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조차 되지 못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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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llreview

금주의 한-탄

한 사람조차 되지 못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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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셋째 주]

김애란 <이중 하나는 거짓말> 中

이번 주의 장면을 모아봅니다.
한 사람이 된 사람과, 한 사람조차 되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S#1 출근길

제가 타야 하는 버스가 정류장 앞에 서 있었습니다. 전 아직 횡단보도에 있었고, 아직 출근 시간은 충분히 남았습니다. '다음 버스를 타야겠다'고 생각하며 마음 놓고 있었죠. 버스 기사님이 손짓했습니다. 빨리 타라고.

- (삑) 감사합니다.

- 예~~ 오늘은 안 바쁜가 봐요?

-...... 아... 아니요. 감사합니다.

연거푸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저 혼자만 '타야 할 버스'를 생각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버스 기사님도 '태워야 할 승객'을 알고 있었습니다. 매일 똑같은 시각, 매일 똑같은 장소, 매일 똑같은 사람이니까요.


S#2 기도

평상시에 기도해 주겠단 말을 허투루 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양심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제 진심의 문제와도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 "제약회사 면접을 앞두고 있다"는 말에 "기도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화요일 저녁에 연락이 왔습니다.

- 저 면접 붙었습니다 / 기도의 힘을 받은 거 같아여 / 감삼다!

뭐라고 답변해야 할까. '다행쓰ㅋㅋㅋ 난 다 떨어져도 넌 결국 붙었네', '내가 기도빨이 좋군!', '고생했음! 푹 쉬어!!' 등을 쓰다가 모조리 지웠습니다. 대신 따봉 이모티콘을 날려줬습니다.


S#3 저녁 식사

- 이런 걸 기사로 써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 나 이제 언론사 안 다니잖아. 연구원 다녀.

- 아 맞네.. (중략) 근데 진짜 대단한 것 같아요. 학교랑 싸우는 사람들.

-......

- 들으라고 한 얘긴 아니었는데..

감자탕에 볶음밥을 슥삭거리시던 종업원께서 저를 힐끔 쳐다보셨습니다. '사평역에서' 함구하는 사람들처럼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좀처럼 오지 않는 막차'를 기다리며 모두가 침묵했던 것처럼 시공간이 멈춰버린 느낌입니다. "... 먹자" 제가 한 말은 그게 전부였습니다.


곽재구 <사평역에서> 中

벌써 30번째 글입니다.
'푸릇한 봄'에 시작해 '작열하는 여름'을 지나 '스쳐가는 가을'을 거쳐 '마침내 겨울'이 되었습니다.
겨울이지만 수능 당일엔 춥지 않았습니다.
춥지 않았지만 마음까지 녹이진 못했습니다.
아직 마음이 녹지 않았으니, 겨울이라고 명명하겠습니다.
이 겨울의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고3 때 배웠던 시를 끄집어냅니다.
연거푸 삽을 씻어내는 한 사람이 저와 꼭 닮아있습니다.


정희성 <저문 강에 삽을 씻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