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feat.실존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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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책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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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feat.실존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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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니커는 매일 반복되는 삶 속에서 문득 지겨움을 느낀 적이 있나요?

어떤 특별한 이유도 없이 공허함이 밀려오고, 아무것도 중요한 게 없어지면서 모든 일에 무관심해지는 상태. 이렇듯 우리의 삶에서 느껴지는 무기력한 감정, ‘권태(倦怠)’라고 하죠.

이런 권태감은 삶에 대한 개인적인 의미를 잃게 하고, 욕구를 사라지게 만들어요. 때로는 삶 자체를 허무하게 느끼게 하며, 사는 것과 죽는 것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지경에 이르기도 하죠.

이때 느끼는 인간과 삶 사이의 ‘단절’과 그로 인한 낯섦을 알베르 카뮈는 ‘부조리’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그저 부조리함으로 가득 찬 것일까요? 이러한 부조리를 마주할 때, 우리는 삶을 포기해야 할까요? 하지만 역설적으로, 삶의 의미가 없음을 깨닫는다면 죽음에도 필연적인 의미는 없어야 해요.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부조리’를 어떻게 대면해야 할까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우리는 ‘부조리의 철학자’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통해 함께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 이 책, 한눈에 보기

#작가 #독서

📌 알베르 카뮈, 부조리의 철학자

알베르 카뮈 (Albert Camus)
  • 1937년, 첫 번째 에세이 <안과 겉>에서 처음으로‘부조리’에 대한 사유를 펼치기 시작한 카뮈는, 소설 <이방인>, 에세이 <시지프 신화>, 희곡 <칼리굴라>를 통해 부조리 3부작을 완성했어요. 이에 따라 그는 ‘부조리의 철학자’라 불리며, 인간의 실존에 대해 고찰했어요.

  • 1957년 만 44세에 역사상 두 번째로 어린 나이에 노벨문학상을 탔어요.

  • 카뮈의 작품은 ‘부정’, ‘긍정’, ‘사랑’의 순서로 계획되어 있었어요. <이방인>이 ‘부정’을, <페스트>가 ‘긍정’을 상징하고 있어요. 그러나 ‘사랑’을 다룬 작품은 이후 불과 3년 뒤인 1960년, 47세에 자동차 교통사고로 죽음에 이르게 되면서 영원히 발표하지 못하게 돼요.

📌 책 내용은 무엇일까?

출처: 출판사 민음사
  • 『이방인』은 두 개의 부로 구성되어 있어요. 1부는 주인공 뫼르소의 외부 세계에 대한 관점, 2부는 그의 내면적 고찰에 조금 더 무게를 두고 있어요.

  • 건조하고 메마른 문체가 특징으로 꼽혀요. 서정적인 표현 방식을 멀리하고 쓸데없이 자신을 치장하지 않는 문체로 뫼르소의 무심함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 줄거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감정을 느끼지 못한 채 일상으로 돌아가 여자 친구 마리와 데이트를 합니다. 이웃인 레몽의 부탁으로 복수 계획에 연루되다가 우연히 아랍인을 총으로 쏴 살해하게 됩니다. 뫼르소는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되지만, 그의 무감각한 태도가 비난받고 결국 사형 선고를 받게 됩니다.

“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사형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

  • 카뮈는 『이방인』을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기 때문에 사형에 처해지는 위험을 겪게 된 어떤 젊은이가 술책을 쓰기를 거부하고 끝까지 자기 자신으로 남음으로써 결국 죽음에 이르는 이야기”라고 했어요.


📖 주요 내용 정리

#철학

📌 태양 때문에 살인을 한 ‘이방인 뫼르소’

“나는, 일요일이 또 하루 지나갔고, 엄마의 장례식도 이제는 끝났고, 내일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겠고, 그러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초반에 나오는 뫼르소는 평판, 감정과 같은 사회적 가치보다 자신의 일상과 습관에 무게를 두는 인물이에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솔직하게 살아가는, 소위 ‘정직한’ 존재이기도 해요. 그렇기에 처음엔 ‘부조리’ 즉, 일상의 단절을 느끼지 못하고 습관대로만 살아가며 무심한 태도로 일관해요.

“나는 나 자신이 우스꽝스럽게 보인다는 사실을 십분 느끼면서, 빠르고 좀 조리 없는 말투로 그건 태양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죽음에 슬픔을 느끼지 못했던 뫼르소의 태도는 사회적 규범을 어긴 행위로 간주되고, 태양을 핑계 삼은 그의 진술은 감정 없는 변명으로 받아들여져요.

실은 정말 ‘태양이 눈이 부셔서’ 방아쇠를 당겼을 뿐이지만요.

뫼르소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합리와 실존이 아닌 감정적인 호소와 도리, 본질 같은 것으로 그를 비난합니다. 재판에서 ‘본질’과 ‘감정’에 충실한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뫼르소가 사람을 죽인 사실, 피해자의 죽음에 관심 갖지 않아요.

실존은 철저히 무시되고, 용납받지 못하는 부조리한 사회에서 뫼르소는 철저한 이방인이에요.

📌 세 가지 형태의 죽음: 실존주의

『이방인』은 세 가지 형태의 죽음을 통해 주체로 옮겨가는 뫼르소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요. 결국 그는 사형선고라는 고독한 순간에 이르러서야 삶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고, 자신의 실존을 깨닫게 돼요.

- 첫 번째 죽음: 엄마의 자연사

“그리고 버스가 빛의 둥지 알제에 들어서며 마침내 잠자리에 들어 12시간 동안 잘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 순간 내가 느꼈던 기쁨.”

  • 엄마의 죽음 앞에서조차 무심했던 뫼르소는 ‘방관자’의 역할로서 존재해요. 자신조차 자신의 행동에 대한 본질적인 이유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소설 속 등장인물에서도, 소설 밖 독자에게도 ‘이방인’으로 여겨져요.

- 두 번째 죽음: 아랍인 살인

" 「그렇다면 피고는 어째서 총을 지니고 있었으며, 또 어째서 하필 그 장소로 되돌아간 것입니까?」

나는 그건 단지 우연이었다고 대답했다."

  • 뫼르소는 여전히 ‘태양’ 때문이라며 자신의 책임을 부정하고 ‘방관자’의 태도를 이어가요.

  • 그러나 이후 재판에서 하는 ‘우연입니다’, ‘태양 때문이에요’ 라는 변명을 통해 주체를 회복하고 싶어 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어요.

- 세 번째 죽음: 사형선고

  • 결국 뫼르소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자신이 저지른 ‘살인’ 그 자체가 아닌 무감각한 태도와 무신론적 태도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해요.

  • 이때, 그는 자신의 죽음에 직면해서야 자신의 헐벗은 실존적 고유성을 서서히 깨달아가게 돼요. 또한 부조리를 응시하고 이를 자각했을 때, 비로소 타인의 존재에 눈을 뜨게 돼요.

📖 깊이 있는 생각들

#생각

📌 우리 모두 사형수라면,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가

카뮈는 삶의 유한성을 반영하여 ‘우리는 모두 사형수’라는 명제를 제시해요. 죽음이 필연적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목표로 삼고 살아가야 할까요? ‘반복되는 삶’과 ‘정해진 죽음’ 사이에서 불확실성을 느끼는 인간은 ‘부조리’라는 감정을 경험하게 돼요.

그렇다면 우리는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는 걸까요? 역설적으로, 삶의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죽음의 정당화에 대한 이유도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요. 카뮈는 죽음을 외면(자살)하거나 죽음으로부터 구원을 기다리거나(희망), 죽음을 정면으로 돌파(반항)하는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해요. 그러나 죽음을 외면하는 것은 자신을 부정하는 길이므로 해답이 될 수 없어요.

결국 카뮈는 ‘반항’ 해야 한다고 말해요. 주체성을 가지고 ‘부조리’를 직시하며 정면 돌파하는 과정에서 삶의 의미가 생성되고, ‘부조리’는 결론이 아닌 출발점이 돼요.

“세상이 그처럼 나와 닮았다는 것을, 요컨대 그토록 형제 같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나는 내가 행복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마무리되길. 나 자신이 혼자라는 걸 보다 덜 느낄 수 있길. 그렇게 되기 위해 나의 처형일에 수많은 구경꾼들이 모여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기를 희망하는 것만이 이제 내게 남은 일이었다.”

이 지점에서 뫼르소는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듯, 사랑과 증오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증오의 함성으로 자신을 반겨주길 고대해요. 그의 삶은 이를 통해 실존을 발견하게 돼요.

📖 끝으로 드리는 단상

현대 사회는 개인의 주체성을 상실하게 만들고, 비인간화된 삶으로 내몰고 있어요. 사람들은 매일 무의미한 반복 속에서 자신의 실존을 피하고, 삶에 대한 무관심과 고독 속에서 살아가기도 하죠.

그러나 카뮈는 이 부조리한 상황을 외면하는 대신 정면으로 대면하라고 권해요. 결국, 부조리를 직시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삶이야말로 실존의 증거임을 강조하는 거예요.

카뮈의 『이방인』은 아주 유명한 고전에다가 두껍지도 않아서 많은 뉴니커들이 읽어봤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사실 읽기는 쉽지만, 이해하기 참 어려운 작품인 것 같아요.

『이방인』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에요. 그래서 그런지 더 많은 내용을 담고 싶어 욕심을 내다보니, 다소 복잡한 내용이 되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더욱이, 카뮈의 『시지프 신화』가 이 책의 해설서로 자주 언급되는 만큼 『이방인』만으로는 완벽한 설명이 안 될 수 있어요.

그럼에도, 뉴니커들이 흥미롭게 읽어주셨기를 바라며, 긴 글 끝까지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 주 새로운 아티클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