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작성자 1000mL
글로 연주한 커버곡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Welcome To The Black Parade - My Chemical Romance
썩 괜찮은 인생이었다!
자신의 숨이 꺼지는 마지막 순간 과연 어떤 사람이 이 말을 할 수 있을까.
썩어빠진 세상을 고쳐보겠다는 일념만으로 자신의 인생을 건 한 의사라 하더라도 이 말을 남기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그가 이 한마디를 외치며 떠날 수 있게 만들었을까.
너무나도 고운 마음씨를 가지고, 자신에게는 없는 실제 능력도 있는 세상 하나뿐인 사랑하는 제자가 자신의 의지를 이어가리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그는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단순히 인간의 심장이 멈추었을 때를 죽음이라 정의할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장례식과 같은 사회적 규범과 법률적인 인정이 죽음이라 정의할 것이다.
하지만, 히루루크는 자신만의 죽음에 대한 정의를 가지고 있었다.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스스로에게 되뇌듯 질문했다.
그리고 그의 대답은 오래전부터 준비되어 있었던 듯했다.
"사람들에게 잊혀졌을 때다."
자신이 남긴 꿈과 사명, 그리고 희망이 그의 제자의 마음속에서 숨 쉬는 한 그는 살아있게 되는 것이었다.

앞서 보았듯, 죽음은 끝일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떠나간 사람이 남기고 간 말, 꿈, 사랑 그리고 의지의 '전달'일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전달된 의지는 남겨진 사람에게 슬픔이 아닌 하나의 좌표가 되어 행진을 이어갈 수 있게 해 준다.
히루루크와 그의 제자에게 그랬듯, 죽음은 그렇게 멈출 것 같았던 행진을 다시 이어가게 해 주는 새로운 출발점이 된다.
무너지고, 패배하고, 저주받은 이들의 구원자가 되어달라는 아버지의 말씀도 그러했다.

공허한 분위기로 울려 퍼지는 피아노 선율과 마치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제라드 웨이(Gerard Arthur Way)의 보컬로 시작하는 곡의 인트로는 누군가의 죽음을 마주하는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나 단음으로 하나씩 연주되는 피아노가 우울하면서도 미련이 남는 듯한 분위기를 완벽하게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칭밴드에서 들을법한 *스네어 드럼사운드와 그 사이로 살짝씩 들리는 실로폰의 소리는 한순간이나마 동심으로 돌아간 모습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 들었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떠오르며 삶에 대한 열망이 다시 불타오른 듯 울부짖듯 외치는 보컬이 이어지며 인트로는 끝이 난다.
본격적인 곡의 흐름으로 이어지기 전, 인트로에서부터 기승전결을 보여주며 *이모락 장르에서 손꼽히는 도입부를 만들어냈다.

인상적인 인트로를 뒤로하고, 빠르게 연주되는 기타 리프와 함께 아이코닉한 *훅까지 숨쉴틈 없이 거침없게 달려 나간다.
이렇게 이어진 훅에서 제라드 웨이의 "We'll carry on"을 외치는 보컬은 떠나간 이들의 의지를 이어가겠다는 결심도 담겨 있지만, 그들 없이 홀로 나아가야 한다는 쓸쓸함과 불안감도 함께 느껴진다.
첫 번째 훅이 지나간 다음, *펑크록의 대표 격인 *그린 데이가 떠오르는 *브릿지로 이어진다.
펑크의 느낌이 쭉 이어지나 싶은 찰나 다시 한번 인트로에서 느꼈던 감정을 떠올릴 수 있는 파트가 등장한다.
훅과 인트로에서 보여주었던 멜로디가 번갈아 나오는 하이라이트는 동일한 구조를 단순히 반복하기보다 *모듈레이션을 통해 쌓아 왔던 감정을 폭발시킨다.

밴드의 보컬 제라드 웨이는 형편없는 라이브 실력, 우울증, 알코올 및 약물 중독 등으로 보컬적인 실력에 대한 평가가 박하지만, 이 곡에서 만큼은(물론, 라이브 무대를 제외하고) 미성임에도 강력한 파워가 느껴진다.
이에 더해 곡의 상대적 저음부에서는 말썽꾸러기 같은 느낌을 많이 주지만, 고음부로 올라가면 보호해주고 싶은 병약미가 느껴지는 청년과도 같은 매력도 보여준다.
해당 곡 'Welcome To The Black Parade'는 곡 전반이 고음으로 이루어져 가수 본인도 부르기 힘들다고 할 만큼 난도가 높은 곡이다.
그만큼 어려운 곡에서 이렇게나 감정선을 잘 표현한 점은 이 곡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큰 이유라 생각한다.

모든 인간은 결국 죽음이라는 이별을 마주한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도 언젠가 그 순간을 마주할 것이다.
하지만, 닥터 히루루크가 그랬고, 이 곡이 말해주듯 한 사람의 끝은 또 다른 사람의 시작으로 겹쳐진다.
누군가의 마지막이 또 하나의 첫걸음을 이끌어내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어받는 삶의 방식이다.
그렇게 우리가 걸어가는 이 길 위에서 행진은 계속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