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발전해도 '위험'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기술이 발전해도 '위험'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작성자 주간미래소년

보이지 않는 위험사회

기술이 발전해도 '위험'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주간미래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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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의 시대

올해도 어김없이, 하고많은 위험이 양산된 한 해로 기억될 것입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가 깊이 신음하던 중에 중동에서 이스라엘과 저항의 축 간의 새로운 분쟁이 촉발되었고, 세계 절반 이상의 인구가 선거에 참여하는 슈퍼 선거의 해 중에 정치양극화는 고착되며 새로운 사회갈등이 분출되었으며, 인공지능(AI)은 눈부신 발전이 무색하게 허위 정보와 성범죄물을 생산하는 범죄 도구로 사용되어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오늘날을 ‘위험의 시대’라 이름 붙여도 무리가 없습니다. 그만큼 현대사회와 위험은 불가분의 관계가 되었습니다. 이를 예단한 독일 출신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 1994~2015)은 1986년에 「위험사회 : 새로운 현대성을 향하여」라는 저서를 출간했습니다. 그리고 현대사회를 ‘위험사회(Risk Society)'로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위험(risk)을 '우리를 위협하는 발생 가능성 있는 미래의 사건’으로 정의했습니다.

위험은 시대 불문으로 존재해 왔습니다. 다만, 시대 흐름에 따라 위험의 성격도 달라집니다. 과거의 위험은 인간욕망이나 자연현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따라서 인과관계가 단순하며 원인규명이 용이했습니다. 그리고 책임귀속이 명백했기에 경우에 따라 적합한 보상체계가 작동하기도 했습니다. 재앙에 비견될 정도로 파괴적 학살을 초래한 몽골 제국의 정벌 야욕이 그랬고, 고대도시 폼페이를 1,400년 간 흔적 없이 덮어버린 베수비오 화산 폭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지하다시피, 현대의 위험도 자연적·인위적 요인으로 야기됩니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현대의 위험은 한 겹 더 난해하고 복잡해졌습니다. 인과관계나 원인규명을 시도하기에는 난해한 요인이 재하며, 책임귀속과 보상체계를 명백히 입증하기에는 복잡한 변수가 파다하기 때문입니다. 2011년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그러했습니다. 사고의 단초는 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였으며, 이후 인간의 발전소 설계 결함과 후속대응 실패가 결합되어 초대형 참사로 이어진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위험사회

유토피아를 약속한 근대화

위험사회의 본류는 근대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근대화는 전통 봉건사회라는 알을 깨고 바깥세상에 나아가는 과정으로써, 인류문명의 전환점으로 평가됩니다. 이때부터 합리성과 효율성의 가치를 내세우며, 진보와 발전을 추구하는 시대정신으로 향했습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산업화·도시화·민주화가 시작됐으며, 정치·경제·사회·문화영역 전반에서 총체적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근대화를 추동한 핵심동력 산업 자본주의입니다. 과학기술의 혁명이 생산방식의 혁명을 일으킨 것입니다. 근대화는 물질적 풍요사회를 약속하면서 유토피아를 향해 돌진했습니다. 

성공이 낳은 위험

역설적으로, 근대화의 성공이 위험을 낳았습니다. 성공적인 근대화로 전능한 과학기술을 손에 넣게 되지만, 무분별하게 자연법칙에 개입 또는 거스르는 행태로 이어졌습니다. 이 결과로 인위적 위험이 증폭되었습니다. 즉, 기술력은 보유했지만 상상력은 부재했기에 도래할 파장을 예견하지 못했습니다. 위험은 결국 유토피아를 약속한 근대화 과정에서 파생된 부산물이 되었습니다.

근대화 성공 이면에 뒤따라온 착취, 오염, 부실, 해체, 파괴라는 잠재된 위험은 일상에서 쉽게 포착할 수 있습니다. 식량생산의 증식을 위해 만들어진 제초제·살충제는 온 지구 토양에 틈입했고, 안정적 에너지원 확보를 위해 만들어진 원자로는 경미한 사고나 조작의 실수로도 불가역적 피해를 초래했으며, 인류 보건향상을 위해 만들어진 항생제는 절대 죽일 수 없는 내성을 가진 슈퍼박테리아를 등장시켰습니다.

보이지 않는 위험

위험은 보이지 않습니다. 현대사회의 위험은 인간의 감각기관으로 감지하기 어렵습니다. 방사능은 눈에 보이지 않으며, 전자파는 귀로 들을 수 없고, 살균제는 코로 맡을 수 없습니다. 위험이라는 '초과물(hyperobjects)'은 인간의 감각과 지각을 넘어섰기에 그 존재를 바로 알 수 없지만, 항상 같이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안고 갈 수밖에 없습니다. 최소 십수 년이 지난 후에야 건강이상이나 재해·재난 현상으로 체감해야 비로소 그 존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위험은 새로운 정치 지형을 형성합니다. 오늘날 위험을 감지하려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위험사회에서는 전문가의 지위가 한 층 더 공고해집니다. 위험을 감지가능한 과학자와 기술자, 위험의 허용기준을 결정하는 법률인, 위험을 공론화할 수 있는 언론인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에, 잠재적 위험을 감지하거나 이미 피해를 겪고 있는 일반시민은 직접 여론을 형성하고 운동을 조직하는 방식으로 저항하게 됩니다. 

국경이 없는 위험

위험에 국경이 없습니다. 국소적 차원의 위험이 지구적 차원의 위험으로 뻗어나갑니다. 위험의 지구화·보편화는 위험으로부터 그 누구도 회피할 곳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신종 바이러스인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잠식하는 데 4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분쟁은 후티 반군이 홍해에서 컨테이너선을 공격하는 명분이 되어 전 세계 식량안보에 위협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현대사회의 위험은 모두에게 노출된다는 점에서 보편적으로 분배되는 반면, 피해는 차별적으로 분배됩니다. 도시가 배출하는 산업폐기물은 지방농촌의 땅속으로 밀어 넣으며, 화학산업 노동자는 독성 화학물질로 인한 직업병을 안고 살아가며, 백신공급 번호표는 국가별 소득순위에 따라 주어졌다는 사실로 각 국가·사회·조직 내에서도 위험에 노출되는 위험지위의 차이를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위험사회가 보내는 메시지

현대사회는 위험사회입니다. 잠재된 위험은 땅속에 묻힌 뇌관과 같습니다. 고정된 경계 없이 복잡하게 얽혀있으며, 보이지 않기 때문에 통제도 불가하며, 의도하지 않은 미세한 자극에도 폭발할 수 있고, 피해의 범위와 규모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위험은 우리의 인식능력 밖에 있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은 우리의 관심 밖으로 멀어져 곧 간과되기 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날 불현듯 나타난 위험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르고 당하는 위험일수록 충격과 고통의 여파는 오래갑니다. 

그래서 위험을 가시화하고 예측하는 움직임이 필요합니다. 위험이 태동한 근원지를 찾고, 위험이 앗아갈 범위와 규모를 예단하고, 위험으로 쓰러져가는 희생자를 일으켜 세우고, 위험이 무엇으로 인해 야기되었는지 성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위험사회는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사회입니다. 우리는 위험사회를 자칫 불안으로 점철된 디스토피아에 대한 메시지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해와 달리, 위험사회는 우리에게 시한부 같은 종말론적 운명만을 예고하지 않습니다. 위험을 외면하고 방치하면 재난이 되지만, 예측하고 대비하면 생존의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위험사회》의 첫 번째 콘텐츠였습니다.
꾸준히 발행할 예정이니 관심과 애정을 갖고 구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음엔 더욱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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