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콘텐츠는 가구가 되고 있다
요즘 우리 집 유튜브는 백색소음에 가깝다.
아내는 집에 있을 때 종종 유튜브를 켜놓는다. 딱히 집중해서 보는 건 아니다. 내용을 전부 기억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화면 어딘가에서 사람이 말하고 있고, 웃음소리가 들리고, 대화가 이어지는 것만으로도 집 안의 공기가 조금 달라진다고 한다. "집에 사람이 있는 것 같아서 좋아". 아내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이제 유튜브는 단순히 '보는 콘텐츠'가 아니라, 공간을 채우는 무언가가 되는 것이다.
힙합 프로듀서 허키 시바세끼는 한 콘텐츠에서 앰비언트 음악을 소개하며 이런 말을 했다. "이 음악은 가구 같은 음악이에요." 집중해서 듣지 않아도 그 공간의 분위기를 만드는 음악. 존재감은 크지 않지만, 없으면 허전한 음악. 그런데 요즘 유튜브를 보면 이 말이 음악에만 해당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유튜브에서 일어나는 변화도 비슷하다. 콘텐츠가 점점 가구가 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튜브의 중심은 쇼츠처럼 짧고 강한 콘텐츠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최근에는 다시 30분, 1시간이 넘는 영상들이 자연스럽게 소비되고 있다. 스트리머의 장시간 방송을 거의 편집 없이 올린 영상, 팟캐스트형 지식 대화, 여러 사람이 편하게 수다를 떠는 예능형 토크쇼. 최근 체감상 자주 회자되는 채널들은 대부분 이 범주 안에 있다. 반드시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봐야 하는 콘텐츠가 아니라, 켜두고 함께 지내는 콘텐츠다.
왜 이런 흐름이 생겼을까. 첫 번째는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난 영향이다. 1인 가구가 늘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완전한 침묵은 오히려 어색한 감각이 됐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것만으로도 공간은 덜 비어 보인다. 예전에는 TV가 하던 역할을 이제 유튜브가 대신하고 있다.
두 번째는 익숙해진 멀티태스킹이다. 밥을 먹으면서, 청소를 하면서, 운동을 하면서 콘텐츠를 소비한다. 볼 것도, 할 것도 많은 세상에서 하나에만 집중하기가 오히려 아깝다. 끝까지 몰입해야만 이해되는 콘텐츠보다, 중간중간 들어도 흐름을 따라갈 수 있는 콘텐츠가 더 편해졌다.
여기서 흥미로운 역설이 생긴다. 집중해서 보라고 만든 광고는 금방 잊힌다. 그런데 하루 종일 틀어놓은 유튜버의 말투, 분위기, 취향, 가치관은 어느 순간 몸에 남는다. 가구는 매번 눈에 띄지 않지만, 그 공간의 인상을 만든다. 가구 같은 콘텐츠도 그렇다. 강하게 설득하지 않지만, 오래 머문다.
어쩌면 지금 브랜드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방향을 노출해야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인플루언서 마케팅의 문법은 비교적 단순했다. 믿을 수 있고 좋아하는 사람이 제품을 추천한다. 숏폼에 제품을 등장시키고, 구매 링크를 달고, 전환율을 본다. 물론 여전히 필요한 방식이다. 하지만 이 구조가 너무 많아졌다. 인플루언서도 많고, 추천 콘텐츠도 많다. 소비자는 이미 그 패턴을 알고 있다. 패턴이 보이는 순간 광고가 된다. 광고가 되는 순간 소음이 된다.
그래서 이제 필요한 건 단순한 추천이 아니라 공존이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 보조제를 파는 브랜드라면, 제품 효능을 짧게 설명하는 콘텐츠만 만들 필요는 없다. 다이어트 고민을 나누는 긴 대화형 콘텐츠 안에 자연스럽게 들어갈 수 있다. "이거 먹어보세요"가 아니라, 소비자가 이미 관심을 두고 있는 세계 안에 브랜드가 함께 놓이는 방식이다. 소비자는 제품 설명보다 상황을 기억한다. 어떤 사람이 어떤 맥락에서 그 브랜드와 함께 있었는지를 기억한다.
김선태의 시몬스 협업 영상이 좋은 예다. 침대 브랜드가 침대의 기능을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김선태는 영상 초반 잠깐 이야기하다가, 나머지 시간 대부분을 실제로 잠들어 있었다. 침대가 좋다는 말을 반복하지 않고, 침대 위에서 잠드는 장면을 보여줬다. 이 협업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제품이 억지로 끼어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선태라는 사람의 일상, 피곤함, 캐릭터, 콘텐츠 문법 안에 시몬스가 자연스럽게 놓였다. 추천이 아니라 공존에 가까웠다.
앞으로 인플루언서 협업 방식도 이 방향으로 바뀔 것이다. 팔로워가 많은 사람이 무조건 강한 것이 아니다. 특정 라이프스타일 안에서 오래 머무는 사람이 더 중요해진다. 매일 틀어놓게 되는 채널, 백색소음처럼 소비되는 콘텐츠, 그 사람의 말투와 생활 리듬이 익숙해지는 크리에이터. 브랜드가 그 사람의 일상 안에 자연스럽게 있을 때, 소비자는 그것을 광고가 아니라 배경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모든 브랜드가 긴 영상이나 팟캐스트를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건 포맷이 아니라 태도다. 소비자의 집중을 빼앗겠다는 태도에서, 소비자의 생활 안에 조용히 놓이겠다는 태도로 바뀌어야 한다.
광고는 점점 소음이 되고 있다. 사람들은 광고를 피하는 데 익숙해졌다. 하지만 익숙한 배경은 쉽게 밀어내지 않는다. 늘 켜져 있는 콘텐츠, 자주 듣는 목소리, 반복해서 마주치는 분위기는 소비자의 일상 안에 천천히 스며든다.
콘텐츠가 가구가 됐다는 건 소비자의 집중을 빼앗기 어려워졌다는 뜻이 아니다. 브랜드가 존재해야 할 자리가 달라졌다는 뜻이다. 앞으로 브랜드는 더 크게 말하는 법보다, 더 오래 곁에 있는 법을 고민해야 한다. 어쩌면 유튜브 시대의 좋은 브랜드 콘텐츠란, 소비자를 붙잡는 콘텐츠가 아니라 소비자의 방 안에 조용히 놓이는 콘텐츠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