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귀환: 팀버랜드가 다시 뜨는 이유 🥾
작성자 고슴이의비트
비욘드 트렌드
뜻밖의 귀환: 팀버랜드가 다시 뜨는 이유 🥾
한동안 세상에 신발은 딱 두 종류만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잖아요: 스니커즈와 스니커즈가 아닌 것 👟. 2010년대는 가히 스니커즈의 시대라고 부를 만해요. 쉴 새 없이 새로운 제품이 나오고, 다양한 브랜드가 경계를 뛰어넘어 콜라보레이션을 했으며, 각종 창의적 마케팅 기법의 등장과 함께 리셀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것.
스니커즈 열풍이 거대한 파도처럼 한 차례 지나간 뒤, 오래된 패션 아이콘 하나가 뜻밖에도 요즘 다시 주목받고 있어요. 주인공은 바로 1990년대를 휩쓸었던 팀버랜드(Timberland) 부츠. 올해 초 패션쇼 런웨이에 등장해 화제를 모으더니 국내외 셀럽들이 너도나도 신으며 가장 핫한 트렌드로 떠오른 거예요.
‘이것도 레트로인가?’라고 생각했다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려요. 레트로 유행과 분명 연관이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오늘은 돌아온 팀버랜드 유행과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이야기를 살펴봤어요.
훑어보기 👀: “팀버랜드를 신발장에서 다시 꺼내세요!”
팀버랜드 부츠는 클래식한 패션 아이템 중 하나예요. 특히 ‘노란색 6인치 부츠’는 팀버랜드의 상징과도 같은데요. 누구나 한눈에 ‘아, 그거!’ 하고 딱 알아볼 정도로 익숙한 고유의 디자인은 세월이 흘러도 변한 게 거의 없다고.
원래 팀버랜드는 현장·공장 노동자를 위한 실용적 브랜드였어요. 1973년, 뉴잉글랜드(미국 동부 6개 주) 지역의 궂은 날씨와 거친 환경에도 끄떡없는 방수 부츠를 내놓은 게 6인치 부츠의 시작이었던 것. 물 한 방울 들어오지 않는 놀라운 기능성과 아무리 신어도 닳지 않는 견고함 덕분에 미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어요.
1990년대 들어 팀버랜드는 일종의 문화 아이콘으로 떠올라요. 미국 동부 ‘이스트 코스트 힙합(East Coast Hip Hop)’을 대표하는 래퍼 우탱 클랜, 노토리어스 B.I.G., 맙 딥, 나스 등이 일제히 팀버랜드를 신었기 때문. 당시 래퍼들의 가사에도 팀버랜드 부츠가 ‘Timbs’라는 애칭으로 자주 등장했고요.
이후에도 팀버랜드는 유행을 크게 타지 않는 아이템으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어요. 2018년 버질 아블로의 ‘오프 화이트’ 등 다양한 브랜드와 꾸준히 콜라보를 시도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2010년대를 장악한 스니커즈 열풍으로 한동안은 주류 패션 트렌드에서 살짝 밀려나 있었어요.
그랬던 팀버랜드가 요즘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고. 작년에도 “팀버랜드 부츠가 돌아오고 있다”는 말이 솔솔 나오긴 했는데요. 올해 초 파리 패션위크에서 럭셔리 브랜드 루이비통이 팀버랜드와 콜라보한 노란색 부츠를 등장시키며 크게 특히 주목받았어요.
2021년 세상을 떠난 버질 아블로의 뒤를 이어 루이비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퍼렐 윌리엄스는 이날 컬렉션에서 미국 서부 시대를 연상시키는 ‘웨스턴 스타일’을 선보였는데요. 여기서 팀버랜드는 존재감을 잔뜩 뽐냈어요. 구글에서 ‘팀버랜드’ 검색량이 폭발하고, 패션 매거진들도 두 브랜드의 협업에 대한 기사를 잔뜩 쏟아냈고요. 파리 패션위크의 주인공은 그 어떤 명품 브랜드도 아닌 팀버랜드였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고. (이날 공개됐던 루이비통 x 팀버랜드 부츠 컬렉션은 7월 18일에 사전 출시됐어요.)
패션 잡지들이 앞다투어 팀버랜드의 ‘컴백’을 선언하는 사이, 팀버랜드는 올봄부터 확고한 패션 트렌드로 자리 잡았어요. 국내에서도 여러 셀럽이 팀버랜드를 신은 사진이 인스타그램 피드를 휩쓸고, 팀버랜드가 조금 낯선 젊은 세대를 위해 ‘팀버랜드 코디법’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기사도 쏟아져 나온 거예요. 틱톡에는 #Y2Kfashion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팀버랜드 관련 영상이 넘쳐나는 중이고요.
이쯤 되면 ‘팀버랜드의 화려한 귀환’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요. 시간을 거슬러 팀버랜드가 다시 핫한 패션 아이템으로 떠오른 데에는 꽤 많은 얘기가 숨겨져 있다고 👀.
자세히 보기 🔎: 시대를 초월한 클래식의 힘
뉴진스가 최근 발매한 일본 데뷔 싱글 ‘Supernatural’에는 이른바 ‘Y2K’ 감성이 담겨 있는데, 여기서도 팀버랜드 부츠는 빠질 수 없는 아이템으로 등장해요. 작년에 가수 이효리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팀버랜드 착샷이 ‘Y2K 패션의 정석’으로 묘사되기도 했고요. 해외에서는 세기말 Y2K 감성에 푹 빠진 Gen Z를 겨냥해 ‘옛날 브랜드’들이 그 시절 패션 아이템을 선보이는 중이라고.
팀버랜드의 유행을 벌써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 이런 레트로 트렌드와 엮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팀버랜드야말로 1990년대를 주름잡던 대표적 패션 아이템이기 때문. 하지만 그것만으로 팀버랜드의 귀환을 전부 설명할 수는 없다고. 훨씬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거예요.
가장 많이 언급되는 건 ‘워크웨어(Workwear)’ 트렌드예요. ‘자동차 정비하다가 나온 것 같은 패션’이라는 말로 요약되는 워크웨어는 말 그대로 작업복을 뜻하는데요. 소재나 디자인 등에서 철저히 실용성과 기능성에 초점을 맞춘 게 특징이에요. 투박하지만 편안하고, 안 꾸민 듯 꾸민 나름의 멋이 매력 포인트로 꼽혀요.
워크웨어는 올해 패션계에서 뜨거운 키워드 중 하나로 자리 잡는 분위기예요. 프라다, 펜디 등 명품 브랜드들이 잇따라 워크웨어를 재해석한 컬렉션을 선보이고, 칼하트, 워크맨 같은 브랜드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 진짜 작업복을 만들던 브랜드들까지 대중을 겨냥해 시장 공략에 나설 정도라는데요. 노동자 작업화 브랜드로 시작한 전통의 팀버랜드가 이런 워크웨어 트렌드에 맞춰 소환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거예요.
조금 다른 관점의 해석도 있어요. 몇 년 전부터 패스트패션이 내리막길을 걸으며 패스트패션과는 정반대의 가치에 끌린 사람이 늘고 있다는 것. 오랜 시간 변치 않는 디자인과 단단한 만듦새, 헤리티지가 있는 브랜드와 어센틱한 제품에 주목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팀버랜드 부츠도 시간을 초월한 클래식 아이템으로 재조명되고 있는 거라고 볼 수 있어요.
패션의 경계가 무너진 변화에 주목하는 의견도 흥미로워요. 2010년대는 하이 패션과 스트리트 패션의 경계가 옅어진 시기였어요. 스트리트 패션이 하이 패션의 트렌드를 이끌고, 럭셔리 브랜드가 대중적 브랜드들과 콜라보를 진행하는 게 흔한 일이 된 것. 정장과 캐주얼의 경계도 한층 흐릿해졌고요. 경계를 넘나드는 그런 트렌드의 중심에 서 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스니커즈였어요.
스니커즈의 시대가 서서히 저물고 있는 지금, 팀버랜드 부츠는 스니커즈와 다르지만 한 가지 비슷한 구석이 있어요. 바로 경계를 허무는 아이템이라는 것. 팀버랜드는 대중적 브랜드이면서 럭셔리 브랜드와도 잘 어울려요. 핏이 넉넉한 팬츠와 매치하는 게 정석인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사실 알고 보면 어떤 옷과도 찰떡궁합이라고. 성별을 가리는 아이템도 아니라, 그야말로 ‘모두의 신발’이라고 불릴 만하고요.
(이제 와서 고백하자면) ‘패알못’인 저는 이번 글을 쓰면서 새삼스레 ‘클래식’의 가치를 생각해보게 됐어요.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하고, 트렌드도 시시각각 바뀌잖아요. 특히 변화가 빠른 패션계에서 시대를 초월한 클래식 아이템으로 남는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에요. 무수히 다양한 조합으로 끝없이 확장할 수 있으면서도 고유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제품을 만드는 건 더더욱 어렵고요.
팀버랜드의 디자이너 알렉스 다딘스키는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패션 브랜드가 되려고 의도했던 적이 없다”라고 했어요. 기능성 작업화를 만드는 브랜드로 시작했고, 그저 목적에 충실한 제품을 성실히 만들다 보니 어느새 하나의 아이콘이 되고, 하이 패션계의 주목까지 받게 됐다는 것. 그는 “어센틱하고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어 내면, 문화가 그걸 택하는 법”이라는 말을 남겼는데요. 곱씹을수록 꽤 근사한 말인 것 같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