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비행기 기장의 목소리는 왜 이렇게 좋은 걸까?
작성자 에디터솔솔
일이 된 여행, 여행이 된 일
9화: 비행기 기장의 목소리는 왜 이렇게 좋은 걸까?
비행기를 탈 때마다 승객 안내 방송을 듣게 되죠. 스피커 너머 기장님의 목소리가 유난히 좋게 들릴 때가 있지 않았나요? 어느날 문득 그 이유가 궁금해져 작성한 아티클을 소개합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비행기 좌석에 앉았다. 이어 기장의 목소리가 안내 방송으로 흘러 나온다.
“승객 여러분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아, 마치 갓 구운 식빵 위에 올린 버터가 사르르 녹아내리는 느낌이다. 정말 부드러운 목소리다.
기장의 목소리에서 얻은 안정감도 잠시, 곧 긴장되는 이륙이 시작되고, 불러오는 배와 방광에 안전벨트를 몇 번 풀었다가 채웠다가, 난기류에 겁 한 번 먹고 나니 어느덧 착륙할 무렵이다. ‘기장님 감사합니다’. 어느덧 기장님의 목소리는 그렇게 잊어버렸다.
비행기 탑승 경험이 몇 번 되지 않았을 때는 ‘기장님들은 목소리가 항상 좋네?’ 하고 그냥 넘어갔다. 하지만 출장을 다니며 계속 데이터로 쌓아 가니 가설은 어느덧 진리가 되어 갔다. 한 번도 좋지 않은 적이 없었다.
나만 그런가 생각해도, 친구나 가족과 여행을 가면 ‘기장님 목소리 뭐야? 왜 이렇게 좋아?’ 라는 말도 더러 들었다. 역시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좋은 목소리도 기장을 채용할 때 중요하게 보는 조건일까? 라디오 DJ, 가수, 성우가 되지 못 한 이가 기장이 된 걸까? 아니면 숨겨둔 투잡으로 뛰고 있을까? 도대체 이들의 목소리는 왜 이리 좋을까.
항공사 내부에는 승객 안내 방송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존재한다. 대외비 문서라 갖고 오진 못 했다. 내용은 항공사마다 다르겠지만, 명확한 공통점은 하나 있다. 승객이 불안해 할 수 있는 상황, 예컨대 난기류나 착륙 지연 등이 발생했을 때는 침착한 목소리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승객들은 비행 시간 동안 오롯이 기장에게 의존하기에, 기장의 차분한 목소리는 비행기가 조종사의 ‘통제’ 아래 있다는 신뢰감을 줄 수 있다.
또한 기장이 안내 방송을 할 때, 적당히 느린 속도와 명확한 발음으로 말해야 하는 것도 의무다. 작은 소통 실수가 큰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커뮤니케이션 하며, 청자의 오해를 막기 위해서다. 관제사와 조종사의 커뮤니케이션에도 이 말하기 속도에 관련한 가이드라인이 있다. 일명 '무선통신매뉴얼(Manual of Radiotelephony)'. 매뉴얼 내 송신기법 부분에는 '말하는 평균 속도를 분당 100단어(100WPM(Word Per Minute))를 초과하지 않도록 유지하라'고 쓰여 있다. 일반 대화 속도가 120~160WPM, 뉴스 앵커의 말하기 속도가 150~180WPM이니, 기장님의 업무할 때 말하기 속도는 조금 느린 편이다.

아니, 그런데 여전히 궁금하다. 침착한 어조와 어투, 말하기 속도, 정확한 발음을 아무리 훈련 받는다 해도, 사람마다 타고난 목소리는 다르지 않은가. 분명 '귀에 꽂아 넣고 계속 듣고 싶은 이어폰 같은 목소리'가 있는데, 기장님들은 다 목소리가 좋지 않았던가. 이게 확률상 가능한 일인가?
보컬에게 음정을 보정하는 오토튠이 있다면, 기장 목소리에는 항공 무선의 ‘주파수 대역폭 필터링’이라는 마법이 들어간다. 항공 무선 통신 장비에는 가청 주파수 범위에서 필요한 소리의 음역대만 필터링 하는 기능이 있다. 사람 목소리가 가진 고음의 미묘한 울림이나 톤이 제거되기에 소리가 귀로 전달될 때 얇거나 날카롭게 들리기보다 묵직하고 부드러운 중저음이 강조된다.
결국 승객에게 들리는 기장의 목소리는 그들이 꾸준한 훈련으로 만들어 낸 결과물과 항공 무선 장비의 특성이 결합해 탄생한 선물인 셈이다. 장비도 있겠다, 목소리도 완벽한데..나의 사리사욕을 위해 비행 시간 동안 라디오 DJ가 되어 주시면 안 될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다.
글에 나온 내용 외에도 비행기 기장의 목소리가 좋은 이유를 아는 현직 항공기 조종사, 승무원, 항공사 직원분이 계시다면 댓글로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남은 11월도 파이팅 하시길 바라며,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