 보러 갔다가 오열하고 나왔다는 어른들의 간증 후기가 쏟아지며 입소문을 제대로 타는 중이기 때문.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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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하츄핑’은 국산 애니메이션 영화예요. 2020년부터 방영된 TV 시리즈 ‘캐치! 티니핑’의 첫 극장판 영화로, TV 시리즈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이모션 왕국’을 배경으로 각각의 감정을 지닌 요정인 티니핑 캐릭터들이 인간과 소울메이트 관계를 맺는다는 설정인데요. 소울메이트가 될 인간과 티니핑은 서로를 운명처럼 알아보게 된다고. 영화는 자신만의 티니핑을 애타게 찾던 로미 공주가 ‘하츄핑’을 처음 만나며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고요.
영화의 인기는 수치로 증명돼요. 개봉 한 달여 만에 누적 관객수 88만 명을 돌파했는데, 이는 역대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수준이에요. 어렵지 않게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할 거라는 전망도 나오고요. 영화 삽입곡 6곡을 담은 OST도 스트리밍 건수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고. 영화 삽입곡을 ‘떼창’하는 싱어롱 특별상영회가 마련되는가 하면, 하츄핑 코스튬 무대인사 이벤트는 순식간에 좌석이 매진돼 암표까지 등장했고요.
입소문도 활발히 퍼지는 중인데요. 여기에는 뜻밖에도 어른들의 역할이 컸어요. “아이를 데리고 영화를 보러 갔다가 펑펑 울고 나왔다”, “조카가 보고 싶다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같이 갔다가 오열했다”, “왜 제가 눈물이 나죠?” 같은 간증 후기가 쏟아진 것. 혼자서 영화를 보러 갔다는 어른들의 후기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요.
티니핑 시리즈는 미취학 아동, 그중에서도 여아를 타깃으로 한 애니메이션인데요. 아동용으로 제작된 시리즈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가 이렇게까지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게 조금 신기하기도 해요. 여기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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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하츄핑’의 인기 비결로 원작인 ‘캐치! 티니핑’ TV 시리즈의 인기가 워낙 탄탄하다는 점을 가장 먼저 꼽을 수 있어요. 2020년 3월 KBS에서 방영이 시작된 이후 시즌 4까지 나오는 동안 티니핑 시리즈는 그야말로 엄청난 인기를 모았거든요. ‘제2의 뽀로로’라는 말이 나올 정도인데요. 유통 업계와 식음료 업계는 온갖 티니핑 연관 상품을 내놓으며 티니핑의 인기에 올라탔어요. 품절대란 끝에 아예 제품을 상시 판매하기로 한 곳도 있었다고.
티니핑 시리즈는 일찌감치 ‘파산핑’, ‘등골핑’이라는 별칭으로 SNS에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어요. 시즌을 거듭하면서 새로운 티니핑 캐릭터가 끊임없이 추가되는데, 지금까지 나온 티니핑 캐릭터가 무려 100종이 넘어요. 그만큼 수많은 굿즈가 등장하며 부모들의 지갑을 탈탈 턴다는 것. 실제로 티니핑 캐릭터를 활용한 완구 제품은 나오기가 무섭게 불티나게 팔렸고요. 티니핑 시리즈의 이런 폭발적인 인기를 생각하면, 영화의 흥행은 이미 어느 정도 예고되어 있었다고도 할 수 있는 거예요.
영화의 만듦새가 탄탄하다는 점도 ‘사랑의 하츄핑’ 인기 비결로 꼽혀요. 줄거리는 단순하다면 단순하지만, 성인이 봐도 지루하지 않을 만큼 재밌다는 평이 많아요. 사랑과 우정이라는 보편적인 소재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풀어냈기 때문인데요. 실제로 제작 단계에서부터 아이들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어른도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고.
완성도를 얘기할 때 음악과 그래픽도 빼놓을 수 없어요. 뮤지컬처럼 영화의 중요한 장면마다 등장인물이 노래를 부르며 감정과 몰입도를 끌어올리는데, 후기 중에도 ‘뮤지컬 한 편을 보고 온 것 같다’는 말이 많아요. 영화를 보고 온 사람들 사이에서 ‘의외로 그래픽이 고퀄이었다’는 얘기도 많은데요. 알고 보면 제작사인 SAMG의 내공이 만만치 않다고. 오래전부터 국내에서는 독보적인 수준의 3D 그래픽 기술력을 쌓아왔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3D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경험도 갖춘 것.
여기까지만 봐도 ‘사랑의 하츄핑’이 기존 국산 애니메이션과 조금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동안 ‘국산 애니메이션 = 아동용’이라는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 앞서 나온 ‘뽀로로’ 시리즈나 ‘핑크퐁’ 시리즈는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지만, 아동용 애니메이션이라는 틀을 벗어나진 못했어요. ‘제2의 뽀로로·핑크퐁’을 노린 제작사들이 아동용 애니메이션으로 쏠리면서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의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고요.
그러는 사이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은 주도권은 수입 애니메이션이 잡았어요. 작년에 ‘n차 관람’ 열풍을 타고 극장가를 휩쓴 ‘슬램덩크’나 ‘스즈메의 문단속’은 물론, 디즈니의 수많은 인기 애니메이션처럼 모든 연령대 관객이 즐기는 작품은 국산 애니메이션이 아니었던 거예요. ‘사랑의 하츄핑’은 전 세대가 같이 볼 수 있는 ‘가족 영화’를 지향했다는 점에서 그런 한계를 조금이나마 넘어서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고요.
국내 애니메이션 업계에 변화의 조짐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에요. 봉준호 감독이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비롯해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이 제작되는 중이거든요. 그동안 ‘아동용 애니메이션 제작 → 관련 완구 판매’라는 모델에 갇혀 있던 것에서 벗어나, 웹소설·웹툰 등 우리나라가 강점을 지닌 지식재산권(IP)을 바탕으로 장르를 아우르는 애니메이션 제작사도 늘고 있다고.
‘사랑의 하츄핑’이 맨 앞에서 이런 변화를 이끌고 있다고까지 말하긴 어렵지만, 조금의 가능성은 보여준 거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다 큰 어른들을 느닷없이 캐릭터 ‘덕질’에 빠트리고,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수백만 명을 극장으로 이끄는 국산 애니메이션도 언젠가 등장할 날이 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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