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보그가 되다, 강철의 연금술사]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1)
작성자 구
책과 반성회
[사이보그가 되다, 강철의 연금술사]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1)


<강철의 연금술사>가 보기 드물게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은 명작이라는 말을 듣고 보기로 했다. 그런데 64화? 25화짜리 에반게리온도 겨우 봤는데 앞길이 막막했다. 그래도 봐야지, 명작이라는데! 밥 먹을 때, 쉴 때,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때마다 <강철의 연금술사>를 조금씩 본 덕분에 64화의 대장정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무려 약 1,280분을 썼다.
<강철의 연금술사>에는 다른 미디어에서 잘 등장하지 않는 장애인이 다수 등장한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팔이 없거나 다리가 없는 절단 장애인이 많다. 인상적인 것은 단순히 신체가 잘린 모습을 자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치료하는 모습이나 그 모습 그대로 일상을 보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쉽게 말해) 마법을 쓸 수 있는 연금술사조차도 사람의 신체를 만들어낼 수 없어서 절단 장애인들은 대부분 '오토 메일'을 사용한다. 오토 메일이란 <강철의 연금술사> 세계관에서 금속으로 만들어진 의수, 의족 등으로 잘린 신체의 신경과 연결해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인공 보철'이다. 그래서 김초엽, 김원영 작가의 <사이보그가 되다>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이 애니메이션이 단순히 오토 메일을 인간의 신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것으로 그려내거나 인간 신체를 완벽하게 다시 구현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져 불편했다. 괜히 심술궂은 마음에 오래전 버거씨병으로 발가락을 절단해 절뚝거리며 걷는 우리 아빠의 신체는 '완전한 인간'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 아빠도 인공 보철을 장착하면, 아니 울버린처럼 발톱이 겁나 커지고 날카로워질 수 있는 '오토 메일을 달면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게 됐다. <강철의 연금술사>는 오토 메일을 그런 식으로 그려내지 않기 때문이다.
🦾 오토 메일을 다루는 자
강철의 연금술사 세계에서 오토 메일을 만드는 사람들은 정비사 또는 과학자다. 대량 생산으로 돈을 버는 '사업가'가 아니다. 이들은 오토 메일을 직접 만들고 수리를 하는데 오랜 경력을 가진 정비사들은 수습생을 두며 후배를 양성하기도 한다. 특히 국방부에서는 과학자들이 오토 메일을 다루는데 이들 또한 오토 메일의 정보를 나누는 것에 인색하지 않다. 정비사 윈리가 북부 지역에 도착했을 때 추운 날씨에 견디고 거대한 무기처럼 활용할 수 있는 오토 메일을 보고 감탄하자 그곳의 과학자는 흔쾌히 자신의 작업실을 보여주며 설명해 준다.
사람들은 영상에서 장애인이 목소리로 말하는 순간, 소리를 듣는 순간, 휠체어에서 일어나는 순간을 본 뿐 평소에도 음성 합성 기술이 소통을 도와주는지, 처음으로 들은 소리가 정말로 기쁨인지 아니면 불쾌함인지, 웨어러블 로봇이 일상에서도 사람들이 걷게 하는지는 볼 수 없다. 연출된 영상과 감동과 희망을 보여주지만, 현실은 연출 바깥에 있다.
- <사이보그가 되다> 중 '3장 장애와 기술, 약속과 현실 사이' 일부 발췌 -
길거리나 가게에 휘황찬란한 광고를 하고 대량으로 생산된 오토 메일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 오토 메일 착용자들은 (대부분) 개인 정비사를 두고 끊임없이 고쳐 쓴다는 것이 현실 세계와 크게 차이 나는 것 중 하나다. 현실에서는 장애인들을 위한 보조 도구를 끊임없이 상품화하기 때문이다. 개개인에게 맞춰진 도구를 판매하는 게 아니라 대량으로 생산하고 이를 비장애인 시선으로 광고한다. 처음 소리를 들었을 때, 처음 걷게 되었을 때 느낄 수 있는 불편함과 불쾌감은 없애버리고 비장애인이 상상하고 아름답고 감동적인 감정만 남겨놓는다.
🦿 고통스럽게 연결되는 오토 메일
<강철의 연금술사> 속 하보크 소위는 전투 도중 다리를 잃는데 오토 메일을 달아보자는 동료의 말에 '이미 다리의 신경이 모두 끊겨 오토 메일을 달 수 없다' 답한다. 이 말에서 알 수 있듯 오토 메일은 절단된 신체에 신경이 남아있어야 연결이 가능하므로 모든 절단 장애인이 오토 메일을 착용할 수는 없다.
그런데 오토 메일을 연결하는 것도 문제다. 끔찍한 고통이 따르기 때문이다. 애드워드 말처럼 오토 메일은 신경과 연결하는 순간 기절하는 고통이 따르며 연결한다고 해도 최소 3년 정도는 오토 메일에 적응하고 재활해야 한다. <강철의 연금술사> 속 란 팡이 오토 메일을 달고 6개월 만에 전투에 참여하게 됐을 때 계속 고통스러워하고 피도 많이 흘리는 걸 보면 오토 메일을 쓴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의족과 절단된 신체가 만나는 경계 부분은 상당한 시간이 지날 때까지 통증을 유발하고, '티 나지 않게' 걷기 위해 체중을 실을 때마다 (특히 20세기 초의 기술력에서는 더더욱) 바닥의 충격이 딱딱한 의족을 타고 허리까지 이어지지만 사진 속 의족은 그저 매끈한 구두처럼 신체와 접합해 있다.
- <사이보그가 되다> 중 '6장 장애-사이보그 디자인' 일부 발췌 -
인공 보철을 연결하는 것, 또 휠체어를 타는 등 기계와 연결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고통은 어떠할까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심지어 오른쪽 몸이 마비돼 10년째 휠체어를 타시는 할머니가 계시는데 말이다.

10년 전 할머니는 오른쪽 몸이 마비가 된 후 휠체어를 타게 되셨는데 침대에 누워만 계시던 할머니가 드디어 움직일 수 있다는 것에 나는 감히 환호했다. 물론 움직일 수 있게 되셨지만 휠체어에 타는 것, 내리는 것, 오른팔을 사용할 수 없어 왼팔로는 휠체어의 방향만을 바꾸는 것 등 휠체어는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많은 불편함을 가진 기계였다. 결국 할머니의 왼팔이 오른팔 역할까지 부담하다 보니 왼팔의 근육과 신경은 이미 많이 닳아 자주 병원에서 주사를 맞게 되셨다.
휠체어나 시각장애인의 흰 지팡이, 보청기와 같이 몸의 손실된 부위를 물리적으로 대체하지 않아도 그 기능을 대신하고, 오랜 시간 사용자의 몸에 깊숙이 접혹하는 기기도 인공 보철의 범주에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콘택트렌즈는 어떨까? 스마트폰도 인공 보철일까?) 인간 삶의 편의를 증대하는 각종 테크놀로지가 우리의 신체와 정신에 더 넓고 긴밀하게 결합하면서 인공 보철의 개념 역시 점점 확장되고 있다.
- <사이보그가 되다> 중 '6장 장애-사이보그 디자인' 일부 발췌 -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의 인식 속에 '사이보그'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강하고, 용감한 존재로 인식되어있다 보니 실제로 인공 보철로 연결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고통을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상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 또한 작은 인공 보철들과 연결되어 있는 삶을 살고 있다. 안경, 금니, 교정 유지 장치 등 항상 나와 함께 하는 것들은 나에게 큰 편안함을 주지만 불편함도 준다. 안경 때문에 뛰거나 눕는 것은 불편하고 금니 때문에 찬 물이나 뜨거운 물을 먹기 힘들고, 교정 유지 장치 때문에 치석이 많이 쌓이고 혀가 긁히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들의 생활을 생각해 보면 인공 보철과 함께 하는 삶이란 늘 완벽하고 좋은 것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삶 자체가 다른 사람들에게 마치 '감동의 휴먼 드라마'로 보이는 것이 얼마나 우습고 이상한 지도 깨달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