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을 위한 그림 큐레이션 - 책 <시에나에서의 한 달>

국회의원을 위한 그림 큐레이션 - 책 <시에나에서의 한 달>

작성자 ㅎㅇ

괴로워서 흥미로운 책들

국회의원을 위한 그림 큐레이션 - 책 <시에나에서의 한 달>

ㅎㅇ
ㅎㅇ
@browneyedseoul
읽음 1,382
이 뉴니커를 응원하고 싶다면?
앱에서 응원 카드 보내기


지금껏 참여해보지 않은 대표적인 유행 중에 ‘한 달 살기’가 있다. 물론, 마음에 드는 지역의 장기 렌트 비용을 검색해보고 스스로와 실현가능성을 타진해본 적은 여러 번 있었다. 한 달 살기는 이사 갈 집을 고르는 문제보다는 훨씬 더 가뿐한 종류의 일이고, 당장 부양해야 할 가족이나 반려동물이 없다는 점은 내게 기본적으로 사고의 기동성을 준다. 거기다 미래의 내가 조금 더 무리하면 현재의 선택이 가져올 여파를 벌충할 수 있으리라는 이상한 믿음도 있다. 

그렇다고 <시에나에서의 한 달>(신해경 옮김, 열화당, 2024)을 이탈리아 피렌체의 근교 도시인 시에나에서의 한 달 살기 욕망을 간접 체험하기 위해 펴본 것은 아니었다.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의 꺼끌꺼끌하면서도 보드라운 표지를 만져본 순간 그 감촉을 외면하기가 어려웠고 다른 책들이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표지에 제목이 없고 그림만 있다는 점도 대범하게 다가왔다. 

히샴 마타르 <시에나에서의 한 달>(신해경 옮김, 열화당, 2024)

이 책을 쓴 저자는 리비아계 영국작가 히샴 마타르로, 히샴의 아버지는 리비아의 군인이자 외교관이었는데 카다피 정권에 반대하는 반체제 인물로 지목되면서 그의 가족이 함께 고국을 떠나 기약 없는 망명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그의 아버지가 카이로에서 이집트 비밀경찰에게 납치되었다. 가족 앞으로 아버지의 편지가 마지막으로 도착한 건 1990년대 후반의 일이다. 그 이후로는 아버지의 생사를 확인할 수가 없었다. 2011년, 카다피 정권이 무너진 이듬 해 히샴은 고국을 방문 했으나 끝내 아버지의 행방을 찾지 못했고, 이 간절한 여정을 담은 회고록 <귀환>(김병순 옮김, 돌베개, 2018)을 써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무아마르 카다피는 리비아 군인 출신의 독재자로, 1969년 쿠데타로 집권 후 2011년까지 약 42년간 리비아를 통치했다. 

막 <귀환>의 원고를 다 쓰고 났을 때를 그는 “책 한 권을 마치는 환한 성취와 아버지가 어떻게 되셨는지, 언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유해는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채로 내 생의 남은 나날을 보내야 할, 이제는 도망칠 수 없게 될 암울한 가능성이 마주한 시점”이라 회고한다. 그 때 그는 이 혼란을 다루기 위해 자신이 오래 전 런던에서 대학생활을 했을 때부터 관심을 두었던 시에나파 그림을 보기 위해 시에나에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여전히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매일 점심시간에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가기 시작한 것이 그 직후였다. 가면 대체로 하나 그림만 보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매주 새로운 그림을 골랐다. 아버지의 행방은 단서조차 찾지 못한 채 사반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도 나는 계속 이런 방식으로, 한 번에 하나씩 그림을 본다. 이런 방식으로 보면서 많은 이득을 얻었다. 바라보다 보면 그림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달라지곤 했다. 나는 그 그림이 시간을 요구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은 다른 그림으로 옮겨 가기까지 서너 달은 기본이고 일 년이 걸리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시에나에서의 한 달>, p.13

그래서 그는 시에나에 가서도 그렇게 한다. 피나코테카 미술관이라는 곳에 여러 번 방문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미술관의 경비원들은 수상할 정도로 몇몇 그림 앞에 오래 머무는 그를 예의 주시한다. 어떤 경비원은 그에게 그렇게 계속 서서 보면 다리가 아플 것 같다며 간의 의자를 챙겨주기도 한다. 그는 경비원들의 개입을 반가워하다가, 어느덧 그들이 더이상 자신을 신경 쓰지 않고 할 일을 한다는 점에 대해 편안함을 느낀다. (문득, 베스트셀러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김희정, 조현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23)의 저자 패트릭 브링리는 히샴 같은 관람객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진다. <시에나에서의 한 달>의 마지막 챕터에서 히샴은 실제로 시에나파 화가인 조반니 디 파올로가 그린 <낙원>을 보기 위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으로 향한다.)

이후 시에나라는 낯선 도시에 도착해서 숙소의 내부 양식이나 광장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묘사하는 저자의 태도는 거의 칭송에 가깝다. 방문 목적이 분명하니 한 달동안 (자기 기준에서) 시간을 낭비할 시간이 없다. 시에나 거리에서 자신이 이방인임을 알아보며 호의를 보이는 사람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정말 고맙지만, 전 정말로 괜찮아요. 그냥 다니러 온 거예요. 늘 시에나에 와 보고 싶었거든요. 미술 작품을 보러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묘사는 독자의 적극적인 상상력을 동원하게 만든다. 시에나 화풍의 그림을 국내에서 볼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적고, 그만큼 기존에 알고 있던 무언가가 연상되는 일이 적으므로, 히샴의 한달 살기 여정을 따라가보려면 저자와 독자가 붓을 맞잡고 함께 선을 그리는 듯한 자세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 비중 있게 언급되는 그림은 암브로조 로렌체티의 <좋은 정치의 알레고리>다. 이 그림은 프레임 안쪽의 화풍이나 서사보다도 그것이 어디에 놓여있는지가 확실히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히샴이 여행 초반부에 찾아간 곳은 과거 시에나 행정의 중심이었던 푸블리코 궁전의 건물 중앙에 있는 ‘아홉의 방(Sala dei Nove)’이다. 이곳은 평의회를 구성하는 9명의 행정관이 모여 행정 기능을 수행하고 통치와 관련된 사안을 논의하던 곳인데, 직사각형 방의 네 면 중 총 세 면에 프레스코화가 채워져있다.*
*프레스코화는 덜 마른 회반죽 바탕에 물에 갠 안료로 채색한 벽화로, 벽이 마르면 그림은 완전히 벽의 일부가 되고 물에 용해되지도 않는다.

히샴이 이 그림들을 읽는 방식은 시에나에 머무르는동안 몇 번이고 이 그림들 앞으로 찾아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좋은 정치의 알레고리> 앞에 섰던 날, 히샴은 “그 그림 자체, 어쩌면 시에나라는 도시가, 아니면 그가 전 날 밤에 꾼 꿈이 내 눈을 재교육시켜 주기라도 한 듯” 그림이 달리 보였다고 말한다. 그가 바라 본 그림에는 “계산적인 사람, 어쩐지 무관심해 보이는 사람, 지루해하는 사람, 찬동하는 사람, 흔들리는 사람, 의심하는 사람, 아첨하는 사람과 아첨받는 사람, 냉철하게 낙천적인 사람, 격려받는 사람과 명예를 알고 그 앞에서 겸손해진 사람, 무언가에 집중하며 신경을 곤두세운 채 의욕에 찬 사람, 걱정하는 사람, 약간 주눅 든 사람, 마지못해 억지로 하는 듯한 당황한 사람”들이 그려져있다.

원작자의 공식 해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서 그의 의도를 알 수는 없지만, 거의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짓는 표정과 손짓 같은 미묘한 차이들을 구별하여 그 인물들의 성격을 읽는 건 모두 그림을 여러 번 바라 본 히샴 마타르의 몫이다. 2024년 12월에 이 책을 읽는 대한민국의 나는, 비상 계엄 선포부터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기까지 약 열흘간 주변에서 보았던 각종 사람들을 책 속에 실린 이 그림의 도판에 포개어본다. 

<시에나에서의 한 달> 표지에 실린 <좋은 정치의 결과>

<좋은 정치의 알레고리> 양쪽의 긴 벽에는 또 다른 그림인 <좋은 정치의 결과>와 <나쁜 정치의 결과>가 있다. 이 그림들이 드러내는 메시지는 정직한 제목만큼이나 분명하다. “하나는 중앙의 프레스코화가 하는 충고대로 따랐을 때 세상이 어떻게 될지를 보여주고, 다른 하나는 그러지 않았을 경우를 보여준다. (...) <나쁜 정치의 결과>는 군림하는 ‘폭정’과 사슬에 묶인 ‘정의’를 보여준다.” 히샴은 특히 <나쁜 정치의 결과>를 바라보면서 죽은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를 풍자한 낙서들이 고국의 수도 트리폴리 전역의 담벼락을 뒤덮었던 현장을 떠올리는 사람이다. 어떤 그림이 그 그림을 의뢰 받은 화가가 직접적으로 경험한 정치적 의제에만 배타적으로 속하는 게 아니라, 이 그림을 바라보는 관람객들이 통과해왔거나 여전히 살아가는 중인 세계에 얽혀들면서 마음을 뒤흔든다. 

<나쁜 정치의 결과>

히샴은 세 편의 프레스코화가 삼 면을 덮고 있는 방에서 “이 폭정의 초상에 시선을 빼앗겨 가며 시민의 안녕과 세금 분배, 침략 세력의 위협을 비롯한 여러 국가 중대사를 논의했을 행정관들이 눈에 선했다”는 감상을 들려주었다. 그러니 <시에나에서의 한 달>을 덮으면서 나의 소망은 분명하다. 대한민국 국회에도 이 한 폭의 그림이 걸리기를. 이 그림을 주요 활동 반경 내에 두어서라도 그들이 누구를 눈치 보아야 하고, 무엇에 책임을 져야 할 지를 알아차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