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린보트를 탑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작성자 allreview
금주의 한-탄
⛴️ 그린보트를 탑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제러미 리프킨 <플래닛 아쿠아> 中
저는 2025년 1월 16일(목)부터 23일(목)까지 환경재단이 주최하는 그린보트를 타고 여행을 떠납니다.
11만 톤 급의 크루즈를 타고 대만과 일본을 오갈 겁니다.
초대형 크루즈는 탄소 발자국을 많이 내뿜습니다. 최근까지 '위장 환경 활동(이른바 그린 워싱)'이라는 비판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같이 가기로 한 여러 명사들(최재천 교수, 가수 요조 등)이 승선을 포기했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환경재단이 입장문을 낼 정도였습니다.
다녀오고 나서, 그 다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저 또한 설을 앞두고 긴 연차를 내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일정을 조정하고 취소 수수료를 물기 어려웠습니다. 사회 초년생이 백만 단위의 돈을 물어내기는 역부족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만큼 많은 돈을 쏟았고, 상당한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글이 나갈때쯤이면, 아마 ('디지털 디톡스'라는 미명하에) 망망대해를 인터넷 없이 떠돌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일단 오늘은 이러쿵저러쿵 자초지종 없이 이렇게 때우도록 하겠습니다.
어쩌다 어쩌다 어쩌다
2023년 12월, 연구원에서 3년만에 인턴직 구인 공고를 냅니다. 공고에 나온 연구원 인턴 활동 기간은 2024년 2월부터 4월까지 총 3개월. 몇 명의 경쟁자들을 뒤로한 채, 최종 선발됐습니다. 면접 과정에서 "3개월이 아니라 6개월로 기간을 연장해도 할 수 있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감사할 따름"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실제로 2024년 2월 연구원에 처음 입사하던날, 근로계약서를 썼습니다. 계약서는 두 장이었습니다. 하나엔 근로 기간이 '6개월', 또 다른 하나엔 근로 기간이 '1년'으로 적혀 있었죠. "원하는 대로 선택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당연히 1년으로 계약했습니다. 당장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으니까요. 살면서 언제 싱크탱크에서 일해볼 수 있겠냐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고요.
입사 후, 정말 제가 최저학력이라는 걸 알아챘습니다. 행정직원들마저 석사학위자였습니다. 학사 주제에 연구원에 입사하다니, 절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전 거기까지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보다 정확히는, 그 1년간 열심히 일하고 배우자는 생각 말입니다. 그래서 차곡차곡 모아놓았던 연차를 퇴사 직전에 마구 써버릴 생각이었죠. 어떻게 하면 연차를 알차게 쓸까, 고민 또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환경재단의 '그린보트' 캠페인을 찾았죠. 2025년 1월 중 6일의 연차. 명분도, 실리도 있었습니다.
연구원 생활 약 10개월 무렵, '계약 연장' 제의가 있었습니다. 추가 6개월 연장이었습니다. 물론 마다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그린보트'가 못내 마음에 걸렸죠.
그렇게 그린보트 일정을 허락받았습니다.
떠나기 전날, 그러니까 정확히는 1월 15일(수)엔 건강검진 일정이 있었습니다. 14일(화) 저녁부터 금식을 했고, 장을 깨끗하게 비워냈습니다. 화장실을 수도 없이 들락날락거렸고, 맥 없이 진이 다 빠져버렸죠.
오전에 도착한 내과에선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검사를 받았습니다. 키, 몸무게, 시력, 청력, 피 뽑기, 초음파, X-ray 등등. 수면 위/대장 내시경을 할 때쯤엔 '그냥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 뿐이었죠.
검사가 끝나고 머리를 다듬으러 미용실에 들렀습니다. 매번 일 때문에 주말에 가다가 평일 오후에 가니 약간 새로웠습니다. 사람이 별로 없고, 다들 여유로운 느낌이었죠. 물론 헤어디자이너 쌤은 제게 어떤 것도 묻지 않으셨습니다.
"어서오세요. (지난번과) 똑같이 해드리면 될까요?", "고생하셨습니다" 외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죠.
끝난 뒤엔 바로 김포공항으로 갔습니다. 김포에서 부산으로 비행기를 타고 내려갔습니다.
도착하자마자 호텔에 체크인하고, 회를 한 접시 먹었습니다.
별 볼일 없는 광어 한 접시. 그리고 깡통시장 앞에서 씨앗 호떡 하나, 떡볶이 1인분을 '조지고(눈 깜짝할 새 먹었다는 뜻)' 퍼질러 자버렸습니다.
느즈막히 눈을 뜬 시간은 오전 9시 30분. 유튜브를 좀 보다가, 대충 나갈 채비를 하고 11시에 호텔을 나왔죠. 부산 돼지국밥 1그릇과 함께 친구와 밀면 1개를 나눠먹으며 속을 든든히 채웠습니다. 뭐랄까요. 부산역 앞은 고개를 돌리면 '국밥'과 '밀면'이 보입니다. 서울 촌놈에게 부산은 '국밀'의 도시였습니다.
스타벅스에 들어가 친구와 여행일정을 짰습니다. 대만 기륭항에 18일(토)에 내리면 뭘 할까. 20일(월)에 일본 오키나와에 내리면, 22일(수) 일본 사세보에 내리면 뭘해야할까. 의견을 마구 주고받다가 '대충'하기로 했습니다.
좋자고, 행복하자고 하는 여행인데. 뭘 그리 빡빡하게 하나 싶어서요.

어쨌든 그렇게 일정을 확정하고, 부산 국제여객선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거대한 여객선이 저를 맞이합니다.
급박하게 달려온 여행 준비를 마치고, 전 이제 출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