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움'에서 벗어나기
작성자 시계꽃
Dear My Future
'나다움'에서 벗어나기
어느덧 시리즈 마지막 아티클입니다🙂 지금까지 과거와 미래를 이야기했으니 오늘은 현재를 나눠 보려 해요. 조금 일찍 저의 2024년을 회고해보자면, 상반기와 하반기가 정반대의 흐름을 타고 있는 것 같아요.
상반기: 전진 또 전진! 새로운 직무, 새로운 직장, 대학원 첫 학기. (+ 뉴닉 지식메이트 3기)
하반기: 전부 일시 중지! 쉼, 수면, 운동. 생산성과 효율성에서 멀어지기.
요즘 저의 화두는 ‘쉼’이에요. 연초에 읽었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을 재독하면서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을 필사하는 중입니다. 생산성과 효율성을 위해 쉬는 게 아니라 쉼이 그 자체로서 목적이 될 수 있도록 말이죠. 그래서 하루의 시작과 끝을 ‘잠’으로 설정했어요. 아침에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출근을 하고 햇볕을 쬐고 식사를 챙기고 운동을 하는 이유는 모두 ‘잠을 잘 자기 위함’이라고 생각을 바꿨어요. 아마 상반기의 저라면 생산성과 효율성을 위해 ‘잠을 잘 자야 한다고 여겼을 거예요.
내려놓기의 마법
그런데 그거 아세요? 생산성과 효율성을 내려놨더니, 오히려 생산성과 효율성이 증가했어요! 충분한 수면으로 왕복 2시간 출퇴근에 8시간 노동을 마쳐도 에너지가 방전되지 않았고, 여분의 에너지가 있으니 퇴근 후 소파에 널브러지지 않고 식사와 운동을 챙길 수 있었죠. 그러면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들여다 볼 생각조차 들지 않고 바로 잠에 빠져 듭니다. 다음날 상쾌함 UP! 컨디션 UP! 초럭키비키인 거죠😁
피곤해 죽겠는데(!) 눈이 막 감기는데(!) 억지로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경험, 다들 있으시죠? 이런 행동을 ‘보복성 취침 미루기’라고 불러요. 다음날 두 배로 피곤할 걸 뻔히 알면서 왜 이런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걸까요? 통제감을 얻기 위해서예요. 일, 직장 등에 빼앗긴 삶의 주도권을 되찾아오려는 무의식의 보복 행동인 셈이죠.
미래만 보고 앞을 향해 달리기만 했던 상반기에는 저도 수면 문제로 참 괴로웠어요. 퇴근 후 대학원 수업까지 마치고 오면 밤 11시였고, 졸려서 눈이 막 감기는데도 유튜브, 인스타그램을 전전했습니다. 덕질을 할 때조차 꾸벅꾸벅 졸았어요. 수면, 식사, 운동 모든 게 엉망이 되었고 결국 몸은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지식메이트3기 마지막 모임에도 참여하지 못했어요😭)
급하게 휴학을 결정했고, 정말 오랜만에 퇴근 후 ‘의무적으로 해야할 일이 없는 삶’이 펼쳐졌습니다. 너무 어색했어요. 중요한 무언가가 빠진 느낌. 이 느낌의 원인을 찾으려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 결론은 ‘나다운 삶’에 대한 집착이었습니다.
경계를 허물고 무경계로
성장이 중요한 가치이신 분들은 분명 ‘나다운 삶’, ‘나답게 일하기’ 등 ‘나다움’이라는 메시지가 들어간 컨텐츠를 한번은 접하셨을 거라 생각해요(당사자성 발언입니다😅). 이 메시지가 전하는 내용 자체는 사실 문제가 없어요. 문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저의 태도에 있었죠. 저는 ‘나다운 삶’을 빨리 대학원을 졸업해서 자격증을 따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이라고 정의해버렸어요. 그래서 ‘회사를 다니고 있는 지금의 삶’은 미완의 삶이고 불충분한 삶이고 나답지 않은 삶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던 거죠. 그런데 잠깐, 진짜로 그런가요?
학비를 벌기 위해, 독립적으로 생활하기 위해 출근하는 삶이 왜 미완이고 불충분한 삶일까요? 매 순간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녹아 있는 현재의 삶을 왜 나답지 않다고 생각했을까요? 게다가 2024년을 기준으로 정의해버린 ‘나다운 삶’이 진짜 나다운 삶이 맞을까요? 나도 변하고 환경도 변하는데.
모든 것이자 아무것도 아닌
‘나는 OO한 사람이다’라고 자신에 대해 스스로 평가한 자기상을 ‘개념화된 자기’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어 “나는 혼자 일하는 게 편한 사람이야.”라는 자기개념을 가진 A씨가 있다고 해볼게요. A씨의 자기개념은 A씨의 삶과 경험에 기반하기 때문에 이를 ‘사실’이라 착각하기 쉬워요. 실은 나에 대한 ‘생각’일 뿐인데.
그런데 올해는 A씨가 이전과 다르게 좋은 동료들과 상호작용하며 성과를 낸 경험을 해봤다고 가정해볼게요. A씨는 생각합니다. “나는 혼자 일하는 걸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이 사람들과는 함께 일하고 싶어.” 차이가 보이시나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면, ‘나’라는 존재는 맥락과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어요. 다시 말해 ‘나’라는 사람을 가두는 경계가 사라지는 거예요. 동양 철학에서 말하는 “모든 것이자 아무것도 아닌” 상태이지요.
그러니 여러분도 어떤 특정한 삶을 ‘나다운 삶’이라고 너무 가둬 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답지 않다고 생각한 것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요? 저는 지금, 바로, 여기에, 하늘이 아닌 단단한 땅에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재의 삶이 곧 나다운 삶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
넌 찾아낼 거야, 네 안에 있는 우주를✨
마지막으로 제게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선물해준 노래 가사로 시리즈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참고 문헌: Hayes, S. C., & Smith, S. X. (2005).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 (문현미, 민병배 역). 서울: 학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