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편: "팩폭"에서의 팩트가 정말 사실일까 (Feat. 진실성)
우리가 일상어에서 자주 사용하는 표현 중 하나가 '팩트폭력(or 팩트폭격)'이다.
이 표현을 조금 분석해 보자. 팩트(Fact)는 사실을 뜻한다. 그리고 사실(Fact)은 일반적으로 고정불변한 진릿값을 갖고 있다. 그 말은 고정불변한 진리에 가까운 사실이기에 반박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이렇게 볼 때 팩트폭력이라는 말은 "엄연히 객관적인 사실을 통해 타인의 정곡을 찔러 면박을 주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 팩트(Fact)라면 이를 부정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를 가져오지 않는 이상은 반박이 불가능하다.
여기까지 우리가 이해했을 때,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팩트폭력에서 팩트가 정말 사실(Fact)이 맞을까? 어쩌면 그저 개연성이 있는 수많은 가능성들 중에 가장 그럴 듯해보이는 하나를 짚어서 마치 사실인 것처럼 반박을 못하게끔 만드는 걸 우리가 팩트폭력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예시를 들어보자.
이 예시에서 B가 한 말은 엄연한 의미에서 팩트폭력이 아니다.
먼저, 연애를 못하는 이유에는 여러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외모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이라거나 사람들과 만나는 빈도가 적다거나,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라거나, 취미 활동이 한정적이라거나 등등이 그 이유가 될 수 있다. 다만 B가 한 말이 팩트폭력처럼 들리는 결정적인 이유는 못생긴 외모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앞으로 절대로 바꿀 수 없는 것처럼 들리게 되고 이 말은 곧, 반박이 정말 불가능해 보인다.
그리고 조금 더 엄밀한 의미에서 못생기다라는 말은 사실판단(Factual judgement)이 아니라 가치판단(Value judgement)이다. 잘생기고 못생김, 곧 미(美)와 추(醜)는 곧 개개인의 주관적인 기호의 문제이자 가치의 문제이지, 사실의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이게 팩트폭력처럼 들리는 결정적인 이유는 미와 추가 주관적일지라도 어느 정도 시대적으로 통용되는 미적인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것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들리는 것이다.
사실(Fact)이라는 걸 과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객관적으로 관찰 가능하고 관측 가능한 것으로 우리가 이해를 한다면, 위의 예시를 포함하여 일상어에서 사용하는 수많은 팩트폭력에서 팩트는 팩트가 아니다. 사실(Fact)과 가치(Value)를 제대로 구분을 했는지에 대해서 먼저 우리는 스스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무리 대다수의 사람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가치판단"을 확신에 차서 이야기를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의 주장이자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지, 결코 100%의 사실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팩트폭력이 사실(Fact)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조금 힘들지라도 반박이 가능하다. 내가 팩트폭력으로 공격 받긴 했지만 그것 때문이 아니라는 걸 내가 행동으로 보여주어 증명하면 되는 것이다. 위의 예시에서 A가 만약에 B가 보기에 못생긴 외모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연애를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팩트도 아닐뿐더러(엄밀한 의미에서 원래도 팩트가 아니었지만), 폭력도 아니게 된다. B의 선입견을 A가 뒤엎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가 팩트폭력(사실폭력)이라고 잘못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실제로 우리는 "사실"이라는 표현을 일상어에서 굉장히 많은 부분에서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다.
아래의 예시를 조금 더 살펴보자.
1)과 2)의 표현에서 반복되는 "사실"은 엄밀한 의미에서 관찰·관측이 가능한 객관적 자료에 기반한 과거의 기록으로서의 사실(Fact)이 아니다.
1)부터 분석해 보자. 1)에서 이야기하는 사실은 Fact가 아니다. 엄밀한 의미에서의 Fact가 되려면 "2026년 5월 5일 오전 11시 59분, A가 B를 죽였다."라는 표현(CCTV 자료가 있다고 전제할 때)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1)에서의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냐? 여기서 말하는 사실은 모종의 "진리(Veritas)"에 더욱 가깝다. 어떠한 보편적인 도덕법칙 하에 우리가 관습적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그 무엇이다. 기본적으로 법(Law)이라는 것도 여기에 기반해 있으며, 우리는 이러한 불문율 하에 살아가고 있다. 비슷한 예시로 "다른 사람을 때리면 안 된다.", "길거리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된다." 등이 해당된다. 이러한 규제적이고 당위적인 표현들은 우리 일상에서 모종의 진릿값을 표방하고 있어서, 그 자체로 사실(Fact)은 아니지만 사실과는 매우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위의 팩트폭력을 이야기할 때 언급한 것처럼 대다수의 동의를 얻을 수 있고 더 나아가 강제력까지 갖는 어떠한 강력한 "가치판단"이라고는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2)에서 사실은 뭘까? 이때 사실은 "진실(Truth/Veracity)"에 더욱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뜯어서 살펴보자. 2)에서 '나'가 '너'를 괴롭히고, 싫은 소리만을 했다는 것은 과거의 사실(Fact)일 수 있다. 이때 사실은 눈으로 보이고 관찰될 수 있다는 걸 전제한다는 점에서의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로서의 행동이나 몸짓으로는, 아직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것이 있다. 그것이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진심(진실)이다. 이 진심은 2)에서처럼 표현을 함으로써 비로소 드러난 거지, 그 이전까지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우리는 많은 경우에 이러한 진실을 꺼내지 않고 단념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 진실을 이야기하면서 앞으로 생겨나게 될 불확실성이 두렵고, 그것이 나에게 역으로 해로 돌아올 수 있을까봐이다.
이와 연관 지어 지금의 현대사회가 가장 강력하게 사실(Fact)을 중시하는 사회라고 했을 때 우리가 주의해야 하는 것 중 하나는 이러한 진실의 감춰짐이다. 특히 통계(Statistics)는 이러한 진실을 가려 버리기 쉽다. 어떤 공신력 있는 단체가 사람들의 지금 당장의 선호와 기호를 물어 통계를 만들어버려 우리가 그걸 사실(Fact)이라고 믿고 부른다면, 그 통계 안에 수많은 사람들의 진심들은 은폐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통계가 만들어내는 수치화는 인간 내면의 복잡함과 모순적인 부분, 진정성, 변화들을 절대 담아낼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2)의 사례처럼, 스스로를 위장하거나 가리는 것이 아니라 진실성을 계속 드러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잠깐 주제가 샜지만 결론적으로, 1)과 2)에서 언급한 사실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사실이 아니다.
그리고 위 논의를 그대로 따라 온다면 팩트폭력이라는 표현에서 팩트는 1)과 2)의 요소가 어느 정도 중첩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조금 주의해야 하는 부분은 여기서 팩트는 2)의 진실(Truth)과는 완전히 동치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진실성이라고 부를 수 있으려면 정말 내게 의심할 수 있는 데까지 의심하는 과정을 거쳐서 확실성을 획득한 것을 의미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공격(폭력)을 위한 진실이라면 이미 공격을 의도하기 위해서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 표현 자체에서 모순을 함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별 생각 없이 이야기한 팩트폭력도 이미 발화자의 무책임성을 전제하고 있다면 그것 역시 진실성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오늘 논의를 통해 팩트폭력이라는 일상어적 표현이 엄밀한 의미에서 팩트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팩트폭력이라는 표현이 오류가 있는 표현이라면 우리가 함께 사용하고 있는 메타인지와 자기객관화라는 표현은 어떨까? 여기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지는 않을까? 해당 내용은 다음 글에서 조금 더 이야기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