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일상을 기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저는 마음껏 마시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소중한 커피 한 잔과 다음날 먹기 위해 냉장고에 넣어둔 디저트, 물을 가끔 줘도 알아서 잘 자라는 것만 같은 반려 식물이 떠오르네요. 늘 걸어 익숙한 산책길도, 오래간만에 발견한 재밌는 TV프로그램도, 중간에 깨지 않고 자는 잠도 기쁩니다. 이번 뉴스레터가 여러분의 일상 속 작은 기쁨이 되길 바라며 뉴스레터 시작해 볼게요!

한국 영화가 선택한 클래식

영화 음악에 관심 있으신가요? 클래식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문득 '한국 영화에도 클래식이 사용되었을까?'하는 궁금증이 생겼어요. 찾아보면서 생각보다 많이 사용됐다는 걸 알게 됐고요. 오늘은 한국 영화 속 클래식에 대해 소개해 드릴게요.

오늘 소개할 곡들을 담아 만든 플레이리스트입니다. 음악을 찾아가며 들으셔도 좋아요! :)

밀양

Liszt: 3 Etudes De Concert, S.144 - No.3 In D Flat 'Un Sospiro' (Allegro Affettuoso)

영화 <밀양>은 남편을 잃은 신애(전도연)가 자신의 아들 준과 함께 남편의 고향인 밀양에서 사는 이야기입니다. 신애는 종찬(송강호)의 소개로 지역 유지의 집에 초대받아 거실에서 피아노를 어설프게 연주하게 되는데요. 그 곡이 바로 리스트의 <탄식>입니다.

탄식은 프란츠 리스트의 '세 개의 연주회용 연습곡' 중 하나인데요. 하프 줄을 차례로 튕기는 효과를 모방한 아르페지오 훈련에 초점을 맞춘 곡입니다. 아름다운 선율이 마치 하프 연주를 듣는 것만 같은 것이 특징인 곡이에요.

장화, 홍련

Mozart: Violin Concerto No.5 In A, K.219 - 1. Allegro Aperto

영화 <장화, 홍련>은 수미(임수정)와 수연(문근영)이 새엄마인 은주(염정아)와 함께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은주가 동생 부부를 저녁식사에 초대했을 때 오디오로 튼 음악이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5번 1악장>이에요.

이 곡은 모차르트가 19세에 작곡한 곡으로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중에서도 수려함과 완벽함으로 최고의 작품이라 꼽히며 많이 연주되는 곡이에요. 활발한 터키풍의 리듬과 화려한 기교로 곡 전체적으로 힘이 넘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헤어질 결심

Mahler: Symphony No. 5 In C Sharp Minor - 4. Adagietto

영화 <헤어질 결심>은 산 정상에서 추락한 한 남자의 변사 사건을 형사 해준(박해일)이 수사하며 용의자인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에게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갖게 되는 이야기죠. 헤어질 결심에는 말러의 <아다지에토>가 총 3번 등장합니다. 기도수(유승목)가 산에 오를 때, 해준이 서래에게 자신이 붕괴됐다고 말할 때, 해준과 서래가 호송 차량에서 수갑을 차고 있을 때입니다.

아다지에토는 구스타프 말러가 19살 연하의 여인 알마 쉰들러에 대한 사랑을 담은 작품이에요. 사실 아다지에토는 '매우 느리게'를 뜻하는 아다지오보다는 조금 빠르게 연주하라는 음악 용어입니다.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가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아다지에토의 대명사가 된 것이죠. 이 곡은 분명 사랑을 담은 곡이지만 왠지 모르게 쓸쓸함이 느껴지는데요. 말러와 쉰들러의 딸이 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갑작스레 죽으면서 서로 멀어지기 시작한 안타까운 일화도 떠오르게 합니다.

아가씨

Rameau: Tambourin

Mozart: Clarinet Quintet In A Major K.581 - 2. Larghetto

영화 <아가씨>는 귀족 히데코(김민희)와 그녀의 새로운 하녀 숙희(김태리)의 이야기입니다. 라모의 <탕부랭>은 히데코에게 낭독을 시키는 모임에 백작(하정우)이 가입하는 장면과 변태 신사들이 차례대로 엉덩이를 매로 맞는 장면에 등장합니다. 남프랑스 지역에서 통이 긴 북을 뜻하는 탕부랭은 속도가 빠른 프랑스 춤곡과 이 춤곡에서 발전한 기악곡들을 지칭합니다. 우리나라 동요 '우박은 춤춘다'로도 알려진 탕부랭은 장면의 기묘함을 잘 살린 곡이라고 생각해요.

아름다운 클라리넷의 멜로디가 인상적인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5중주 2악장>은 레스토랑에서 히데코와 백작이 식사하는 장면에 나옵니다. 모차르트는 35세의 나이로 사망하기 전까지 극심한 빈곤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하는데요. 그에게 큰 힘이 되어준 친구가 클라리넷 연주자 슈타들러라고 합니다. 슈타들러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은 헌정곡이 클라리넷 5중주라고 해요.

너와 나

Grieg: Lyric Pieces, Op.54 - 4. Notturno

Liszt: Liebestraum No. 1 in A-Flat Major, S. 541 No. 1: Notturno I: Hohe Liebe

영화 <너와 나>는 수학여행을 하루 앞둔 세미(박혜수)와 하은(김시은)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그의 <서정 소품집>은 세미가 하은의 병문안을 갔을 때 나와요. 서정 소품집은 낭만주의 시대의 피아노 음악이 가진 시적인 느낌을 잘 나타냈는데요. 마치 봄에 바라보는 자연을 표현한 것처럼 잔잔하고 아름다운 연주가 특징입니다.

영화의 여운을 짙게 남긴 엔딩곡으로는 리스트의 <사랑의 꿈>이 쓰였어요. 특이하게도 가장 유명한 3번이 아닌 덜 유명한 1번이 쓰였습니다. 프란츠 리스트의 사랑의 꿈은 1번 ‘고귀한 사랑(Hohe Liebe)’, 2번 ‘가장 행복한 죽음(Seliger Tod)’, 3번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O lieb, so lang lieben du kannst)’로 구성되어 있어요. 사랑의 꿈을 모두 들어보시면 왜 1번이 쓰였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몽환적이고 따뜻한 영화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곡입니다.

번지점프를 하다

Shostakovich: Jazz Suite No. 2: VI. Waltz 2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는 인우(이병헌)가 제자인 현빈(여현수)에게서 자신의 옛 연인 태희(이은주)를 느끼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모음곡 2번 중 왈츠 2번>은 해변에서 인우와 태희가 춤추는 장면에 등장해요.

재즈를 좋아한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음악에도 재즈를 접목시켰는데요. 오케스트라에 색소폰을 포함시켜 슬프고도 경쾌한 재즈적 왈츠를 표현했습니다. 한번 들으면 계속 떠오르는 매력적인 곡으로 인우는 이 음악으로 태희를 떠올리며 그리워하게 됩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Chopin: Piano Sonata No.2 In B Flat Minor, Op.35 Marche Fune'bre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집도 없고 남자도 없고 일마저 없는 영화 프로듀서 찬실(강말금)의 이야기입니다. 쇼팽의 <장송 행진곡>은 감독이 과음으로 급사하는 장면에 쓰였어요.

쇼팽의 장송 행진곡은 사회적 저명인사의 장례식에서 자주 연주될 만큼 유명한 곡입니다. 미디어에서도 죽음과 관련된 장면을 연출할 때 자주 사용된다고 해요.

설국열차

Mendelssohn: Six Songs, Op. 34 - II.Auf den Flügeln des Gesanges, MWV K86

영화 <설국열차>는 기상 이변으로 빙하기가 온 후, 기차 한 대에서 생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멘델스존의 <노래의 날개 위에>는 기차에 있는 학교에서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하는 곡으로 나와요.

노래의 날개 위에는 멘델스존의 가곡집 <여섯 개의 노래> 중 두 번째 작품으로, 독일 낭만주의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 '노래의 날개 위에'를 배경으로 했어요. 곡을 들어보면 꼬리 칸과는 다르게 앞 칸의 여유로움이 느껴지는듯합니다.

연주자가 퇴장했다가 다시 들어왔다를 반복하는 '커튼콜'

클래식 공연을 처음 봤을 때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연주가 다 끝났을 때였어요. 연주자가 관객들의 박수를 들으며 퇴장했다가 다시 들어와서 인사를 하고, 또 퇴장했다가 다시 들어와서 인사를 하는 걸 반복했거든요. 오늘에서야 이를 '커튼콜'이라고 부르는 걸 알게 됐어요!

클래식 공연은 특히 침묵을 지켜야 해서 많은 분들이 기침을 참았다가 연주가 끝나는 중간중간 몰아서 하기도 하는데요. 모든 공연이 끝났을 땐 환호를 지르며 박수를 칠 수 있는 커튼콜의 시간이 와요. 커튼콜 문화는 좋아하는 배우를 한 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 박수와 환호성으로 다시 부르던 관습에서 유래했는데요. 퇴장한 연주자가 관객의 박수에 화답해 다시 무대에 올라 인사를 하고 앙코르 연주가 진행되기도 해요.

몇 번의 커튼콜을 받았는지가 그날 공연이 성공적이었는지 가늠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는데요. 전설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1시간 7분 동안 박수를 받으며 무대 위를 165번 퇴장했다가 다시 올라오기를 반복해서 기네스북에도 올랐다고 해요. 좋아하는 연주자가 있다면 열렬한 박수와 환호로 연주자를 다시 불러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