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영화 〈시라트〉와 전쟁
작성자 하람
나를 위한 내 생각
001. 영화 〈시라트〉와 전쟁
지난 1월 21일, 독립·예술 영화관 더숲 아트시네마에서 영화 〈시라트〉를 봤다. 사전 정보를 수집하려고 네이버 오픈톡을 먼저 켰는데, 제일 먼저 '보러 가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은 이 오픈톡도 보지 말고 바로 영화관으로 가라'는 메시지가 보였다. 그 메시지를 보고 예고편도, 시놉시스도 읽지 않은 채 상영 시간만 확인하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영화는 말 그대로 '충격' 그 자체였다. 영화는 외딴 사막에서 어떤 히피 무리가 대형 스피커를 설치하고 레이브 파티를 준비하며 시작한다. 줄거리를 정리하기 전, '레이브 파티'라는 문화를 먼저 정리해야겠다. 레이브 파티란, 정신없이 빠른 박자의 전자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파티이다. 1980년대 후반 영국에서 시작된 레이브 문화는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우리나라에는 1990년대 후반 소개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파티와 함께 마약을 즐기는 문화까지 같이 유입되며 2000년대 초반부터 우리나라의 레이브 파티 문화는 서서히 위축되었다.
이렇듯 우리에게는 낯선 레이브 파티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시작된다. 영화가 시작되고 거진 20분에 달하는 시간 동안 이야기를 전개하는 대사는 등장하지 않는다. 스피커를 설치하고, 빠른 박자의 음악을 틀고, 음악에 몸을 맡기는 군중을 보여주며 레이브 파티의 모습을 묘사한다. 그와 동시에 파티 참가자들에게 전단을 나눠주는 부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버지 '루이스'는 다섯 달 전 실종된 딸 '마르'를 찾는 중이고, 아들 '에스테반'과 반려견 '피파'도 함께한다.
산만한 레이브 파티는 군에 의해 중단된다. 군은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고 말하며 파티를 해산하고 즉시 대피하라고 명령한다. 이때 남부에서 더 큰 레이브 파티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은 히피족은 파티 중 마주친 루이스·에스테반 부자와 함께 남부로 대피한다. 히피족은 대형 트럭 두 대를, 부자는 비교적 작은 승합차를 타고 달린다. 난해한 음악 영화인 줄 알았던 영화의 장르가 로드 무비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지루하다고 느껴질 법한 로드 무비가 계속된다. 하지만 그 사이에 부자와 히피족 간의 친밀함과 유대감이 쌓인다. 루이스는 앞장서던 히피족 트럭 두 대가 승합차로는 건널 수 없는 개울가를 건너 홀연히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고 격분하지만, 이내 트럭이 돌아와 승합차를 묶고 개울가를 건너자 화를 삭인다. 그리고 에스테반이 자신이 먹던 초콜릿을 히피족에게 나눠주고, 병에 걸린 강아지 피파를 히피족이 치료해주기도 하며 그들은 점점 서로를 소중히 여기게 된다.
그렇게 남부의 레이브 파티를 향해 막연히 달리던 중, 세 대의 차는 군용 트럭의 이동을 목격한다. 군용 트럭을 보고 쎄함을 느낀 그들은 가파른 산길을 선택하고, 바로 옆이 낭떠러지인 길에서 위태위태한 질주를 이어간다. 그러던 중 비가 세차게 내리는 어느 날 밤, 히피족 '토냉'이 운전하던 트럭의 바퀴가 길에 난 구덩이에 빠진다. 아무리 밀어도 옴짝달싹하지 않는 바퀴에 그들은 다음 날을 기다린다. 해가 뜨고 날이 개자 히피족은 바퀴를 빼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낭떠러지 근처에서 피파와 노는 에스테반을 차로 들여보낸 루이스도 힘을 모으고, 마침내 바퀴를 빼내는 데에 성공한다. 그런데 그 순간, 에스테반과 피파가 탄 루이스의 승합차가 뒤로 밀려난다. 루이스는 '핸드 브레이크를 올려'라고 외치지만 결국 승합차는 밀려난 끝에 절벽 아래로 떨어져 부서진다. 로드 무비로 끝나는 줄 알았던 영화가 다시 한 번 반전을 거듭하는 순간이다.
루이스는 딸에 이어 아들까지 잃었다. 히피족은 여정을 함께했던 동료를 잃었다. 한순간에 소중한 존재를 잃은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산길을 둘러 사막의 황무지에 도달한다. 그곳에서 야영하던 중, 루이스는 상실감에 빠져 끝없이 펼쳐진 황무지를 걷는다. 바람이 불어와도 굴하지 않고 걷고 또 걷는다. 결국 쓰러진 루이스를 히피족 차량이 구해 다시 달린다. 모두가 침묵을 지키고 달리는 데 열중한다. 가끔씩 찾아오던 침묵을 깨주었던 에스테반의 빈자리가 더 부각되는 장면이다.
무거운 침묵을 참다못한 히피족 리더 '제이드'는 루이스에게 환각제가 섞인 차를 건네고 황무지 한가운데에서 즉흥 레이브 파티를 제안한다. 트럭에 실은 스피커 두 대를 설치하고 음악을 튼 그들은 음악에 심취해 춤을 춘다. 아이돌이나 댄서 같은 절도 있고 유려한 춤은 아니지만, 온전히 음악에 몸을 맡긴 무아지경의 춤이다. 영화가 시작될 때는 마냥 난해했던 레이브 파티가 이제는 하나의 문화로써 관객들에게 받아들여진다. 얼핏 보면 엉성한 춤이 의미 있게 느껴지고, 어떤 놀라움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영화는 하나의 거대한 충격을 숨기고 있었다.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볼륨 높여! 터뜨려 버려!'라고 외친 제이드는 그 단말마의 외침과 함께 터져버린다. 말 그대로다. 터져버린다. 황무지에 묻힌 지뢰를 밟은 제이드는 그 자리에서 폭사한다. 그녀와 각별한 사이였던 토냉은 다른 동료의 만류에도 제이드의 시신을 향해 다가간다. 에스테반을 잃은 루이스의 모습처럼 제이드의 이름을 연발하던 토냉은 제이드와 같이 지뢰를 밟고 폭사한다. 1분, 아니 10초도 안 되는 순간에 두 명의 동료를 잃은 히피족과 루이스는 훨씬 더 큰 상실에 빠진다. 상실만이 다가 아니다. 아무 생각 없이 달렸던 이 황무지가, 루이스가 밤새 걸었던 이 황무지가 사실은 무엇보다 잔인한 지뢰밭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분위기 반전을 위해 제안한 레이브 파티는 다른 의미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일순간에 동료를 세 명이나 잃은 루이스와 히피족은 이전보다 더 고요히 고민에 빠진다. 그들은 트럭 두 대를 차례대로 희생시키는 결정을 한다. 트럭의 핸들에 밧줄을 매달아 전진시키는 것이다. 두 트럭은 여지없이 폭발했고, 마지막 트럭이 폭발한 곳부터 지뢰밭의 끝이라 예상되는 바위 지대까지는 약 70미터가 남은 상황. 남은 건 오로지 맨몸뿐이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 루이스는 무언가 결심한 듯 70미터에 달하는 바위 지대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세 명의 히피족이 그의 이름을 부르고 뭐 하는 것이냐고 묻지만 대답하지 않는다. 몽환적으로 반복되는 배경음악을 등에 업은 채 루이스는 올곧게 걸어간다. 긴 걸음 끝에 마침내 바위 지대에 도달하고, 루이스는 뒤를 돌아 히피족을 바라본다.
히피족 중 가장 살고 싶어했던 인물 '비기'는 루이스에게 같이 가겠다며 소리친다. 그는 루이스의 발자국을 따라 뛰어간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비기는 지뢰를 밟고 폭사한다. 루이스가 걸어가고도 멀쩡했던 길을 걸었는데도 죽은 것이다. 남은 히피족은 두 명. 그 중 '조시'가 루이스에게 어떻게 한 거냐고, 비기는 당신의 발자국을 따라갔는데도 죽었다고 외치자 루이스는 무덤덤하게 '아무 생각 없이 걸었어'라고 답한다. 이 말에서 힌트를 얻은 것인지, 남은 히피족 '스테프'는 조시와 반려견을 데리고 루이스가 간 70미터를 걸어간다. 그들이 발걸음을 떼는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서서히 페이드 아웃 된다. 영화는 사막을 가로지르는 기차에 루이스, 조시, 스테프와 피난민들이 타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루이스가 70미터를 걸으며 흘러나왔던 소리의 출처가 황무지의 레이브 파티 당시 틀었던 스피커였다는 것을 보여주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글 앞부분에도 적었다시피, 내게 이 영화는 충격 그 자체였다. 에스테반이 죽는 장면부터 제이드가 폭사하고 루이스와 조시, 스테프가 기차에 타고 피난을 가는 장면까지 모든 장면이 내 예상을 정면으로 빗나갔다. 개봉 첫날이라 그런지 같은 줄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깜짝 놀랄 때마다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한 게 몇 번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영화는 글의 제목에도 포함된 '전쟁'이라는 키워드를 직접 언급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가장 직접 언급하고 있다. 작품 내에서 전쟁을 암시하는 묘사는 몇 없다. 가장 직접적인 묘사는 라디오에서 재생되는 나토 사무총장의 연설과 함께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거지?'라는 비기의 질문이다. 사실상 이 질문을 제외하면 이 영화 안에서 전쟁이란 단어는 거의 없다. 하지만 작품 안에서 흘리듯이 주는 정보가 전쟁을 암시하게 한다. 비상사태, 줄줄이 따라가는 군용 트럭, 그리고 모로코로 추정되는 장소까지, 모든 배경이 전쟁을 가리키고 있었다. 다른 어떤 영화보다 전쟁과 관련 없는 영화인 척을 한 영화여서 이 점 또한 충격적이었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제목 '시라트(Sirāt)'에 대해서도 써야겠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글로 소개되는 '시라트'는 이슬람에 등장하는 다리로, 죽은 자가 심판을 받기 위해 반드시 건너야 하는 다리이다. 지옥을 사이에 두고 이승과 천국을 잇는 다리라고도 한다. 머리카락보다 가늘며 칼날보다 날카롭다는 서술도 등장한다. 루이스가 70미터를 건너고 비기가 중간에 폭사한 건, 루이스는 시라트를 건넜고 비기는 건너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종교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루이스는 신이 선택했고, 비기는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내용을 단순하게 정리하면 결국 '전쟁을 일으키면 안 된다'이다. 지금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영화와 드라마, 소설과 수필이 전했던 메시지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여느 작품과 달리 반복되지 않고 철저히 시간 순으로 흘러간다.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건조하고 담백한 문체가 마지막에 가서는 무서울 정도로 기계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 문체가 〈시라트〉라는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느꼈다.
아직 올해 본 영화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하지만 아마 이 영화는 올해 말에 가서 '올해 최고의 영화'를 뽑을 때 분명 이름을 싣게 될 것이다. 그 정도로 나에게 큰 울림이 있는 영화였다. 이렇게 신선하고 예측할 수 없는 충격을 주는 영화가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이 등장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