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젠다워커 무수의 아젠다는 '#혐오문제 #기본소득 #비건 #돌봄'이다. 당사자의 목소리를 전하는 혐오문제 뉴스레터 '모보이스'와 혐오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모임 '라이츠'를 운영하고 있다. 

무수는 인터뷰 시작 전, 근황을 나누다가 내가 아르바이트에서 부당하게 해고통보 당한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훔쳤다. 카페에서 내가 시킨 과일주스에 예상치 못하게 우유가 들어가 있어 당황하자 그는 자신도 비건이면서 음료를 바꿔주었다. 인터뷰 중에 그의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키자 거꾸로 나의 사진을 몇 장 담아주었다. 무수는 돈이나 일보다도 사람을 사랑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도 "회사에 돈을 벌어다 주는 사람"이고 싶었던, 일의 성과로 존재를 입증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는 어떤 시간을 거쳐 혐오문제 뉴스레터를 3년이나 발행하게 되었을까? 왜 이토록 열렬하게 사람과 사랑을 마음에 품게 되었을까?

👩‍💻일로 존재를 입증하는 사람에서 일이 후순위인 사람으로

고은  혐오문제에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나요?

무수 처음 인턴 한 게 은행이었거든요. 경쟁률이 꽤 있었는데, 막상 인턴이 하는 일은 문 앞에 서서 하루 종일 인사하고 동전 바꿔드리고, 은행원을 보조하는 일이 다예요. 대신 어떤 환경에서 일하는지를 볼 수 있었는데요. 여성만 유니폼을 입는 거예요. 탈의실도 여성 탈의실만 있고요. 그리고 여신 창구(대출 업무)에는 여성이 한 명도 없고, 수신 창구(입출금 업무)에만 많았어요
거기는 무기계약직으로 애초에 전형이 달라요. 여신 업무를 하고 싶어서 관심 있게 보다가 모르는 척 지점장을 하고 내려와서 은퇴를 앞둔 분에게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그분이 당연하다는 듯이 여신은 일도 많고 야근도 많고 술도 마셔야 해서 여성이 못한다는 거예요. 보수적이고 차별적으로 굴러가는 곳은 맞지 않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주도적으로 일하지 못하고 돈을 못 벌면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들어간 첫 회사가 핀테크 스타트업이었고, 거기서는 유연하고 주도적으로 일을 할 수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날 회사에서 경력 단절 여성을 뽑는 채용 공고를 올렸는데 SNS에서 누군가 그걸 지적했어요. 왜 여성한테 일과 가정을 다 찾으라고 하냐, 이 핑크색 하트는 뭐냐. 스타트업은 작은 노이즈도 예민하게 반응해야 되거든요. 조직의 사람들이 이게 페미니즘 이야기라고 말해줬고, 궁금하면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어보라고 추천해 줬어요.

고은  『페미니즘의 도전』이 처음 읽으신 페미니즘 책이셨겠네요. 읽어보니 어땠어요

무수  세상이 재정립되는 느낌이었어요. 그간 취업을 못 하는 거나 돈을 많이 못 벌면 제 탓하면서 스스로를 많이 괴롭혔는데요. 여성이라서 갈 수 없는 환경들이 있었다는 게 충격적이었어요. 그동안 차별이라도 인지하지 못했고 이상하다고만 느껴왔던 것들이 언어화된 느낌이었죠. 그리고 조금 있다가 <<82년생 김지영>>이 나와서 연달아 읽으면서 제가 겪는 차별과 혐오에 대해 알아차리고 공부하게 됐어요.

고은  지금은 프리랜서로 생활하고 계시잖아요. 회사 생활을 하다가 어떻게 프리랜서가 되셨는지도 궁금해요.

무수  저한테 맞는 조직이나 환경을 찾으려고 애쓰다가 마지막 회사를 힘들게 나오게 됐어요. 이사가 가스라이팅했는데, 저는 일로 제 존재를 증명하던 사람이었어서 그게 정말 죽을 것 같은 거예요. 도망치듯이 회사를 나와서 반년은 심리상담하고 명상하면서 치유하는 시간을 보냈죠.조직이 나에게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이 커지니까 취업을 하기가 힘들었어요. 프리랜서로 지내려고 노션으로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때 노션이라는 도구가 막 퍼져나가는 시점이었거든요. 그 기록을 다 남겼어요.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포폴을 만들었는지요. 그리고 당시에 있었던 일하는 여성들의 커뮤니티에 가서 알렸어요.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으니까요.
생각보다 관심을 받아서 커뮤니티 안에서 강연 요청을 받고, 퍼블리에 글을 쓰게 됐어요. 그게 반응이 좋아서 연락이 많이 왔고요. 레퍼런스로 기록을 남기니까 그걸 보고 또 연락이 왔어요. 그때는 기록을 강박적으로 남겼어요. 그래야지만 내가 발견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자기를 돌봐야 타인도 돌보고 세상도 보이니

고은  요즘은 일이 어떠세요?

무수  고비라고 느끼고 있어요. 일이 많이 줄어들고 있거든요. 지자체와 협업했던 포트폴리오 워크숍이 거의 없어졌어요. 예산이 줄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수익 구조를 다시 만들어야 하는 시기가 온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그전까지 운이 좋았어요. 프리랜서로 지낸 4년 동안 먹고 살았으니까요. 그래도 지금 요가도 하고, 봄에 피는 꽃들과 친구들 덕분에 엄청 괴롭지만은 않게 지내고 있어요.

고은  무수가 일하는 시간을 줄이면서 다른 사람들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했잖아요. 왜 그렇게 생각이 이어지게 된 것 같나요?

고은  정말 스스로를 낙오자라고 생각하나요?

무수  돈을 고민하는 순간에는 그렇고, 나를 잘 챙기는 순간에는 잘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약간 웃긴 게, 내가 돈을 벌지 않고 나를 잘 챙기고 돌보는 게 또 한편으로는 나태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만약 제가 IT회사에 다녀서 돈을 벌었다면 나를 돌보는 걸 게으르다고 생각했을까요? 우리가 하는 일이 의미가 없고 가치가 없는 일이 아닌데, 사회에서는 그렇게 판단하죠. 여성, 이주민, 장애인 등은 일할 수 있는 몸으로 충분히 인정받지도 않고 그런 자리도 얻지 못하니까 쉽게 가난해지고요. 돌봄이나 가사에 대한 가치도 낮게 측정되어 있잖아요. 내가 나한테 하는 돌봄조차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그렇지만 이렇게 계속 살고 싶어요.

고은  '이렇게'는 어떤 거예요?

무수  일단 끼니를 잘 챙겨주려고 해요. 집에서 비건식으로 깔끔한 그릇에 챙겨 먹으려고 하거든요. 배가 고프지 않아도 시간이 되면 꼭 뭘 먹어요. 그리고 산책을 진짜 많이 가요. 마지막 직장에서 나오고 생긴 취미예요. 그때 내가 쓸모 있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찾아서 했거든요. 하루에 세 번 산책 할 때도 있어요.
같은 곳을 자주 걸으니까 변화를 감지하게 돼요. 순간순간 변하는 거예요. 잎사귀가 나고, 색깔이 변하는 걸 알아차려요. 까치가 나뭇가지를 물고 날아와 집을 짓더라고요. 그걸 한참 구경하고 있었어요. 그러고 있으면 내가 자연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죠.
요가도 그중 하나에요. 매일 매일 나아지지 않아도 무언가를 꾸준히 하면서 조금씩 변하는 나를 느끼고, 지금 여기 숨 쉬는 것들을 잘 보게 돼요. 제가 요가를 한 지 2년이 됐는데 아직도 머리서기를 못해요. 겁이 없어야 새로운 자세를 지도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는데, 저는 조금만 흔들려도 넘어질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그냥 내려오게 되는 거예요. 요가를 하면서 못 하는 건 못 하는 대로 두면서, 뭔가를 못 하는 나를 마주하는 게 괜찮아졌어요.
친구를 만나는 것도 돌봄 중 하나에요. 저한테 지금 1순위는 친구거든요. 이런 나를 내치지 않고 지지해 주는 친구들 덕분에 있는 내 길을 갈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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