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답모엘🐣) 자아실현 1~16편(완) 총정리
작성자 모엘
언의 통찰
(문답모엘🐣) 자아실현 1~16편(완) 총정리
안녕하세요. 모엘입니다.
제가 <그럼에도,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는 그라운드에서 2023년 7월에 "문답모엘🐣"이라는 코너를 진행했었어요. 지금은 다른 글들이 많이 올라와 있어서 아래로 밀려났지요.ㅎㅎ 그 16편의 글들을 이렇게 한 번에 묶어서 정리해봤습니다 :)
자아실현이라는 주제로 글을 작성해본 16가지의 짧은 문답은 제가 갖고 있는 사상들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물론 많이 어렵지만 이 글들을 통해서 제가 갖고 있는 생각들을 쉽게 접하셨으면 좋겠네요. 더불어 여러분들의 생각도 충분히 펼치셨으면 좋겠고요.
"저장" 버튼을 누르셔서 보관하시고 천천히 읽으셔도 좋을 것 같고요. 언제든지 궁금한 점에 대해서 댓글을 달아주신다면 제가 상세히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해드리겠습니다.☺
그럼 더 좋은 글로 만나요!
1편
Q. 모엘, 자아실현을 하면 뭐가 좋아?
A. 우리는 모두 어떠한 활동을 하고 싶어하잖아. 거기에는 '내'가 드러난다고 생각해. 그리고 거기에서 즐거움을 얻으면, 앞으로 그것에 대해 더 하고 싶어지겠지. 내가 어떠한 것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한다는 거 자체가 큰 축복이지 않을까? 분명 하지 않았을 때 누릴 수 있는 것보다는, 하고 난 뒤에 누릴 수 있는 게 더 클 거야. 그리고 그 무언가를 하는 무한한 과정 속에서 나를 실현한다고 보는 거지. 그리고 그것에 계속 만족감을 얻는다면, 그것을 자아실현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행복이라는 건 그런 거겠지.
2편
Q. 모엘, 자아실현을 하려면 나한테 잠재성이 있어야하잖아. 내가 잠재성이 있다는 걸 어떻게 확신해?
A. 우리가 무언가를 계속 하다보면, 나에 대해서 새로운 능력을 발견할 때가 있잖아. "아~ 내가 이런 것에 소질이 있었네!"와 같은 모습이지. 그리고 그 새로운 모습은 분명,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일 거야. 그리고 이렇게 발견한 내 능력이, 설령 그 분야에서 남들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1등은 아닐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자아존중감(자존감)을 경험하지. 그리고 나의 이러한 능력은 내 자존감의 디딤돌이 되어줄 거야. 이때 다른 사람이 나의 능력에 대해 인정해주고 존중해준다면, 나는 나를 더욱 드러내려고 하겠지. 그리고 그 이후에는 계속되는 자아실현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3편
Q. 모엘, 내가 자아실현을 하려면 다른 사람의 인정과 존중이 필수적인 걸까? 혼자 할 수는 없는 거야?
A.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것들이 조금 있어.
어렸을 때 우리는 부모님께 재롱을 부렸잖아. 이때 부모님께서 나에게 '오구오구~'를 해준다면 우리는 더욱 신이 나서 스스로를 뽐낼 수 있었지. 그랬던 우리가 나이를 먹고 사회로 나아가면서 세상의 양적평가의 잣대로 인해 힘들어하고, 스스로의 가치를 폄하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 같아. 자존감이 자꾸 떨어지는 거지. 만약에 그 사람에게 있어서 어린 시절의 부모님처럼 사회가 인정과 존중을 계속 해줬다면, 상황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또한, 인간은 혼자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혼자 자족하는 건 불가능해. 이 말은 개인은 공동체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이야기야. 우리는 로빈슨 크루소가 아니잖아. 사회가 나를 인정해준다는 건, 그만큼 내가 할 수 있는 허용치를 늘려준다는 말이기도 해. 나 자신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 확장된다는 이야기야.
그리고 자아실현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필요한 결정적인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는데, 그건 나중에 말해줄게! (채널 고정!)
4편
Q. 모엘, 네가 말했다시피 사회가 사람들을 순위 매기고 평가하잖아. 그래서 내가 자아실현이 힘든 걸까?
A. 음.. 그것엔 상당 부분 동의해. 사회는 분명 우리의 능력에 대해서 측정했으며 양적평가를 통해 순위를 매겨왔어. 낮은 평가를 받은 사람들 중 더욱 분발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자신이 그 정도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그저 낙인 찍는 사람도 있겠지. 사회가 이런 식으로 우리를 평가한 이유는 어떻게든 눈에 보이는 결과물과 성과를 만들어내기를 요구했기 때문이야. 나는 그것을 자본주의와 능력주의의 폐단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인간에게 있어 무한한 자아실현이 중요한데, 돈이 되는 성과를 먼저 만들어내는 것이 우선이 되어버리니까 인간은 그저 소외되는 거야. 나는 이걸 주객전도 현상이라고 말하고 싶어.
'우리는 질적으로 다양하고 다른 개개인들이기 때문에, 돈이 되는 특정 기준에 맞춰서 가치를 매기는 건 잘못되지 않았을까?', '결과보다는 과정에 의의를 두어야 하는 게 아닐까?'와 같은 사람들의 인식변화가 필요할 것 같아.
5편
Q. 모엘, 네 말대로 노동소외 현상이 지금도 많이 일어나잖아. 타인의 인정과 존중마저 거부하는 사람도 생겨나고. 사람들이 자아실현을 포기하려는 걸까?
A. 나는 특히 우리나라가 개인주의, 자유주의로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해. 나의 선택에 대해서 책임을 지려고 하는 태도기도 하지. 언뜻 문제 없어 보이는 이 사상은 내가 내 선택에 대해서 알아서 책임을 질 테니 "나한테 간섭하지 마세요."라는 쪽으로 흐르기도 하지. 이는 정치적 무관심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어. 당연히 타인의 인정마저 거부하려는 지금 세태와도 비슷해보이지. 여기서 그들이 자본주의와 능력주의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다면, 자신이 경쟁에서 살아남을 능력이 되지 않는다면, 그저 단념하고 현실에 순응할 가능성이 있지. 제도를 바꾸려고 하는 목소리를 내지도 않을 테고. "소확행"이라는 말 들어봤지? 그저 밤에 유튜브를 보면서 치킨을 뜯으며 소확행을 추구하려는 것은, 자신의 자아를 축소하여 실현하고 그저 만족하려는 게 아닐까 싶어.
6편
Q. 모엘, 이해가 되는 듯 싶으면서도 네 말이 어렵다. 나 궁금한 게 하나 있어. 자아실현은 그저 탐욕적인 삶을 포장한 말 아닐까?
A. 물질적인 것들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이 탐욕적인 삶이라고 생각해. 필요한 것 이상의 것들을 사치스럽게 가지려고 하고, 그 물질 속에서 나를 찾으려는 사람이 우리가 주로 비판하는 사리사욕이 가득한 자본주의 인간상인 거지. 그러나 자아실현은 그런 것이 아니지. 나의 잠재성의 발현에 중점을 둔다는 거야. 반복해서 말하듯이, 자아실현은 어떤 결과를 내고 끝나는 게 아니야. 결과물과 소유물을 만드는 것에만 집중한다면, 바로 욕심 많은 삶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있지. 반면, 자아실현은 끝없는 과정의 연속에 위치해야 하는 거지. 나는 자아실현을 하고, 다른 사람들은 내 자아실현에서 생겨난 부산물(결과물)을 이용하여 자아실현을 할 수 있을 거고, 그것이 선순환으로 이어지는 거지. 그 과정 속에서 진정한 나를 찾아가고 만들어가는 것. 그게 나는 윤리라고 보고 있어.
7편
Q. 모엘, 쉽게 설명해줘서 고마워. 근데 내 자아실현의 결과물을 통해 다른 사람이 자아실현을 한다는 게 어떤 이야기야?
A. 우리는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잖아. 예를 들어 내가 가수야. 멋진 노래를 발매한다면, 사람들은 그 노래를 즐길 수 있지. 만약에 내가 요리사야. 맛있는 음식을 만든다면, 사람들은 그 음식을 향유할 수 있지. 내가 나의 능력을 바탕으로 나를 발휘를 한다는 것 자체가 알게 모르게 사회에 기여를 하고 있다는 거지. 한편으로 다른 사람들은 음악가가 만든 음악을 듣고 요리사가 만든 음식을 먹으면서, 그것에 영감을 받아 다른 능력을 펼쳐나갈 수 있겠지. 그리고 그 능력은 틀림없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거야. 모두가 사회 속에서 자신을 더욱 표현할 수 있도록 그 기반을 서로가 마련해주는 거지. 이때 사람들이 갖고 있는 능력이 다양하고 다원화될수록 우리가 즐길 수 있는 것들도 분명 많아지겠지. 그리고 그 다양한 능력들이 우리 삶에 받아들여질수록, 과열된 경쟁이 더욱 축소될지도 몰라. 어떤 한 인기 직종에 쏠리는 게 아니라, 이러한 수많은 다양한 능력들에 대해서도 타인의 인정과 존중이 다시 필요해지는 지점이기도 해. 이런 세상 어때? 상상만 해도 멋지지 않니?
8편
Q. 모엘, 인정과 존중 이외에 자아실현에 있어서 다른 사람이 필요한 결정적인 이유에 대해서 안 알려줬던 것 같아. 그것도 마저 알려줄 수 있을까?
A. 응. 사실, 그 이유는 미래의 미지의 무언가를 향해서 다른 사람과 같이 모험할 수 있다는 것에 있어. 우리가 혼자 하기 무섭고 겁나는 것이 있을 때, 함께 해줄 사람이 있다면,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해나갈 수 있거든. 미래는 분명 불확실할 테지만, 서로를 믿고 나아간다면 그 거친 파도를 헤쳐나가는 재미를 맛볼 수 있는 거지. 그 과정 속에서 설렘과 경험들을 함께 느끼고 공유해 나간다면, 더욱 더 신나게 모험할 수 있겠지. 즉, 나 혼자서는 절대로 불가능할 영역들에 대해 다른 사람과 함께 지속적으로 모험하고, 내가 모르는 나의 모습들을 발견하면서 실현해나갈 수 있다는 거지. 단순 개개인의 합, 그 이상의 것을 경험하는 시너지! 거기에 진짜 자아실현이 있지 않을까?
9편
Q. 모엘, 이전에 말한 내용 중에서 네가 소확행이 자아를 축소한 채로 그저 실현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했잖아. 난 동의 못해. 그것뿐만 아니라, 더 큰 자아실현을 하기 위한 휴식일 수도 있지 않을까?
A. 응, 그런 분석도 충분히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어쩌면 성과 중심의 회사에서 자아실현을 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재충전을 위해 소확행을 즐기는 것일 수도 있지. 반복된 형태의 노동으로 인해 진짜 나를 잃고 있기 때문에, 그저 쉬고 싶어서 홀로 배낭여행을 떠난다거나 캠핑을 가려한다는 거지. 평화로운 자연 풍경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하는 여유와 함께, 사유를 하면서 '진정한 나'를 찾고 싶어하고 드러내고 싶어하는지도 몰라. 결과와 성과만을 중시하는, 그런 사회로부터의 탈피.. 어쩌면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이 피로감에서 우리가 진정 원하고 바라는.. 그런 해답이 있을지도 모르겠어.
10편
Q. 모엘, 그렇다면 이 사회에서 자아실현을 하는 게 가능하다는 걸 거부하며, 그저 집에서 감각적 쾌락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할까? 그들이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건 아닐까?
A. 그럴 가능성이 있지. 그리고 우리가 알다시피, 그런 사람들이 범죄자가 되기도 하는 것 같아.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시 구조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거야. 단순히 가해자의 사이코패스를 조사하고 개인의 탓으로만 떠넘겨 버린다면, 앞으로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걸 막을 수는 없겠지. 그렇기에 은둔형 외톨이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적 차원에서 "기반"을 만들어줘야 해. 이때 이 제도는 단순히 그들에게 금전적인 지원만을 한다거나 그들로 하여금 특정 목표를 달성하라고 강요해서는 안 될 거야. 내가 앞서 계속 강조했던 것처럼, 인정과 존중을 통해 그들의 능력을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발휘하도록 해야지. 물론 이건 사후에 그들을 지원하는 복지제도와 관련된 이야기였고, 사실 지금의 체제 자체에도 변화가 생겨서 은둔형 외톨이가 나오는 걸 최소화하는 게 먼저 선행돼야 할 거야.
11편
Q. 모엘, 어쩌면 인터넷 커뮤니티에 달리는 다양한 악플들도 네가 말한 문제들에 해당될까? 그리고 우리는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A. 나는 그렇다고 생각해. 현대 사회에서 증오가 나타나는 모습은 자기 자신이 사회에서 느꼈던 모멸감을 외부적 대상에 투영하여 공격하는 거라고. 내가 사회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니까, 애꿎은 다른 사람들에게 화풀이를 하는 모습이지. 선망하며 롤모델로 삼는 게 아니라, 그저 시기와 질투에 그쳐버리는 모습이기도 하지. 이렇게 지나치게 시니컬한 모습들이 온라인에서 자주 보이는 것 같아.
이를 해결할 방법 역시 쉽지 않겠지. 그러나 일단 이상적인 관점부터 말해보자면, 일단 지금 이러한 부정적인 현실에 대해 그저 당연한 것으로 수긍해서는 안 될 거야. 무력함에 그저 젖어있을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다양한 가능성들을 결합하며 더 큰 시너지를 만들어내려고 나아가야할 것이고. 그리고 이 시너지를 확대하기 위해서 국가 차원의 제도적 지원을 요청해야 해. 분명,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거야. 우리가 각자의 삶 속에서 경험하는 생생한 체험들로부터 다양한 목소리를 내야 해. 이때 분명, 지성적인 사유를 통해서 방향성을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할 거야.
12편
Q. 모엘, 아까 이상적인 해결책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끊겼던 것 같은데, 현실적인 해결책에 대해서도 좀 더 말해줄 수 있어?
A. 결국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자유주의(개인주의)에서 개개인들의 다양한 발산하는 자유들을 고스란히 유지한 채로 방향만 틀어 중심으로 수렴하도록 하는 거야. 그게 개인의 자유를 잃지도 않으면서 동시에 국가적 질서를 유지하는 방법이 될 거라고 보는 거지.
그리고 이 수렴으로 나아가는 단계를 조금 더 현실적인 접근으로 보자면, 나라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도래한 그 순간에 주목해야 한다고 봐. 이때 한 개인의 지적인 사유로 이루어진 "내러티브(이야기)"가 수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자극하고 충격을 주어 그들의 심경적 변화를 이끌어낼 때, 그리고 그것이 그들이 기존에 갖고 있는 가치들을 전도시키는 것으로 이어질 때, 세상은 분명 변하리라고 생각해. 그리고 당연히 이러한 개인이 등장하여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들을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겠지.
13편
Q. 모엘, 만약에 네가 말하는 방식으로 세상이 변한다고 쳐. 그렇게 바뀌면서 네가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이상적인 국가 형태는 뭐야?
A. 일단 반복했듯이, 우리 모두가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고 결합하며, 자아실현을 꾸준히 경험할 수 있는 체제를 지향하고 있어.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과 모험을 할 수 있고, 설령 실패하더라도 금세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안전한 기반이 필요하겠지. 그렇기에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면, 덴마크나 핀란드와 같은 북유럽 형태의 복지국가이지 않을까 싶어. 물론 그러한 국가 모델이 되는 게 쉽지도 않을뿐더러, 완결되고 그저 끝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지향해야하는 과정이지. 누군가를 희생하며 급진적인 성장을 하는 것보다는,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점진적인 성장을 하는 것이 더 윤리적이라고 생각해. 그렇기에 지금 한창인 AI 기술에 국가가 집중하는 것보다,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더 중점이 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어.
14편
Q. 모엘, 네가 원하는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인식이 중요할 것 같아. 그리고 그 인식을 만드는 교육이 중요할 것 같고. 네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교육은 뭐야?
A. 응, 맞아. 나는 양적인 성적을 매기는 교육들에 대해서 전부 반대하는 편이야.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대학 서열부터 없어질 필요가 있겠지.
일단, 나는 학교 교육에서는 학생들 각자가 갖고 있는 가치의 교류가 원활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 선생님은 매번 새로운 주제를 가져오고, 학생들은 그 주제와 관련하여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들을 공유하면서 서로가 가진 다양한 가치들을 이해해나가는 거지. 평가가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서로 간의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질적 평가뿐일 거야. 인정과 존중을 바탕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윤리적으로 판단하는 거지. 학창시절의 이러한 훈련은 이후에 정치의 영역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나의 고유한 경험과 대화를 통해 나눈 가치들로 각자가 책을 한 권씩 쓸 수 있도록 하는 거야. 그 책엔 분명 오롯이 '나'가 반영되어 있을 거고, 그것을 다시 다른 학생들과 돌려가며 읽는 거지.
만약 이런 세상이 펼쳐진다면, 타인의 인정과 존중이 여전히 쓸모없다고 우리가 생각할까? 우리는 분명 다른 사람과 함께 교류하는 삶을 살려고 할 거야. 직업 간의 우열도 사라질지도 모르지. 우리는 정치를 이미 학창시절에 배우고 있는 거고. 그리고 진짜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겠지.
15편
Q. 모엘, 자신의 고유한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게 왜 중요해? 그리고 그런 식의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이상적인 사람이겠지?
A. 우리가 어떤 주장을 제시하며 근거를 이야기할 때, 나의 개인적인 경험은 그저 주관적이라고 생각하여 잘 이야기하지 않는 것 같아. 오히려 내가 경험해보지도 못한 외부의 이론이나 자료를 끌고 오려고 하지. 그러나 그 주장엔 과연 나의 진정성이 담겨있고, 진짜 '나'가 드러나 있을까? 그저 언어를 이용하여 허공 속에서 노를 젓고 있는 게 아닐까?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개인은 자기 진정성에서 출발하여, 자신의 경험을 신뢰하는 사람이야. 자기 확신을 가진 사람이지. 자신에 대해서 확신을 하기 때문에,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해서도 두려워하지 않지. 마치 서핑보드 하나만 가지고 예측할 수 없는 거친 파도를 타러 가는 것처럼.
그리고 미래에 내가 겪어보지 못한 어떠한 목표를 기존의 구조 안에서 설정하고, 내가 그 목표에 짜맞춰 들어가는 건 진정 자유롭지 못할 거야. 과거에 내가 겪어봤던 나의 경험 속에서 나의 잠재력을 발견하여, 자신을 믿고 그 잠재력을 펼치면서 현실 속에 무한히 구현하는 것이 진정 자유롭겠지. 그렇게 기존의 구조에 내재해있던 부조리, 악습, 폐단이 우리들의 자아실현에 의해서 하나씩 타파되는 거지.
16편
Q. 모엘, 네 생각은 정말 이상적인 것 같아. 어쩌면 네가 말한 자아실현이 가능하려면, 전부 다 리셋해야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네 생각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네.
A. 어려운 일이지. 이 사회 속에서 자아실현을 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방증하기도 하니까. 나 또한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라는 차별화된 개인도 그저 사회 속에서 짜맞춰지고 있는 중인 것 같기도 하고.
다만, 마지막으로, 자아실현에 대해서 한 가지는 더 말하고 싶어. 원래 자아실현(ego-realization)이 아니라 자기실현(self-realization)이 맞는 말이야. 자아는 ego를 의미하고, 자기는 self를 의미해.
자아(ego)는 내가 항상 의식하는 '나'야. 나의 직접적인 이해관계에 민감하고, 기본적인 욕구와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지. 더불어 늘 밖으로 드러나는 나이기에, 자존심과 직결되지. 그렇게 본다면, 우리는 항상 자아를 실현한다고 볼 수도 있지.
자기(self)는 내가 곧바로 의식할 수 없는, 드러나지 않는 '나'야. 내 속에서 숨어 있으면서, 잠재적으로 드러날 준비를 하고 있지. 우리가 자아에 매몰된다면, 자기는 그저 잊혀지기도 하지. 반면, 내 안의 자기를 강하게 믿는다면, 그건 자존감과 직결이 되는 거지. 그리고 이게 진정 실현되어야만 하는 자기이고.
내가 진짜 나를 드러내기 위해, 타인과 더불어 잘 살기 위해서는, 자아(ego)를 잠시 내려놓고 자기(self)를 위해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더 윤리적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윤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