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불러주세요. ‘장애’라는 수식어 없이.

작성자 새벽노래

시선에도 색이 있어요

이름을 불러주세요. ‘장애’라는 수식어 없이.

새벽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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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r_hg9qfn9bz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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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 개선 교육 12년, 꿈꾸는 찬란한 미래.

초/중/고등학교에 가서 인식 개선 교육을 한 지 대략 12년쯤 된 거 같아요. 비록 지금은 업무가 조정되어 더 이상 교육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회복지사로서 가장 보람된 순간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인식 개선 교육을 한 기억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즐거운 기억이에요. 초등학생용, 중학생용(질풍노도용), 고등학생용(어른용도 청소년용도 아닌) 교육을 구성하고, 학교에 가서 학생들을 마주하면 그렇게 신나고, 힘나고 할 수가 없었지요. 신남과 힘의 마음이 가득했던 이유는 "너희들이 이 교육을 받고 나면,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이 동네를 변화시킬거야!"라는 마음 속 기대가 가득했기 때문이에요. 미래를 꿈꾸는 일은 나의 미래만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

왕의 등장

프랜차이즈 카페 취업에 성공한 장애인이 있어요. 꿈꾸는 미래가 실현되는 순간이에요. 발달장애인의 취업에 대한 열망과 갈증과 성취는 어느 정도 일까요? [선배와의 만남]의 시간을 만들어 취업에 성공한 발달장애인에게 복지관 취업 훈련 과정에 있는 장애인들에게 강의를 부탁하면 복지관에 들어오며 정문을 여는 힘부터 달라요. 사극에서 왕이 등장하며 "이리 오너라!"하는 건 소박하게 느껴질 정도에요.

왕의 몰락(한달 천하)

3개월이 지나면 사직서를 냅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이 아니지만, 10명 중 5명은 넘을 거에요. 세상을 다 가진 왕에서 다시 복지관 취업 훈련생으로 돌아오는 걸 선택한 이상한 순간. 도저히 이해가 가지도 않는. 더 큰 현실적인 문제는 더이상 복지관에서 이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 취업 훈련반인데 취업 후 돌아오면 무얼 더 할 수 있겠어요?

취업은 현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어느 직장이든, 장애인이 입사하면 환영해줘요. 사회복지사로서 그 환대에는 2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장애인이 취업에 성공한 것을 축하하는 순수한 마음과 내가 속한 우리 팀은 장애인과 함께 한다는(받아 주었다는) 우월감도 아니고, 자부심도 아닌 것 같은 묘한 마음. 그렇게 첫 달을 아름답게 지나가요.

입사란 현실이에요. 직장 생활, 직장 동료란 공평하답니다. 카페에 바리스타로 취업한 장애인은 장애인이 아닌 바리스타로 취업했습니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가 이루어졌어요. 그런데 현실은 냉혹합니다. 점심 시간, 주문이 몰리는 시간 대에 바리스타는 본인이 가진 능력의 최대치를 발휘해서 빠르게 주문을 쳐 내가야만 합니다. 여기서 질문! 발달장애인 바리스타의 능력의 최대치라는 것이 과연 주문이 많다고 해서 1분에 2잔 내리던 속도를 3잔으로 올릴 수 있을까요?

나에겐 배제, 너는 배려.

"지금 주문이 많으니까 잠시 비켜나 있어주세요.", "사람들이 많이 오면, 커피내리지 말고 테이블 정리를 부탁해요." 배려의 문장 같지만, 이건 배제의 말이었어요. 문제는, 주문이 많다고 속도를 올릴 수 있는 능력은 없어도 배제되었다는 것은 확실하게 이해할 능력은 있다는 것이죠. 그 순간, 표정을 감추고, 직장인으로서 당당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발버둥치지만, 나는 이 곳에서 조차 바리스타가 아닌 장애인이라는 위치일 뿐임을 온 몸으로 깨닫게 되죠. 장애인이 아닌 바리스타로 살 기 위해 3년을 훈련했는데, 수없이 면접에 떨어졌는데, 단, 한달만에 떠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아무 것도 잘못하지 않았지만 부끄러운 순간.

이름을 불러주세요. 이름만요.

인식 개선 교육을 12년이나 했는데, 아무 것도 변한게 없다는 생각에 우리 역시 부끄러웠습니다. 더 이상 인식을 개선하라고 말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인식 개선 교육 시간에 그 어떤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다 한들, 직장은 직장이고, 지역 사회는 지역 사회고, 거기서 살아가는 규칙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요. 인식을 '개선'하지 말아주세요. 그냥 받아들여 주세요. 버텨주세요. "장애인도 우리와 함께 할 수 있어."말고 "000은 우리 직원이야."라고. 장애인의 이름 앞에 "장애인"을 떼어주세요. 이름을 불러주세요. 이름만요.

당신이 사람들에게 그렇게 불리듯이.