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만큼만 내 땅이다:AI가 줄 수 없는 것

가본 만큼만 내 땅이다:AI가 줄 수 없는 것

작성자 브루스

브루스의 영감노트

가본 만큼만 내 땅이다:AI가 줄 수 없는 것

브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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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h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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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전, 기획안 마감이 있는 주는 예외 없이 야근이었다. 컨셉 하나를 잡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브레인스토밍을 했는데, '브레인스토밍'이라고 포장했지만 실제로는 밑도 끝도 없는 회의인 경우가 많았다. 방향이 잡히지 않은 채로 시간만 흘렀고, 결국 마감 전날 밤 혼자 기획서를 완성하는 일이 반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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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AI가 업무에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작년부터는 달라졌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밑도 끝도 없는 회의가 줄어들고,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논의가 진행된다는 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AI가 시뮬레이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브랜드 과제를 학습시키고 내가 생각한 방향을 동료처럼 이야기하다 보면, 이 방향이 실제로 타당한지 아닌지를 사람들과 모이기 전에 먼저 알 수 있다. 논의의 밀도가 높아지고, 같은 시간에 더 완성도 있는 결과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AI는 새로운 가능성을 검토할 때 샌드박스가 된다. 맞을지 틀릴지 모르는 아이디어를 넣고 돌려볼 수 있는 공간, 넘어져도 괜찮은 공간. 그 안전장치를 알게 되면 보수적이었던 사람들도 더 과감한 아이디어를 시도해볼 수 있게 된다. AI는 단순히 속도를 올려주는 것이 아니라, 일의 방향 자체를 바꾸고 있다.

하지만 이 시뮬레이터에는 부작용이 있다. 가짜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AI와의 대화를 통해 만들어진 경험을 내가 실제로 한 것처럼 오해하게 된다. 단순한 예시를 넘어, 직접 하지 않은 상황과 내용을 AI로 만들어 책이나 콘텐츠로 발행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시뮬레이션이 경험처럼 둔갑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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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가짜 경험이 많아질수록 진짜 경험이 희소해진다는 점이다. 누구나 AI로 그럴싸한 기획서를 만들 수 있게 되면, 역설적으로 그 기획서 안에 담긴 사람의 흔적이 더 중요해진다. 모두가 비슷한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시대에, 차이를 만드는 건 결국 그 사람이 직접 겪은 것들이다.

그래서 오리지널리티가 더 중요해진다. 모난 부분 없이 매끄러운 육각형 기획안보다, 한쪽이 특별히 뾰족하게 튀어나온 아이디어가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 사람이 만든 것은 이런 느낌이다"라고 느낄 수 있는 지점이 있어야 한다.

얼마 전 캠페인 기획안을 AI와 함께 만들면서 이 차이를 실감했다. 방향은 빠르게 나왔다. 근데 클라이언트 앞에서 발표할 때, 질문 하나가 들어왔다. "이 방향, 실제로 소비자한테 써보셨어요?" AI가 준 논리는 있었지만, 내 경험에서 나온 확신이 없었다. 그 순간 기획안의 무게가 달라졌다. 논리는 설득하지만, 경험은 신뢰를 만든다는 걸 그때 다시 깨달았다.

그 뾰족함은 AI가 줄 수 없다. AI와의 간접 경험으로는 본인만의 오리지널리티를 만들 수 없다. 시뮬레이터를 잘 쓰려면, 먼저 시뮬레이션에 넣을 만한 내 경험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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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뾰족한 부분은 여전히 사람이 넣어야 한다. 가본 만큼만 내 땅이다. AI가 모든 걸 시뮬레이션해주는 시대일수록, 직접 걸어간 경험만이 진짜 내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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