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민주주의에 나의 지분' 답변
작성자 allreview
금주의 한-탄
'우리나라 민주주의에 나의 지분' 답변

지난주 글 <아직 한 발 남았다>에 이런 댓글(@안영선 SHMC 님)이 달렸습니다. (주제 넘지만) 이 질문에 대한 긴-답변입니다.
정말 죄송하지만, '질문이 잘못'됐습니다. 민주주의는 지분 싸움이 아닙니다.
0. 민주주의란?
민주주의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정치체계를 뜻합니다. 이때 주권이란, '가장 주요한 권리'라는 뜻으로, 법률상 '최종적인 의사 결정권한'을 뜻합니다. 아래에서 피 튀기며 주먹질을 해서 싸우든, 원활하게 소통하여 단일한 합의를 이뤄내든 상관없습니다. 가타부타할 것 없이 가장 높은 곳에서 최종적으로 결정해 버리면 끝이라는 겁니다.
자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민주주의의 문제는 '너도 나도 국민'이라는 겁니다. 최종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사람이 여러 명이죠? 서로 생각이 다른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겁니다. 아파트를 짓자는 사람과 공원을 짓자는 사람이 서로 다른 주장을 한다고 칩시다. 서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싸울 수밖에 없는 겁니다.
1. 민주주의가 눈앞에 떡하니 있다면?
이때, 민주주의를 하나의 소유물로 본다면 질문해 주신 방식대로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권리 자체를 쪼개기 시작하는 거죠.
실제로 분리하기 어려운 하나의 재산[이를테면 집(부동산)]을 두 명 이상이 공동으로 소유할 때를 대비해 '민법'이 이미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른바 '공동명의' 제도죠. 민법 제 262조(공유자의 지분은 균등한 것으로 추정한다.)에 따라 공유자는 서로 지분이 똑같다고 추정되기 때문에 우열을 가릴 수 없습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면 민법 제269조(분할의 방법에 관하여 협의가 성립되지 아니한 때에는 공유자는 법원에 그 분할을 청구할 수 있다)에 의해 법원에 분할 청구를 요청해야 합니다. 그러면 법원은 민주주의를 지분 몇 대 몇으로 나눌지 고민해야 하겠죠.(하하.. 웃자고 하는 소립니다. 네.)
불가능합니다. 민주주의는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공유하고 있는 하나의 생각입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소유물에서 상상으로 바뀐다고 해서 싸우지 않는 건 아니죠.
2. 평화적인 '공동권리'의 해결책은?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이러한 '공동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요? 민주주의가 물건은 아니라서 쪼갤 수도, 건네줄 수도 없는데요?
바로 선거입니다. 투표를 통해 우리의 주권을 '잠깐' 넘겨줄 사람을 고르기로 한 겁니다. '5천만 국민의 싸움 대신 대표하는 사람 몇 명만 골라서 그 사람들끼리 결정하라고 하자!'라는 해결책을 생각해 낸 겁니다. 그러면 그 투표로 선택된 사람이 '대신하여' 권리를 갖죠. 아파트를 지을지, 공원을 지을지, 세금을 조금만 걷을지, 세금을 왕창 걷을지 대신 결정하는 겁니다.
3. 대신하는 사람들이 잘못하면?
여기서 또다시 문제가 발생합니다. 나를 대신하는 대표자가 권리를 마구 휘두르는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죠. 열심히 하지도 않고, 자기 지갑에 돈만 챙겨 넣으려고 한다면 이걸 어떻게 막아야 하지? 고민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래서 두 가지의 해결책을 만들었습니다. 첫째, 기간(임기제). 우리를 대신하여 권리를 쓰는 대표자는 반드시 딱 정해진 기간만 해야 해! 둘째, 회수(탄핵권). 대표자가 확실하게 잘못한 게 드러나면, 그 권리는 다시 내가 회수하고 너를 내쫓을 거야!
여기까지가 민주주의에 대한 기초적인 설명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에서 나의 지분은 어느 정도인가를 고민하는 '질문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만, 진짜 내 지분이 0.0015477541%인 건가? 0.000077799254% 인가?를 고민하신 건 아닐 터.
아마 '민주주의의 무용성'에 대해 한탄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위에 쓴 기초설명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자면, ' 민주주의의 효용성'은 2번과 3번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다.
'2-1.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 체제 유지', '3-1. 감시와 처벌을 통한 민주주의 발전'입니다.
먼저 2-1.
대표자 1에게 주권을 넘겨주고 대표자 1의 임기가 끝나 나의 주권을 다시 돌려받습니다. 또 다른 대표자 2에게 다시 나의 주권을 넘겨주는 이 과정이 선거죠. 이 선거 과정에서 아주 잠깐의 공백이 있습니다. 바로 주권을 회수하고 넘겨주는 과정입니다. '국민께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청렴결백'하겠다는 다짐이 등장하는 그 시기 말입니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민주주의의 직접적인 효용성은 선거제도에서 드러납니다. 선거가 많을수록 민주주의를 더 많이 체감하게 되죠. 대통령 선거, 총선거(국회의원), 보궐선거, 교육감 선거, 지자체장 선거 등 선거 기간에 그 효용성을 많이 느끼시면 되겠습니다.
다음 3-1.
(품이 많이 들겠지만) 대표자를 감시하고 처벌하는 과정에서 간접적인 민주주의의 효용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대통령의 업무에서 비위는 없었는지, 국회의원의 업무에서 돈은 제대로 쓰였는지, 지자체장은 부당한 특혜를 제공한 적이 없는지 샅샅이 따져 물어봐야 합니다. 그리고 문제가 발각되면 예외 없이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이 과정마다 민주주의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방법론적으로 접근해 보겠습니다. 간접적인 효용을 원하시는 분들이 취하는 대표적인 행동이 시위입니다. 문제를 공개적으로 지적하여 많은 사람들이 알도록 하는 겁니다. 나의 시위 주제에 부합하는 여론을 형성하여 대표자를 간접적으로 압박하여 끌어내리는 방식입니다(물론 직접적으로 검찰/경찰 등 사정기관에 고발하는 형태도 있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언론사에 제보하거나 직접 정당에 가입하여 '대표자의 활동을 돕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습니다.
결국 '우리나라 민주주의에 나의 지분은 얼마나 될'지는 '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체계를 내가 얼마나 활용하는지'에 따라 달려 있는 게 아닐까요.
최장집 교수님의 책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를 보고 난 뒤에 썼습니다. 가급적 쉬운 말을 쓰려고 노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