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치 향수는 언제부터 니치하지 않게 된 걸까 ✨?

니치 향수는 언제부터 니치하지 않게 된 걸까 ✨?

작성자 고슴이의비트

비욘드 트렌드

니치 향수는 언제부터 니치하지 않게 된 걸까 ✨?

고슴이의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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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um_b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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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 Malone London

누구에게나 남들과 다르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은 있잖아요. 남들이 다 좋아하는 거 말고 나만의 취향을 가꾸고 싶은 욕심도 있고요.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기 위해 등장한 게 바로 ‘니치(niche)’ 제품일 거예요. ‘틈새’라는 뜻의 니치는 주류가 아닌 것을 말하는데요. 요즘엔 그중에서도 ‘니치 향수’ 붐이 기존의 향수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고.

니치 향수는 누구나 이름을 들으면 알 만한 전통적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내놓는 주류 ‘패션 향수’와는 달리, 뚜렷한 개성을 가진 향수를 뜻해요. 몇 년 전부터 2030세대에서 확고한 트렌드로 자리 잡았고요. 오늘은 2030세대를 사로잡은 니치 향수 트렌드에 숨겨진 이야기를 살펴봤어요.


훑어보기 👀: 니치 향수라는 대중적 현상

국내 뷰티 업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분야를 하나 꼽으라면 향수 시장을 빼놓을 수 없을 거예요. 경제가 안 좋다고들 하지만, 향수 시장만큼은 불황을 모른다는 말이 나오는데요. 실제로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13년 4400억 원 수준이었던 국내 향수 시장 규모는 2019년에 이미 6000억 원을 넘어섰어요. 2025년에는 1조 원에 육박하는 규모로 성장할 걸로 전망되고요. 

성장세를 이끌고 있는 건 전체 향수 매출의 90%를 차지한다는 니치 향수예요. 니치 향수 입문 브랜드로 꼽히는 ‘조·딥·바(조말론·딥티크·바이레도)’는 이미 모르는 사람이 드물 정도인데요. ‘조딥바’가 매년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사이, 전통적인 브랜드인 샤넬·디올·불가리의 점유율은 오히려 줄어들었다고

이런 니치 향수 유행을 이끌고 있는 건 2030세대예요. 신세계인터내셔날에 따르면, 딥티크와 바이레도 제품 구매자 중 20대 비중이 각각 41%, 39%로 가장 높았어요. 30대가 각 37%, 36%로 그 뒤를 이었고요(2021년 상반기 기준). 이후에도 2030 구매자 비중이 80% 안팎으로 집계되는 등, 2030 세대는 니치 향수 시장의 압도적인 큰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어요 🛍️.

그러자 니치 향수 유행에 올라타려는 기업들의 움직임도 활발해지는 중이에요. 백화점과 면세점은 향수 매장을 넓히거나 전문관을 새로 만들고 있어요. 브랜드별 플래그십 스토어도 속속 오픈하고 있는데요. 2022년 서울 가로수길에 문을 연 딥티크 플래그십 스토어는 파리 본점을 포함해 런던·로마·뉴욕 등 전 세계 주요 도시 매장 중 가장 큰 규모라고.

니치 향수는 천연 향료나 희귀 재료 등 고급 원료를 많이 쓰는 게 기본이에요. 가격도 기존 패션 브랜드 향수보다 최소 몇 배는 더 비싸서, 한 병에 20만 원 이상은 줘야 하고요. 그런 점에서 보면 요즘 같은 불황에, 그것도 소득 수준이 아직 높지 않은 젊은층을 중심으로 니치 향수 붐이 일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의아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여기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까요?


자세히 보기 🔎: 니치 향수 유행 끝에 남는 것

ⓒNONFICTION

니치 향수가 인기를 끌고 있는 건 개인의 개성과 취향이 점점 더 중시되는 트렌드와 관련이 깊다고 볼 수 있어요. 단조롭고 흔한 향보다는 남들이 모르는 향으로 나만의 취향을 드러내는 것. 누군가 “이거 무슨 향수예요?” 물어볼 때 희열을 느끼고, 반대로 ‘샤넬 No. 5’처럼 이미 유명해진 향수의 향을 누군가 정확히 맞출 때 괜히 패배감을 느낀다는 거예요. 

향수가 의외로 ‘가성비’ 아이템이라는 점도 니치 향수 인기 배경으로 꼽혀요. 명품 가방이나 옷에 비해 향수는 (물론 비싼 건 정말 비싸지만)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 니치 향수가 이른바 ‘스몰 럭셔리’의 대표 아이템으로 자리 잡은 거예요. 특히 경제 불황기에는 이런 작은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아이템이 거꾸로 인기를 모으는 경향이 있는데요. 그동안 뷰티 업계에서 스몰 럭셔리의 대표 아이템이었던 립스틱의 자리를 요즘은 향수가 차지하는 분위기라고 💄.

니치 향수 유행이 이어지면서 ‘더 니치한’ 향수를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것도 흥미로워요. 2010년대 중반 국내에 소개돼 ‘1세대’ 니치 향수로 꼽히는 ‘조·딥·바’는 더 이상 니치 향수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고, 2014년 글로벌 뷰티 대기업 에스티로더에 인수된 니치 향수 브랜드 르 라보(Le Labo)의 대표 제품 ‘상탈 33’은 너무 유명해졌다는 이유로 ‘샤넬 No. 5’와 비슷한 취급(?)을 받기도 하는 것. 이에 따라 국내 패션·뷰티 업체들도 더 니치한’ 향수 브랜드를 들여오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고요.

사실 니치 향수가 처음 등장한 이유는 단순해요. 보통은 1970년대를 니치 향수가 탄생한 시기로 보는데요. 당시 조향사들의 목표는 시장에서 적당히 대중의 기호를 만족시키는 상품이 아니라, 세상에 단 하나뿐인 향수를 만드는 것이었다고. 이를 위해 천연 재료와 가장 비싼 고급 원료를 아낌없이 배합했고요. 니치 향수는 ‘암암리에’ 만들어지는 게 보통이었고, 아는 사람만 알았어요.

그랬던 니치 향수를 주류 문화로 끌어올린 인물로는 프랑스의 향수 전문가 프레데릭 말(Frédéric Malle)이 꼽혀요. 그는 브랜드 이름 대신 조향사의 이름을 내세운 향수를 선보였는데요. 1990년대 중반 럭셔리 브랜드를 단 패션 향수들이 향수 자체의 품질보다는 이미지에 치중했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고. 이후 더 많은 조향사들이 자신만의 브랜드나 라인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게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니치 향수 유행의 시작점인 거예요.

그런 점에서 보면 오늘날 ‘니치’의 의미가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니치 향수가 ‘고급 브랜드’의 동의어로 소비되고, 사람들이 특정 제품으로 쏠렸다가 더 니치한 브랜드·제품으로 갈아타는 모습도 목격되고 있기 때문. 

‘니치함’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도 있는 것 같아요. 남들이 모르는 향을 찾아내는 것보다 결국 중요한 건 나에게 맞는 향을 찾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향수를 즐기는 방법을 알아가는 일일 테니까요. 거기에 니치 향수와 패션 향수의 경계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고요.


[비욘드 트렌드] 에디터의 관점을 담아 지금 우리의 심장을 뛰게하는 트렌드를 소개해요. 나와 가까운 트렌드부터 낯선 분야의 흥미로운 이야기까지. 비욘트 트렌드에서 트렌드 너머의 세상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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