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밖에서 나를 증명하는 일
작성자 삼백
아무튼, 에디터
회사 밖에서 나를 증명하는 일

모든 일이 재미있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앞선 아티클에서 글을 쓰는 동력으로 재미를 말했지만, 전체 과정이 다 즐겁기만 한 건 아니었어요. 즐거움과 괴로움의 스펙트럼 바가 있다면, 게이지가 즐거움 쪽으로 조금 더 치우쳤기 때문에 재밌었다고 기억하는 거 같아요.
정말이지 계약을 맺은 날부터 끝날 때까지 골치 아픈 일이 많았어요. 너무 쉽게 재미를 말한 게 아닌가? 무모하지 않았나? 할 수 있는 거 맞나? 일을 하며 힘들었던 순간이 생각나네요. 그 중 특별히 기억나는 것들을 나열해 보려고요. 제 경험은 단기 계약, 사이드 잡, 테크 리뷰어라는 특성이 있으니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경력직 채용에서 살아남기 👨💻

저는 컨택부터 계약까지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어요. 기업의 필요와 제 의지가 타이밍이 맞았기 때문에 일사천리였죠. 현실감이 없는 며칠을 보내다가 계약서를 쓰고 나서야 얼떨떨한 마음이 진정되었어요.
본업에서 채용 프로세스에 관여하며, 신입 채용과 경력 채용의 차이를 분명히 알고 있는데요. 신입은 능력보다 협업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주요하게 본다면, 경력자는 실전에 투입되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기준으로 검토해요. 제가 겪은 외주 프로세스는 경력 채용에 가까워요. 분위기 파악이 끝나면 곧바로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하거든요.
정규직을 기준으로 분위기 파악에 3개월이 필요하다고 보는데요. 프리랜서의 시계는 작업물을 기준으로 흘러가는 거 같아요. 1개 결과물 = 1개월이라 치환하면, 3번째 협업부터는 해당 기업 소속임이 느껴져야겠더라고요.
저의 색깔이 짙었던 1화를 지나 2화에서는 상업용 글쓰기 방식을 체득하고 3화부턴 인정을 받았어요. 물론 부족한 부분은 많은 피드백을 받았지만, 기획 의견에 관여할 만큼 단기간에 외주 업체 일원으로 녹아들었어요.
해야지 뭐 어떡해 의 연속 🙆
처음 쓰는 프로그램을 익숙하지 않다고 거부할 수 있나요?
본업에선 "Microsoft Teams"를 사용했는데 외주처에선 "Slack"을 사용하면 슬랙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요. 평소에는 "한글"을 사용하다가 "구글 문서"로 결과물을 요청한다면, 구글 문서를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특히, 저는 "노션"을 사용하지 않아서 코멘트를 적는 것부터 난항이었어요. 이제는 단락을 나누고 데이터베이스를 만들 정도로는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네요.
이런 일은 비일비재해요. 구글 문서의 작성 이력을 보이고 싶지 않다면 복사하여 새 문서를 공유하는 게 좋겠단 걸 계약 종료가 다가올 때 알았거든요.
요즘 회사에서 신입사원이 "제가 인수인계를 못 받아서요."라고 말하는 순간을 자주 목격해요. 친구와 회포를 풀며 나를 토닥이는 말을 하는 건 문제가 없지만, 회사에서 본인을 보호하기 위한 말이 될 순 없어요. "제가 1개월 차여서요.", "제가 3개월 차여서요."…. 1년이 지나도 회피를 위해 변명을 하고 있을 게 아니라면, 본인이 선택한 직업과 협업하는 동료에 대한 책임감은 중요해요. 개인의 힘듦은 공감하지만, 불합리 한 일이 아니라면 그래도 해야지 뭐 어쩌겠어요.
사무실이란 울타리가 절실하다 🏢
회사에서 표준원가 산정에 대한 프로그램 개발을 진행하며, 재료비와 판관비(판매와 관리비)를 유심히 살펴볼 일이 있었는데요. 급여를 포함해 건물과 기계에 대한 감가상각비, 광고비 등 판관비의 세부 비용 요소가 정말 많아서 신선했던 기억이 나요. 평소에는 혜택인 줄도 몰랐던 "판관비"가 프리랜서 일을 해보니 절실하더라고요.
사람마다 감추고 싶은 부분이 다르겠지만, 저는 공간에 대한 노출을 선호하지 않아요.
하지만, 제가 진행한 콘텐츠의 특성상 노출이 필요한 부분이 많았어요. 특히 약 100cm의 허리춤까지 오는 제품 리뷰를 할 땐 후회를 많이 했습니다. 물품뿐만 아니라 회수가 필요하니 박스를 버리지도 못하고 작은 방에선 구도 잡는 것도 어려워서 그냥 포기하고 싶었어요.
계약 때부터 고민한 부분이지만, 사무실의 존재가 간절히 필요했던 적이 처음이었어요. 회수 일정을 앞당기는 것으로 협의하여 벗어났지만, 안락함을 잃어버린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을 만큼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거든요.
이건 제가 느낀 힘듦의 일부에 불과해요. 디지털 노마드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있다고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내 자원을 끌어다 활용해야 한다는 점을 몸소 느낄 때마다 프리랜서 계약 단가가 정규직보다 비싼 이유를 알게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