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산과 여린 목숨들

죽어가는 산과 여린 목숨들

작성자 주간미래소년

사물 제국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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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ture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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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산과 여린 목숨들


사라질 기로에 놓인 산이 있습니다. 골프장 때문입니다. 산을 파괴한 자리에는 골프장 들어설 예정입니다. 산의 생사를 쥔 자들은 바로 개발자본입니다. 야트막한 산이 진격하는 자본을 당해낼 재간은 없어 보입니다. 그렇게 산이 죽음을 앞둔 순간, 산을 구하기 위해 극적으로 결사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동네 주민들입니다. 이들은 개발자본이 산을 집어삼키지 못하도록 지리한 싸움을 이어갔습니다. 여린 목숨들이 공존하는 생명의 우주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치열한 농성과 단식의 고통 끝에 골프장 증설은 무효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장장 10년의 세월이 걸릴 것이라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사이 함께 산을 지켰던 동지이자 주민이었던 노인 5명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영면하게 되었습니다. 주민과 함께 산을 지켜온 인물이 한 명 더 있습니다. 조정 시인입니다. 시인은 산을 보호했던 과정을 시로 담아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시가 <춘분의 갈채>입니다. 이 시에서는 생명의 그물에 얽혀있는 다종 간 존재를 감각합니다. 그리고 함께 산을 지키고자 벌레의 군대, 나뭇잎의 결사대, 밤나무와 참나무 충영들, 죽은 소나무에 사는 버섯들을 호명합니다. 그리고 껍질을 깨고 나와 함께 결사할 것을 간청합니다. 


신유물론이 가져온 변화

인간이 지구에서 차지하는 생물총량의 분포는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지구에서 차지하는 존재감은 결코 미약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수만 년에 걸쳐 인간이 아닌 존재를 무참히 착취하거나 줄곧 희생시켜 왔습니다. 이들을 부르는 호칭은 다양합니다. ‘사물(things)’, ‘물질(matter)’, 그리고 ‘비인간(nonhuman)’이라는 이름입니다. 사물은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독립적 개체이며 특정한 기능과 용도를 가져 인간이 사용하고 조작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물질은 질량과 부피를 가진 물리적 실체이며, 화학적 구성을 지닌 기본요소로써 다양한 형태로 변화가능한 존재입니다. 비인간은 인간이 아닌 모든 생명체와 비생명체를 포함하며, 현상, 생태계, 시스템을 포괄하는 존재입니다. 

  • ✔️ 76억 명을 돌파한 인간의 지구 내 생물총량의 분포는 0.01%에 불과합니다.

20세기 후반, 인문학·사회과학 분야에서 조용하지만 의미있는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신유물론(New Materialism)의 등장입니다. 신유물론은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물질의 생기성·능동성·행위성을 받아들이는 이론입니다. 신유물론적 정의에 의하면, 사물은 능동적 행위성을 가진 독립적 존재로, 인간과 상호작용하며 영향을 주고받는 존재입니다. 모든 존재가 서로 동등하며, 서로 관계되어 있고, 행위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유물론에 의하면 사물은 능동적 행위성을 가진 독립적 존재로, 인간과 상호작용하며 영향을 주고 받는 존재입니다. 인간과 동등하고, 서로가 관계 맺고 있으며, 고유한 행위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세부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인간과 동등한 존재

인간중심주의는 인간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해석합니다. 인간은 자연히 만물의 중심이 됩니다. 인간을 이성과 합리성의 정신을 가진 특권적 존재로 인식하며, 비인간은 기계적 존재로 치부했습니다. 인간의 이익을 상위의 가치로 격상하는 동시에 비인간은 도구적 가치로 격하됩니다. 반대로, 탈인간중심주의는 인간과 비인간의 지위를 동일하게 간주합니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비인간의 생기성, 능동성, 행위성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관계로 드러난 존재

세상 모든 존재는 혼자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모든 존재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동시에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우리는 오랜 시간 ‘기계적 패러다임’에 길들여져 왔습니다. 세상을 엄격히 구분하는 이원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입니다. ‘인간/비인간’, ‘사회/자연’, ‘정신/물질’을 구분하는 사고가 바로 기계론적 패러다임입니다. ‘관계적 패러다임’은 대항하며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패러다임입니다. 이 패러다임은 엄격한 이분법을 거부합니다. 그리고 모든 존재를 서로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고 주장합니다. 모든 존재가 상호 의존적이기 때문에 공존은 중요한 기치가 됩니다. 세상을 평평한 관계로 해석한다는 의미로 ‘평평한 존재론(flat ontology)’이라고도 합니다. 

행위성을 가진 존재

인간은 개별로 고유한 의지(행위성, agency)를 갖고 움직이는 주체(행위자, actor)입니다. 행위자는 자신과 관계 맺고 있는 타인과 상호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이제까지 행위성은 인간만이 전유하는 능력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 이외의 존재도 행위성을 갖고 영향을 주고받는 존재로 재배치됩니다. 그리고 행위성을 능동적으로 발휘하여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행위자로 인정받습니다.


공존한다는 착각

우리는 가이아의 분노를 초래했습니다. 이 분노는 지금도 극단적인 기후변화, 생물다양성의 감소, 신종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표출되고 있습니다. 가히 분노에 비견될 만큼 우려스러운 현상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안타깝게도 인간이 지구의 항상성을 끊임없이 괴롭힌 결과이기도 합니다. 사물의 세계를 감각하지 못한 결과, 사물 제국의 역습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제껏 사물, 물질, 비인간과 공존한다는 착각 속에 살아왔습니다. 공존이라는 의미는 인간 중심적 세계관 속에서 인간-사물 간의 위계적 관계를 정당화하는 수사에 불과했습니다. 

  • ✔️가이아 가설은 지구를 단순한 행성이 아닌, 자기조절 시스템을 갖춘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로 인식하는 입장입니다. 그간 지구 표면의 온도, 대기 중 산소, 해양의 염도, 이산화탄소 농도를 조절하며 생명체가 서식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유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인류가 출현하고 진행된 산업화, 도시화, 화석연료 사용은 이러한 가이아의 항상성을 위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전술했던 <춘분의 갈채>에서는 인간과 사물의 경계 없이 모두가 함께 결의합니다. 단순한 의인법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공존이란 무엇인지 함축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간단히 자연을 '보호'하자는 윤리적 주장이 아닙니다.  사물의 독자성과 행위성을 인정하고 새로운 관계 맺기를 모색한다면, 그리고 여린 목숨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면, 나아가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된 하나의 생명망 속에서 함께 호흡하고 있음을 인식한다면, 진정한 공존으로 가는 길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가이아의 분노도 차츰 누그러질 것만 같습니다.


《사물 제국의 역습》의 첫 번째 콘텐츠였습니다.
꾸준히 발행할 예정이니 관심과 애정을 갖고 구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음엔 더욱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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