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망치는 것은 부끄럽지만 도움이 될까?

이 글은 누군가가 읽어주었으면, 그래서 차라리 들켜버렸으면 하는 비밀일기다. 매일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마음과 누군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 사이에서 저울질 중인 나에게, 엎질러진 물 같은 글도 때로는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었으니까.

요즘 내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단어는 '도망'이다. 어떤 날은 도망의 사전적 의미가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피하거나 쫓기어 달아남'이라는 뜻이었다. 도망치고 싶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 도망쳐야 할까? 싸워서 이겨야 할까. 아마도 누구나 한 번쯤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지 않았을까. 장소든, 사람이든, 상황이든. 분명 그럴 텐데, 당연하게도 명확한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갓 입사한 회사는 일이 정말 많았다. '야근이 가끔 있다'던 회사에서 나는 입사 후 첫 일주일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6시에 퇴근하지 못했다. 일 많지 않은 곳이 없다는 것도 알고 바쁜 직종이라는 것도 알고는 있지만, 내가 너무 안일했단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쉬는 기간이 길어졌고, 마음이 조급했다. 요즘 취업이 그렇게 어렵다더라, 하는 얘기들에 하루하루가 불안이었다.

처음엔 경력도 뭣도 없는 나를 붙여주어 고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기존 업무를 고려하지 않은 신규 업무 배당과 ’빨리빨리‘ 돌아가는 분위기가 내겐 너무 버거웠다. 동료들도 좋은 분들 같았지만 그뿐이었다. 매일같이 9시, 10시가 넘어 집에 도착하는 하루를 보내다 보니 몸도 마음도 소진되어 가는 것이 느껴졌다. 취미도, 운동도 하지 못했다. 울다가 잠에 들거나, 그냥 잠에 들었다. 일에 치여 밥도 잘 챙겨 먹지 못했고, 아토피가 재발했다. 두통을 달고 살고 몸에는 힘이 없었다.

팀장님은 내가 말을 걸거나 완료한 업무를 드릴 때마다 한숨을 쉬셨다. 그 소리가 내겐 천둥소리보다 크게 들렸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 한숨만 쉬어도 깜짝 놀랐고, 심장이 벌렁거렸다. 많은 업무를 급하게 해치우다 보니 실수도 잦았고, 아는 것도 틀리기 일쑤였다. 오늘 다 끝내지 못한 일이 내일, 내일 끝내지 못한 일은 모레, 그렇게 점점 일이 많아졌다. 일주일만 병원에 입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답답해 주변에 마구잡이로 조언을 구했다. 성격상 이런 이야기조차 부끄러웠지만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했다. 더 괜찮은 곳은 분명 있다며 그만두라는 사람도 있었고, 그래도 끝까지 버티라는 사람도 있었다. 자기는 야근수당 주는 회사 거의 없다며 다 그렇다는 말에는 앞이 캄캄해졌다. 조금은 예상했던 말들이지만 결국 선택은 내 몫이기에 달라진 건 없었다.

나는 자책과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나는 왜 이렇게 일을 못하지? 나는 왜 이렇게 멘탈이 약할까? 다들 야근해도 회사 잘만 다니는데. 일이 힘들어도 사람이 좋으면 괜찮다는데. 나는 왜 일도 사람도 너무 힘들지?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걸까? 그만두면 다들 손가락질하겠지? 이제 나를 받아줄 회사는 없을 거야.

"어디를 가도 겉돌기만 해서 차라리 아무도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한 적 없어요?"

내가 여름마다 보는 영화가 있다. 아오이 유우 주연의 2008년 영화 <백만엔걸 스즈코>. 전과자가 되어버린 사토 스즈코(아오이 유우)는 출소 후 취업에 실패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간다. 스즈코는 자신을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 그곳에서 이사 비용 백만 엔을 모으면 또 다른 곳으로 떠난다. 스즈코는 그렇게 이곳에서 저곳으로 떠돌며 살아간다. 누군가에겐 도피처럼 보일지라도 스즈코는 어디서든 최선을 다해 백만 엔을 모은다.

나는 아직도 정하지 못했다.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스즈코의 용기가 부러웠다. 도망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오롯이 자기의 선택에만 집중하는 스즈코가. 어느 드라마 제목처럼 도망치는 것은 부끄럽지만 도움이 될까? 아니면 정말로 떠도는 말처럼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을까? 하지만 나는 낙원을 바란 적이 없다. 그냥 이곳이 지옥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Q. 도망쳐본 경험이 있나요? 무엇으로부터 도망쳤고, 결과는 어땠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