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너는 무서워 하면서 끝까지 걸어가는 사람ㅣ월간 아젠다워커
작성자 아르케
월간 아젠다워커
❤️🩹샬롬: 너는 무서워 하면서 끝까지 걸어가는 사람ㅣ월간 아젠다워커



한 인물의 정체성에 관해 듣게 되면, 자연스레 그 사람의 세계를 상상하게 된다. 우리, 이 사람의 세계도 한번 상상해 보자. 시를 쓴다. 기독교인이다. 페미니스트이고, 퀴어이며, 베지테리언이다. 풍물패에서 활동하고, 공동체 하우스를 꾸리고 있다. ⋯.
이 정체성들은 샬롬의 세계에서 복잡하게 뒤얽힌다. 샬롬이 쓰고 났더니 사람들이 그것을 ‘퀴어 시’라고 불렀다. 나의 마음을 쫓아갔더니 누군가가 그것을 ‘해악’이라고 불렀다. 그의 자연스러운 행동에 특수한 이름이 붙고, 그의 세계 한쪽에서는 다른 한쪽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울하고 분노하고 무서워한 시간이 그런 그를 ‘퀴어한’ 사람으로 빚어냈다. 샬롬은 그런 속에서도 ‘그래? 그럼, 본격적으로 퀴어 시를 한번 써보지 뭐.’ 하는 사람, ‘그래도 뭐 어쩔 거야, 이미 내 주변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가득한데.’ 하는 사람이다.

❤️🔥기독교인, 동시에 오픈리퀴어
고은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시나요?
샬롬 이 일 저 일을 해서 한마디로 설명하기가 힘든데요. (웃음) 남들이 들으면 되게 정신없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남들에게 저를 잘 설명해 주고 싶은데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고, 제 안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어요.
고은 사람들에게 정신없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떠세요?
샬롬 정신없는 게 다는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이 저를 걱정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것 같기는 해요. 일을 벌여놓다가 몸이 상할까 봐요. 그런데 저는 그걸 멈출 수가 없어요. 이 삶에 적응하려고 노력했고, 적응도 했어요. 어느 정도 감당 가능한 수준까지 하고 있죠.
그리고 이 모든 활동을 통해서 얻는 인사이트가 많아요. 시간이 흐르면서 제 안에서 정리가 되거든요. 아주 달라 보이는 활동이지만 제 안에서는 연결되죠.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는 제가 활동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할 수가 없어서 좀 아쉬워요.
고은 샬롬 님 안에서 중요하게 연결되는 활동들은 어떤 게 있나요?
샬롬 회사에 다니고도 있지만, 주요하게는 세 가지 활동을 하고 있어요. 올해 풍물을 배우게 됐고요. 제가 가장 되고 싶은 건 시인이에요. 또 교회를 다니고 있는 기독교인이기도 해요. 작년 한 해 동안은 제가 하고 있는 기독교 동아리의 간사가 되고 싶었어요. 회사 일을 하면서도 ‘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니야. 나는 궁극적으로 다른 일을 할 거야’ 생각하며 지냈었는데 결국 못 하게 됐어요.
못 하게 된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제가 오픈리 퀴어라는 부분도 배제할 수 없거든요. 저희 동아리가 한국에서는 꽤 열려 있는 편이고, 직접 관계를 맺었을 때는 저를 받아들여 줬는데요. 간사가 되는 건 또 다른 이야기더라고요.
고은 기독교인이자 오픈리 퀴어로 살아가는 건 어떠세요?
샬롬 원래는 대형 교회를 부모님과 다니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설교가 이상한 것 같아서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동네 교회에 다녔거든요. 제가 선택한 교회여서 더 열심히 다녔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찬양 인도를 맡으면서 공부 안 하고 맨날 성경 읽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성인이 되어서 정신 차리고 보니까, 심각하게 빻은 곳이었던 거예요.
제가 학교에 입학했을 때 페미니즘이 리부트되던 때였어요. 맨날 여성혐오범죄를 생각하면서 ‘이렇게 살아봤자 뭐하나. 나 하나 살아도 어떤 여자들은 계속 죽고 있는데 말이 되나.’하고 있었죠. 그런 상태에서 21살 때 정체화를 하게 되면서 ‘퀴어혐오까지 받아들여야 되는구나’ 싶어서 너무 힘들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심한 우울증 상태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교회에서 동성애 혐오 발언들이 나왔어요. 제가 그런 데 관심 있는 것 같으니까 모임에서 한 언니가 동성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더라고요. 당황했지만 뭐라고 말을 했는데, 그 직후에 저보다 나이가 많은 남성 조원이 “나는 동성애 하는 새끼들을 용납할 수 없어”라고 했어요. 너무 당황했죠. 회피하고 싶어서 정확하게 못 들은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고은 세상에, 두 귀로 직접 듣고도 믿기지 않는 순간이었을 것 같아요.
샬롬 교회 담임 목사가 어느 날은 여자는 다 보여주면 안 된다고, 첫날밤에도 다 보여주면 안 된다는 말도 했어요. 제가 점점 교회에서 시들시들해지니까 전도사님이 면담 신청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죠. “교리적으로 나랑 맞지 않는 것 같다.” 제가 다니던 교단이 여성이 목사를 할 수 없었거든요.
전도사님이랑 막 싸웠어요. 책을 읽어보시겠다고 하셔서 추천을 몇 권 해드리고, 다음에 만나서 책 얘기를 했어요.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 정신이 나갈 것 같았죠. 결정적으로 교회에서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처음 퀴어퍼레이드에 다녀오고 첫 타투도 했을 때였어요. 제가 다녀왔다는 걸 듣고 전도사님이 설교 시간에 동성애와 타투가 죄라고 하더라고요.
고은 아⋯. 마음을 많이 쓰던 공동체였는데, 그곳에서 거부당하는 경험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샬롬 그런 상태에서 제가 말할 수 있는 곳은 학교에 있는 기독교 동아리밖에 없었어요. 너무 우울하고 힘들었기 때문에 계속 말했거든요. 그런데 그 얘기를 다 들어주고, 더 화내주고, 제 잘못이 없다고 얘기해줬어요. 교회에서는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여기서는 제 케이스가 처음인데도 잘 받아주려고 했죠. 그런 게 당시의 저를 살렸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 동아리를 하면서 저를 많이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됐어요. 이 동아리가 이상할 정도로 너무 좋고 함께하고 싶더라고요.


.
.
.
아젠다워커 샬롬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면?
💌[월간 아젠다워커] 전문 보러가기
[월간 아젠다워커]를 만드는 아르케가 궁금하다면 ?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 변화를 위해 활동하는 이들의 커뮤니티, 아르케 둘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