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출발선으로: 마침내 나침반이 한 방향을 가리키다

다시 출발선으로: 마침내 나침반이 한 방향을 가리키다

작성자 시계꽃

Dear My Future

다시 출발선으로: 마침내 나침반이 한 방향을 가리키다

시계꽃
시계꽃
@chosikd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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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이름도 낯설어진 코로나19. 2020년 3월, 세계보건기구가 ‘팬데믹’을 발표한 이후 사회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고, 누구도 이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를 피해갈 순 없었을 거예요. 코로나19라는 회오리 바람은 저를 겹겹이 둘러싸고 있던 거추장스러운 것들, 이를테면 사회적 역할, 장녀의 역할, 아내의 역할, 며느리의 역할 등을 모두 집어삼켜 버렸습니다. 그러자 마음 속 깊이 원했으나 두려워서 하지 못하고 있었던 일, 이미 알고 있었으나 부러 인정하지 않았던 일이 선명하게 드러났어요. 진짜 욕구를 마주하고, 진짜 원하는 삶을 알아차리고, 가면을 벗은 내 모습을 받아들이고, 뾰족하고 모난 부분까지 감싸주는 내 사람들을 재발견하기. 저는 혼란의 시간을 이렇게 보냈던 것 같습니다. 비록 그 방식이 꽤나 거칠고 고통스러웠지만요.

재발견한 욕구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1. “내 이야기로 소통하고 싶다.”

  2. "사람의 마음을 더 깊이 탐구하고 싶다.“

그동안 일기장 수준으로 끄적거리던 글을 형식을 갖춰 플랫폼에 올리기 시작했어요. 어떤 목적이 있었다기보다 살풀이를 하듯 활자로 감정을 쏟아내고 나면 안정이 되었거든요. 일종의 셀프 심리치료였죠. 그런데 사람들이 반응을 해주고 공감이 되었다는 코멘트도 달렸습니다. 이게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몰라요.

'아, 내가 이상한 게 아니구나! 적어도 세상 어딘가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구나!'

독립 매거진에 투고도 하고 작법서도 읽고 온라인 세미나도 들으며 조금 더 적극적으로, 그리고 진지하게 '글쓰기'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의 글을 옮기는 것보다 내 이야기를 직접 전달하고 싶은 욕구가 훨씬 크고 동기부여가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지요.

두 번째 욕구 역시 커리어의 방향을 트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상담심리사가 될거야!'로 시작하진 않았어요. 학문의 힘을 빌려서라도 스스로를 이해하고 싶었던 게 가장 컸습니다. 사이버대학에 등록을 하고 한동안 일과 학업을 병행하며 (가끔 번역도 하며) 자신을 밀어붙였습니다. 어디까지 버티나 한번 시험해보고 싶었거든요. 이제 더는 이일 저일 떠돌고 싶지 않았습니다. 정말이지, 더는! 😣

🧭 마침내 나침반이 한 방향을 가리키다

사이버대학에서는 4학년부터 교내 학생심리상담센터에서 수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어요. 필기시험에 면접까지 치르는 입시(?) 를 거쳐 인턴 상담원으로 1년간 수련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뵈었던 모든 분들의 얼굴, 대화를 기억하지만 저의 긴 방황을 종결해준 분이 계셨어요.

상담자 윤리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이야기를 하자면, 그분은 자살위기 내담자에 속했습니다. 초보자인 제가 뭘 할 수 있었겠어요. 최대한 메뉴얼에 충실하고,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나중에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때 선생님과 썼던 자살방지서약서, 그게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어느날 새벽에 너무 괴로웠는데 선생님과 썼던 그 종이를 보며 조금 더 버텨보자 마음먹었다"고 말이에요.

모든 점, 선, 면이 한 방향으로 수렴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 일을 발견하기 위해 10년을 돌고 돌고 돌았구나. 끝끝내 찾았구나. 같이 살고 싶다. 괴로워하고 아파하는 사람들과 함께 끝까지 버티고 싶다.

💞 내 삶을 전적으로 책임지기

심리학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수용전념치료(ACT)에 대해 들어보셨을 거예요. 우리나라에서는 '수용'에 초점을 두는 경향이 있지만 ACT의 핵심은 '전념'에 있다고 합니다. 전념 행동을 하기 위해 수용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지요.

전념 행동은 나의 가치가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가치가 확고하면 외부에서 어떤 방해 공작이 들어와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흔들려도 잠시일 뿐이지요. 커리어 전환, 직업 탐색을 이야기하면서 자꾸만 '가치'를 외치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답니다 😁

가치는 목표가 아니에요. 목표는 지점이고 가치는 방향입니다. 상담심리사는 목표가 될 순 있지만 가치는 아니지요. 사람의 마음을 탐구하고 이해하는 일의 형태는 무궁무진하니까요. 그저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뿐입니다. 한 개인이 자기 삶을 온전히 책임지는 과정이 여기에 담겨 있다고 믿어요. 그러니 가치 탐색에 시간을 쓰고 마음을 쏟는 일을 아까워하지 마세요. :)

여러분은 가치와 목표를 잘 구분하고 계신가요? 여러분의 나침반은 어디를 가리키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