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가 기억되는 건 순간이 아니라 반복이다

브랜드가 기억되는 건 순간이 아니라 반복이다

작성자 브루스

브루스의 영감노트

브랜드가 기억되는 건 순간이 아니라 반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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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h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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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이 없으면 대화에서 밀린다. 조금 과장해 보이지만 요즘 분위기는 그렇다. 예전엔 MBTI 한 줄이면 '나'를 설명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레퍼런스가 필요하다. 무엇을 보고, 어디를 가고, 무엇을 반복하는지. 취향은 이제 자기소개가 아니라 생존용 프로필이 됐다.

얼마 전 처음 만난 사람이 대뜸 "요즘 뭐 봐요?"라고 물었다. MBTI를 묻던 시절이랑은 분위기가 달랐다. 뭔가를 분류하려는 게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빠르게 읽으려는 질문이었다.

지금은 자기를 설명하는 방식이 '성격'보다 '맥락과 레퍼런스' 쪽으로 이동했다. 취향 질문이 더 친근하고 가벼워 보이지만 사실은 꽤 정확한 질문이다. 성격은 말로 설명하면 끝나지만, 취향은 결국 '내가 무엇을 보고, 어디에 가고, 무엇을 반복하는지'로 드러난다. 취향 토크가 늘었다는 건, 사람을 파악하는 방식이 바뀌었다는 신호다.

취향 질문이 관계에서 중요해진 건 사회적 맥락 변화와 맞물려 있다. 첫 번째는 관계의 변화다. 깊은 관계보다 언제든지 이어지고 끊을 수 있는 느슨한 관계가 늘어나면서, 사람 자체를 정면으로 묻는 질문보다 간접적인 질문이 더 안전하다고 느끼게 됐다.

두 번째는 정보 환경의 변화다. 콘텐츠와 정보가 과잉인 시대에는 누군가의 취향을 통해 빠르게 큐레이션 받고 추천받고 싶어하는 수요가 커졌다. "뭘 좋아해요?"는 대화의 시작인 동시에, 선택 과잉을 줄여주는 질문이기도 하다.

물론 취향이 없어도 깊은 관계를 맺는 사람들은 있다. 취향보다 태도나 진심이 먼저인 관계도 분명 존재한다. 다만 첫 만남에서, 느슨한 관계에서, 관계의 진입 장벽이 낮아야 하는 순간에는 취향이 없으면 대화의 재료 자체가 없어진다.

취향은 확산되기 쉬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음악, 영화, 책 같은 콘텐츠는 물론이고 브랜드, 장소, 루틴까지 주제가 되면서 대화가 자연스럽게 추천으로 이어진다. 중요한 건 이 확산이 '설명'이 아니라 '증거'를 통해 일어난다는 점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보다 "나는 이런 걸 보고 이런 데를 가"가 더 빠르게 공유되고 저장되고 복제된다.

이제 취향은 개인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이 됐다. 문제는 '취향이 있냐 없냐'가 아니라, '취향을 설명할 레퍼런스가 있냐'에 가깝다. 그래서 사람들은 취향을 만들기 위해 콘텐츠를 보고, 경험을 구매하고, 소비를 반복한다. 취향이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것을 넘어 사회적 교환가치가 된 셈이다.

그리고 반복이 계속되면, 취향은 어느 순간 의식적인 선택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습관이 된다. 취향이 라이프스타일을 넘어 '아비투스'가 되는 지점이다. 아비투스란 반복된 경험과 환경 속에서 획득한 몸에 밴 선택 방식, 다시 말해 생활의 자동반사에 가깝다. 취향이 반복되면 루틴이 되고, 루틴이 정착되면 라이프스타일이 되며, 라이프스타일이 지속되면 아비투스로 굳는다. 결국 아비투스는 '나를 가장 확실하게 드러내는 증거'가 된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아비투스는 반복을 통해 형성되는데, 그 반복은 개인의 의지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반복을 가능하게 하는 외부 환경이 필요하다. 상품이나 서비스, 콘텐츠, 공간, 커뮤니티, 큐레이션 같은 것들이 반복을 공급해줘야 한다. 즉 취향이 아비투스로 변화되는 지점에는 '반복할 수 있도록 설계된 구조'가 필요하다.

그 반복 구조를 가장 잘 설계하는 주체가 바로 브랜드다. 과거의 브랜드가 나를 나타내는 심볼이었다면, 지금의 브랜드는 취향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그 취향을 습관으로 자리 잡게 하고, 결국 나의 정체성 일부가 되게 만든다. 브랜드가 '상징'에서 '습관 설계'로 역할을 확장하는 순간이다.

브랜드는 아비투스를 설계하는 알고리즘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알고리즘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취향을 학습하고 정리하고 반복시키는 구조를 뜻한다. 소비자가 취향을 탐색하고, 쉽게 선택하고, 자연스럽게 반복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이를 위해 브랜드가 제공해야 하는 건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언어화다. '00 루틴'처럼 소비자가 기억하기 쉽고 따라 말하기 쉬운 키워드로 취향을 프레이밍해야 한다. 취향은 말이 붙는 순간 훨씬 빠르게 전파된다.

두 번째는 큐레이션이다. 소비자의 맥락을 읽고 "이 취향이라면 다음은 이거"를 제안하는 방식으로 선택을 줄여줘야 한다. 선택지가 줄어들수록 반복은 쉬워진다.

세 번째는 반복 구조다. 커뮤니티, 멤버십, 패키지처럼 자연스럽게 반복 경험이 쌓이도록 설계해야 한다. 아비투스는 결국 반복이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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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이키

나이키 런 클럽이 대표적인 사례다. 단순히 러닝을 기록하는 앱이 아니다. 뱃지 같은 게이미피케이션 요소, 코칭 프로그램, 커뮤니티 이벤트가 연결되면서 러닝을 '한 번 하는 행동'이 아니라 '계속하게 되는 방식'으로 바꿔준다. 러닝 자체가 습관이 되고, 습관이 공유되며, 브랜드는 반복 경험의 중심에 자리 잡는다.

취향을 저격하는 마케팅이 아니라, 아비투스를 설계하는 마케팅의 시대다.

나는 요즘 클라이언트 브랜드를 볼 때 이 질문을 먼저 하게 됐다. 이 브랜드가 소비자의 취향을 건드리고 있나, 아니면 습관을 설계하고 있나. 대부분은 전자에 머물러 있다. 취향을 저격하는 순간은 만들지만, 그 다음 반복을 설계하지 못한다. 브랜드가 기억되는 건 순간이 아니라 반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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