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했던 사랑을 위하여

영원했던 사랑을 위하여

작성자 1000mL

글로 연주한 커버곡

영원했던 사랑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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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ist1000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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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st On You - LP

누군가가 무심히 던진 질문 하나.

"선생님의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나요?"

그리고 그 질문보다 더 덤덤하게 뱉어낸 대답.

"저에게도 꿈은 있었습니다."

그 덤덤했던 답변 뒤로 이어진 겨우 몇 단의 시 구절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 뒤 앳된 모습의 누군가를 목 놓아 울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몇십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겨우 물어볼 수 있었다.

Tell me are they lost on you?(말해줘요, 나의 전부는 아무 의미도 없었나요?)

오랜 시간 꼭 한 번은 물어보고 싶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고 있던 이 한 번의 물음은 나 자신조차 알지 못했던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긴 시간이 지난 만큼 덤덤하게 지나갈 것이라 쉽게 생각했지만, 이 한마디는 가슴속 어딘가를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아니, 초라해진 내 모습 뒤에 숨어있던 앳된 모습의 그를 밀어 넣었다는 것이 더 알맞을 것이다.

이제는 잊었다 믿었지만 다시금 너무나도 또렷하게 맡을 수 있는 사랑의 향기와 함께.

아련한 감정, 씁쓸함이 느껴지는 입안, 그리고 그 씁쓸함을 씻어내기 위해 다시 한번 들이킨다, 그 질문을 하던 목소리처럼 떨리는 손 위에 들려있던 한잔을.

돌아오지 않는 응답과 함께 이제는 정말 그 사랑을, 그리고 그 열정적인 사랑을, 꿈을 품고 있었던 소년을 보내줄 수 있었다.

단순히 애절하다는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아쉬운 엘피(LP)의 보컬이 너무나도 돋보이는 곡이다.

블루지한 일렉기타의 사운드 위로 *어쿠스틱 기타 특유의 무엇인가 공허한 느낌의 사운드가 얹어지면서 시작된다.

*킥만 활용되는 먹먹한 드럼 사운드 위로 엘피 보컬이 나오는 *벌스 파트는 차분한 듯 들리지만, 그 속에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그리고, 겨우 참고 있던 그 떨림은 *훅으로 넘어가면서 더 이상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간다.

후회, 그리움, 자책, 애절함, 공허함 이 모든 것들을 한 번에 토해내는 듯 그녀의 목소리는 우리의 가슴속으로 단숨에 치고 들어온다.

여기에서 그녀 특유의 잘게 떨리는 *비브라토는 위의 모든 감정들을 섬세하게 전달해 준다.

*스트링 사운드가 들어오면서 그녀가 울부짖는 파트는 이 곡 최고의 포인트가 아닐까 생각된다.

첫 번째 훅이 끝나고 순간적으로 어쿠스틱 기타만이 나오는 두 번째 벌스는 다시 한번 숨을 가다듬고, 무너지는 마음을 추스르려는 듯하다.

하지만, 한 번 쓰러지기 시작한 모래성은 멈출 수 없듯 다시금 감정의 소용돌이가 몰아친다.

이번에는 그전보다 더 크고, 더 아프게.

이는 두 번째 훅에서 엘피의 외침 뒤로 깔리는 *백업 코러스의 사운드가 더 크게 들리게 표현한 듯하다.

마지막으로 이제는 모든 기억들과 남아있던 감정까지 보내주기로 마음먹는 모습처럼 다른 모든 사운드들은 *페이드아웃되면서 "Let's raise a glass or two(잔을 들어요, 또 한잔을)"이라는 가사가 나올 때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게 만든다.

듣는 이도 이제는 정말 놓아줘야 하는 순간을 맞이한 것처럼.

작곡가로 음악 커리어를 먼저 시작한 그녀는 *셰어, *백스트리트 보이즈, *리아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등 우리에게도 너무나도 유명한 아티스트들의 곡들을 써 준 것으로 그녀의 작곡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러한 곡 작업들에서 그녀 스스로 백그라운드 보컬로 참여하면서 보컬로서의 능력도 드러나기도 했다.

그녀가 작곡에 참여한 유명 곡들로는 리아나의 'Cheers (Drink to That)'과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Beautiful People'등이 있다.

그녀가 다른 아티스트의 작곡 활동만 해온 것은 아니다.

자신의 곡도 꾸준히 작업하고, 앨범도 꾸준히 발매해 오던 그녀는 오늘 소개한 이 곡 'Lost on You'와 함께 2015년 네 번째 정규 앨범으로 미국 전역에 그녀의 이름을 알리게 된다.

성별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 그녀의 외적인 스타일처럼 앞서 계속해서 극찬한 그녀의 보컬 또한 중성적인 매력을 담고 있다.

이 곡을 듣고, 가사를 음미하면서 떠오른 장면은 KBS광주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3일, 묵호항의 시작은 새벽부터...'속 고석길 선장님의 모습이었다.

그의 목소리로 전달되는 시 구절도 너무나도 좋았지만, 노을 지는 바다를 뒤로한 배경과 PD의 질문에 덤덤하게 "제게도 꿈은 있었습니다."라고 남긴 그의 답변이 정말 울림이 있었다.

마치 이 곡에서 떠나보낸 사랑처럼, 그는 꿈을 떠나보내진 않았을까.

그가 읊었던 시의 구절처럼 나 자신과 떠나보낸 사랑을 위해 잔을 들듯이, 이 곡도 상대에게 내 존재의 의미를 묻는 한마디와 함께 잔을 든다.

이런 장면들 덕분에 필자에겐 단순한 이별 노래라기보다 젊은 날의 꿈을 떠나보낸 이들을 위한 곡으로 다가왔다.

글을 마무리하며, 고석길 선장님이 남긴 아름다운 시 구절을 다시 한번 음미해 본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낙화 - 이형기 中)

한잔은 떠나버린 너를 위하여
또 한잔은 너와의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그리고 또 한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
마지막 한잔은 미리 알고 정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사모 - 조지훈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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